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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대자비의 방패, 이성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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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은 대나무 피리의 단단한 마디가 낙매검의 푸른 칼날 측면을 가볍게 툭 치는 순간, 맑고 묵직한 파동이 검날을 타고 역류하며 소철의 검로를 강제로 아래로 떨어뜨렸다.


깡—!


맑고 청아한 금속음이 자욱한 새벽안개 속으로 길게 퍼져 나갔다. 화산파의 비전 자하진기(紫霞眞氣)가 실려 있던 낙매검의 예리한 기세가, 대나무 피리에서 뿜어져 나온 기묘한 양기의 진동에 밀려 허공에서 둔탁하게 꺾였다.


“……윽!”


소철의 입에서 나직한 경악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검세가 이토록 기묘한 방식으로 파훼당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눈치였다. 검날을 타고 흘러든 묵직한 반탄력에 소철의 손목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의 호흡 역시 한 박자 흐트러졌다.


하지만 대가를 치른 것은 소철만이 아니었다.


화산파 천재의 전력에 가까운 일격을 정면으로 흘려낸 은랑의 왼손바닥 역시 찢어지는 듯한 열상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벼락 맞은 대나무 피리가 지닌 천연의 양기가 소철의 뜨거운 자하진기를 어느 정도 상쇄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역천공의 반동으로 걸레짝이 된 그의 심장 경맥이 강하게 요동쳤다.


쿵쾅! 쿵쾅!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적인 박동이 귓전을 사정없이 때렸다. 이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 같은 이명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뇌 신경 과부하(腦神經過負荷)다.’


은랑은 안대 너머로 차갑게 굳어지는 눈꺼풀을 느꼈다. 석문진에서 곽철패의 고주파 음공에 노출되어 고막이 파열된 이후, 그의 가청 범위는 극도로 축소되어 있었다. 그 좁아진 감각의 틈새를 억지로 넓혀 소철의 검로를 읽어내려 진기를 쥐어짜 낸 대가는 참혹했다.


머리 내부의 미세한 혈관들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팽창하다가 결국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관자놀이를 타고 무언가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먼지 묻은 하얀 눈가림 천 위로 붉은 핏물이 빠르게 번져 가며 은랑의 뺨을 적셨다. 입안 가득 비릿한 철 냄새가 차올랐다.


“장님 주제에…… 내 검세를 읽고 피리로 막아섰단 말이냐!”


소철의 목소리가 경악과 수치심으로 뒤틀렸다. 정파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화산파의 대제자가, 삼베옷을 걸친 눈먼 자의 피리질 한 번에 검로가 막혔다는 사실은 그의 오만한 자존심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소철의 심장박동이 분노로 인해 급격하게 빨라졌다. 살기가 아닌, 스스로 정의라 믿는 이의 맹목적인 적개심이 안개 속에서 한층 더 뜨겁게 타올랐다.


‘죽여라.’


그 순간, 은랑의 머릿속 칠흑 같은 심연 너머에서 차갑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어릴 때부터 뼈에 사무치도록 주입당했던 흑탑 살수십계명(殺手十誡命)의 굴레였다.


- 동정심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삽이다.

- 망설임은 죽음을 부르고, 적의 숨통을 끊는 자만이 생존을 쟁취한다.

- 눈앞의 적이 칼을 겨눈다면, 그가 누구든 사지를 찢어 발겨라.


독고황의 비정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으며, 은랑의 손에 쥔 임시 대나무 지팡이 내부의 청풍검(靑風劍)을 뽑으라고 충동질했다. 지팡이 손잡이를 살짝 비틀어 당기기만 하면 된다. 소리 없이 바람을 베어내는 청풍검의 푸른 칼날을 뽑아, 저 오만하고 방심한 화산파 애송이의 목덜미를 단 한 격에 소리 없이 관통해 버리면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끝날 터였다.


은랑의 오른손 손가락이 지팡이 손잡이를 움켜쥐며 미세하게 힘을 주었다. 그의 전신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려 했다.


‘안 된다…….’


은랑은 어금니를 사정없이 깨물었다.


저 무인은 가문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흑탑과 결탁한 남궁세가의 추악한 자객이 아니다. 그저 흑탑이 퍼뜨린 거짓 소문에 속아 넘어가, 스스로 정의를 행한다고 믿고 있는 정직하고 어리석은 강호의 무인일 뿐이다. 그를 죽이는 순간, 자신은 흑탑의 사냥개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 채 진짜 마두(魔頭)로 타락하게 될 터였다.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겠다.’


은랑은 설아의 손바닥에 새겨졌던 따뜻한 글씨를 떠올렸다. 그리고 과거 폐사당에서 광해선사가 자신에게 가르쳐 주었던 불가 비전의 구결을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대자비심법(大慈悲心法)이었다.


은랑이 단전의 쇠약해진 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불가의 호흡법을 전개하자, 폭주하려던 흑탑의 살의와 요동치던 심장 경맥의 열기가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뇌 신경의 과부하로 타들어 가던 관자놀이 주변에 은은하고 황색의 평온한 기운이 감돌았다. 눈가림 천을 타고 흐르던 피눈물이 멈추고, 머릿속을 찢어발기던 기괴한 환청들이 안개 너머로 사그라들었다.


소철은 은랑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서슬 퍼런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이할 정도로 깊고 고요한 평정심이 들어차는 것을 느끼고 움찔했다.


“살기를 지웠다고 해서 네놈의 죄업이 사라질 것 같으냐! 석문진의 백성들을 도륙한 대가를 화산의 검으로 받거라!”


소철이 다시 한번 낙매검을 치켜들었다. 그의 온몸에서 보랏빛 자하진기가 불꽃처럼 타오르며 주변의 새벽안개를 증발시켰다. 이번에는 단순한 초식이 아니었다. 화산파가 자랑하는 절정의 절기이자, 사방의 모든 공간을 검기로 뒤덮어 버리는 가공할 살초였다.


은랑은 깊은 호흡을 들이마셨다. 뇌 신경의 과부하로 인해 그의 청각은 이미 가청 범위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있었기에, 소철의 미세한 움직임을 소리로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기 중의 소리가 왜곡된다면, 대지의 정직한 진동만을 믿는다.’


은랑은 왼손의 대나무 피리를 품속에 밀어 넣고, 오른손에 쥔 임시 대나무 지팡이 끝을 젖은 흙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백천동 철 촉이 장착되어 있던 오리지널 지팡이와 달리, 이 임시 지팡이는 진동 전도율이 현저히 낮았고 표면에는 이미 소철과의 충돌로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다.


하지만 은랑은 발바닥 용천혈(湧泉穴)과 지팡이 끝의 접촉면에 전신의 미약한 진기를 흘려보내며 집중했다.


지맥 진동 감지법.


대지를 타고 흐르는 미세한 떨림이 지팡이의 균열을 타고 은랑의 손끝으로 전해졌다. 소철이 자하진기를 폭발시키기 위해 양발에 힘을 주며 무게중심을 이동하는 순간, 그의 뼈 구조와 경맥의 흐름이 은랑의 뇌리에 은빛 선들로 선명하게 투영되었다.


“매화만개(梅花滿開)—!”


소철의 고함과 함께, 낙매검이 허공을 격렬하게 회전했다.


파지직! 쉭! 쉭! 쉭!


수십 자루의 날카로운 붉은 검기 꽃잎들이 은랑의 머리 위와 사방의 안개 속에서 일시에 뿜어져 나왔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계곡 전체를 가득 채웠고, 자하진기의 뜨거운 열풍이 은랑의 하얀 눈가림 천을 태워버릴 듯 사방에서 짓쳐 들었다. 완벽한 포위망이었다.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는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은랑은 호흡을 완전히 가라앉히며 대나무 지팡이 끝을 땅에 더욱 단단히 고정했다. 폭풍의 한복판에서 홀로 서 있는 늙은 나무처럼,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소철의 마지막 절초인 매화만개의 붉은 검기들이 은랑의 온몸을 포위하듯 무자비하게 덮쳐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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