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강씨 대장간, 무쇠의 진동
관 조장의 숨통이 끊어지는 소리는 대나무 숲의 안개 속으로 소리 없이 녹아내렸다.
은랑은 축축한 진흙 바닥에 쓰러진 사체의 품을 더듬어 단도와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수습한 뒤, 깊은 대나무 뿌리 아래에 흙을 덮어 흔적을 지웠다. 사방을 감싸는 밤안개는 차가웠고, 은랑의 손끝에 닿는 대나무 지팡이 ‘청풍’의 감각은 평소보다 무겁고 둔탁했다.
지팡이 끝을 만져보았다. 관 조장의 검게 그을린 자수도와 정면으로 충돌했던 부위가 세로로 길게 갈라져 있었다. 대나무 가죽이 쩍 벌어져 손가락 손톱이 끼일 정도였다. 지팡이 내부가 비어 있어 바람의 공명을 증폭시키는 청풍의 특성상, 이 미세한 균열은 치명적이었다. 지면을 두드릴 때마다 전해지던 맑은 파동이 갈라진 틈새로 새어나가 둔하고 흩어지는 소음으로 변해 있었다.
‘이대로는 적들의 미세한 발소리조차 읽어낼 수 없다.’
뇌영의 본대가 언제 석문진을 덮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기의 파손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은랑은 하얀 안대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귀가 기억하는 한 줄기 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저자거리 구석,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웅장한 무쇠 소리를 내뿜던 공간. 사부 사천무가 생전에 읊조리듯 남겼던 이름이 떠올랐다.
‘석문진의 강씨 대장간…… 강철수.’
은랑은 지팡이를 가볍게 쥐고,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저자거리의 가장 어두운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강씨 대장간은 은랑에게 소리의 지옥이자 열기의 감옥이었다.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끈한 열기는 은랑의 온몸의 모공을 강제로 닫히게 만들었다. 적들의 체온 방출을 감지하던 피부 촉각이 뜨거운 열풍에 눌려 마비되는 듯했다. 게다가 귓가를 사정없이 때리는 무거운 망치 소리는 고문과도 같았다.
깡-! 깡-! 콰아아아-
달아오른 쇠를 두드리는 쇳소리와 풀무질이 내뿜는 거친 바람 소리가 사방의 벽에 부딪혀 기괴한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평소 사방 십 보 안의 벌레 발소리까지 걸러내던 은랑의 초청각은 이 거대한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향을 잃고 요동쳤다. 관자놀이 부근의 경맥이 진기의 과부하로 찌릿하게 떨려왔다. 은랑은 이명을 견디며 대장간의 문턱을 밟았다.
“바쁜 거 안 보여? 농기구 고칠 거면 저기 마당 구석에 던져두고 사흘 뒤에나 와!”
화로 열기 너머로 쇳소리처럼 거칠고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구리빛 피부에 바위 같은 어깨 근육을 지닌 사내, 강철수였다. 그의 거친 숨소리와 망치질의 궤적이 은랑의 머릿속에 묵직한 진동 파형으로 그려졌다.
은랑은 대답 대신 품속에서 갈라진 대나무 지팡이 청풍을 꺼내 흙바닥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툭, 하는 둔탁한 울림이 대장간의 망치 소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강철수는 지팡이를 힐끗 보더니 콧방귀를 꼈다.
“장님이 지팡이 부러진 걸 가지고 대장간을 찾아와? 난 대나무 따위는 만지지 않는다. 당장 나가!”
“사천무(司天武) 사부님의 소개로 왔습니다.”
은랑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대장간을 가득 채우던 망치 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오직 화로의 벌건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와 거친 풀무의 숨소리만이 정적을 메웠다.
강철수의 거대한 몸이 굳어졌다. 그가 쥐고 있던 묵직한 쇠망치가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사내의 가쁜 호흡이 은랑의 귀에 선명하게 잡혔다. 강철수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은랑에게 다가와 바닥에 놓인 대나무 지팡이를 거칠게 낚아챘다.
“이…… 이 문양은…….”
강철수의 투박한 손가락이 지팡이 표면에 새겨진 미세한 칼날 자국과 사천무 고유의 낙인을 쓸어내렸다. 그의 거친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자네가…… 사 장인의 제자란 말인가? 흑탑의 사냥개들에게 쫓기다 돌아가셨다던 그분의…….”
“그렇습니다. 사부님의 유해는 대나무 숲 깊은 곳에 묻혔고, 저 또한 눈을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강철수는 벌건 화로 불빛 아래에서 지팡이를 움켜쥔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가에 뜨거운 열기보다 더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과거 내가 흑탑의 살수들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 뻔했을 때, 사 장인께서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해주셨지. 그 은혜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거늘…… 자네가 그분의 제자라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와야지.”
강철수는 지팡이 끝의 균열을 유심히 살폈다.
“대나무 가죽이 쩍 갈라졌군. 이대로는 진동을 버텨내지 못해. 단순한 접착으로는 안 되네. 소리를 흡수하면서도 적들의 뼈를 단숨에 부술 수 있는 무쇠의 무게가 필요해.”
그가 대장간 지하 깊은 상자에서 묵직한 원석 조각을 꺼내왔다. 은랑의 피부에 전해지는 원석의 기운은 차갑고도 단단했다.
“석문진 외곽 폐채석장에서 출토되는 특수 구리 합금, 백천동(白川銅)이네. 소리의 진동을 가장 잘 흡수하면서도 강도는 강철보다 질기지. 이걸 제련해 지팡이 끝에 무음 철 촉(無音 鐵 觸)을 장착해 주겠네. 다만, 제련하는 동안 발생하는 쇳소리와 열기를 견뎌내야 할 걸세.”
은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장간 구석의 낡은 목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
제련이 시작되었다.
깡-! 깡-! 콰아아아-
벌겋게 달아오른 백천동이 망치 아래에서 벼려질 때마다, 귀를 찢는 고주파의 금속음이 은랑의 고막을 사정없이 난타했다. 뜨거운 화로의 열기가 대장간 내부를 꽉 채우며 은랑의 피부 촉각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공기의 흐름도, 온도 변화도 읽을 수 없는 완벽한 감각 차단의 상태.
은랑은 단전의 미약한 진기를 끌어올려 귀 주변의 청궁혈과 이문혈을 억지로 압박했다. 뇌 신경 과부하로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고, 안대 새로 붉은 피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사천무의 청풍심법 호흡을 유지했다. 소리를 이기려 하지 않고, 대장간 바닥의 단단한 흙을 통해 전해지는 무거운 망치질의 ‘골격 파동’에만 자신의 신경을 동조시켰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는지 알 수 없는 고통의 터널 끝에, 마침내 쇳소리가 멈추었다.
“완성되었네.”
강철수의 거친 손이 새로 개조된 지팡이를 은랑의 손에 쥐여주었다.
묵직했다. 지팡이 끝부분에 장착된 푸르스름한 백천동 철 촉은 대나무의 갈라진 틈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고, 무게중심이 끝으로 쏠려 타격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은랑이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툭 치자, 불필요한 잡음은 백천동 촉이 전부 흡수하고 오직 지면의 정밀한 떨림만이 손바닥을 타고 뇌리로 깨끗하게 전달되었다.
감각의 지도가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넓게 그려졌다.
“고맙습니……”
은랑이 감사를 표하려던 찰나, 그의 전신 피부가 미세하게 떨렸다. 대장간 바닥을 타고 흐르는 불길한 진동 파형이 감지된 것이다.
타다다닥-!
가죽신을 신은 수십 명의 발걸음 소리. 발걸음의 무게가 가볍고 빠르며, 조직적인 협공 진법의 보법을 취하고 있었다. 뇌영의 돈에 매수된 석문진의 사파 문파, 철사문(鐵沙문)의 무도들이었다.
“대장간 내부의 장님 고수를 잡아라! 뇌영 대장님의 명령이다, 산 채로 잡으면 황금 열 냥이다!”
거친 고함과 함께 대장간 사방의 창문과 지붕이 동시에 박살 나며 붉은 숯가루와 화약 연기가 내부로 들이닥쳤다.
콰창-! 슈우우우-
적들이 투척한 벌건 숯가루가 사방에 흩날리며 열기를 극대화했다. 화로의 고열과 숯가루의 열풍 탓에 은랑의 체온 감지 촉각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어깨 가죽옷 사이로 날아든 불똥이 피부를 스치며 따가운 자상을 남겼다. 시야는 물론이고 피부의 감각망마저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당황하지 마라. 소리와 열기가 막혔다면, 오직 대지의 울림만을 믿는다.’
은랑은 새로 개조된 백천동 철 촉 지팡이를 땅에 단단히 고정하고 중심을 잡았다. 발바닥 용천혈과 지팡이 끝을 통해 들어오는 적들의 발걸음 진동—골격 파동 분석이 그의 머릿속에 적들의 관절 위치를 3차원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스슥-!
세 명의 철사문 무도가 철검을 휘두르며 사방에서 동시에 은랑의 목과 허리를 베어왔다.
은랑은 몸을 낮추며 대나무 지팡이를 수평으로 눕혔다. 단전의 진기를 지팡이 끝 백천동 촉으로 폭발적으로 밀어 올렸다. 사천무 스승이 남긴 청풍검결의 제1초식, 풍참(風斬)의 기운이 지팡이 끝에서 무형의 푸른 검풍이 되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스으으으- 쾅-!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조차 흡수해 버리는 무음의 검풍이 일직선으로 날아가 적들의 철검 날을 정면으로 때렸다. 백천동 철 촉의 단단한 경도와 풍참의 날카로운 기류가 결합하자, 적들이 자랑하던 두꺼운 철검들이 종잇장처럼 무참하게 동강 나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끄아악! 내 검이……!”
“무슨 이런 괴물 같은 힘이 있단 말이냐!”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지는 찰나, 대장간 내부의 열기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적들이 화로를 쓰러뜨려 불을 지른 것이다. 대장간 천장이 무너지며 붉은 불길이 솟구쳤다.
“이쪽일세! 뒷벽의 비밀 통로로 피하게!”
강철수가 거대한 무쇠 망치를 휘둘러 대장간 뒷벽의 단단한 흙벽을 쾅 하고 무너뜨렸다. 벽이 허물어지며 자욱한 밤안개와 시원한 밤바람이 밀려들었다.
은랑은 강철수의 안내에 따라 무너진 뒷벽의 틈새로 몸을 날렸다. 소리 없이 안개 속으로 잠행하려던 찰나였다.
쿠콰콰쾅-!
대장간 정문의 두꺼운 무쇠 문이 통째로 박살 나며 날아갔다. 그 궤적을 타고 밀려드는 삼십 여 명의 조직적인 발걸음 소리. 가죽신 뒤축이 젖은 흙바닥을 거칠게 짓밟으며 뿜어내는 묵직하고도 살벌한 진동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대장간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철사문 무도들의 발소리가, 새로 완성된 철 촉 지팡이를 쥔 은랑의 손바닥을 타고 전율처럼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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