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을 끊는 날
황토 섞인 칼바람이 철사광산 연무장의 거친 흙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아침 해는 떠올랐으나, 그 붉은 빛은 광부들에게 온기가 아닌 피비린내 나는 절망을 예고할 뿐이었다.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수백 명의 노예 광부들이 연무장 한복판에 짐승처럼 구겨져 모여 있었다. 갈증으로 쩍쩍 갈라진 그들의 입술에서는 마른 피가 흘러내렸고, 먼지 낀 목구멍에서는 쇳소리 섞인 거친 숨결만이 터져 나왔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놈은 그 자리에서 목을 매달 것이다!”
연무장 사방을 둘러싼 흑철교 무사들이 장도를 번뜩이며 광부들을 압박했다. 그 선두에는 민머리에 흉터가 가득한 거구의 사내, 간수장 철사일살(鐵砂一殺)이 서 있었다. 그의 온몸에는 날카로운 강철 가시가 촘촘히 박힌 특제 쇠채찍, 철사편(鐵砂鞭)이 뱀처럼 뽈아 감겨 있었다.
철사일살은 단상 위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화려한 흑색 비단옷을 걸친 소분타주 뇌소룡(雷小龍)이 오만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뇌소룡은 허리에 한철사편(寒鐵蛇鞭)을 찬 채, 갈증으로 쓰러져가는 노예들을 마치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보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인간을 향한 자비 따위는 단 한 푼도 존재하지 않았다.
“곽무진 조장이 사라진 지 하룻밤이 지났다.”
단상 위에서 뇌소룡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내력이 실려 연무장 전체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분타의 정예 무사들이 광산 내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 더러운 노예 구덩이 속에 쥐새끼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지. 배도현 부분타주께서 수원을 차단하셨으니 슬슬 자백할 놈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입을 여는 놈이 없구나.”
뇌소룡이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이자, 철사일살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
“간수장. 본보기를 보여라. 한 놈씩 가죽을 벗기다 보면, 곽무진을 죽인 마두가 누구인지 스스로 불게 될 것이다.”
“존명, 소분타주님.”
철사일살이 흐느적거리며 채찍을 풀었다. 가시 돋친 쇠채찍이 흙바닥을 쓸며 소름 끼치는 금속성을 울렸다. 그의 음산한 안광이 쓰러져가는 광부들의 대열을 훑었다. 그리고 마침내, 갈증으로 쓰러져 바르르 떨고 있던 약골 소년 삼식의 머리 위로 멈춰 섰다.
“네놈이 첫 번째 제물이다.”
“아, 아으…….”
삼식이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사흘간 물을 마시지 못한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철사일살이 잔인하게 웃으며 철사편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쉬이이익ㅡ!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강철 가시가 박힌 채찍이 삼식의 머리를 향해 매섭게 낙하했다. 그대로 맞으면 두개골이 박살 나고 살점이 찢겨 나갈 터였다. 삼식은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찰나, 넝마를 걸친 한 소년의 실루엣이 번개처럼 삼식의 앞을 가로막았다.
석천위였다.
천위는 피하지 않았다. 갈비뼈의 균열과 등 뒤의 상처가 비명을 질렀으나, 가문의 비전인 철련 심법(鐵鍊心法)의 진기를 뼈마디에 집중시켜 신형을 대지 위에 굳건히 고정했다. 그리고 거칠고 두꺼운 회색 삼베 붕대로 꽁꽁 감싸인 자신의 왼팔을 대담하게 뻗었다.
콰아아앙ㅡ!
가시 돋친 철사편이 천위의 왼팔에 정면으로 내리꽂혔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맹렬하게 튀었다. 일반적인 인간의 육체라면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사방으로 비산했어야 할 일격이었다.
그러나 붕대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는 둔탁하고 육중한 바위의 울림이었다.
철사편의 날카로운 강철 가시들이 삼베 붕대를 사정없이 찢어발겼으나, 그 안쪽의 회색 돌 피부에는 단 한 치의 흠집도 내지 못했다. 천위의 왼팔 팔꿈치 아래는 완벽한 돌로 변해 있었다. 고통도, 온기도 느끼지 못하는 화석마공(化石魔功) 제1성의 절대 방패.
천위는 돌로 변한 왼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의 팔을 칭칭 감고 있던 가시 채찍을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이것이 바로 적의 칼날과 채찍을 직접 붙잡아 무력화시키는 변칙 방어 초식, 철편박쇄(鐵鞭縛鎖)였다.
쩌어억!
가시가 돌 손바닥에 짓개어지며 거친 소리가 났으나, 천위의 왼손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오직 묵직한 쇠의 무게감만이 감각 없는 신경 너머로 희미하게 전해질 뿐이었다.
“이, 이놈이……!”
철사일살이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자신의 특제 채찍이 일낱 노예 소년의 맨손에 잡혀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살은 내력을 폭발시키며 채찍을 뒤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기어 나오너라, 쓰레기 놈아!”
그러나 채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위가 돌 왼팔에 완력을 주어 채찍을 제 쪽으로 강하게 잡아끌었다. 화석마공의 가공할 만한 괴력이 쇠사슬을 타고 그대로 전달되었다.
“어, 어억?!”
이류 고수의 극치라 자부하던 철사일살의 거구가 천위의 무지막지한 완력에 이끌려 앞으로 볼품없이 딸려 가기 시작했다. 완력 대결에서 순식간에 참패한 것이다. 당황한 일살은 채찍을 회수하려 변칙적인 초식을 전개했으나, 이미 천위의 돌 손아귀에 꽉 묶인 채찍 사슬은 단 한 박자도 비틀어지지 않았다.
위기를 직감한 철사일살의 안광이 살기로 번뜩였다. 그는 왼손 소매 속으로 내력을 급히 밀어 넣었다.
쉬익!
일살의 소매 끝에서 빛을 반사하지 않는 날카로운 자객 단검이 소리 없이 튀어나왔다. 그는 끌려가는 가속도를 이용해, 천위의 유일한 인간 육체이자 무방비 상태인 오른쪽 어깨를 향해 단검을 힘껏 투척했다.
그 순간, 천위는 오른손으로 품속에 숨겨두었던 녹슨 철곡괭이(녹슨 철곡괭이)를 뽑아 들어 일살의 머리를 찍으려 했다. 그러나 날아드는 단검의 예리한 궤적이 한발 빨랐다.
푸학!
“으윽……!”
날카로운 단검이 천위의 오른쪽 어깨 깊숙이 박혔다. 뜨거운 선혈이 뿜어져 나오며 불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오른팔의 기혈이 뒤틀리며 곡괭이를 휘두르려던 궤적이 허공에서 크게 흐트러졌다. 곡괭이 날은 일살의 머리를 비껴가 허공을 갈랐다.
“하하하! 마두 놈, 결국 오른손은 인간의 몸이구나!”
철사일살이 광소를 터뜨리며 단검의 손잡이를 고쳐 잡고 천위의 목을 베려 육박해왔다.
하지만 천위는 오른쪽 어깨의 고통을 완전히 무시했다. 아버지를 고문실로 이끌고 죽음에 이르게 한 원수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고, 품속의 녹슨 망치가 그의 심장을 차갑게 식혔다. 이성을 잃지 않은 천위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자신의 오른손이 상처 입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절대적인 왼손의 완력으로 적의 목숨줄을 단숨에 끊어야 했다.
천위는 오른손의 곡괭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채찍을 쥐고 있던 돌 왼손에 한층 더 파괴적인 완력을 실어 채찍 사슬을 통째로 잡아당겼.
콰아아아!
“끄악!”
철사일살은 비명을 지르며 천위의 품속으로 완전히 끌려왔다. 천위는 망설임 없이 돌 왼손을 뻗어 일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감각이 없는 돌 손가락이 일살의 목덜미 뼈를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천위는 일살의 거구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 일살은 공중에 매달린 채 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검붉게 죽어갔다. 그의 손발이 천위의 돌 팔을 마구 때렸으나, 천위는 아무런 충격도 느끼지 못했다.
“내 아버지가 흘린 피의 무게다.”
천위의 서늘한 음성이 연무장에 얼어붙은 침묵을 몰고 왔다.
뚝, 콰직!
감각 없는 돌 손가락이 힘의 조절 없이 그대로 일살의 목뼈를 으스러뜨렸다. 척추가 완전히 바스러지는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철사일살의 고개가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며 사지가 힘없이 늘어졌다.
연무장을 가득 채우던 광부들과 사파 무인들 모두가 그 비장하고도 참혹한 광경에 숨을 멈췄다.
천위는 숨이 끊어진 철사일살의 시체를 바닥에 팽개쳤다. 그리고 일살의 손에서 풀려난 특제 쇠채찍, 철편 사슬(鐵鞭 사슬)을 거칠게 거두어 자신의 돌 왼팔에 감아올렸다. 가문의 원수를 처단하고 그의 무기를 자신의 보조 무기로 삼은 장엄한 순간이었다.
천위는 오른쪽 어깨에 박힌 단검을 오른손으로 뽑아 바닥에 던졌다. 붉은 피가 흘러내렸으나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간수장이…… 죽었다!”
“노예 놈이 봉기를 일으켰다! 모두 쳐라!”
사방에서 사파 무인들이 무기를 뽑아 들며 소요가 일어나는 찰나, 단상 위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소분타주 뇌소룡이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아끼던 부하의 죽음과 감히 노예 따위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사실에 극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감히 내 연무장에서 피를 뿌려?”
뇌소룡이 허리에서 뱀의 가죽과 한철로 꼬아 만든 한철사편을 스르릉 뽑아 들었다. 그의 전신에서 이류 고수 극치의 음산하고 파괴적인 내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더러운 돌괴물 놈, 내 직접 네놈의 가죽을 벗겨주마!”
뇌소룡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살기를 뿜어내며, 단상 아래 천위의 머리 위를 향해 맹렬하게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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