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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붉은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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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아저씨! 기다려요!”


자욱한 안개와 먼지가 뒤엉킨 우석현 저잣거리 초입, 등 뒤에서 들려오는 숨 가쁜 목소리는 영악하고 가벼웠다. 사혁은 자리에 멈춰 서며 지팡이 끝을 가만히 흙바닥에 대었다. 귀림 청각이끼의 비린 약효가 고막을 적셔둔 덕분에, 양쪽 귀의 먹먹한 장막 너머로 둔탁한 발소리가 디디는 지면의 떨림이 희미하게 형태를 갖추어 전해졌다. 미행의 주인공은 거지 소년 망치였다.


“망치로구나.”


사혁의 낮게 갈라진 음성에 소년은 제 무릎을 짚고 마른침을 삼켰다. 망치의 누더기 옷자락에서 풍기는 저잣거리 특유의 마른 먼지 냄새와 썩은 시래기 냄새가 사혁의 코끝을 스쳤다. 아연은 사혁의 도포 자락을 꼭 쥔 채, 찢어진 삼베 신발 사이로 드러난 다친 발바닥의 통증을 참으며 소년의 기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지금 현성 안이 완전히 뒤집혔어요. 적사파 놈들이랑 관군들이 골목마다 깔려 있다고요. 귀림에서 혈견이라는 자가 죽었다는 소문이 벌써 철호 지부장 귀에 들어간 모양이에요.”


망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극도로 낮추었다.


“사평 아저씨의 대장간 주변도 적사파 잔챙이들이 감시하고 있어요. 하지만 뒷마당 쪽 붉은 벽돌 담벼락 밑은 하수구랑 연결되어 있어서 놈들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길을 안내할게요.”


사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림을 벗어날 때 절벽 바위벽을 타느라 아연의 발바닥 자상에서 풍기는 미세한 피비린내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아이를 안전하게 쉬게 하고, 혈견의 철검과 충돌해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 죽장검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숙부 사평의 철기 대장간으로 가야만 했다.


망치의 영악한 인도에 따라, 사혁 일행은 순찰하는 관군들의 가죽 장화 소리를 피해 어두운 골목길을 우회했다. 둔탁하게 들리는 귀를 억누르며 사혁은 지면의 진동과 공기의 기압 변화에 신경을 집중했다. 마침내 쇠 굽는 냄새와 매캐한 석탄 연기가 밤안개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철기 대장간 뒷골목에 도달했다.


*탁. 탁. 탁.*


사혁은 지팡이 끝으로 대장간 뒷마당의 붉은 벽돌 틈새를 사평과 약속했던 고유의 고저로 세 번 가볍게 두드렸다. 밤바람에 실려 오는 석탄 타는 소리 너머로, 안쪽에서 삐걱거리는 무거운 빗장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거칠고 매연이 밴 텁텁한 호흡이 새어 나왔다.


“……혁이냐?”


그을린 피부와 단단한 근육을 지닌 오십 대의 대장장이, 숙부 사평이었다. 사평은 문밖의 어둠 속에 서 있는 사혁의 눈가를 가린 무명 안대를 보는 순간, 커다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른손가락 두 개가 잘려 나간 그의 거친 손이 사혁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이럴 수가…… 네 눈이, 정말로…….”


사평의 목소리가 물기 젖은 채 갈라졌다. 사혁은 묵묵히 숙부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안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채의 따뜻한 화로 옆방에서 숙모 임씨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맞이했다. 임씨는 찢어진 삼베 신발을 신은 아연의 상처 입은 발바닥을 보더니 가슴을 쥐어뜯으며 대장간 가마솥에 불을 지펴 따뜻한 물을 준비했다. 아연의 다친 발을 씻기고 따뜻한 밥을 지어주는 숙모의 정성 어린 손길에서, 사혁은 가문 몰살의 피비린내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았던 인간적인 온기를 느꼈다.


방 안의 따뜻한 밥 냄새와 화로의 열기 속에서, 사평은 사혁의 앞에 마주 앉아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가슴속에 맺힌 원한이 호흡의 떨림을 통해 사혁의 예민한 청각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내 아들, 네 사촌 동생이었던 사철이…… 우석현 지부의 흑탑 단원 놈들에게 수탈당하다가 결국 구타로 목숨을 잃었다. 가문의 대를 잇겠다고 철기 주조를 배우던 착한 아이였는데…… 철호 그 살인귀 놈이 이 현성을 장악한 뒤로 우리 같은 방계 핏줄마저 이 잡듯 뒤져 착취했지. 가문의 몰살을 막지 못했던 것도 한스러운데, 자식 놈까지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내 가슴에는 오직 붉은 화로의 불꽃 같은 원한만 남았구나.”


사평의 이빨이 갈리는 둔탁한 마찰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사혁은 가만히 품속에서 죽장검을 꺼내 사평의 앞에 내려놓았다.


“철호의 목을 베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전투로 검신에 균열이 갔습니다.”


사평은 묵묵히 죽장검의 지팡이 손잡이를 비틀어 내부의 백련강 검신을 뽑아냈다. 얇고 날카로운 백련강 날이 붉은 화로 불빛을 받아 차갑게 반사되었다. 사평은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 검날 표면을 짚어 내려가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검날의 두께가 너무 얇아. 일류 무인의 묵직한 철검과 부딪치며 검신 내부의 결에 미세한 과부하 균열이 누적되었구나. 이대로 한 번 더 강한 충격을 받으면 검날 자체가 조각나 버릴 게다. 다행히 내게 가문에서 비장해 오던 북해산 ‘빙한철 조각’이 남아 있다. 이것을 화덕에 녹여 검날 끝에 덧댄다면, 어떤 강철 방패나 철갑도 쪼갤 수 있는 파괴력을 얻게 될 게야.”


사평은 당장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지하 화덕 방으로 향했다. 사혁 역시 지팡이 검의 정비를 돕기 위해 그 뒤를 따랐다.


지하 화덕 방은 석탄의 그을음과 시뻘겋게 달아오른 용융액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화덕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사혁의 얼굴을 직격하자, 실명한 눈가 흉터를 보호하기 위해 발라두었던 고령토 연고가 미세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연고가 피부 틈새로 흘러내리며 안면에 찌르는 듯한 일시적인 통증을 유발했으나, 사혁은 신음 한 마디 내지 않고 벽면에 기대어 섰다.


*쾅! 쾅! 쾅!*


풀무질 소리와 함께 사평이 모루 위에서 쇠를 두드리는 웅장한 타격음이 좁은 지하 방을 가득 채웠다. 최근 고막 파열 부상과 과도한 청각 소모로 난청을 겪고 있던 사혁의 예민한 귓구멍 안쪽이 쇠망치 소리에 반응해 부르르 떨리며 극심한 이명 발작을 일으키려 했다. 머릿속의 백색 공간 지도가 산산조각 날 것 같은 고통이었다.


사혁은 품속에서 밀랍과 한천 약초를 반죽해 만든 ‘소음용 귀마개’를 꺼내 양쪽 귓구멍 내부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체온에 녹아내린 밀랍이 귓구멍을 완벽히 밀폐하자, 외부의 파괴적인 망치 소음이 일시에 차단되며 둔탁한 저주파의 진동만이 전신 뼈를 타고 전송되었다. 식골명상법(息骨冥想法)의 극의였다. 사혁은 귀를 막은 채, 대지가 흔들리는 진동과 뼈의 공명만을 느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사평은 가마 가마솥의 고열 속에서 빙한철 조각을 녹여내어 백련강 검신 끝에 덧대기 시작했다. 붉게 달아오른 쇠가 차가운 약초 물에 식을 때마다, 날카롭고 웅장한 수증기 비명 소리가 지하 방을 가득 채웠다.


*치이이이익—*


수증기의 뜨거운 습기가 사혁의 피부 촉각에 닿았다. 사평은 핀셋으로 검날의 무게 중심을 미세하게 조율하며 망치질을 거듭했다. 하지만 빙한철이라는 극품 철광석의 밀도가 너무 높은 탓에, 검날 끝에 철을 덧대는 과정에서 검의 무게 중심이 칼끝으로 미세하게 쏠리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검을 휘두를 때 미세한 공기 저항 소음이 발생할 위험이 생겼으나, 검의 강도만큼은 무인들의 강철 방패를 쪼갤 수 있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사혁의 피부 솜털이 기민하게 일어섰다. 귀마개를 끼고 있어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대장간 지상 건물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불규칙하고 폭력적인 진동이 그의 발바닥을 통해 뇌리로 매핑되었다.


‘적사파 놈들이다.’


대장간 입구에서 쇠붙이를 거칠게 두드리며 행패를 부리는 단원들의 기척이었다. 사혁은 즉각 귀마개를 빼내고, 사평이 건네준 보강된 죽장검의 백련강 날을 대나무 외피 지팡이 내부로 소리 없이 밀어 넣었다. 윤활 청동유의 잔여량이 미세하게 소모되며 검은 완벽한 무음으로 수납되었다.


안채에서 대기하던 숙모 임씨는 적들의 기척을 느끼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가마솥에 급히 쌀을 안치고 마른 장작을 가득 집어넣어, 대장간 화덕의 비정상적인 열기와 빙한철 특유의 매운 냄새를 밥 짓는 연기로 위장했다. 대장간 가득 구수한 밥 짓는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지하의 흔적을 가렸다.


그 순간, 지상 대장간의 철문이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거칠게 발로 차이며 열렸다.


*쾅—!*


“이봐, 사평 영감! 문 안 열어? 관청 상납금이 벌써 사흘이나 밀렸잖아!”


적사파의 행동대장들이 쇠못이 박힌 몽둥이를 질질 끌며 대장간 내부로 들이닥치는 소리가 사혁의 각성된 고막에 날카롭게 걸려들었다. 복수를 위한 칼날은 완벽히 보강되었으나, 적들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대장간 내부는 일촉즉발의 사투 직전의 긴장감으로 터질 듯 팽팽해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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