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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매화의 향기, 흔들리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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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매화가 밤안개 속에서 만개했다.


그것은 봄날의 화사한 생명이 아닌, 공기를 찢고 생명을 탐하는 화산파(華山派) 비전의 검기(劍氣)였다. 소철의 낙매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백색 안개 속에서 수십 장의 붉은 검기 꽃잎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은랑의 사방을 촘촘히 포위했다.


쉬이이익! 쉭! 쉭!


검 끝이 바람을 가르며 내는 미세한 파공음들이 수백 개의 방향에서 동시에 귓전을 때려왔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그 화려한 기세에 압도되어 눈이 멀었겠지만, 두 눈이 먼 은랑에게는 이 화려함이 오히려 거대한 소음의 지옥이자 감각의 감옥이었다.


‘검기가 바람을 찢는 소리가 너무 잘게 갈라지는군.’


은랑은 하얀 눈가림 천 아래로 미간을 찌푸렸다. 과거 곽철패의 고주파 음공과 뇌영의 뇌화공법에 노출되어 고막이 파열된 이후, 그의 청각 가청 범위는 영구적으로 축소된 상태였다. 좁아진 감각의 틈새로 들이닥치는 매화검법의 기괴한 파공음들은 메아리가 되어 사방의 나무 벽에 부딪혔고, 이내 은랑의 머릿속 3차원 공간 지도를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았다.


어디가 진짜 검날이고, 어디가 가짜 검풍인지 분별하기가 극도로 까다로웠다. 게다가 공기 중에는 자하진기(紫霞眞氣) 특유의 매캐하면서도 은은한 마른 향나무 타는 냄새와 매화 향이 뒤섞여 후각마저 교란하고 있었다.


“마두 놈, 화산의 대의를 거스른 대가를 치러라!”


소철의 정의감에 찬 호령과 함께, 붉은 검기 꽃잎들이 일제히 은랑의 전신을 향해 낙하했다.


은랑은 본능적으로 오른손에 쥔 임시 대나무 지팡이를 들어 올려 정면의 검세를 막아서려 했다. 길가에서 대충 베어내어 급조한 거친 대나무 대였기에, 과거 대장간에서 단련했던 백천동 철 촉 지팡이와 같은 단단함도, 미세한 진동을 흡수하는 정교한 내부 구조도 없었다. 오직 청풍검의 알몸을 숨기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한 위장 도구였다.


깡—!


소철의 낙매검과 임시 대나무 지팡이가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그 찰나, 은랑의 손바닥을 타고 지옥 같은 열기가 솟구쳤다. 소철의 검날을 타고 흐르던 자하진기의 뜨거운 기운이 대나무 섬유질을 순식간에 관통해 은랑의 손바닥 경맥으로 흘러든 것이다.


“큭!”


은랑은 나지막한 신음과 함께 급히 지팡이를 뒤로 물렸다. 지팡이를 쥔 손바닥에 붉은 열상과 함께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자하진기의 열풍에 그을린 삼베옷 소매 끝자락이 맥없이 파스스 부서지며 재가 되어 날아갔다.


‘정면 충돌은 위험하다. 이 임시 지팡이는 자하진기의 뜨거운 양기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질 것이다. 게다가 내 단전의 진기는 역천공의 반동으로 심장 경맥이 손상되어 쇠약해진 상태다. 무리하게 맞서 싸우면 심장이 먼저 멈춘다.’


은랑은 차갑게 머리를 식혔다. 상대는 흑탑의 사악한 살수가 아닌, 거짓 소문에 속아 넘어간 정직한 무인이다. 그를 상대로 살수 비전의 청풍검을 뽑아 목을 벨 수는 없었다. 은랑은 불살(不殺)의 신조를 가슴 깊이 새기며, 지팡이를 거꾸로 쥐고 보법을 바꾸었다.


스으으으.


은랑의 신형이 기이하게 유연해졌다. 어깨와 허리의 힘을 완전히 빼고, 사방에서 몰아치는 뜨거운 매화 검풍의 결을 따라 몸을 가볍게 비틀었다. 스승 사천무가 남겨준 비전 보법, 사천무의 풍류보(風流步)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은랑의 몸은 소철의 매서운 검 끝이 옷깃을 스치기 직전 소리 없이 비껴갔다. 검기가 일으키는 미세한 공기의 흔들림을 피부 촉각으로 읽어내는 기류 감지가 풍류보와 결합하여 기적적인 회피 궤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팡이 하나로 내 매화검을 피한단 말이냐!”


소철은 자신의 절정 초식들이 허공만을 가르자 조급함을 느끼며 검세를 더욱 매섭게 몰아쳤다. 낙매검이 그리는 궤적이 점점 더 촘촘해졌고, 붉은 검기 꽃잎들이 사방에서 웅성거리며 은랑의 퇴로를 완벽히 차단했다.


은랑은 귀를 막는 대신 마음속의 거울, 맹인심경(盲人心鏡)을 맑게 닦아냈다. 귀로 들리는 가짜 소음들을 지워버리고, 오직 소철의 발바닥이 지면을 딛는 묵직한 진동과 그의 관절이 꺾이는 순간의 기류 변화에만 영혼을 집중했다. 적의 검 끝이 공기를 밀어내며 발생하는 미세한 기압의 굴절이 은랑의 뺨을 타고 은빛 선으로 선명하게 투영되었다.


쉬이익!


소철의 낙매검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은랑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검풍에 잘려 나간 하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밤안개 속으로 쓸쓸히 흩어졌다.


소철은 장님의 기이한 수비 태세에 경악하면서도, 검 끝을 회전시켜 은랑의 왼쪽 어깨를 향해 매서운 수평 참격을 날렸다. 이번 공격은 은랑의 어깨 옷깃을 스치며, 그의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상징적인 하얀 눈가림 천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이 천이 베어져 나가면, 흑탑의 배신으로 흉측하게 짓눌린 그의 먼 두 눈이 강호 무인들 앞에 고스란히 노출될 위기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은랑은 청풍검을 뽑는 대신 품속 깊은 곳으로 왼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단단하고 서늘한 감각, 과거 사부 사천무가 어린 시절 자신을 위해 불어주던 벼락 맞은 대나무 피리였다.


은랑은 망설임 없이 피리를 꺼내어 가볍게 치켜들었다. 벼락을 맞아 기묘한 양기가 깃든 대나무 피리가 어둠 속에서 호를 그리며 소철의 낙매검 측면을 향해 뻗어 나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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