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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지팡이에 숨겨진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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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진흙을 밟는 가죽 장화의 마찰음이 귓전을 어지럽게 긁어댔다.


사혁은 움직임을 멈췄다. 혀를 입천장에 밀착시키고, 기도가 아닌 목구멍 안쪽에서 숨결을 소화시키는 호흡법. 묵언청공(默言聽空)의 수칙이었다. 심장 박동마저 억지로 늦추자, 오두막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것처럼 고요해졌다. 옆에 선 백 노인의 거친 숨소리와 아연이 품고 있는 구리 방울의 미세한 떨림만이 사혁의 머릿속 백색 지도 위에 희미한 파동으로 그려졌다.


세 명이었다.


가죽 장화가 진흙을 디딜 때마다 일어나는 끈적한 마찰음, 그리고 옷자락이 나뭇가지에 쓸리는 서글픈 소리. 그중 한 명은 왼쪽 다리에 미세하게 무게를 더 싣고 있었다. 절뚝이는 자가 아니었다. 기습을 위해 신체의 무게 중심을 극도로 낮춘 살수 특유의 보법이었다. 놈들이 오두막 문턱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백 노인이 소리 없이 사혁의 도포 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바닥의 낡은 가마솥 아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 파두었던 비밀 흙구덩이 통로로 그와 아연을 밀어 넣었다. 유황 냄새가 가득한 귀림 청각이끼의 부작용으로 후각을 잃은 사혁에게는 그곳이 얼마나 썩은 냄새가 나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뺨에 닿는 흙의 차가운 촉각과, 머리 위 얇은 목조 판자 너머로 들려오는 적들의 발소리만이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스슥, 스스슥.*


먼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적들이 오두막 내부를 뒤지고 있었다. 사혁은 어둠 속에서 백 노인이 쥐여준 대나무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대나무의 마디마디가 기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지팡이 내부에서 차갑고 예리한 무언가가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적들의 발소리가 오두막을 벗어나 귀림의 북쪽 고분군 방향으로 멀어졌다. 마침내 흙구덩이의 판자가 열리고, 백 노인의 거친 손이 사혁을 끌어올렸다.


“놈들이 귀림 전체를 뒤질 기세다.”


백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사혁은 무명 안대로 가려진 눈을 노인의 방향으로 돌렸다.


“지팡이가…… 울립니다.”


사혁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쓰지 않아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백 노인은 묵묵히 사혁이 쥔 대나무 지팡이를 바라보더니, 한숨 섞인 어조로 말했다.


“독고창이 죽기 전, 내게 신신당부하며 남긴 물건이다. 네놈이 스스로 일어서기 전까지는 절대 넘겨주지 말라더군. 하지만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


노인은 사혁의 손을 가져가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을 쥐여주었다.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반 바퀴 비틀고, 아래로 강하게 당겨라.”


사혁은 노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손끝에 묵직한 걸쇠가 풀리는 감각이 전해졌다. 이윽고 대나무 외피 안쪽에서 얇고 날카로운 강철 검신이 스르륵 빠져나왔다.


*스으으윽—*


순간,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사혁의 예민한 귓전을 직격했다. 그것은 쇠와 쇠가 긁히며 내는 비명이었다. 귀림 청각이끼로 간신히 진정시켜 놓았던 고막이 그 마찰음에 반응해 부르르 떨렸다.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통증에 사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홀로 서야 하는 맹인 검객에게, 무기를 뽑을 때 나는 이 미세한 마찰음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밤의 정적 속에서 이 소리를 내는 순간, 사방의 모든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광고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소리가…… 너무 큽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했다.”


백 노인이 사혁의 손에 작고 둥근 도자기 병 하나를 쥐여주었다. 사평의 대장간에서 청동을 정련할 때 흘러나오는 광물성 기름을 세 번 걸러 정제했다는 ‘윤활 청동유’였다.


사혁은 조심스럽게 병마개를 열었다. 기름 특유의 묵직한 점성이 손가락 끝에 묻어났다. 그는 손가락에 기름을 묻혀, 대나무 칼집의 입구와 백련강 검신의 표면에 아주 얇고 고르게 펴 바르기 시작했다. 쇠의 미세한 요철을 기름으로 메우는 작업이었다. 검신 소음 제거술의 기초였다.


다시 검을 칼집에 밀어 넣었다가 뽑았다.


*…….*


소리가 사라졌다. 쇠가 긁히던 날카로운 마찰음이 기름의 무게에 눌려 완벽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사혁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검을 고쳐 잡았다. 이제 무기를 전개할 때 발생하는 소음은 지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다.


사혁은 오두막 뒤편의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천 개의 대나무 잎들이 사각거리며 기괴한 마찰음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이 혼란스러운 소음 속에서 검술을 단련해야만 실전에서 적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사혁은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대나무 숲을 울렸다. 사혁은 자신의 검이 내는 소리에 스스로 놀라 검을 멈췄다. 바람 소리보다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훨씬 컸다. 아무리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도, 검을 휘두르는 순간 적이 그 파공음을 듣고 피해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스승 독고창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이청득심결(耳聽得心訣)의 기본은 자연과의 동조다. 네 검이 바람을 찢으려 하기에 소리가 나는 것이다. 바람을 찢지 마라. 바람의 결에 네 칼날을 태워라. 바람 소리와 네 칼날의 마찰음을 완벽히 일치시키는 것, 그것이 청풍은검(聽風隱劍)의 시작이다.’


바람 소리에 칼날을 숨긴다.


사혁은 대나무 숲 한가운데에 서서 피부로 불어오는 바람의 저항력을 느끼려 애썼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 바람의 세기가 강해졌다가 약해지는 주기적인 변화를 피부 솜털로 읽어냈다.


그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칼날의 각도를 완벽히 일치시키며 검을 비스듬히 내뻗었다.


*스슥.*


처음에는 대나무 잎이 쓸리는 듯한 가벼운 마찰음이 났지만, 이내 수십 번의 가위질 끝에 검은 공기의 저항을 타기 시작했다. 휘두르는 속도와 바람의 저항력을 일치시키자, 공기 분열음이 서서히 소멸해 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올 때 그 흐름에 맞춰 검을 휘두르면, 검 소리가 바람 소리 뒤로 완벽하게 숨어버렸다.


하지만 이 무음 검술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만 소리가 지워질 뿐, 무풍 지대이거나 기습적인 방향 전환으로 바람의 결을 거스르는 순간 가차 없이 파공음이 발생했다. 또한, 이 죽장검의 검날은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극도로 얇고 가볍게 주조되어 있었다. 가벼운 검날은 속도를 주지만, 적이 단단한 중갑을 입고 있거나 묵직한 병기로 받아칠 경우 단번에 퉁겨 나가거나 부러질 위험이 컸다.


사혁은 이 한계를 극복해야 했다. 그는 대나무 숲에서 떨어지는 잎사귀들을 표적 삼아 ‘지팡이 흘리기’ 수련을 시작했다.


손바닥의 미세한 신경을 대나무 지팡이 손잡이에 밀착시켰다. 바람을 타고 낙하하는 대나무 잎사귀가 지팡이 끝에 닿는 순간, 그 미세한 떨림이 손바닥을 타고 온몸의 뼈로 전달되었다. 사혁은 적의 강한 참격을 힘으로 막지 않고, 지팡이 끝의 진동을 이용해 비스듬히 흘려보내는 감각을 익혀나갔다.


그리고 가벼운 검날이 튕겨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손목의 스냅을 극도로 이용해 검 끝에 미세한 횡방향 진동을 가하는 ‘바람 가르기’의 기초 궤적을 고안해 냈다. 칼날이 흔들리며 적의 중갑 틈새를 뱀처럼 파고드는 초식이었다.


수련은 밤낮없이 이어졌다. 피로가 누적되자 몸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파아앙!*


바람의 흐름을 잘못 읽고 무리하게 검을 휘두른 순간, 대나무 지팡이 끝이 단단한 바위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불꽃이 튀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귀청을 때렸고, 검신이 반으로 쪼개질 뻔한 아슬아슬한 반동이 사혁의 오른손으로 고스란히 역류했다.


“으윽……!”


사혁은 검을 놓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 관절에 가해진 미세한 진동의 충격이 신경을 마비시켰다. 오른손 전체가 부르르 떨리며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는 극심한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 뼈마디를 자극하는 통증에 사혁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만 무음 검술이 작동할 뿐, 기습적인 변화에는 여전히 소리가 났고 육체적 대가는 가혹했다. 그럼에도 사혁은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움켜쥐며 다시 죽장검을 일으켜 세웠다. 복수를 끝내기 전까지는 이 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멈출 수 없었다.


그가 다시 호흡을 가라앉히고 떨어지는 대나무 잎사귀를 향해 검을 겨눈 바로 그 순간.


*스슥, 쇳-*


귀림의 입구 쪽, 자욱한 밤안개 너머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이질적인 소리가 사혁의 예민해진 고막에 걸려들었다.


단순한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쇠붙이가 옷자락에 쓸리며 내는 아주 낮고 날카로운 금속성의 마찰음. 그리고 땅을 디딜 때 흙의 입자가 미세하게 짓눌리는 보법의 흔적. 낮에 다녀갔던 삼류 추격자들의 어설픈 발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노련함이었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전문 살수의 보법.


사혁은 죽장검을 쥔 채 몸을 서서히 낮췄다. 떨리던 오른손의 마비가 차가운 긴장감 속에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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