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소리 없는 검, 쾌검 비소의 습격
석문강의 차가운 강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찢어진 경맥의 틈새로 사정없이 파고든 한독(寒毒)은 은랑의 기혈을 얼려버릴 듯 거칠게 날뛰고 있었다. 강 건너편 숲속 기슭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은랑의 무릎이 가볍게 꺾였다. 백천동 지팡이 끝의 백천동 철 촉이 젖은 모래바닥을 깊숙이 파고들며 둔탁한 진동을 전해왔다. 쇠붙이가 모래를 짓누르는 느낌마저 평소보다 무겁고 둔하게 느껴졌다.
“으읍……”
은랑은 이가 맞부딪치는 오한을 참아내며 가쁜 숨을 삼켰다. 그의 곁에서 온몸이 젖은 채 부르르 떨고 있는 설아의 작은 손이 은랑의 축축한 삼베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말은 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맥박은 공포와 걱정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은랑은 말없이 설아의 손을 지그시 맞잡아 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얼음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한독의 고통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여기서 지체하면 안 되네. 뇌영의 순찰대 녀석들이 언제 이쪽 강변까지 뒤질지 몰라.”
뗏목을 묶던 장 사공이 다급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석문강의 밤안개보다 짙은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은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바스락.
대나무 숲의 울창한 잎사귀들이 바람에 부딪히는 자연스러운 소음 사이로, 기이할 정도로 날카롭고 이질적인 기류의 왜곡이 은랑의 전신 피부를 스쳤다. 바람은 사방으로 균일하게 흘러야 하거늘, 전방 십 보 밖의 안개 낀 덤불 속에서 흘러나와야 할 바람의 결이 무언가 예리한 질량에 가로막혀 둘로 갈라지고 있었다.
살기(殺氣)였다. 그것도 흑탑의 최정예 살수만이 뿜어낼 수 있는, 지독하게 정제되고 차가운 예기였다.
‘벌써 온 건가.’
은랑의 눈가림 천 아래, 초점을 잃은 먼 눈이 숲속 어둠을 향해 돌아갔다. 한독으로 인해 단전의 기맥이 뻣뻣하게 굳어 신법의 속도가 평소의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는 최악의 상태였다. 은랑은 설아의 어깨를 밀어 장 사공의 등 뒤로 보냈다. 설아는 가지 말라는 듯 소리 없는 몸짓으로 은랑의 소매를 붙잡으려 했으나, 은랑의 단호한 손길이 그녀를 멀리 밀어냈다.
스으으으-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보통의 무인들이 검을 휘두를 때 내는 짓쳐 드는 파공음(破空音)도, 낙엽을 밟는 발소리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밤안개만이 숲속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은랑의 피부 모공이 비명을 지르며 경고하고 있었다.
‘온다!’
쉬이익-!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은랑의 왼쪽 어깨가 뜨겁게 찢겨 나갔다. 검날이 살점을 가르고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바람이 찢어지는 얇은 마찰음이 은랑의 귀에 도달했다. 소리보다 빠른 검, 흑탑의 일류 쾌검 자객 비소(비소)의 무영쾌검(無影快劍)이었다.
“큭……!”
은랑은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느끼며 뒤로 급히 신법을 펼치려 했다. 사천무 스승에게 배운 풍류보(風流步)의 이치를 따라 바람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려 했으나, 체내에 침투한 한독이 그의 무릎 관절을 뻣뻣하게 굳혀버렸다. 발끝이 모래바닥에 무겁게 걸리며 신법의 궤적이 흐트러졌다.
스윽!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비소의 연검(連劍) ‘풍음’이 은랑의 오른쪽 허벅지를 사정없이 베고 지나갔다. 이번에도 소리는 검날이 상처를 낸 이후에야 들려왔다. 은랑의 가죽 무복이 찢어지고 붉은 피가 안개 낀 강변의 모래를 적셨다.
“하하하! 정말로 살아 있었군, 은랑. 탑주께서 친히 눈을 멀게 해 절벽 아래로 던진 사냥개가 장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기어 다니고 있다니. 참으로 눈물겨운 생존력이구나.”
숲속 어둠 속에서 낮고 오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에 딱 붙는 검은 가죽 옷을 입고, 뱀처럼 유연하게 휘어지는 연검을 손가락 끝으로 튕기며 비소가 안개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하얀 눈동자에는 눈먼 동료를 향한 잔인한 멸시와 현상금을 독차지하겠다는 탐욕스러운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뇌영 대장께서 자네의 목을 아주 간절히 원하고 계시네. 얌전히 목을 내놓는다면 고통 없이 끝내주지.”
은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처 입은 어깨와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가 차가운 한독을 조금씩 씻어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전신의 기혈 흐름은 막혀 있었다. 소리보다 빠른 쾌검을 상대로 청각에만 의존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소리가 들리기 전에 검날이 이미 신체에 도달한다면, 소리를 듣고 방어하려는 모든 시도는 무용지물이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은랑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백천동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소리보다 느린 공기의 밀도 변화를 읽어야 한다.’
비소의 연검 풍음이 허공을 가를 때, 검날 자체는 소리보다 빠를지언정 검이 지나가는 궤적 주변의 공기는 필연적으로 밀려나며 기류의 왜곡을 만들어낸다. 소리가 귀에 닿기 전에, 온몸의 피부 촉각으로 공기의 미세한 압력 변화를 느껴야만 이 무시무시한 쾌검을 피해낼 수 있었다.
“대답이 없군. 장님이 되더니 혀까지 잘린 모양이구나!”
비소가 비웃으며 신법을 전개했다. 그의 신형이 안개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으으으-
은랑은 귀를 막았다. 귀 주변의 청궁혈에 집중하던 진기를 전신의 피부 표면으로 넓게 분산시켰다. 전신의 모공을 열어 차가운 안개와 바람의 흐름을 피부 자체로 받아들이는 극단의 기류 감지였다.
‘오른쪽이다.’
피부 표면의 미세한 솜털들이 오른쪽 뺨 부근의 공기가 급격히 압착되는 것을 감지했다. 은랑은 풍류보의 유연한 회전력을 이용해 고개를 왼쪽으로 급히 젖혔다.
쉬우우욱-!
종이 한 장 차이로 비소의 연검이 은랑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예리한 검풍이 은랑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흰색 눈가림 천의 매듭을 정확히 베어냈다.
스르륵.
하얀 천이 안개 속으로 허무하게 날아가며, 은랑의 두 눈가에 새겨진 가혹한 흉터가 허공에 완전히 드러났다. 흑탑의 배신으로 두 눈을 빼앗겼던 날의 참혹한 상흔이 안개 속에서 붉게 도드라져 보였다.
“오호, 제법이구나! 눈먼 개치고는 냄새를 잘 맡는군!”
비소는 자신의 기습이 아슬아슬하게 피하자 흥분한 듯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연검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은랑의 전신을 향해 무차별적인 쾌검 난타를 퍼붓기 시작했다.
채챙! 챙! 콰직!
은랑은 백천동 지팡이를 휘두르며 비소의 검로를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비소의 연검은 단단한 지팡이에 부딪히는 순간 기묘하게 휘어지며 지팡이 옆면을 타고 은랑의 손목과 가슴을 집요하게 베어 들어왔다. 소리가 들리기 전에 베어 오는 변칙적인 연검의 휨 현상 때문에 은랑의 방어선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아으으읍……!”
은랑의 입에서 가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삼베옷은 이미 붉은 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가슴과 옆구리, 어깨에 깊은 자상이 누적되며 대량의 출혈이 발생했다. 몸을 지탱하던 기초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시야가 아득해지는 현기증이 밀려왔다.
설아가 안개 속에서 은랑의 피 흘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의 가쁜 호흡 소리가 은랑의 귀에 애절하게 들려왔다.
‘안 된다…… 이 아이가 보는 앞에서 쓰러질 수는 없다.’
은랑은 정신을 극한으로 집중했다. 단전에 남아 있던 미약한 진기를 억지로 끌어올려 전신의 경맥으로 유통시켰다. 뇌 신경 과부하로 인한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눌렀지만, 은랑은 마음속의 평정심을 유지하려 필사적으로 버텼다.
비소는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 듯, 연검 풍음을 길게 늘어뜨리며 은랑의 심장을 관통하기 위해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그의 전신에서 일류 극성의 강력한 풍영공(風影功) 진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끝이다, 은랑! 흑탑의 사냥개는 결국 탑의 뜻에 따라 죽어야 하는 법이다!”
비소의 신형이 바람을 타고 은랑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연검이 소리 없이 안개를 찢으며 은랑의 옆구리를 향해 수평으로 날카롭게 짓쳐 들어왔다.
푸욱-!
뜨거운 통증과 함께 비소의 차가운 연검이 은랑의 옆구리를 깊숙이 관통했다. 은랑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비소의 얼굴에 완벽한 승리의 미소가 번지는 찰나였다.
옆구리가 꿰뚫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은랑의 오른손이 백천동 지팡이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소리 없이 비틀어 당겼다.
찰칵.
지팡이 내부의 비밀 홈이 풀리며, 바람을 가를 때 파공음이 전혀 나지 않도록 고도로 제련된 사천무 스승의 유품, 푸른 명검 청풍검(靑風劍)의 칼자루가 은랑의 손끝에 단단히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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