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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나루터의 안개, 물결의 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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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을 집어삼킨 불길은 밤안개 속에서 붉은 아지랑이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철사문의 포위망을 뚫고 칠흑 같은 대나무 숲을 질주하는 동안, 은랑의 온몸은 이미 진흙과 그을음으로 덮여 있었다. 화로의 열기에 노출되었던 어깨의 자상은 비장한 한기를 머금은 채 욱신거렸고, 단전에서 억지로 짜내어 썼던 진기의 반동으로 관자놀이의 경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허나 은랑은 멈출 수 없었다. 그의 등 뒤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의 옷자락을 쥔 설아가 있었고, 석문진 전체를 봉쇄하라는 뇌영의 명령을 받은 살수들이 어둠 속에서 사냥개의 이빨을 드러내며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야, 어서 오게!”


짙은 안개 너머로 낮고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바람에 그을린 얼굴과 억센 팔뚝을 지닌 늙은 사공, 장 사공이었다. 평생을 석문강에서 배를 저어온 그는 사천무 스승의 은밀한 연줄 중 하나였다. 장 사공은 안개 낀 강가에 작은 나룻배를 대어둔 채, 초조하게 노를 움켜쥐고 있었다.


은랑은 설아의 손을 이끌고 나루터의 젖은 목판을 밟았다. 새로 개조된 백천동 철 촉 지팡이가 목판에 닿을 때마다, 불필요한 잡음은 백천동이 전부 흡수하고 오직 단단한 나무의 밀도와 강의 출렁임만이 은랑의 손바닥을 타고 정밀하게 전해졌다.


“강 건너편 수색대원들이 이미 물길을 감시하고 있네. 서둘러 타게나!”


장 사공의 다급한 손길에 밀려 은랑과 설아가 나룻배에 올랐다. 설아는 소리 없이 은랑의 젖은 삼베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작은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이 은랑의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다. 은랑은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백천동 지팡이를 선창 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사락, 사락.


장 사공이 노를 젓기 시작하자, 나룻배는 밤안개가 자욱한 석문강의 품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사방을 둘러싼 거센 강물 소리와 밤안개는 은랑의 예민한 청각을 교란하는 거대한 장막이었다. 흐르는 물결의 불규칙한 파동이 사방에서 웅성거리며 다가왔고, 머리 위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은 방향 감각을 흐트러뜨렸다.


은랑은 눈가림 천 아래의 먼 눈을 감은 채, 온 신경을 지팡이 끝에 모았다. 물결이 배의 밑창을 때릴 때마다 발생하는 진동이 백천동을 통해 단전으로 흘러들었다. 장 사공이 평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던 청수술(聽水術)의 이치가 뇌리를 스쳤다.


‘물은 공기보다 무겁고 정직하다. 물 흐름의 변화를 거스르지 말고, 그 파동을 피부로 받아들여라.’


배가 강의 한복판에 다다랐을 때였다. 자욱한 밤안개 속에서 기이할 정도로 무겁고 규칙적인 물살의 왜곡이 감지되었다. 배의 전진 방향을 가로막으며 빠르게 다가오는 묵직한 질량의 기척.


은랑의 전신 모공이 송곳에 찔린 듯 곤두섰다. 살기였다. 그것도 물속에서 완벽히 숨을 죽이고 다가오는 자들의 살벌한 기척이었다.


쉬이이익-!


찰나의 순간, 안개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네 자루의 거대한 갈고리 철조(鐵爪)가 사방에서 날아와 나룻배의 선체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콰직! 하는 거친 마찰음과 함께 굵은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찾았다, 은랑! 네놈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우리 혈사문과 진혈조의 것이다!”


강가 저편에서 들려오는 음산하고 탐욕스러운 목소리. 흑탑의 현상금을 노리고 찾아온 잔혹한 낭인 무사, 진혈조(眞血爪)였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쇠사슬을 쥔 수적들이 일제히 사슬을 잡아당겼다.


콰아아앙-!


엄청난 힘에 의해 나룻배가 순식간에 뒤집히며 은랑과 설아는 차가운 강물 속으로 사정없이 추락했다.


풍덩-!


차가운 강물이 은랑의 귀와 코로 순식간에 밀려들어 왔다. 귀가 먹먹해지며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득한 침묵 속으로 침몰했다. 시각을 잃은 은랑에게 청각마저 마비되는 물속은 그야말로 완벽한 어둠이자 절대적인 감각의 감옥이었다. 게다가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석문강의 한기(한독)가 찢어진 경맥 틈새로 파고들며 전신의 피를 얼려버릴 듯 날뛰기 시작했다.


“으읍……!”


은랑은 솟구치려는 비명을 참아내며 왼팔을 뻗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설아의 가냘픈 허리가 손끝에 닿았다. 은랑은 주저 없이 그녀를 자신의 가슴팍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숨을 쉬지 못해 가쁘게 요동치는 설아의 작은 심장박동이 은랑의 가슴뼈를 타고 애절하게 전해졌다.


‘내가 죽더라도, 이 아이만큼은 살려야 한다.’


은랑은 입술을 깨물며 오른손에 쥔 백천동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그때였다. 물속의 완전한 침묵을 뚫고, 기이할 정도로 묵직하고 예리한 압력의 변화가 전신 피부를 자극했다.


스으으으-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수천 배 높다. 그렇기에 물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거대한 물결의 변위를 만들어낸다. 진혈조가 손가락 끝에 장착한 강철 조톱을 휘두르며 물속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기척이, 그가 밀어내는 물살의 파동이 되어 은랑의 전신 피부에 은밀하게 닿아왔다.


진혈조는 수중 전투의 달인이었다. 그는 은랑이 눈먼 장님이라는 것을 알고, 물속에서 소리와 시야가 차단된 은랑의 다리를 찢어 발기기 위해 아래쪽에서 살벌하게 철조를 들이밀었다.


‘아래다!’


은랑은 물살이 급격히 압착되는 방향을 피부 촉각으로 느끼며 가볍게 몸을 뒤틀었다. 슈우욱! 하는 수중 기류의 마찰음과 함께 진혈조의 날카로운 철조가 은랑의 허벅지 옷깃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진혈조는 자신의 기습이 장님에게 피해지자 경악한 듯 거친 기포를 뿜어냈다. 그는 즉시 사슬을 비틀어 후속 연격을 준비했다.


은랑은 물속에서 청풍검을 크게 휘두르려 했으나, 물의 거센 저항 때문에 초식이 너무 무거워져 오히려 적에게 빈틈을 내어줄 것임을 간파했다. 물속에서는 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물의 파동을 역이용해야 했다.


은랑은 스스로 몸의 무게를 실어 강바닥을 향해 빠르게 하강했다. 쿵. 그의 발끝이 단단한 석문강 바닥의 바위에 닿았다.


그는 주저 없이 백천동 철 촉 지팡이를 바위 바닥에 깊숙이 내리꽂았다.


진혈조가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 듯, 은랑의 정수리를 향해 철조를 수직으로 내리찍으며 짓쳐 들어왔다. 철조의 날카로운 끝이 은랑의 대나무 지팡이 몸통을 정면으로 강타하려는 찰나였다.


은랑의 단전에서 정화된 순양의 진기가 백천동 철 촉을 향해 폭발적으로 역류했다. 백천동의 단단한 경도와 소리 진동 흡수율은, 적의 타격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아두었다가 원하는 방향으로 증폭시켜 되돌려주는 최상의 매개체였다.


청풍검결의 반격 비기, 진동 역류(振動逆流)였다.


위이이이잉-!


진혈조의 강철 손톱이 지팡이에 닿는 찰나, 백천동 촉이 머금고 있던 강렬한 진동 파형이 적의 철조를 타고 역방향으로 사정없이 폭발했다. 물속을 타고 흐르는 고주파의 진동은 공기 중보다 훨씬 빠르고 치명적으로 전파되었다.


콰콰콰쾅-!


“우웁……!”


진혈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물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지팡이를 타고 역류한 무자비한 진동 에너지가 그의 강철 손톱을 타고 올라가 손목뼈와 팔꿈치 관절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진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의 어깨 경맥을 타고 허파와 심장까지 파고들어 기혈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진혈조의 입에서 거대한 혈포(血泡)가 뿜어져 나오며 석문강의 푸른 물속을 붉게 물들였다. 그의 사지가 흐느적거리며 차가운 강물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주변을 포위하던 혈사문의 자객들이 대장의 허무한 수중 죽음을 목격하고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은랑은 발끝으로 강바닥 바위를 강하게 차고 올랐다. 품에 안긴 설아의 몸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푸하아아앗-!


은랑이 물 위로 솟구치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차가운 밤공기와 자욱한 안개가 다시 그의 감각망 속으로 들어왔다. 장 사공이 뒤집어진 배 옆에서 예비 뗏목을 끌고 다급하게 다가와 그들의 팔을 잡아끌었다.


“어서 타게! 살았군, 기적이야!”


은랑은 설아를 뗏목 위로 안전하게 밀어 올린 뒤, 자신도 몸을 실었다. 설아는 기침을 토해내며 은랑의 품에 얼굴을 묻고 떨었다. 은랑 역시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극심한 한독(한독)의 고통에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찢어진 경맥 사이로 스며든 강물의 한기가 뼈마디를 쑤셔왔다. 치료가 시급한 한계 상태였다.


장 사공이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 나룻배를 강 건너편 숲속 기슭에 바짝 대었다.


“이쪽으로 내리게!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가 있네!”


은랑은 비틀거리는 몸을 백천동 지팡이로 지탱하며 설아를 부축해 뗏목에서 내렸다. 축축한 모래바닥을 밟고 강 건너편의 울창한 숲속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바스락.


자욱한 안개가 내려앉은 어두운 숲 깊은 곳,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는 기이한 정적 속에서 은랑의 전신 피부가 얼어붙는 듯한 차가운 예기(銳氣)를 포착했다.


공기 유동 인지 능력이 경고하고 있었다. 바람의 결이 날카롭게 찢어지며, 소리보다 먼저 다가오는 치명적인 살기가 어둠 속에서 은랑의 목덜미를 조용히 겨누고 있었다.


강 건너편 숲속에서, 뇌영의 최정예 쾌검 살수 비소(비소)가 은랑이 물에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며 소리 없이 매복해 있었던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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