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고의 그림자
일살의 손가락 끝이 회색 돌 피부에 닿기 바로 직전, 막사 안의 숨소리마저 얼어붙는 일촉즉발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석천위는 단전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화석마공(化石魔功)의 마성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금니를 깨물었다. 붉은 마기가 왼손 돌 피부의 갈라진 틈새로 비어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공을 드러낸다면 막사에 있는 철두와 삼식은 물론, 무고한 노예 광부들 모두가 폭동 연루자로 몰려 몰살당할 터였다.
‘죽여라. 지금 저놈의 목뼈를 으스러뜨려라.’
머릿속에서 기괴한 마성이 살의를 부추기며 울부짖었다. 천위는 그 악마 같은 속삭임을 억누르며,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정순한 호흡법인 철련 심법(鐵鍊心法)을 운용했다. 평생 대장간의 화독을 견디며 뼈를 단단하게 다져온 가문의 심법이었다. 천위는 이 기운을 극의로 끌어올려 단전의 마기를 뼈 속 깊은 골수(骨髓)로 강제로 밀어 넣고 고정했다.
이른바 천련골경(鐵鍊骨勁)의 응용이었다. 마기가 뼈 안으로 완전히 숨어들자, 회색 돌로 변해버린 그의 왼팔은 그 어떤 내력의 흐름도 감지되지 않는, 그저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버린 괴사(壞死)한 육신처럼 변모했다.
화악.
철사일살의 거칠고 투박한 손가락 끝이 천위의 삼베 붕대 틈새로 드러난 회색 피부에 닿았다. 일살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
일살은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이질적인 질감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인간의 살결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공을 둘러 단단해진 호신강기(護身剛氣)의 느낌도 아니었다. 그저 차갑고, 아무런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 완전히 죽어버린 고목나무 껍질이나 굳은 석회 덩어리 같은 감각이었다.
일살은 손가락 끝에 아주 미세한 사파의 내력을 실어 천위의 팔을 꾹 눌러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반발력도, 내력의 공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위는 그저 숨을 죽인 채, 고통조실(苦痛喪失)의 상태를 유지하며 묵묵히 버텼다. 실제로 그의 왼팔은 팔꿈치 아래로 그 어떤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쳇, 완전히 썩어 문드러진 송장 같군.”
철사일살이 더럽다는 듯 천위의 팔에서 손을 떼며 침을 뱉었다. 그의 안광에는 깊은 혐오감과 방심이 서려 있었다. 이류 고수(二流高手) 극치의 경지에 달해 쇠채찍술을 다루는 일살조차, 천위가 가문의 심법으로 마공의 기운을 완벽히 숨긴 기만책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이다. 일살의 눈에 지금의 석천위는 그저 붕괴 사고 때 바위에 깔려 팔이 완전히 괴사해 버린, 쓸모없는 불구자 노예에 불과했다.
“바위에 깔려 팔뼈가 통째로 으스러지고 살이 죽어버린 모양이군. 내력이 전혀 흐르지 않는 쓰레기 팔이다. 이런 불구자 놈이 어떻게 제3갱도의 대붕괴에서 살아남았는지 기이할 따름이구나.”
일살이 코웃음을 치며 발길질로 천위의 어깨를 툭 찼다. 천위는 억지로 몸을 흔들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철련 심법으로 고정한 갈비뼈의 미세한 균열 부위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흙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간수장님,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천위는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은 가련한 불구자일 뿐입니다.”
가슴을 움켜쥔 채 핏물을 토해내던 철두가 바닥을 기며 애원했다. 일살은 그런 철두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쓸모없는 쓰레기 놈들끼리 의리를 지키는 꼴이라니 눈꼴시렵구나. 석천위, 네놈이 비록 살아 돌아왔으나 팔이 저 모양이니 채굴 할당량을 채우기는 글렀군. 내일 당장 채굴량이 부족하면, 그땐 네놈의 오른팔마저 잘라버릴 터이니 그리 알아라.”
일살은 몸을 돌려 막사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가 휘두르는 철사편이 바닥의 자갈을 긁으며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냈다. 정예 간수들도 그 뒤를 따랐고, 이내 부서진 목조 문 너머로 그들의 횃불 불빛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후우…… 후우……”
막사 안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며, 여기저기서 참았던 거친 호흡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천위는 흙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왼팔의 삼베 붕대는 반쯤 풀려 헤져 있었고, 그 사이로 드러난 회색 돌 피부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촉각도 온기도 없는 왼손을 바라보는 천위의 눈동자에 붉은 마기가 미세하게 명멸했다.
“천위 형님…… 괜찮으십니까?”
철두가 비틀거리며 다가와 천위의 어깨를 붙잡았다. 천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품속에서 손때 묻은 석철심의 녹슨 망치(石鐵心- 쇠망치)를 꺼내 만졌다. 차가운 쇠의 감각이 뇌리로 올라오며 마공으로 인해 붉게 물들어가던 그의 안광을 서서히 검은 빛으로 되돌려놓았다.
천위는 기절해 있는 삼식의 곁으로 다가갔다. 삼식의 뺨은 일살의 손찌검으로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천위는 오른손을 삼식의 가슴에 얹고 가볍게 내력을 불어넣어 기혈을 통하게 했다. 이윽고 삼식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천, 천위 형……?”
“괜찮다. 다 끝났다.”
천위의 목소리는 돌처럼 차갑고 무거웠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책임감만큼은 단단했다. 삼식을 달래어 다시 거적때기 위에 눕힌 천위는 철두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철사일살의 발길질로 인해 철두의 가슴에는 심각한 타박상과 내상이 남아 있었다. 천위는 철련 심법의 정순한 기운을 철두의 경맥으로 흘려보내며 그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고맙다, 철두야. 네가 나서지 않았다면 정체가 탄로 났을 것이다.”
“형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형님의 아버님이신 철심 아저씨는 저를 자식처럼 돌봐주셨던 분입니다. 가문의 원수를 갚으려는 형님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 따위는 아깝지 않습니다.”
철두가 각혈을 닦아내며 씩 웃었다. 비록 거칠고 투박한 광부 소년이었으나, 그의 의리만큼은 그 어떤 명문 정파의 협객보다 굳건했다.
하지만 천위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단전 깊은 곳에서 화석마공의 열독(熱毒)이 미세하게 역류하며 심장이 불타는 듯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살의를 느낄 때마다 마기가 기혈을 타고 뇌의 감정 중추로 솟구쳐 오르는 부작용의 전조였다. 천위는 보리수 염주도, 아란의 침술도 없는 이 지옥 같은 광산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마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에 묵직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때, 막사 구석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위의 날카로운 안광이 즉각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꽂혔. 그곳에는 꾀죄죄하고 왜소한 체구의 광부, 조삼(조삼)이 웅크린 채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조삼은 비열한 눈빛을 번뜩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는 천위가 무너진 제3갱도에서 살아 돌아온 순간부터 줄곧 천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관찰해 온 자였다. 방금 전 철사일살과의 대치 과정에서도, 조삼은 천위의 삼베 붕대 아래로 스치듯 보였던 기괴한 회색 피부를 똑똑히 목격했다.
더욱이 조삼은 천위가 철두의 무릎 위에 손을 얹었을 때 났던 그 이질적이고 무거운 둔탁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놈의 왼팔은 단순한 불구자가 아니다. 무언가 기괴한 비밀이 숨겨져 있어. 흑철교 간부들에게 저 비밀을 밀고한다면…… 어쩌면 이 지옥 같은 광산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는 은화 주머니를 얻을지도 몰라.’
조삼의 탐욕스러운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는 천위와 눈이 마주치자 급히 고개를 숙이며 잠든 척 코를 골았지만, 이미 그의 얄팍한 어깨는 탐욕과 흥분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천위는 조삼의 눈빛에 담긴 음험한 살의와 탐욕을 단번에 간파했다. 가문을 멸망시킨 사파 무인들에 대한 증오만큼이나, 동료를 팔아넘기려는 배신자를 향한 분노가 그의 차가운 돌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다.
‘조삼…… 네놈이 결국 선을 넘으려는구나.’
천위는 내색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 손가락 끝은 이미 지면의 바위를 파고들 듯 단단하게 쥐어져 있었다.
* * *
밤이 깊어지자, 철사광산은 거대한 괴물의 시체처럼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 간수들의 야간 순찰 주기가 바뀌는 교대 시간, 막사 내부의 거친 숨소리들 사이로 조삼이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삼은 주변 노예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고양이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적때기를 걷어내고 일어섰다. 그의 품속에는 뇌진풍의 수련생이자 악랄한 고문 기술을 소유한 곽철(곽철)에게 밀고하여 받아낼 은화 주머니에 대한 망상이 가득 차 있었다. 조삼은 천위의 비밀을 밀고하여 광산의 하급 감시원 자리를 얻거나, 평생 먹고살 재물을 쥐고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스르륵.
조삼의 왜소한 신형이 막사 문틈을 빠져나가 어두운 탄광 통로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지 단 한 박자도 지나지 않아, 흙바닥에 누워 있던 석천위가 소리 없이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기괴할 정도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마성 잠식기(魔性蠶食期)의 징조가 그의 이성을 서서히 잠식하려 했으나, 천위는 품속의 녹슨 망치를 꽉 쥐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곽철에게 정보가 넘어가는 즉시 철두와 삼식, 그리고 대탈출의 기틀이 모두 무너진다. 흔적 없이 저 배신자의 입을 막아야 한다.’
천위는 소리 없이 일어섰다. 그의 왼팔은 삼베 붕대로 단단히 묶여 있었지만, 그 무게는 여전히 육중했다. 천위는 몸의 불균형한 무게를 제어하기 위해 천련골경의 기운을 다리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어둡고 험준한 갱도 내부의 지형을 활용하는 보조 무공, 귀곡종적(鬼谷踪跡)을 가동했다.
슈우욱.
천위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평지를 걷는 대신, 돌 왼손가락 끝의 가공할 악력으로 광산 암벽의 틈새를 소리 없이 움켜쥐며 천장 부근의 어두운 사각지대를 타고 기어갔다. 감각이 없는 돌 손가락 끝이 날카로운 바위 벽에 긁히며 회색 돌 가루가 미세하게 흘러내렸지만, 천위는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은 채 원숭이처럼 신속하고 조용하게 조삼의 뒤를 쫓았다.
저 아래 어두운 통로를 횃불도 없이 기어가고 있는 조삼의 얄팍한 등덜미가 보였다. 조삼은 간수들의 순찰 주기를 꿰뚫고 있는 듯, 교대 시간의 공백을 이용해 간부들의 처소가 밀집된 흑철 성벽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조삼은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초조하게 주변을 살폈으나, 머리 위 십 장 높이의 어두운 암벽 천장에 매달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돌의 마신을 결코 알아채지 못했다. 귀곡종적의 신비로운 신법은 광산 내부의 습한 바람 소리와 천위의 기척을 완벽하게 동화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조삼은 흑철교 간부들의 처소가 있는 성벽 목조 가옥 구역에 도달했다. 그곳은 일반 노예들의 접근이 철저히 금지된 구역이었으며, 발견 즉시 즉형에 처해지는 금기의 장소였다.
조삼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곽철의 방 문턱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곽철의 방 창문 틈새로 희미한 등불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곽철은 뇌진풍의 신임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잔인무도한 수련생으로, 조삼이 가져다줄 밀고 정보에 기꺼이 은화를 내어줄 자였다.
조삼이 곽철의 방 문을 두드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입술이 탐욕스러운 흥분으로 바르르 떨렸다.
“곽, 곽 소협님…… 드릴 말씀이…….”
조삼이 밀고를 위해 입을 여는 바로 그 찰나였다.
위에서부터 거대한 그림자가 소리 없이 낙하했다.
스스슥!
문틀 위의 어두운 처마에 매달려 있던 석천위가 중력을 무시하듯 조삼의 배후로 내려앉았다. 조삼이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천위의 차갑고 무감각한 돌 손바닥이 조삼의 안면을 완벽하게 덮쳐 눌렀.
읍……!
조삼의 비명 소리는 천위의 회색 돌 손바닥 안에서 둔탁한 신음으로 변하며 완전히 짓눌렸다. 인간의 살결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경도와 차가운 냉기가 조삼의 얼굴 뼈를 으스러뜨릴 듯 압박했다. 조삼의 눈동자가 극도의 공포로 뒤집어졌다.
천위는 오른손으로 조삼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외골격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마공의 완력과 천련골경의 지지력만을 이용해 조삼의 왜소한 거구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조삼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주머니 속에서 채굴용으로 훔쳐둔 단단한 날카로운 돌멩이를 꺼내 천위의 왼쪽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쳤.
깡!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무력하게 산산조각 나며 튕겨 나갔다. 천위의 삼베 붕대 아래 숨겨진 돌 피부에는 단 한 줄기의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조삼은 자신이 때린 대상이 인간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석상(石像)임을 깨닫고 절망적인 눈물을 흘렸다.
천위는 단전에서 화석마공의 열독이 역류하여 가슴이 답답해지는 고통을 느꼈다. 살의가 극에 달할 때마다 심장 고동이 무겁게 요동치며 전신의 혈류가 끓어올랐다. 머릿속을 지배하려는 잔인한 마성을 억누르며, 천위는 조삼을 움켜쥔 채 귀곡종적 보법을 펼쳐 어둠이 짙게 깔린 뒤편 폐갱도 깊은 곳으로 신속하게 사라졌다.
문 앞에는 조삼이 떨어뜨린 은화 한 푼만이 흙바닥에 떨어져 뒹굴었을 뿐,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곽철의 방 안쪽에서 얕은 인기척이 들렸다. 방 문이 서서히 열리며, 뱀 같은 눈매를 지닌 곽철이 횃불을 든 채 밖을 내다보았다.
“방금 분명 무슨 소리가 났는데…….”
곽철은 조삼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빈 마당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바닥에 떨어진 은화 한 푼을 발견한 곽철의 안광이 차갑게 번뜩였다. 사라진 밀고자의 흔적을 찾기 위해, 흑철교 처소 주변의 삼엄한 정예 무사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불길한 전조가 황량한 광산의 밤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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