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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채석장의 그늘, 인질들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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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의 급박한 전령을 받은 후, 은랑은 지체 없이 청풍헌 지하 동굴을 나섰다. 백회혈(百會穴)에 깊숙이 내리꽂은 명문금침(命門金針)의 효능 덕분에 타들어 가던 뇌의 열기는 가라앉았으나, 그것은 자신의 수명을 갉아먹으며 얻은 일시적인 평정이었다. 옆구리의 붕대 틈새로 백련초의 쌉싸름한 약취가 풍겼지만, 차가운 산바람이 상처를 스칠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짐승들도 다니지 않는 험로입니다, 큰형님.”


은랑의 소매를 조심스럽게 이끄는 사내의 숨소리가 들렸다. 석문진 대나무 숲의 지형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는 젊은 사냥꾼이자 은랑의 충직한 수하, 똘복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거칠었으나 산악 정찰병 특유의 민첩함이 배어 있었다. 똘복은 뇌영의 포위망을 우회하기 위해 폐채석장 배후의 험준한 돌산 절벽으로 길을 잡았다.


은랑은 대나무 지팡이 ‘청풍’을 가볍게 짚으며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 끝에 장착된 백천동(白川銅) 철 촉이 젖은 흙바닥을 딛을 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은랑은 무성보(無聲步)를 전개했다.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에 진기를 집중하여 지면을 딛는 순간의 반발력과 마찰음을 단전으로 흡수하는 보법이었다. 질주하는 그의 신형은 밤안개 속을 흐르는 귀신처럼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폐채석장 초입에 다다르자, 은랑의 미세 청각망에 기이한 왜곡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어어어…….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절벽과 기괴하게 깎여 나간 바위 틈새로 거센 바람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바람은 일정한 결을 그리며 흐르지 않았다. 기괴한 암벽에 부딪힌 공기의 흐름은 수십 개의 조각으로 찢어지며 제멋대로 메아리쳤다.


‘소리의 무덤이군.’


은랑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평소라면 주변 사물에 부딪혀 돌아오는 미세한 음파를 분석해 사방 20보 안의 지형을 하얀 선으로 뇌리에 그려내는 반향정위(反響定位) 심법이 이곳에서는 심각하게 뒤틀렸다.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왼쪽 절벽에 반사되어 뒤편에서 들리는가 하면, 발밑의 작은 돌멩이 구르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기괴한 돌산이 만들어내는 음향적 장애였다.


“으우으…… 으읍!”


그 왜곡된 소음의 폭풍을 뚫고, 은랑의 귀에 낯익은 신음 소리가 걸려들었다.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입이 거친 천으로 틀어막힌 채, 공포에 질려 요동치는 심장박동 소리. 석문진 시장통에서 자신에게 따뜻한 만두를 건네주던 조 할머니의 박동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가난한 민초들 십여 명의 가쁜 숨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들은 폐채석장 벼랑 끝,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밧줄에 묶여 있었다. 발밑은 수십 길 낭떠러지였고, 그 주변에는 물에 젖지 않고 엄청난 굉음을 내는 뇌공탄(雷公彈) 화약 상자들이 촘촘히 깔려 있었다.


“은랑! 숨어 있지만 말고 당장 기어 나와라! 이 장님 놈아!”


절벽 위에서 들려오는 쇳소리 섞인 고함. 뇌영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기괴한 바위 벽에 부딪혀 사방에서 메아리치며 은랑의 귓전을 사정없이 때렸다.


“네놈이 장 단주를 죽이고 사방을 쏘다니며 내 부하들을 사냥하는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삼息(약 9초)을 주겠다! 당장 그 청풍검을 버리고 무릎을 꿇지 않으면, 이 늙은이와 주민들을 화약과 함께 통째로 날려버리겠다!”


뇌영의 손에 들린 횃불이 바람에 타오르는 소리가 불규칙한 주파수로 흔들렸다. 유황 냄새가 바람을 타고 은랑의 코끝을 자극했다. 시간이 없었다. 화약선이 타들어 가기 시작하면 백회혈의 금침이 풀리기도 전에 석문진의 은인들이 몰살당할 터였다.


은랑은 바람 소리가 비틀거리는 바위 틈새로 소리 없이 신형을 밀어 넣었다. 어깨를 낮추고 대기의 흐름을 피부로 읽어내려 했다.


콰아아아!


바로 그 순간, 기괴한 바위 절벽 틈새에서 좁은 관을 통과하듯 강하게 압축된 회오리바람이 은랑의 측면을 강타했다. 바람 소리의 방향을 순간적으로 잘못 읽은 은랑은 몸을 피하려다 뾰족한 바위 벽면에 오른쪽 어깨를 크게 부딪히고 말았다.


퍽!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벌어져 있던 상처가 자극받아 격통이 밀려왔다.


“윽……”


은랑은 신음 소리를 삼키며 바위 벽을 짚었다. 어깨에서 다시 뜨거운 선혈이 흘러내려 삼베옷을 적셨다. 자연적인 바람의 흐름만을 믿고 움직이기에는 이곳의 기류 왜곡이 너무도 심했다. 감각의 혼란 속에서 지체하는 일 초, 일 초가 주민들의 목숨을 갉아먹고 있었다. 극도의 시간적 압박이 그의 심장을 조여왔다.


스으으으.


그때, 은랑의 전신 모공이 송곳에 찔린 듯 곤두섰다. 기류 감지(氣流感知) 능력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는 미세한 기압의 변화를 경고했다.


머리 위 2장 높이의 돌출된 바위 선반 위. 그곳에 기척을 완전히 지운 자객이 숨어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특수 바람총을 사용하는 흑탑의 저격수, 귀면(귀면)이었다. 귀면은 대나무 숲에서 은랑의 머리를 노리고 독침을 쏘아대던 잔혹한 자객이었다.


귀면이 바람총을 입에 대고 숨을 들이쉬는 미세한 폐부의 팽창음이 들렸다. 이윽고 바람총의 좁은 관을 통해 소리 없는 독침이 은랑의 정수리를 향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쉬이익!


침이 날아오는 파공음은 극도로 미약했으나, 기괴한 바위 벽에 부딪혀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소음 탓에 독침의 정확한 궤적을 청각만으로 분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귀로 들리는 소리는 사방에서 동시에 다가오는 환청처럼 은랑의 감각을 현혹했다.


‘소리에 속으면 죽는다. 진짜 소리를 강제로 만들어내야 한다.’


찰나의 순간, 은랑은 지팡이 끝 백천동 철 촉으로 발밑의 작은 자갈돌 하나를 강하게 퉁겨 날렸다.


딱-!


맑고 날카로운 파동음이 계곡의 탁한 백색 소음을 뚫고 수직으로 뻗어 나갔다. 자갈돌은 귀면이 숨어 있는 바위 선반의 밑바닥을 강타했다.


탁! 하고 부딪힌 음파는 왜곡되지 않은 일직선의 메아리가 되어 은랑의 귀로 곧바로 돌아왔다. 낙석 탐지술(落石 探知術)이었다.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소리의 깨끗한 반사파가 귀면이 서 있는 바위 선반의 정확한 높이, 각도, 그리고 그의 발목 위치를 은랑의 머릿속 3차원 지도 위에 선명한 하얀 선으로 그려냈다.


독침이 은랑의 하얀 눈가림 천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은랑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무성보를 폭발시켰다. 발끝이 바위를 차는 순간의 진동을 내력으로 완벽히 상쇄하며, 은랑의 신형은 중력을 거스르듯 귀면이 서 있는 바위 선반 위로 소리 없이 솟구쳐 올랐다.


“……!”


귀면은 자신의 독침이 허공을 가르고, 장님이 기척도 없이 자신의 등 뒤로 나타나자 가면 너머의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은랑의 움직임은 소리보다 빨랐다.


스윽.


지팡이 손잡이 속에서 푸른 빛을 발하는 명검 청풍검(靑風劍)이 소리 없이 뽑혀 나왔다.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조차 삼켜버리는 소리 없는 칼날이 허공을 반원으로 갈랐다.


스사삭.


귀면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칼날은 나뭇잎이 가을바람에 부스럭거리는 듯한 미세한 소리만을 남겼다. 귀면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목에서 붉은 선혈을 뿜으며 바닥으로 쓸쓸히 쓰러졌다.


은랑이 귀면의 사체를 소리 없이 받아안아 바닥에 누이는 순간, 절벽 저편에서 뇌영의 거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시간이 다 됐다! 이 장님 놈이 끝내 기어 나오지 않는구나! 주민들과 함께 화약 더미 속에서 타 죽어라!”


은랑이 무성보 신법으로 소리 없이 허공을 가르며 절벽 위 뇌영의 배후로 다가서는 순간, 뇌영이 횃불을 높이 들어 뇌공탄 화약과 연결된 붉은 도화선에 갖다 대었다. 치이익 하며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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