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반향계곡의 소동, 소리의 감옥
독침 세 자루가 대기의 결을 가르고 은랑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그의 지팡이 끝 백천동 철 촉이 기묘한 원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깡! 깡! 깡!
어둠 속에서 불꽃이 세 번 튀었다. 소리 없이 대기를 비행하던 독저의 무색무취 독침들이 백천동 철 촉의 예리한 궤적에 부딪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독침들이 절벽 바위에 깊숙이 박히며 치이익 하는 불길한 연기를 피워 올렸지만, 은랑의 신형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이, 이럴 수가……! 내 독침을 전부 튕겨내다니!”
절벽 위에서 독저의 당혹감 서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비명은 가짜 메아리가 아니었다. 은랑이 기류 감지로 독침의 궤적을 완벽히 읽어내고 방어하자, 극도의 경악에 휩싸인 독저의 단전이 요동치며 진짜 기척을 사방으로 흘린 탓이었다.
은랑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단전의 미약한 순양진기를 양발에 집중시켰다.
청풍검결 2초식, 무성격살(無聲擊殺).
발소리도, 바람 소리도 내지 않는 유령 같은 잠행의 신법이 젖은 흙바닥을 쓸어내렸다. 은랑의 신형은 안개 속에서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되어 독저가 숨어 있는 절벽 바위 위를 향해 폭풍처럼 짓쳐 올라갔다.
“죽어라, 이 장님 놈아!”
독저가 비명을 지르며 소매 속의 비밀 발사 장치인 독사아를 들이밀려 했으나, 은랑의 대나무 지팡이 ‘청풍’이 더 빨랐다. 공기를 베어내는 파공음조차 내지 않고 뻗어 나간 지팡이 끝의 백천동 철 촉이 독저의 목덜미 천돌혈을 정확히 관통했다.
컥, 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독저의 신형이 바닥으로 허무하게 쓰러졌다. 그의 손목에 장착되어 있던 독사아 장치가 바위에 부딪히며 쓸쓸한 금속음을 냈다.
“후우…… 후우……”
은랑은 지팡이를 거두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뺨의 독침 자상 부위가 차갑게 얼어붙으며 안면 신경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만독공의 독기가 경맥을 타고 뇌 신경으로 뻗어 나가려 요동치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고, 관자놀이의 경맥이 요동쳤다.
은랑은 지체 없이 계곡을 빠져나와 본초학자 한 의원의 비밀 안전가옥으로 향했다. 한 의원은 은랑의 상태를 보고 기겁하며 차가운 한빙석 침통에서 은침을 꺼내 안구 주변의 혈자리를 빠르게 침봉했다. 그리고는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쓴 해독 약차를 은랑의 입에 흘려 넣었다.
“만독공의 독기가 안면 신경을 상하게 했네. 약차의 극음 기운이 독기를 다스릴 때까지 며칠은 쉬어야 하네. 무리하게 진기를 쓰면 안구 주변 경맥이 완전히 으스러질 걸세.”
한 의원의 경고가 귓가를 때렸지만, 은랑에게는 쉴 시간이 없었다. 뇌영의 임시 요새인 ‘적암굴’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 반향계곡(反響定位)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랑은 뺨의 마비가 겨우 진정되자마자 다시 청풍 지팡이를 쥐고 안개 숲을 나섰다.
***
반향계곡.
그곳은 대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소리의 감옥이었다. 두 개의 거대한 화강암 절벽이 수백 장 높이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좁은 분지 지형. 바람이 불 때마다 절벽 틈새를 지나는 바람 소리가 기괴한 울림을 만들어내며 수십 번씩 메아리쳐 흘러내렸다.
은랑이 계곡 초입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의 예민한 청각 레이더망이 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툭, 하고 지팡이로 바닥을 치며 반향정위 음파를 내보냈지만, 메아리는 벽면에 부딪혀 불규칙한 주파수로 굴절되어 돌아왔다. 오른쪽에서 들리는 소리가 왼쪽 절벽에 반사되어 뒤편에서 들리는가 하면, 바람 소리가 머릿속 3D 공간 지도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흐흐흐…… 눈먼 사냥개가 스스로 사지로 걸어 들어왔구나.”
계곡 사방에서 기괴한 울음소리와 바람 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발원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사방의 절벽 위에서 동시에 들려오는 듯한 음산한 소리. 흑탑의 특수 자객, Heuk-gwi(흑귀)의 복어성술(腹語聲術)이었다. 그는 동물 울음소리와 가짜 바람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어 은랑의 청각적 지형 인지 능력을 완벽히 교란하고 있었다.
은랑은 걸음을 멈추고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관자놀이의 경맥이 이명 소리와 함께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때였다. 웅성거리는 메아리 장막을 뚫고, 대지를 뒤흔드는 묵직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쿠우웅—!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롭고 육중한 파동이 계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은랑은 본능적으로 귀를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그것은 거구의 무사 곽철패(郭鐵牌)가 들고 있는 두 개의 거대한 무쇠 방패, 뇌공패(雷公牌)가 맞부딪치며 뿜어내는 고주파 소음 공격이었다.
깡—! 깡—!
무쇠 방패가 부딪칠 때마다 발생하는 날카로운 고주파 음파가 화강암 절벽에 부딪혀 수백 배로 증폭되었다. 소리의 파동이 물리적인 타격이 되어 은랑의 고막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머릿속 뇌 세포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고, 코와 양쪽 귀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려 하얀 눈가림 천을 붉게 물들였다.
“하하하! 내 뇌공패의 소음 속에서도 그 귀가 버텨낼 수 있겠느냐!”
곽철패의 포효가 고주파 소음과 뒤섞여 메아리쳤다. Heuk-gwi가 흉내 내는 가짜 바람 소리까지 가세하자, 은랑은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고 비틀거렸다. 사방이 소음의 벽으로 가로막힌 완전한 소리의 감옥이었다. 귀를 막아도 뇌를 직접 타격하는 음파는 단전을 뒤흔들었고, 찢어진 경맥들이 비명을 질렀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청각에만 의존하던 은랑의 무공이 정면으로 파쇄당하려 하고 있었다.
‘소리를 이기려 하지 말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은 대지의 정직한 울림일세.’
그 순간, 은랑의 뇌리에 눈먼 악사 진표(震彪)의 나지막한 가르침이 스쳐 지나갔다. 공기 중의 소리는 메아리와 왜곡으로 거짓을 말하지만, 단단한 바위와 대지를 타고 전해지는 물리적 진동은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은랑은 과감히 청각을 차단했다. 그는 내력으로 두 귀의 청궁혈을 완전히 봉인하여 소음의 침투를 막았다. 세상이 완벽한 정적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직 뇌를 울리는 둔탁한 진동만이 뼈를 타고 전해질 뿐이었다.
은랑은 단전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순양진기를 양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로 무겁게 내려 보냈다.
골격 파동 분석(骨格波動 分析).
그는 대나무 지팡이 ‘청풍’의 끝부분을 화강암 바닥에 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두 발을 대지에 단단히 고정하고, 전신의 뼈를 통해 지표면의 미세한 떨림을 읽기 시작했다.
징…… 징…….
세상이 소리 없는 푸른색 진동 파형으로 다시 그려졌다.
사방에서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Heuk-gwi의 가짜 목소리는 대지를 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키가 8척에 달하고 온몸에 무거운 쇠사슬을 감은 거구의 곽철패는 움직일 때마다 대지에 묵직한 중력의 파동을 남기고 있었다.
쿵, 쿵, 쿵.
마치 어둠 속에서 거대한 붉은 점이 움직이는 것처럼, 곽철패의 무게중심 이동과 관절의 꺾임이 은랑의 발끝을 타고 척추로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그의 뼈 구조가 머릿속에 3차원으로 입체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정면 7보 밖,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방패를 들어 올리고 있다.’
은랑은 신형을 날렸다. 소리 없는 유령의 보법이 정적을 가르고 곽철패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이, 이놈이 어떻게 내 위치를……!”
곽철패가 경악하며 거대한 무쇠 방패 두 개를 은랑의 머리를 향해 동시에 맞부딪치려 했다. 귀를 찢는 고주파 굉음이 다시 한번 대기를 찢어발기며 계곡 전체에 폭발하려 했다.
곽철패의 거대한 쇠방패가 맞부딪쳐 귀를 찢는 굉음이 계곡 전체에 폭발하는 찰나, 은랑이 지팡이 끝을 계곡 바닥에 강하게 내리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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