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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버드나무 다리의 비검, 강남의 문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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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벼랑의 피바람은 멎었으나, 맹인의 세계를 채운 침묵은 한층 더 무겁고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단전에서 역류한 진기가 심장 주변의 경맥을 검게 태우며 올가미처럼 죄어왔다. 백회혈과 청궁혈에 깊숙이 박힌 세 자루의 명문금침(命門金針)이 억지로 고통을 마비시키고 있었지만, 살을 에는 듯한 내상의 한기는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뇌영의 참혹한 죽음, 그리고 그가 숨을 거두며 남긴 고백이 은랑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자신을 장님으로 만든 배신자인 줄 알았던 형제들이 사실은 탑주의 즉각적인 처형 명령으로부터 자신을 살리기 위해 눈만을 멀게 했다는 잔혹하고도 슬픈 진실.


하지만 은랑에게는 멈추어 슬퍼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장부를 태워라!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귀를 찢는 듯한 뇌화공법의 소음 공격으로 인해 고막이 파열되어 가청 범위가 영구적으로 축소된 상태였지만, 강풍을 뚫고 들려오는 독고준의 다급한 외침만큼은 뇌리에 선명하게 꽂혔다. 그와 함께 남궁세가의 정예 추격자인 남궁참의 다급한 발소리가 버드나무 다리(버드나무 다리) 방향으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은 남궁세가와 흑탑의 밀거래 장부(南宮世家 密去來 帳簿). 가문의 추악한 치부이자 황실의 거대한 음모가 담긴 유일한 물증이었다.


‘놓칠 수 없다.’


은랑은 조각난 대나무 지팡이 파편을 뒤로한 채, 오른손에 쥔 알몸의 청풍검(靑風劍)을 비스듬히 쥐고 신형을 날렸다. 지팡이가 없어 지면의 미세한 진동을 읽는 감각은 무뎌졌지만, 전신의 모공을 열어 대기의 기류를 느끼는 기류 감지 능력이 그의 발걸음을 인도했다. 빗방울이 공기를 가르며 떨어지는 궤적을 몸으로 피하며, 은랑은 유령처럼 밤안개 속을 질주했다.


버드나무 다리는 석문진 외곽의 거센 개울을 가로지르는 낡고 좁은 나무다리였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급류 소리가 거세게 몰아쳐 은랑의 훼손된 청각을 교란하려 했다. 하지만 은랑은 마음속의 거울, 맹인심경(盲人心鏡)을 맑게 닦아내며 오직 도주하는 두 사람의 거친 호흡과 옷깃 스치는 마찰음에 집중했다.


타닥, 타닥!


독고준과 남궁참이 다리 위에 올라선 순간이었다. 은랑의 발끝이 다리 초입의 젖은 흙바닥을 딛고 도약하려 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역천의 진기가 다리 경맥을 강타하며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천보벼랑에서 수명을 3년이나 단축하며 전개했던 기경팔맥 역천공의 가혹한 반동이었다. 신법이 한 박자 늦어지며 다리가 바닥에 묶였다.


그 틈을 타, 부상당한 남궁참이 검을 뽑아 들고 은랑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님 놈, 뇌영과 동귀어진한 줄 알았더니 기어코 쫓아왔구나! 하지만 가문의 장부를 넘겨줄 순 없다!”


남궁참의 제왕검법이 매서운 파공음을 내며 은랑의 목덜미를 향해 짓쳐 들어왔다. 은랑은 청풍검을 들어 그의 검날을 비껴 흘렸다. 챙! 하는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남궁참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음에도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검세를 전개하며 은랑의 접근을 완벽히 차단하려 했다.


그 너머 다리 끝자락에서 독고준이 품속에서 부싯돌을 꺼내 장부에 불을 붙이려 하고 있었다. 치이익 하며 도화선처럼 타오르는 불꽃의 기척과 쌉싸름한 종이 타는 냄새가 은랑의 후각을 자극했다.


‘늦는다. 신법으로 저 거리까지 다가가기 전에 장부가 한 줌의 재로 변할 것이다.’


은랑은 과감하게 판단을 내렸다. 무기를 잃는 무장 해제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백보 밖의 적을 소리 없이 사살할 수 있는 유일한 비기인 투검술(投劍術)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은랑은 남궁참의 검격을 풍류보의 유연함으로 부드럽게 흘려보내며, 전신의 남은 공력을 오른손 끝으로 모았다. 청풍검의 얇고 푸른 검날이 그의 단전 진기와 공명하며 미세하게 떨렸다. 검날에 파인 특수 홈들이 공기의 저항을 흡수하여 완벽한 무음의 궤적을 준비했다.


‘바람의 결은 남동풍, 풍속은 삼 점 오 장.’


은랑의 오른손이 채찍처럼 허공을 갈랐다.


쉭—!


그것은 파공음조차 삼켜버린 비검(飛劍)이었다. 푸른색 검 광 한 줄기가 밤안개와 빗줄기를 소리 없이 가르며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남궁참은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는 기이한 투검의 궤적에 경악하며 검을 멈추었다.


다리 끝에서 장부에 불을 붙여 던지려던 독고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무언가 위험을 감지하고 몸을 비틀려 했으나, 바람의 저항을 베어내며 광속으로 날아온 청풍검의 속도를 피할 수는 없었다.


푸학!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청풍검의 푸른 칼날이 독고준의 등 뒤 심장을 정확히 관통했다. 검날은 그의 흉판을 뚫고 나와 다리 바닥 목판에 깊숙이 박혔다. 독고준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온몸의 기혈이 일시에 멈추며 다리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남궁세가 밀거래 장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은랑은 지체 없이 무성보(無聲步)를 전개해 남궁참의 옆을 스치듯 지나쳤다. 남궁참이 검을 휘둘렀으나, 은랑의 신형은 이미 다리 끝자락 독고준의 시신 앞으로 날아가 있었다. 은랑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장부를 낚아채는 동시에, 장부 모퉁이에 붙은 불꽃을 자신의 젖은 왼손바닥으로 움켜쥐어 소리 없이 꺼뜨렸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가죽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이, 이 괴물 같은 장님 놈이……!”


남궁참은 독고준이 단 한 격에 격살당하고 장부마저 탈취당하자 극도의 수치심과 공포에 몸을 떨었다. 은랑이 독고준의 가슴에서 청풍검을 소리 없이 뽑아 들고 자신을 향해 검 끝을 겨누자, 남궁참은 더 이상 대결이 불가능함을 직시하고 어둠 속 강남 방향으로 신형을 날려 도주했다.


은랑은 도주하는 남궁참의 발소리를 들었으나, 추격하지 않았다. 단전의 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다리 경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은랑은 피 묻은 청풍검을 칼집 없는 품속에 거두어들이고, 반쯤 타버린 장부를 가슴 깊이 품었다. 마침내 석문진에서의 첫 번째 단죄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


몇 시간 후, 석문진 외곽의 허름한 폐사당 지하 밀실.


은랑은 한천담의 차가운 물로 뇌 신경의 열기를 식힌 후, 남궁혁과 훈장 유 선생(유 선생)이 기다리는 탁자 앞으로 다가왔다. 탁자 위에는 은랑이 목숨을 걸고 회수한 반쯤 탄 남궁세가 밀거래 장부가 놓여 있었다.


유 선생은 하얗게 센 수염을 떨며 낡은 돋보기를 장부 모퉁이의 그을린 가죽 표면에 들이댔다. 그곳에는 불길 속에서도 타지 않고 선명하게 살아남은 붉은색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 이것은……!”


유 선생의 돋보기 너머로 비친 눈동자가 극도의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남궁혁 역시 장부 표면의 문양을 확인하는 순간, 묵직한 철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유 선생, 무엇을 보았소?”


은랑이 나지막이 묻자, 유 선생은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은랑 소협…… 이것은 단순한 무림 가문과 살수 조직의 밀거래 인장이 아니네. 장부 모퉁이에 찍힌 이 붉은 문양은…… 황실 직속의 비밀 정보 기관이자 암살단인 동창(東昌)의 극비 인장일세. 용이 열쇠를 감싸 안고 있는 이 표식은 오직 동창의 총관인 제갈현(제갈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물이지.”


지하 밀실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남궁혁이 이가 빠진 철검의 검자루를 부서질 듯 움켜쥐며 나지막이 신음했다.


“우리 남궁세가가…… 정파의 명문이라 자부하던 가문이, 뒤로는 황실의 사냥개인 동창과 결탁하여 북방의 철광석을 밀수하고 사설 무기를 만들어 무림맹을 멸망시키려 했다니. 가문의 어른들이 이토록 위선적인 괴물들이었단 말인가!”


남궁혁의 목소리에는 뼈에 사무치는 수치심과 가문의 타락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은랑은 보이지 않는 먼 눈으로 남궁혁의 무거운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다. 그의 심장은 가문을 향한 배신감과 무인으로서의 의기(義氣)로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은랑은 품속에서 뇌영의 유언을 되새겼다.


‘우리는 모두 탑주의 장기말일 뿐이다.’


흑탑의 탑주 독고황은 자신을 사냥개로 키워 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 복수의 여정 전체를 설계하여 자신을 황실 동창과 남궁세가의 거대한 음모 속으로 밀어 넣은 배후였다. 복수의 대상은 이제 단순한 최하부 추격대장 뇌영을 넘어, 자신을 도구로 부린 사부 독고황과 황실의 거대한 폭력 세력으로 격상되어 있었다.


은랑은 청풍검을 단단히 고쳐 잡으며 나지막이 선언했다.


“남궁 형, 가문의 죄업은 형의 죄가 아니오. 하지만 그 위선의 꼬리를 자르지 않는다면 강호의 민초들은 영원히 흑탑의 이빨 아래 신음할 것이오. 나는 강남으로 가겠소.”


남궁혁은 은랑의 차가우면서도 단단한 의기에 감화되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철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내 제 손으로 가문의 치부를 도려내고 의협의 길을 걷겠소. 내 검은 이제 은랑 소협의 눈과 귀가 될 것이오.”


밀실의 문이 열리고, 한천담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던 설아(설아)가 소리 없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설아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맑고 깊은 눈망울로 은랑의 피 묻은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은랑의 손바닥 위에 부드러운 손가락 끝으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


[어디든 함께 가요. 당신의 어둠을 밝혀줄게요.]


은랑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밖에서는 마부 삼식이 준비한, 말발굽 소리를 죽인 소리 없는 특수 마차가 어두운 새벽안개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은랑은 설아의 손을 잡고, 남궁혁과 함께 강남으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거리는 마차 바퀴 소리가 석문진의 황량한 대지를 뒤로하고 남쪽을 향해 구르기 시작했다. 장부의 진실을 밝히고 자신을 감시하는 남궁세가를 역추적하기 위한 새로운 복수의 여정, 강남의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문이 마침내 소리 없이 열리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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