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낙조주가의 밀담, 그림자 밟기
석문진 변방에 위치한 낙조주가(落照酒家)는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한 곳이었다. 비가 그친 뒤의 축축한 흙내음과 싸구려 탁주의 시큼한 냄새, 그리고 강가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바람이 뒤섞여 주막 내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거친 부두 노동자들과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왈패들이 내뱉는 걸걸한 욕설이 사방에서 웅성거렸지만, 주막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비밀 다락방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은랑은 먼지 묻은 하얀 천으로 두 눈을 단단히 가린 채, 다락방의 삐걱이는 목판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무릎 위에는 백천동 철 촉이 장착된 대나무 지팡이 ‘청풍’이 정물처럼 올려져 있었다. 비록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였으나, 그의 귀 주변 청궁혈(聽宮穴)은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머리에 꽂힌 명문금침 세 자루가 뇌 신경의 과부하를 억제하고 있었지만, 진기를 전개할 때마다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미약한 통증은 여전했다.
사락, 사락.
다락방의 낡은 사다리를 타고 가벼운 발소리가 올라왔다. 발바닥 전체가 아닌 앞축만을 사용하여 소리를 극도로 줄인 걸음걸이. 은랑이 은신처로 삼은 이 외딴 주막의 주모이자, 과거 사부 사천무에게 큰 은혜를 입었던 이 과부였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은랑 도련님.”
이 과부는 남루한 삼베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거친 주막 바닥에서 뼈가 굵은 여인답게 영리하고 차분했다. 그녀는 은랑의 앞에 따뜻한 약차 한 잔을 내려놓았다.
“한천담의 한기는 다스려졌으나, 경맥에 가해진 압박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주머니.”
은랑의 과묵하고 서늘한 음성이 다락방의 어둠을 갈랐다. 이 과부는 은랑의 먼 눈가림 천 새로 비치는 굳건한 태도에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사천무 장인의 유일한 후계자가 이토록 처절한 복수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 주막 아래층의 소란스러운 소음 사이로 기묘하게 불규칙하고 가벼운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흙바닥을 가볍게 딛고 일어서는 고양이 같은 움직임. 은랑의 손발이 되어 시장 바닥의 온갖 정보를 긁어모으는 거지 첩보원, 칠성이었다.
다락방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때 묻은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지은 칠성이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구걸용 놋그릇이 들려 있었다.
“큰형님! 제가 관청 주변을 샅샅이 뒤져 아주 요긴한 정보를 알아왔습니다!”
칠성은 사다리를 가볍게 타고 올라와 은랑의 앞에 엎드렸다. 그의 호흡은 다급했지만 목소리는 철저히 낮춰져 있었다. 은랑은 품속에서 묵직한 은자(銀子) 몇 푼을 꺼내 칠성의 손에 쥐여주었다. 정보의 대가는 확실해야 했다.
“말해 보아라.”
“예, 형님. 서문 수비대장 사택에 침투한 흑탑의 자객들이 대장에게 막대한 은자를 상납했다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뇌영 그놈이 관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수비대장에게 거액의 뇌물을 바쳤고, 대장은 그 대가로 뇌영의 살수들이 석문진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봉쇄망을 치는 것을 완전히 묵인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밀거래의 구체적인 병력 배치도와 상납 장부가 지금 수비대장의 사택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칠성의 보고에 은랑의 입술이 차갑게 다물어졌다.
부패한 관청의 수장이 흑탑의 사냥개들과 결탁하여 민초들을 착취하고 자신을 대역죄인으로 몰아세운 진실이 비로소 맞춰졌다. 뇌영의 숨통을 끊고 빼앗긴 사부의 유품인 대나무 지팡이 내부의 청풍검을 완전히 되찾기 위해서는, 먼저 서문 수비대장의 사택에 침투하여 그 병력 배치도와 밀거래 장부를 손에 넣어야 했다.
“사택의 경비는 어떠하더냐.”
은랑이 묻자, 칠성이 놋그릇을 가볍게 두드리며 지형을 설명했다.
“매우 삼엄합니다. 담벼락 사방에 포졸들과 흑탑의 하급 무사들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고, 마당에는 낯선 이의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사나운 감시견들이 풀려 있습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담장 근처에 가기도 전에 들통날 것입니다.”
은랑은 대나무 지팡이 청풍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내렸다. 백천동 철 촉이 장착된 지팡이 끝부분에서 단단한 무쇠의 기운이 전해졌다. 보이는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땅이 전하는 진동만큼은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오늘 밤, 사택으로 간다.”
은랑의 단호한 선언에 이 과부와 칠성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
삼경(三更)의 깊은 밤.
석문진을 감싼 밤안개는 낮에 내린 비의 기운을 머금고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축축한 안개 장막은 사방의 빛을 흡수하며 서문 수비대장 사택의 거대한 기와지붕을 유령처럼 감싸 안았다.
은랑은 칠흑 같은 가죽 야행의를 걸치고, 묘은 비구니에게 받은 특수 향료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흰색 눈가림 천을 머리 뒤로 단단히 묶었다. 침향의 맑은 향이 코끝을 스치며 그의 요동치는 뇌 신경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사택 외곽의 어두운 버드나무 그늘 아래에 도달한 은랑은 무릎을 약간 굽히고 단전의 미약한 진기를 양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로 무겁게 내려 보냈다.
지맥 진동 감지법(地脈 振動 感知法)이었다.
젖은 흙바닥은 공기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묵직하게 진동을 전도했다. 은랑의 발끝을 타고 대지의 떨림이 척추를 거쳐 머릿속으로 곧바로 뻗어 나갔다. 사택 담장 안쪽 마당을 걷고 있는 순찰병들의 무거운 가죽신 보폭, 그들의 체중 이동,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숨을 헐떡이며 네 발로 서 있는 감시견들의 미세한 심장박동 소리까지 푸른색 파동의 선으로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순찰병은 여덟 명. 감시견은 두 마리.’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관청의 군사들을 죽이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고, 석문진의 무고한 민초들이 보복을 당할 터였다. 은랑은 철저히 ‘불살의 경계’를 유지한 채 소리 없이 침투해야 했다.
그때, 사택 동쪽 외곽의 어두운 골목길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쨍그랑—! 댕그랑—!
칠성이 약속대로 구걸용 낡은 놋그릇을 돌벽에 던져 기괴한 소음을 발생시킨 것이었다. 자욱한 밤안개 속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날카로운 소음에, 사택 동쪽 담벼락을 지키던 보초들의 신경이 단숨에 그쪽으로 쏠렸다.
“무슨 소리냐? 저쪽 골목을 수색해라!”
보초들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동쪽을 향해 빠르게 멀어지는 진동이 은랑의 발끝에 감지되었다. 사택 서쪽 담장 아래의 경비망에 미세한 공백이 생긴 찰나의 순간이었다.
은랑은 망설임 없이 신형을 움직였다.
그는 발바닥 용천혈을 통해 지면으로 가해지는 충격력을 단전의 진기로 부드럽게 흡수하는 무성보(無聲步)를 전개했다. 그의 발걸음은 젖은 진흙 바닥 위를 밟았음에도 흙먼지 하나, 물방울 하나 튀기지 않는 유령의 움직임과 같았다.
은랑은 바람의 결을 타고 가볍게 도약하여 높은 돌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기와지붕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딛는 순간에도, 그는 발끝의 내력을 미세하게 조율하여 기와가 마찰하는 미세한 소리조차 완벽히 흡수했다. 담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은 은랑의 귀에 마당 아래쪽의 기척이 잡혔다.
크르르르…….
사택 마당 구석에 묶여 있던 사나운 감시견 한 마리가 미세한 인기척을 느꼈는지 코를 킁킁거리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짐승 특유의 예민한 후각이 안개 속에 섞인 이질적인 체취를 포착하려 냄새를 들이마시는 소리였다.
은랑은 침착하게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 뒤편, 특수 향료가 배어 있는 흰색 눈가림 천을 가볍게 매만졌다. 천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하고 깊은 침향의 성분이 밤바람을 타고 마당 아래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사냥개의 코끝으로 침향의 강렬한 향이 주입되자, 녀석은 재채기를 가볍게 하며 자신의 후각이 교란당했음을 느끼고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내 으르렁거리던 기척을 거두고 바닥에 몸을 뉘였다.
은랑은 소리 없이 마당의 잔디밭 위로 착지했다. 발끝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조차 대나무 지팡이 청풍의 탄성이 완벽하게 흡수하여 소멸시켰다. 사택 내실로 향하는 통로는 이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안심하려는 찰나, 은랑의 온몸의 모공이 다시 한번 송곳에 찔린 듯 곤두섰다.
사택 서쪽 담장 모퉁이를 돌아 이쪽으로 다가오는 무겁고 규칙적인 발소리. 칠성의 유인책에 걸려들지 않은 진짜 정예 순찰병들의 보법이었다. 발걸음의 무게와 간격으로 보아 최소한 이류 무사 수준의 내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사택 담벼락 아래, 소리 없이 다가오는 순찰병들의 발소리가 은랑의 발끝 지면을 타고 찌릿하게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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