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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독안개의 습격, 바람을 가르는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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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통로의 화강암 벽 틈새에서 피어오른 보라색 연기가 밀실의 차가운 공기를 잠식해 들어왔다.


은랑은 먼지 묻은 하얀 눈가림 천 아래로 미간을 찌푸렸다. 두 눈은 멀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코끝을 스치는 공기의 질감이 급격히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향료 뒤에 숨어 있던 쌉싸름하면서도 기이할 정도로 단달한 냄새. 흑탑의 지하 탁아소 시절, 살수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해 쓰이던 독 연기였다.


‘독저(毒狙)…….’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은 단 하나였다. 과거 흑탑의 지하 훈련소에서 함께 자라났던 동기이자, 은랑의 초인적인 청각을 끊임없이 시기하며 그의 귀에 독침을 뱉으려 했던 비열한 독술 자객. 그 독저가 수비대장 사택 뒷산의 독안개 계곡(毒안개 谷) 길목에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쉬이이익.


독안개가 밀실 내부의 산소를 가차 없이 집어삼키며 은랑의 목구멍을 조여왔다. 기침이 터져 나오려 했고, 기경팔맥의 주요 혈자리에 꽂아둔 명문금침(命門金針) 부근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금침봉경술의 유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였다. 이 밀폐된 지하에서 독가스에 질식해 쓰러지면, 품속에 간직한 남궁세가 밀거래 장부와 제갈현의 밀지 조각은 영원히 묻히게 된다.


은랑은 대나무 지팡이 ‘청풍’을 굳게 쥐었다. 지팡이 끝 백천동 철 촉이 화강암 바닥을 짚을 때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으로 지하 밀실 환기구의 입체적 위치를 추적했다.


통, 통, 텅.


머리 위 1장 반 높이의 석벽 틈새. 외부의 밤바람이 미세하게 들이치는 좁은 환기 구멍이 있었다. 은랑은 발바닥 용천혈에 진기를 모아 가볍게 도약했다.


무성보(無聲步).


발소리도, 옷깃 스치는 마찰음도 내지 않은 채 은랑의 신형이 허공을 날아 환기구 틈새로 쏘아져 들어갔다. 좁은 석조 통로를 온몸으로 쓸어내리며 기어 나가자, 이윽고 밤바람의 차가운 한기와 함께 젖은 흙 냄새가 전신을 감싸 안았다.


사택 뒷산으로 연결된 비밀 통로의 출구였다. 은랑은 젖은 진흙 바닥 위로 소리 없이 착지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틈은 없었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그를 맞이한 것은 사방을 가로막은 기괴한 바위 벽들과, 그 사이를 무겁게 채우고 있는 자욱한 안개였다. 지열로 인해 항상 유독한 기체가 뿜어져 나오는 좁은 골짜기, 독안개 계곡이었다.


스으으으.


계곡의 안개는 단순한 밤안개가 아니었다. 지열의 가스와 독저가 살포한 무색무취의 독가스가 뒤섞여, 은랑이 발을 디딜 때마다 코와 귀의 혈자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윽……”


은랑은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극심한 통증에 신음했다. 예민하게 벼려져 있던 그의 청각 레이더망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바람이 바위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 소리가 먹먹하게 찌그러졌고, 십 보 밖의 들개 숨소리마저 아득한 심연 너머의 소리처럼 멀어졌다. 후각마저 마비되어 공기 중의 냄새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오감이 차단된 완전한 고립무원의 지옥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감각이 영구적으로 파괴된다.’


은랑은 본초학자 한 의원(韓 醫員)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 독기가 경맥을 타고 뇌 신경으로 침투할 때는, 억지로 숨을 참거나 내력을 폭발시켜서는 안 되네. 오히려 독기가 기혈의 흐름을 타고 심장으로 빠르게 흘러들 뿐이지. 전신의 모공을 닫고, 귀와 코의 혈자리에 미세한 진기 막을 형성해 감각 기관을 수호해야 하네.


은랑은 단전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미약한 순양진기를 끌어올려 청궁혈과 이문혈 주변의 경맥을 단단히 봉인했다. 이명 소리가 한층 더 시끄럽게 귓전을 때렸지만, 독기가 뇌 세포를 파괴하는 최악의 사태는 간신히 막아냈다.


그때였다. 먹먹해진 은랑의 귓가를 뚫고, 계곡 사방의 바위 벽에 부딪혀 굴절되는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하하하…… 은랑. 정말로 살아 있었구나. 사부님이 너를 절벽 아래로 던졌을 때 곱게 죽었어야지, 왜 굳이 이 석문진까지 기어와 쓰레기처럼 청소부 짓을 하고 있었던 거냐?”


목소리의 방향이 불규칙하게 메아리쳤다. 동쪽에서 들리는가 하면, 서쪽 절벽 위에서 들리는 듯했다. 독저의 복어성술(腹語聲術)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마저 가짜 방향으로 울리게 만들어 은랑의 청각을 철저히 기만하고 있었다.


“네놈의 그 뛰어난 귀가 이 독안개 속에서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사부님이 하사하신 그 대나무 지팡이 ‘청풍’을 짚고 버둥거리는 꼴이 참으로 우스꽝스럽구나.”


은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순간 자신의 호흡이 흐트러지고 독기가 허파 깊숙이 침투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대나무 지팡이 청풍을 가볍게 짚은 채, 전신의 모공을 아주 미세하게 열었다.


공기 유동 인지(氣流感知).


청각과 후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은랑이 선택한 최후의 감각망이었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밀실에서 깃털의 흔들림을 피부로 느끼며 단련했던 촉각의 극의. 전신의 피부 표면에 얇은 진기 막을 형성하자, 계곡의 밤바람이 은랑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미세한 결이 피부에 닿는 은빛 선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으윽.


계곡 동쪽 바위 틈새에서 바람의 흐름이 미세하게 굴절되었다. 무언가 얇고 날카로운 질량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시위를 떠날 때 바람 마찰 소리가 나지 않도록 깃털 무늬가 새겨진 독저의 무색무취 독침(無色無臭 毒針)이었다. 청각에만 의존했다면 이미 목덜미가 뚫렸을 치명적인 기습이었다.


‘피해야 한다!’


은랑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체내에 흡입된 가스의 독기 때문에 신체의 반응 속도가 한 박자 늦어졌다.


서걱!


날카로운 쇠침이 은랑의 왼쪽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얀 눈가림 천 옆자락이 찢어지며 붉은 선혈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침 끝에 묻은 만독공의 독기가 상처 부위를 타고 스며들자, 왼쪽 안면의 신경이 순식간에 차갑게 마비되기 시작했다.


“어라? 피했네? 역시 은랑이야. 눈이 멀고 귀가 막혀도 사냥개의 이빨은 완전히 뽑히지 않았군. 하지만 다음 침도 피할 수 있을까?”


독저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계곡을 흔들었다.


은랑은 상처 부위의 독기가 안구 주변 경맥으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내력으로 상처를 강하게 압착했다. 뺨이 뻣뻣하게 굳어갔고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요동쳤지만, 그의 내면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았다.


‘두 자루 더 남았다.’


독저의 손목에 장착된 비밀 발사 장치 ‘독사아’는 한 번에 최대 세 자루의 독침을 장전할 수 있었다. 방금 한 자루가 소진되었으니, 남은 것은 두 자루였다. 독저는 은랑의 청각이 완전히 마비되었다고 믿고 방심하고 있을 터였다. 적이 방심하는 찰나의 빈틈이야말로 살수가 노릴 수 있는 유일한 반격의 기회였다.


은랑은 지팡이 청풍을 가볍게 짚고 서서, 전신의 피부로 느껴지는 기류의 변화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스으으으…… 팟!


이번에는 서북쪽 절벽 위에서 바람의 결이 강하게 찢어졌다. 독저가 공중에서 신형을 띄우며 두 자루의 독침을 동시에 발사한 것이었다. 침이 날아오는 궤적이 공기를 밀어내며 발생하는 미세한 기류의 굴절이 은랑의 모공에 선명하게 잡혔다.


은랑은 오른손에 쥔 청풍 지팡이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깡, 깡!


두 번의 맑은 금속 마찰음이 계곡의 안개 속을 날카롭게 가랐다. 지팡이 끝 백천동 철 촉이 허공을 정확히 가르며 날아오던 두 자루의 독침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튕겨낸 것이었다. 튕겨 나간 독침들이 바위에 박히며 치이익 하는 기분 나쁜 연기를 피워 올렸다.


“뭐, 뭐라고?! 소리도 나지 않는 독침을 어떻게……!”


절벽 위에서 독저의 당혹감 서린 숨소리가 마침내 메아리가 아닌, 진짜 위치에서 은랑의 귀에 걸려들었다. 적이 경악하며 기맥의 흐름을 급격히 요동치게 만든 덕분이었다.


은랑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단전의 남은 진기를 양발에 집중시켰다.


청풍검결 2초식, 무성격살(無聲擊殺).


발소리도, 바람 소리도 내지 않는 완전한 침묵의 신법이 독안개 계곡의 바닥을 쓸어내렸다. 은랑의 신형이 안개 속에서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되어 독저의 진짜 기척이 느껴지는 절벽 바위 위를 향해 폭풍처럼 짓쳐 올라갔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죽어라!”


독저는 비명을 지르며 품속에서 남은 무색무취 독침 세 자루를 발사 장치에 급히 장전해 쏘아댔다.


독저의 치명적인 독침 세 자루가 은랑의 목덜미를 향해 소리 없이 날아드는 순간, 은랑의 온몸의 모공이 기묘한 기류의 굴절을 감지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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