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뇌전의 불꽃, 대지를 흔드는 철퇴
치이익—!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안개 낀 채석장의 습한 공기를 갈랐다. 붉은 불꽃이 불꽃송이를 사방으로 튀기며 조 할머니와 가난한 민초들이 묶여 있는 절벽 아래로 빠르게 기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뇌영의 비열한 미소가 횃불의 붉은 빛을 받아 기괴하게 일렁였다.
은랑은 귀면을 처단한 절벽 선반 위에서 단숨에 신형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비소와의 결투로 찢겨 나간 옆구리의 상처가 요동쳤고, 우측 어깨의 재파열된 자상에서는 뜨거운 선혈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려 삼베옷을 적시고 있었다. 머리에 꽂힌 명문금침(命門金針)의 약효가 그의 뇌 신경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으나, 전신의 경맥은 팽팽하게 당겨진 거문고 줄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안 돼……!”
은랑이 청풍검을 쥔 채 허공을 차고 내려가려던 찰나였다.
콰아아아앙—!
벼락이 대지를 때리는 듯한 가공할 폭음이 폐채석장 내부를 통째로 뒤흔들었다. 뇌영의 수하들이 매설해 둔 첫 번째 뇌공탄(雷公彈) 화약이 폭발한 것이었다. 뒤이어 연쇄적으로 터져 나가는 화약의 굉음이 채석장의 기괴한 암벽 구조에 부딪혀 수백 배로 증폭되었다.
폭발의 충격파가 은랑의 전신을 덮쳤다. 눈먼 사냥개의 유일한 눈이자 귀였던 초청각(超聽覺)이 그 순간 완전히 파괴당했다.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의 굉음이 이문혈(耳門穴)과 청궁혈(聽宮穴)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뇌 신경 과부하가 임계점을 넘어서며, 하얀 눈가림 천 아래로 뜨거운 선혈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 이명(耳鳴)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삐이이이— 하는 날카로운 소음 장벽이 세상의 모든 기척을 지워버렸다. 바람 소리도, 뇌영의 비웃음도, 인질들의 비명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소리의 지옥, 혹은 완벽한 적막이었다.
은랑은 절벽 아래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듯 착지했다. 균형 감각이 무너져 시야가 뒤틀리는 듯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사방은 폭발로 인한 자욱한 황토색 먼지와 유황 연기로 가득 찼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소리마저 잃어버린 사냥개는 눈밭에 던져진 어린 짐승처럼 무력했다.
쿵! 쿵! 쿵!
그때였다. 귀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나, 은랑의 온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대지가 울리고 있었다. 아주 무겁고 파괴적인 진동이 흙바닥을 타고 그의 발바닥 용천혈(湧泉穴)로 흘러들었다.
은랑은 본능적으로 왼손에 쥔 대나무 지팡이 ‘청풍’을 부서진 바위 바닥에 깊숙이 내리꽂았다.
징—!
지팡이 끝에 장착된 백천동(白川銅) 철 촉이 지면의 진동을 흡수하며 단단하게 공명했다. 백천동 특유의 높은 진동 전도율이 대장간에서 단련된 그대로 은랑의 손끝을 타고 척추로, 그리고 그의 뇌리로 곧바로 뻗어 나갔다.
소리가 차단된 칠흑 같은 뇌리 속에서, 대지의 진동이 푸른색 파동의 선으로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골격 파동 분석(骨格波動 分析)의 경지였다.
진동의 발원지는 정면 5보 밖이었다.
그곳에는 키가 7척에 달하는 거구의 살수, 흑탑의 돌격대장 금강(金剛)이 서 있었다. 금강은 온몸에 강철 같은 근육을 비틀며 백 근 무게의 무쇠 쇠사슬 철퇴 ‘뇌철퇴(雷鐵槌)’를 허공에서 크게 휘두르고 있었다. 철퇴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철퇴의 무게가 공기를 짓누르며 대지 전체에 가하는 묵직한 압박 진동이 지팡이 끝을 타고 은랑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금강이 철퇴를 바닥으로 내리쳤다.
쿠구구구!
대지가 쩍 갈라지며 거대한 지진 파동이 일어났다. 사방의 돌가루가 허공으로 비산했고, 불규칙한 지면의 뒤틀림이 은랑의 발끝을 흔들었다. 뇌철퇴의 진동은 은랑의 골격 분석을 교란하기 위한 잔혹한 수단이었다. 대지의 미세한 울림 속에 금강 자신의 발걸음을 숨기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은랑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 거울을 맑게 닦는 맹인심경(盲人心鏡)을 유지하며, 뇌철퇴가 만드는 거대한 진동 파형 속에서 금강의 육체가 내는 고유한 무게중심의 변화를 걸러냈다.
‘오른쪽 무릎이 굽혀진다. 체중의 팔 할이 우측 다리로 쏠리고 있어.’
은랑의 머릿속 3차원 지도에 금강의 거대한 뼈 구조가 하얀 선으로 선명하게 재구성되었다. 관절의 꺾임, 근육의 수축, 그리고 그가 거대한 뇌철퇴를 다시 회수하기 위해 상체를 뒤로 젖히는 궤적이 1치의 오차도 없이 읽혀왔다.
금강이 쇠사슬을 당겨 철퇴를 회수하더니, 은랑의 상체를 향해 수평으로 크게 가로베기를 감행했다. 철퇴가 허공을 짓이기며 다가오는 파괴적인 압력이 전신의 피부 모공을 송곳처럼 찔렀다.
은랑은 공중으로 뛰어오르지 않았다. 공중으로 도약하는 순간, 대지와의 연결이 끊어져 적의 움직임을 읽을 유일한 이정표인 진동을 잃어버릴 터였다.
그는 철저히 대지에 발을 붙였다. 사천무 스승의 풍류보(風流步) 신법을 극도로 전개했다. 무릎을 유연하게 굽히며 상체를 뒤로 길게 눕혔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스으으윽—!
백 근 무게의 무쇠 철퇴가 은랑의 코끝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철퇴가 밀어내는 엄청난 풍압이 은랑의 하얀 눈가림 천을 사정없이 흔들었고, 어깨의 찢어진 자상이 비명을 지르며 선혈을 뿜어냈다. 각혈이 터져 나왔으나 은랑은 이빨을 악물며 진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철퇴를 휘두른 금강의 전신 골격이 일순간 크게 흐트러졌다. 거구의 무게가 회전력을 이기지 못하고 오른쪽 다리에 완전히 고정되는 찰나의 빈틈이 발생했다.
‘지금이다.’
은랑의 먼 눈가에서 차가운 단죄의 빛이 서렸다.
그는 눕혔던 상체를 스프링처럼 퉁겨 일으키며 정면으로 쇄도했다. 그의 손에 쥔 대나무 지팡이 청풍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쿠우웅! 거대한 철퇴가 대지를 박살 내며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는 찰나, 은랑의 대나무 지팡이 끝에 장착된 백천동 철 촉이 금강의 거대한 무릎 관절을 향해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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