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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바람의 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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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사냥개는 사혁을 비껴가, 아연이 숨은 만인총 구덩이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아연아!”


사혁의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보이지 않는 시야 속에서, 거대 사냥개의 육중한 발톱이 축축한 진흙을 파헤치며 질주하는 소리가 고막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놈의 아가리에서 흘러내리는 침방울이 풀잎에 닿는 미세한 마찰음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거리는 고작 열 걸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연의 심장 박동 소리가 공포로 인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진흙바닥을 기는 소리가 들렸다. 들개 바람이었다. 뒷다리 뼈가 드러나는 참혹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바람은 아연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내어 거대 사냥개의 옆구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깽!*


바람이 사냥개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체급의 차이가 너무도 컸다. 거대 사냥개는 귀찮다는 듯 몸을 흔들어 바람을 바닥에 내팽개쳤고, 바람의 부러진 다리뼈가 흙바닥에 부딪치며 으스러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혁의 귀에 꽂혔. 동료의 비명과 아연의 위기는 사혁의 가슴 깊은 곳에 도사린 차가운 이성을 단숨에 불태워버렸다. 머릿속의 백색 지도가 붉은 분노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하하! 맹인 놈아, 네년이 지키려는 장님 계집부터 찢어발겨 주마!”


안개 속에서 혈견의 광소와 함께 쇠사슬이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사혁의 퇴로를 막아섰다. 놈은 청동 호루라기를 더욱 강하게 불어대며 사혁의 고막을 찢어발기려 했다.


*삐이이이이이—!*


머리를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고주파의 굉음이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최근 고막 파열 부상을 입었던 왼쪽 귀에서 다시 뜨거운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방의 비석에 반사되는 쇠사슬 소리와 호루라기 소음이 뒤엉켜 사혁의 청각 추적망을 완전히 마비시키려 했다. 세상이 하얗게 지워지는 반절벽의 위기였다.


‘차분해져야 한다. 살기에 눈이 멀면 검이 둔해진다.’


사혁은 어금니를 깨물며 심장 박동을 강제로 늦췄다. 그때, 진흙 구덩이 깊은 곳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일정한 고주파의 진동이 전해졌다.


*딸랑.*


아연이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던 구리 방울이 아이의 떨림을 이기지 못하고 미세한 소리를 낸 것이다. 그것은 소음의 홍수 속에서 사혁의 어지러워진 감각을 붙잡아주는 단 하나의 등대였다. 사혁은 그 은은한 방울 소리에 자신의 청각 주파수를 고정했다. 시끄러운 호루라기 소리가 배경 잡음으로 밀려나고, 안개 속 혈견의 실시간 위치가 머릿속 백색 공간 위에 다시 선명하게 그려졌다.


혈견이 사혁의 부상을 노리고 묵직한 철검을 치켜들며 무자비한 강격을 연속으로 전개했다. 사혁은 초반에 적사파 무덕의 철벽 방어법을 모방해 죽장검의 검신으로 철검을 정면에서 맞받아치려 했다.


*깡!*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뇌를 흔드는 반동이 전해졌다. 사혁의 얇은 백련강 검신은 웅장한 철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크게 퉁겨 나갔다. 부상당한 왼쪽 어깨의 인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사혁의 신형이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정면 힘 싸움은 자멸이었다.


“흐하하! 검날이 참으로 가늘구나! 그따위 바늘로 내 철검을 막겠느냐!”


혈견이 오만하게 소리치며 다시 한번 철검을 사선으로 내리찍었다. 사혁은 이번엔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지팡이 흘리기 기예였다. 검날을 비스듬히 눕혀 지팡이 끝의 미세한 떨림으로 적의 칼날을 받아내며 비스듬히 옆으로 흘려보냈다.


*스으으윽—*


철검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사혁의 칼날을 타고 미끄러져 진흙바닥을 깊게 갈랐다. 혈견의 상체가 순간적으로 앞으로 쏠렸다.


찰나의 공백. 혈견이 다음 초식을 전개하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쉬며 가슴 근육을 긴장시켰다. *두근. 두근.* 사혁의 극의에 달한 청각이 혈견의 흉부가 팽창했다가 수축하는 이완기의 순간을 포착했다. 적의 심장이 가장 크게 뛰고, 수비가 가장 무방비해지는 0.1초의 빈틈이었다.


사혁은 무덤가 비석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밤바람의 흐름을 피부로 읽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는 속도와 바람의 저항력을 완벽히 일치시켰다. 청풍은검(聽風隱劍).


공기가 쪼개지며 발생하는 미세한 마찰음조차 사라졌다. 바람 소리마저 삼켜버린 완벽한 무음의 참격이 안개 숲을 가르고 뻗어나갔다.


혈견은 마지막 순간 본능적인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품속에서 독이 묻은 단검을 던져 동귀어진을 노렸다.


*깡!*


날카로운 금속음이 사혁의 가슴팍에서 울렸다. 던져진 단검이 사혁이 가슴 가죽 보호대 안쪽에 숨겨둔 두꺼운 구리 거울에 부딪쳐 퉁겨 나간 것이다.


그리고 사혁의 얇은 백련강 검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혈견의 목줄기를 관통했다.


*스윽.*


바람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 혈견은 자신이 어떤 무기에 베였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눈을 부릅떴다. 이윽고 놈의 머리가 차가운 흙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질척한 소리를 냈다. 붉은 선혈이 안개 낀 귀림의 진흙탕을 검붉게 물들였다.


“헉…… 헉…….”


사혁은 죽장검을 바닥에 짚으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무리하게 필살 참격을 시전한 대가로 그의 오른쪽 귀에서도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세상의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며 일시적인 난청 상태가 찾아왔다. 사혁은 적막 속에서 쓰러진 혈견의 품을 거친 손끝으로 수색했다.


품속 안쪽 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는 거친 가죽 종이 조각이 만져졌다. 사혁의 손끝에 닿은 그것은 피로 물든 장부의 일부, 바로 흑탑 혈첩(黑塔 血帖)의 조각이었다. 눈먼 사냥꾼의 손가락 끝 촉각이 종이에 새겨진 음각 문양을 읽어내렸다.


그곳에는 우석현 현령 조중구와 흑탑 지부장 철호가 유민들을 납치해 노예로 거래한 추악한 밀수 장부의 연결고리가 기록되어 있었다. 복수의 서막을 열 더 거대한 음모의 심장 박동이, 사혁의 손끝에서 차갑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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