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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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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견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며 진흙을 적시는 둔탁한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의 품에서 찾아낸 피 묻은 혈첩 조각을 쥔 사혁의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양쪽 귀를 가득 채운 이명은 이제 단순한 울림을 넘어, 세상의 모든 소리를 거대한 장막 뒤로 밀어내 버린 먹먹한 침묵이었다. 귓구멍 안쪽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무리하게 청풍은검의 극의를 시전한 대가였다.


사혁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맹인인 그에게 세상의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있었다. 아연의 작은 손이 사혁의 젖은 도포 자락을 꼭 쥐어왔다. 아이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과 온기만이 그가 여전히 귀림의 썩은 흙바닥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사혁은 묵묵히 고개를 숙여 아연의 방향을 가늠한 뒤, 흙먼지가 묻은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오두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


오두막 내부에는 매캐한 약초 냄새와 마른 장작이 타들어 가는 둔탁한 열기만이 가득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조수 삼룡이 다가와 사혁의 어깨를 부축했다. 사혁은 삼룡의 거친 손길에서 묻어나는 다급함을 느꼈다. 삼룡은 다리가 부러져 신음하는 들개 바람을 방 한구석에 눕히고 낡은 삼베로 상처를 묶어둔 상태였다. 바람은 사혁이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꼬리를 바닥에 툭툭 치며 나지막이 으르렁거렸으나, 그 소리조차 사혁의 귀에는 두꺼운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먹먹하게 웅웅거릴 뿐이었다.


백 노인이 어둠 속에서 무거운 걸음으로 걸어와 사혁의 뺨을 짚었다. 노인의 손가락 끝에 묻어나는 피를 만진 백 노인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깊게 가라앉았다. 노인은 사혁을 침상에 앉히고, 귀림 청각이끼를 짓이겨 만든 즙을 사혁의 귀 안쪽에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차갑고 비린 즙액이 고막을 적시자, 머릿속을 찌르던 날카로운 이명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둔탁하고 먼 소리들이 희미하게나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철호 놈이 척살대를 보냈다.”


백 노인의 목소리가 이끼 장막을 뚫고 웅웅거리며 전해졌다.


“혈견이 죽었으니, 이제 놈들은 네가 살아있음을 확신할 게다.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 우석현 현령 조중구의 군사들이 이 숲을 포위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혁은 묵묵히 죽장검을 어루만졌다. 얇고 날카로운 백련강 검신은 혈견의 무거운 철검과 정면으로 충돌한 여파로 인해 미세한 균열의 진동을 품고 있었다. 검을 쥘 때마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굴절의 감각이 검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 검을 수리하고, 자신을 쫓는 적들의 목을 베기 위해서는 결국 이곳을 떠나야 했다. 숨어 다니는 사냥감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사냥꾼이 직접 사지로 걸어 들어갈 차례였다.


“하산하겠습니다.”


사혁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우석현으로 직접 들어갑니다. 철호의 목을 베지 않는 한, 귀림의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아연이 사혁의 옷자락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아이의 눈망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얼굴에 서린 결연함만큼은 사혁의 공간 촉각에 선명하게 잡혔다.


“저도 갈래요, 아저씨. 제가 아저씨의 눈이 되어 드릴게요.”


사혁은 아이의 머리를 거친 손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거절할 수 없는 동행이었다. 그에게 아연은 지켜야 할 역린이자, 어둠 속에서 자신을 인간으로 붙잡아주는 유일한 구리 방울이었다.


하산을 시작하기 전, 사혁은 귀림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 위치한 스승 독고창의 무덤을 찾았다. 숲의 밤바람이 대나무 잎들을 사각거리며 흔드는 소리가 먹먹한 고막을 스쳐 지나갔다. 사혁은 무덤 앞의 축축한 진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흙 냄새와 썩은 잎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는 품속에서 죽장검을 꺼내 무덤 앞에 내려놓고 조용히 합장했다.


‘스승님, 살인 병기로 살아온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 다시 검을 쥡니다. 이 피 묻은 검이 마지막 배신자의 심장을 찌르는 순간, 저 역시 검을 묻고 인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는 지팡이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끝이 향한 곳은 안개 낀 귀림의 출구, 그리고 탐욕과 부패로 가득 찬 우석현 현성이었다.


귀림의 경계를 벗어나는 외길목에는 이미 관군의 야간 삼거리 검문소가 삼엄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관군들이 밝힌 횃불의 열기와 나무가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사혁의 안면 피부를 자극했다. 횃불이 내뿜는 나지막한 불꽃의 파공음이 사방에서 웅웅거렸다.


사혁은 걸음을 멈추고 젖은 흙바닥에 대나무 지팡이를 밀착시켰다. 그리고 지폭 도청(地幅盜聽)의 내력을 대지로 흘려보냈다. 귀가 먹먹하여 평소보다 소리의 해상도는 떨어졌으나, 단단한 흙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만큼은 뇌리 속에 선명한 격자지도를 그렸다. 관군들의 가죽 장화가 지면을 딛는 규칙적인 마찰음, 그들의 갑옷 조각들이 부딪치는 미세한 금속성 기척이 감지되었다.


“교대 주기는 오십 호흡이다.”


사혁이 아주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정면의 검문소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관군들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 가파른 바위벽 절벽 우회로를 타야만 했다. 눈먼 자에게는 한 발자국만 잘못 디디면 천길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사지였으나, 사혁에게는 바람의 흐름을 읽는 보법이 있었다.


그는 바람길 걷기 보법을 전개했다. 절벽 틈새를 타고 불어오는 미세한 바람의 저항력 차이를 발바닥의 촉각과 피부 솜털로 감지하며, 안전한 바위 모서리를 디디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아연은 사혁의 도포 자락을 생명줄처럼 꽉 쥔 채, 사혁이 딛고 지나간 자리를 발끝으로 느끼며 소리 없이 뒤를 따랐.


하지만 절벽 중간 지점에 도달했을 때, 예상치 못한 재앙이 닥쳤다. 아연의 낡은 삼베 신발 끝이 빗물에 젖어 미끄러지면서, 바위 모서리에 얹혀 있던 작은 돌멩이를 건드렸다.


*탁, 또르르륵—*


어둠 속에서 돌멩이가 굴러떨어지는 마찰음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좁은 절벽 사방으로 소리가 반사되며 경보음처럼 번졌다.


“음?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나?”


절벽 아래 경계망을 지키던 관군 순찰대원 한 명이 횃불을 치켜들며 바위벽 쪽으로 다가오는 묵직한 가죽 장화 소리가 들렸다. 서서히 좁혀지는 발소리는 사혁의 뇌리에 붉은 위험 신호로 매핑되었다. 이대로 들킨다면 아연의 목숨이 위험했다.


사혁은 즉각 어깨 위에 앉아 있던 까마귀 흑돌을 향해 미세한 구강 마찰음 신호를 보냈다. 흑돌이 날갯짓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까마귀는 순찰대원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반대편 대나무 숲의 마른 나뭇가지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며 사정없이 흔들었다.


*푸드득! 사각! 탁!*


“아기새나 들쥐 놈이겠지. 쓸데없이 예민하긴.”


동료의 무심한 목소리에 바위벽으로 다가오던 순찰대원의 발소리가 멈추고, 다시 삼거리 검문소 방향으로 멀어졌다. 사혁은 멈췄던 호흡을 나지막이 내쉬며 아연의 손을 다시 잡았다. 험한 바위벽을 타느라 아연의 낡은 삼베 신발은 완전히 찢어졌고, 날카로운 돌날에 긁힌 발바닥에서 미세한 피비린내가 풍겼으나 아이는 단 한 번의 신음도 내지 않고 고통을 삼키고 있었다. 사혁의 가슴속에 서글프고 단단한 의지가 휘몰아쳤.


마침내 가파른 절벽을 완전히 내려와 우석현 현성의 외곽 저잣거리 초입에 도달했다. 귀림의 축축하고 썩은 흙 냄새는 사라지고, 마른 먼지와 비린내 나는 인간 군상들의 지저분한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 들어찼다.


그때, 사혁의 예민해진 공간 촉각에 기이한 기척이 잡혔다. 누군가 그들의 하산길을 처음부터 은밀하게 미행해 온 발소리였다. 아주 가볍고, 영악하며, 보폭이 좁은 발소리. 우석현 저잣거리의 거지 소년, 망치였다. 소년은 숨을 헐떡이며 흑탑 단원들의 눈길을 피해 사혁의 등 뒤를 향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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