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찢는 여덟 자루의 칼날
지붕 기와 틈새로 흘러드는 미세한 쇳소리가 사혁의 멈춰선 심장 박동을 두드렸다.
사당의 무너진 서까래 틈새로 쏟아지는 폭우가 차가운 낙수 소리를 내며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사혁의 양쪽 귀는 제갈휘의 소음 진법에 당한 여파로 먹먹한 이명만이 가득한 난청 상태였다. 그러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사혁은 숨을 멈춘 채, 오른손가락 끝에 묶어둔 자석 깃털의 미세한 흔들림에 온 감각을 집중했다.
스으으으.
기러기 깃털 끝에 결합된 자석 침이 허공의 미세한 자기장 변화를 읽어내며 미세하게 떨렸다. 사당 지붕 위, 밤안개와 폭우를 뚫고 철제 암기가 가르는 기압의 팽창이 손가락 끝의 신경을 타고 뇌내로 전송되었다. 놈이 움직이고 있었다. 비도술의 대가, 손칠이었다.
‘지붕 정중앙, 대들보 바로 위다.’
사혁은 머릿속 백색 지도 위에 손칠의 좌표를 그렸다. 놈은 사혁이 귀가 멀고 왼쪽 어깨에 자상을 입어 고립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오만함이 뿜어내는 끈적한 살기가 사당 천장의 썩은 목재 틈새를 타고 내려와 사혁의 안면 피부를 바늘처럼 찔렀다.
*쿠르릉! 쾅!*
순간, 천장의 기와들이 단숨에 박살 나며 사당 내부로 쏟아져 내렸다. 폭우의 장막을 찢으며 강림하는 것은 단순한 흙먼지가 아니었다. 손가락 사이에 강철 비도를 끼운 손칠의 신형이 하강함과 동시에, 여덟 자루의 무음 비도가 허공을 가르며 입체적인 방사형 궤적으로 폭사되었다.
*슈우우욱—!*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조차 최소화된, 깃털보다 빠른 참격의 쇳조각들이 사혁의 사방 퇴로를 완벽히 차단하며 들이닥쳤다. 피할 곳은 없었다.
사혁은 어금니를 깨물며 오른손에 쥔 죽장검의 손잡이를 뒤틀어 당겼다. 빙한철 조각이 덧대어져 칼끝이 묵직해진 백련강 검신이 어둠 속에서 은빛 잔영을 그리며 뽑혀 나왔다. 사혁은 내력을 검신에 주입하며 죽장검을 초고속으로 회전시켰다.
초당 백 번에 달하는 극도의 진동. 사혁의 전면에 반투명한 푸른색 소리 격막이 형성되었다. 무공 기술 중 하나인 ‘음파 격막(音波隔膜)’이었다.
*깡! 캉! 캉! 캉!*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사당 내부를 세차게 때렸다. 손칠이 날린 여덟 자루의 비도 중, 전면을 향해 날아들던 네 자루의 강철 비도가 사혁의 고속 진동 격막에 부딪쳐 무참하게 부러지며 사방으로 퉁겨 나갔다. 튕겨 나간 비도 조각들이 바닥의 진흙탕에 박히며 질척한 진동을 남겼다.
나머지 네 자루의 비도는 사혁의 신형을 비껴가 사당의 굵은 목조 기둥과 낡은 돌 불상의 가슴팍에 깊숙이 박혔다.
*투두둑! 콰직!*
돌과 나무가 찢어지는 둔탁한 파열음이 사당 벽면에 부딪쳐 쪼개졌다. 사혁은 그 반사파의 시간 차이를 고막으로 읽어내어 사당 내부의 정확한 공간 크기와 장애물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재매핑했다. 지경반향 경지였다.
“과연 흑탑의 사냥개답군! 귀가 먹은 상태에서도 내 비도를 막아내다니!”
바닥에 가볍게 착지한 손칠이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놈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거친 호흡 소리가 둔탁하게 사혁의 귀에 걸려들었다.
손칠은 사혁이 걸려든 덫을 밟고 멈칫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놈은 품속에서 가죽 끈에 묶인 주먹만 한 청동 징(징)을 꺼내 들었다. 놈의 목적은 처음부터 사혁의 약점인 귀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쨍————!!*
손칠이 무쇠 채로 징의 중심을 강하게 후려쳤다. 극도로 날카롭고 시끄러운 고주파의 금속 굉음이 사당 내부의 밀폐된 돌벽과 목조 기둥에 부딪쳐 수만 갈래의 환청 메아리로 쪼개지며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웅웅웅웅—!*
그 소음은 뇌를 직접 타격하는 물리적인 충격파였다. 최근 제갈휘의 소음 진법에 당해 얇아져 있던 사혁의 왼쪽 고막이 징 소리의 직격탄을 맞았다. 관자놀이의 경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양쪽 귓구멍 깊은 곳에서 뜨겁고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릿속의 백색 지도가 순식간에 하얗게 지워지는 반절벽(감각 단절)의 지옥이 다시 그를 덮쳤다.
사혁은 무릎을 꿇을 뻔한 충격을 간신히 버텨냈다. 발끝에 내력을 실어 대지를 딛는 진각파동을 시전하려 했으나, 발밑에 닿는 촉각이 경고했다. 사당 바닥의 낡고 썩은 목조 마룻바닥이 완충재 역할을 하여 진동을 모두 흡수해 버리고 있었다. 진동이 손칠의 발끝까지 도달하지 못할 터였다. 실패할 전술은 즉각 버려야 했다.
‘소리에 집착하면 죽는다. 귀를 닫아라.’
사혁은 심호흡을 하며 단전의 내력을 청경맥으로 밀어 올렸다. 그리고 스승 독고창의 비급에 적혀 있던 극의, ‘이정정위(필터링 청각)’를 발동했다. 머릿속을 찢어발기던 징 소리의 굉음을 강제로 배경 잡음으로 밀어내어 소음 격벽 뒤로 격리했다.
세상이 완벽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소리가 지워진 암흑 속에서, 사혁은 오직 사당 깨진 문틈으로 사정없이 들이치는 밤바람의 미세한 저항력 변화와, 손칠의 가죽 장화가 썩은 마룻바닥을 누를 때 발생하는 기압의 흔들림만을 피부 솜털로 읽어내기 시작했다. 공간 촉각의 극의였다.
‘서쪽 세 걸음. 놈이 다음 비도를 꺼내기 위해 어깨 관절을 뒤틀고 있다.’
*드득.*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놈의 어깨 힘줄이 팽팽해지며 대기를 밀어내는 미세한 기압의 진공 구멍이 사혁의 피부 촉각에 선명한 궤적으로 포착되었다.
사혁은 몸을 날렸다. 발바닥의 촉각만으로 사당 바닥의 무너진 돌 파편들을 정확히 디디며 달리는 특수 보법, ‘바람길 걷기’였다. 폭우가 몰아치는 사당 내부의 바람 흐름에 자신의 신형을 완벽히 동조시켰다. 사혁의 발소리는 사당을 뒤흔드는 폭풍우 소리 속으로 완벽히 녹아들었다.
“어디로 사라진 거냐, 이 눈먼 괴물 놈이!”
손칠이 당황하여 징 치기를 멈추고 사방으로 비도를 겨누며 소리쳤다. 놈의 목소리 기류가 사당 중앙에서 갈지자로 흔들렸다. 이미 놈의 시야에서 사혁의 기척은 완벽히 사라진 상태였다.
사혁은 이미 손칠의 배후 사각지대, 놈의 턱밑 한 자 거리까지 소리 없이 접근해 있었다. 죽장검의 검신 끝에 덧대어진 빙한철 조각이 밤바람의 기류를 타며 미세한 떨림을 멈췄다.
바람 소리와 검날이 내는 파공음을 완벽히 일치시키는 궁극의 무음 쾌검.
‘청풍은검(聽風隱劍).’
*스슥—*
공기를 찢는 소리는 없었다. 오직 밤바람이 한 차례 사당 내부를 휩쓸고 지나가는 듯한 차가운 기류의 궤적만이 허공을 갈랐다.
“컥……!”
손칠의 목구멍에서 짧은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놈이 다음 비도를 투척하기도 전에, 사혁의 차가운 백련강 검날이 놈의 목덜미를 정확히 관통해 밖으로 뻗어 나와 있었다. 손칠의 양손에 쥐어져 있던 비도 자루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진흙탕 속에 처박혔다.
*털썩.*
사혁이 검을 회수하자, 손칠의 거구가 목에서 검붉은 피를 뿜어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놈의 심장 박동이 서서히 멈추어 가는 둔탁한 진동이 사혁의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첫 번째 추격자의 처단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쿠당탕!*
사당의 낡은 목조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누군가가 급박하게 안으로 난입했다. 사혁은 즉각 죽장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검 끝에 실린 빙한철의 자성이 새로 난입한 자의 호흡을 향해 정렬되었다.
“이 미련한 놈아!”
익숙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 우석현 동쪽 끝의 은둔 의원, 삼월이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사혁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삼월은 바닥에 쓰러진 손칠의 시신을 힐끗 보더니, 이내 사혁의 얼굴을 가린 무명 안대 밑으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발견하고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빗물과 뒤섞여 도포 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는 단순한 외상의 피가 아니었다. 고막 깊은 곳의 청경맥이 완전히 찢어져 역류한 검은 선혈이었다.
삼월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하며 어두워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사혁의 오른손목을 잡아채며 맥을 짚었다.
“귀에서 흐르는 이 검은 피가 정녕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내가 경고했거늘…… 오늘 밤 당장 내공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네놈은 내일 아침 세상의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는 완벽한 벙어리 귀가 될 것이다!”
삼월의 떨리는 목소리 진동이 사혁의 뇌리를 무겁게 때렸다. 복수의 서막을 열기도 전에, 사냥꾼의 귀에 가장 가혹한 어둠의 장막이 내리앉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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