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몽둥이와 칼날
안채의 얇은 장지문 너머로 들이닥친 무거운 발소리가 사혁의 발바닥을 타고 그의 죽장검 끝으로 차갑게 전송되었다.
장화 굽이 흙바닥을 짓밟는 불규칙하고 폭력적인 진동. 그리고 거친 사내들의 가쁜 호흡 소리가 대장간의 매캐한 석탄 연기 사이로 스며들었다. 사혁은 무명 안대 아래로 보이지 않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귀림 청각이끼의 약효가 가라앉으면서, 웅웅거리던 귓구멍 안쪽의 장막이 걷히고 세상의 소리들이 다시 선명한 파동으로 머릿속 백색 지도 위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봐, 사평 영감! 귀가 먹었나? 관청 상납금이 벌써 사흘이나 밀렸다고 했을 텐데!”
대장간 문을 부수고 난입한 적사파의 두목, 만철의 목소리였다. 쇠못이 박힌 묵직한 무쇠 몽둥이가 바닥의 철판을 긁으며 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안채 장지문 너머까지 울려 퍼졌다.
*스으으으—*
사혁은 안채 구석, 어둠이 가장 깊게 내린 자리에 웅크려 앉았다. 그의 손에는 때 묻은 구걸용 놋그릇이 쥐어져 있었다. 해진 회색 도포를 걸치고 머리칼을 거칠게 풀어헤친 모습은 저잣거리를 떠도는 눈먼 거지와 다를 바 없었다. 그의 품에 안긴 아연은 붕대로 감은 다친 발바닥의 통증도 잊은 채, 사혁의 도포 자락을 꽉 쥔 채 숨을 죽였다. 아이의 가슴가에서 구리 방울이 미세하게 덜컹였지만, 사혁의 거친 손가락이 방울의 표면을 지그시 눌러 소리를 죽였다.
“사, 사장님. 이번 달은 사철이가 죽은 일로 장례를 치르느라 화덕을 거의 돌리지 못했습니다. 제발 며칠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숙부 사평의 갈라진 목소리가 흔들렸다. 오른손가락 두 개가 잘려 나간 대장장이의 손이 허공에서 비굴하게 비벼지는 소리가 사혁의 예민한 청각에 걸려들었다.
“사철이? 그 멍청한 놈이 흑탑의 물건을 훔치려다 맞아 죽은 게 우리 탓이냐?”
만철의 이빨 사이로 침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사혁의 심장 박동이 서서히 늦춰졌다. 머릿속 백색 지도 위에 만철의 거구와 그를 둘러싼 적사파 단원 세 명의 위치가 붉은 점으로 매핑되었다.
만철은 쇠못이 박힌 몽둥이를 들어 사평의 턱밑을 툭툭 건드렸다.
“영감, 손가락 세 개만 남은 손으로 망치질하느라 힘들지? 내가 남은 손가락도 쓸모없게 만들어 줄까?”
“제발…… 제발 그것만은…….”
사평의 호흡이 급격히 가빠졌다. 만철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무쇠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몽둥이 끝에 박힌 무거운 쇠못들이 공기를 가르며 웅웅거리는 저주파의 파공음을 냈다. 이대로 내리친다면 사평의 손목 뼈는 단숨에 가루가 될 터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사혁은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대장간 골목 입구에는 관아의 삼엄한 야간 순찰대 발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대규모 굉음이나 화려한 검기를 내뿜는 전투는 순찰대의 이목을 끌어 아연과 사평 부부를 즉각적인 사지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었다. 철저히 소리 없는 제압이 필요했다.
사혁은 품속에서 놋그릇을 가볍게 떨어뜨렸다.
*쨍그랑! 떼구르르—*
놋그릇이 안채 바닥을 굴러가며 내는 날카롭고 시끄러운 금속음이 대장간 안을 가득 채웠다. 만철과 그의 부하들의 시선이 일시에 어두운 안채 구석으로 쏠렸다. 놈들이 맹인 거지의 실수를 비웃으며 방심한 바로 그 0.1초의 찰나.
사혁의 발끝이 대장간의 단단한 흙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쿵—!*
진각파동(震脚波動)의 묵직한 진동이 지면을 타고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 만철의 가죽 장화 밑창을 직격했다. 바닥이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듯한 충격에 만철의 거구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사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리 없이 전진했다. 지팡이 손잡이를 비틀어 당기자, 빙한철 조각으로 보강된 백련강 검신이 스르륵 빠져나왔다.
사평이 검날 끝에 빙한철을 덧댄 탓에 검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순간, 미세한 파공음이 바람 소리처럼 새어 나왔다.
*휘이잉—*
하지만 사혁은 이미 놋그릇이 바닥을 굴러가며 내는 날카로운 잔향 속에 그 미세한 바람 소리를 완벽하게 숨겨두었다. 적들은 칼날이 다가오는 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쩡—!*
어둠 속을 가른 은빛 궤적이 만철이 치켜들고 있던 무거운 무쇠 몽둥이의 중심부를 정확히 관통했다. 빙한철의 극독 같은 강도가 쇠못이 박힌 몽둥이를 두 조각으로 깔끔하게 쪼개버렸다. 잘려 나간 무쇠 덩어리가 대장간 바닥의 쇠 더미 위로 떨어지며 요란한 굉음을 냈다.
*철그렁!*
“어, 어떻게……?”
만철이 부러진 몽둥이 자루를 쥔 채 경악하기도 전에, 부러진 대나무 지팡이 끝—내부에 숨겨진 서슬 퍼런 강철 칼날이 그의 목덜미 피부에 차갑게 밀착되었다. 칼날 끝에서 전해지는 극도의 살기에 만철의 온몸이 얼어붙었다. 부하들이 칼을 빼들려 했으나, 사혁의 지팡이 끝이 번개처럼 움직여 그들의 급소를 차례로 타격했다.
*퍽! 퍽! 퍽!*
단 세 번의 타격음과 함께 적사파 단원들이 신음 한 마디 내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사혁은 무명 안대 너머로 만철의 목뼈를 짓누르며 낮게 속삭였다.
“목숨을 구걸하고 싶다면, 철호의 행방을 말해라.”
만철의 심장이 공포로 미친 듯이 요동치는 소리가 사혁의 고막에 선명하게 걸려들었다. 사내의 거친 호흡에서 비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 살려주십시오! 오늘 밤…… 오늘 밤 관청 지하 지부에서 철호 형님이 밀수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비밀 회합을 가집니다! 제발 목숨만은……!”
우석현 한복판에서, 철호의 목을 겨눈 사혁의 은밀한 반격이 마침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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