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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림의 불꽃과 맹인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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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라, 미련한 놈아!”


삼월의 날카로운 일성이 사당의 깨진 장지문 틈새로들이치는 빗소리를 찢고 사혁의 두개골을 흔들었다.


그녀의 거친 손길이 사혁의 턱뼈를 강하게 움켜쥐더니, 쌉싸름하면서도 비릿한 약향을 풍기는 환약 하나를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 사정없이 밀어 넣었다. 의금부의 정예 밀정조차 고문할 때나 쓸 법한 독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리쳤다. 삼월이 처방한 비상 내복약, 자하단(자하단)이었다.


“컥……!”


약 기운이 위장에서 터지는 순간, 심장 주변의 경맥들이 얼어붙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사혁은 반사적으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손칠의 청동 징 소리에 직격당해 찢어질 대로 찢어졌던 왼쪽 고막 안쪽에서 날뛰던 기혈이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귓구멍 깊은 곳에서 울컥거리며 흘러내리던 끈적한 검붉은 피의 흐름이 자하단의 약효로 인해 강제로 지혈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약효를 억지로 전신에 퍼뜨리기 위해 기혈을 운용하자,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요동쳤다. 가슴 한가운데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부정맥의 통증이 그의 흉부를 가볍게 압박했다.


“아저씨…… 피가, 피가 자꾸 나와요…….”


어둠 속에서 흐느끼는 아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혁은 보이지 않는 시야 대신, 아이의 작은 몸이 공포로 사정없이 떨릴 때마다 가슴팍의 구리 방울이 내는 미세한 마찰음에 집중했다. 딸랑, 딸랑. 그 작은 진동만이 사혁이 광기 어린 살육 속에서 이성을 잃지 않게 붙잡아두는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아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품속에서 작은 도자기 병을 꺼냈다. 백 노인이 무덤가의 고운 고령토와 한천 약초를 배합해 만들어 주었던 고령토 연고(고령토 연고)였다.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연고를 듬뿍 떠서 사혁의 짓물러 터진 눈가 흉터 주변에 조심스럽게 발랐다.


“차갑구나, 아연아.”


사혁이 낮게 읊조렸다.


연고가 닿는 순간, 화끈거리던 안구 뒤편의 염증이 가라앉는 서늘함이 밀려왔다. 연고의 약성이 피부를 가죽처럼 딱딱하게 굳혀 안면의 미세한 촉각을 일시적으로 둔화시켰지만, 지금의 사혁에게는 이 지독한 통증을 잠재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연은 때 묻은 회색 무명천을 가져와 사혁의 눈가를 다시 한번 단단히 조여 묶었다.


“가만히 계셔요. 삼월 언니가 내공을 안정시켜야 한대요.”


아연의 손길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갈 때, 사혁은 가슴속 도사린 피비린내 나는 살기가 아주 조금은 씻겨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과거 황실 암살 조직 ‘흑탑’에서 살인 병기로 길러지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묘하고 따뜻한 온기였다.


그러나 그 온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콰창!*


사당의 무너진 문짝이 거칠게 부서지며 누군가가 흙탕물을 튀기며 안으로 난입했다. 사혁의 손가락 끝에 묶인 자석 깃털이 허공의 미세한 기류 변화를 감지해 팽팽하게 정렬되었다. 손잡이를 쥔 죽장검의 백련강 검신이 미세한 바람 소리를 내며 적의 방향을 가리켰다.


“사, 사혁 형씨……! 큰일났소!”


난입한 자는 살수가 아니었다. 거칠고 불규칙한 호흡, 숲의 흙먼지와 비린내가 온몸에 밴 사내. 귀림 주변을 터전으로 삼던 사냥꾼 막동(막동)이었다. 놈의 심장 소리는 마치 터지기 직전의 가죽 북처럼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막동이냐. 숨을 골라라.”


사혁이 둔탁하게 들려오는 삼월의 목소리를 빌려 놈의 위치를 좌표로 잡았다.


“그럴 시간이 없소! 현령 조중구(조중구) 그 개자식이…… 형씨를 대역죄인으로 선포하고 관군 오백을 풀었소! 지금 수색대장 호필이 군사들을 이끌고 귀림(귀림) 전체를 포위했단 말이오!”


사혁의 미간이 무명 안대 아래에서 굳어졌다.


“포위했을 뿐이라면, 귀림의 미로 같은 지형을 뚫지 못할 터인데.”


“불을 지르고 있소!”


막동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호필 그 잔인한 놈이 귀림 주변에 기름을 뿌리고 사방에서 불을 놓기 시작했소! 바람이 북쪽으로 불어 귀림 공동묘지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고 있단 말이오! 백 노인 영감이랑 무덤가 지하 동굴에 피난해 있던 유민들(귀림의 망자들)이…… 모두 불길 속에 갇혀 버렸소!”


순간, 사혁의 머릿속 백색 공간 지도가 거대한 불꽃의 소음으로 가득 차오르는 듯한 환청이 일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즉각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삼월이 거친 손길로 그의 소매자락을 강하게 잡아채며 가로막았다.


“가지 마라! 지금 움직이면 자하단의 약효가 역류해 네 고막 세포는 완전히 괴사할 것이다! 영구히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님이자 귀머거리가 되고 싶어 환장했느냐!”


삼월은 침통을 열어 은침을 꺼내 들었다. 사혁의 기혈을 강제로 봉인해 이곳에 묶어두려는 의도였다. 은침 끝이 공기를 뚫는 미세한 진동이 사혁의 귀에 포착되었다.


사혁은 대답 대신 단전의 남은 내력을 뼈마디 속으로 집중시켰다. 식골명상법의 기운이 검날로 흐르며 은은한 진동파를 방출했다.


*팅!*


삼월이 찌르려던 은침이 사혁이 내뿜은 미세한 진동 공명에 부딪쳐 허공으로 퉁겨 나갔다. 삼월의 손가락이 마비된 듯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경악한 표정으로 사혁을 바라보았다.


“너……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사혁은 무명 안대로 가려진 얼굴을 귀림 방향으로 돌렸다. 밤바람에 실려 오는 매캐한 소나무 타는 냄새와, 수많은 유민의 뼈가 불길 속에서 쪼개지는 듯한 가혹한 환청이 그의 예민해진 피부 세포를 자극했다.


“그곳에는 내 눈을 살려준 노인이 있다.”


사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단호했다.


“가문이 몰살당하던 날 밤 이후로, 나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준 유일한 어른이다. 그를 불길 속에 버려두고 도망친다면…… 나는 평생 흑탑의 살인 병기 괴물로 살아가야 한다.”


사혁은 삼월의 손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리고 죽장검을 지팡이 삼아 짚으며 사당 출구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아연은 말없이 사혁의 해진 도포 자락을 꽉 쥐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가 사당 문턱을 넘으려던 찰나.


*스윽.*


폭우가 쏟아지는 사당 마당의 빗소리 너머로, 기척을 극한으로 숨긴 정교한 발소리가 전해졌다. 일반 군사들의 거친 장화 소리가 아니었다. 몸의 무게 중심을 완벽히 통제하며 딛는 정종 무학의 보법.


어둠 속에서 푸른빛 관복을 입고 푸른 칼날의 환도를 찬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의금부 비밀 수사관, 이현(이현)이었다. 놈이 환도의 자루를 가볍게 쥐는 순간, 쇠와 가죽이 마찰하는 날카로운 살기가 사당 안을 가득 채웠다.


“비켜라.”


사혁이 죽장검의 손잡이를 비틀어 쥐며 경고했다.


이현은 길을 비키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사혁을 응시하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네가 귀림으로 가면 조중구의 함정에 빠져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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