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화석마공
고목도인(枯木道人)의 숨결이 끊어졌다.
사슬에 묶인 채 고사한 나무껍질처럼 변해버린 노인의 육신은, 마지막 진기를 쥐어짜 내 천위의 기혈을 자극한 직후 완벽한 침묵 속으로 침잠했다. 칠흑 같은 귀곡혈굴(貴谷顚窟)의 공동 안에는 오직 천위의 거친 숨소리와, 천장 틈새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 소리만이 불길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뚝. 뚝.
등 뒤의 채찍 상처는 기어코 다시 터져 가죽 적삼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고, 무너진 암반에 부딪힌 갈비뼈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폐부를 찔러댔다. 우측 어깨의 타박상 역시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팔을 까닥이는 것조차 비명이 나올 만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천위는 주저앉지 않았다. 아니, 주저앉을 수 없었다.
밀폐된 동굴 안의 산소는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고, 무너진 흙더미 너머에서 스며 나오는 유독 가스는 그의 뇌리를 끊임없이 마비시키며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누워 개처럼 질식사하느냐, 아니면 괴물이 되어서라도 살아남아 원수의 목을 베느냐.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천위는 짓무른 손끝으로 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앞으로 기어갔다. 고목도인이 숨을 거두기 직전 가리켰던 붉은 광채의 심처, 태고의 비석 안치소(太古의 碑石 安置所)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붉은 이끼가 기괴하게 피어난 바위 틈새를 지나자, 마침내 어둠 속에서 스스로 붉은 안개 같은 마기(魔氣)를 뿜어내고 있는 거대한 돌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웅웅웅.
비석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비석의 표면에는 붉은 황토와 핏빛이 뒤섞인 듯한 기괴한 문자들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그 글자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천위의 머릿속에 환청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원혼이 절규하는 듯한 기괴한 소리, 그리고 뇌리를 찢는 듯한 살의.
“이것이…… 화석마공(化石魔功)인가.”
천위는 떨리는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품속에는 부친 석철심의 유품인 녹슨 망치가 묵직한 무게로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망치의 단단한 감각이 그에게 차가운 이성을 되돌려주었다.
‘나는 죽지 않는다. 뇌진풍의 머리통을 이 망치로 깨부수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천위는 어깨를 감싸고 있던 피 묻은 삼베 붕대를 거칠게 풀어냈다. 그리고 비석 표면에 새겨진 구결 위에 붕대를 대고, 바닥의 붉은 진흙과 자신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를 손가락에 묻혀 다급하게 글자들을 베끼기 시작했다. 바위가 무너져 내리는 이 지옥 같은 구덩이 속에서, 그는 목숨보다 소중한 화석마공 비석 탁본(化石魔功 碑石 拓本)을 완성해 나갔다.
글자 하나하나가 뇌리에 새겨질 때마다 단전이 요동쳤다. 탁본을 품속에 밀어 넣은 천위는 비석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습하고 차가운 동굴의 공기 속에서 천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먼저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기초 외공 심법인 철련 심법(鐵鍊心法)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비록 살상력은 없으나, 평생 대장간의 화독을 견디며 뼈대를 무쇠처럼 단단하게 다져온 정순한 기운이었다. 천위는 이 기운을 통해 체내의 혈류를 안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화석마공의 구결은 정종 무공의 이치를 완벽하게 거스르는 마도(魔道)의 극의였다.
천위가 평소처럼 내력을 정방향으로 소통시키려 하는 순간, 비석에서 흘러나온 붉은 마기가 그의 단전으로 사정없이 침투했다. 정순한 가문의 기운과 탐욕스러운 마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
“컥……!”
천위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전신의 경맥이 뒤틀리고 찢어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가슴뼈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압박감에 천위는 바닥에 쓰러져 온몸을 비틀었다. 단전이 터져 나가고 뇌가 마비되는 주화입마(周畵入魔)의 위기였다. 이대로 가다간 무공을 익히기도 전에 온몸의 기혈이 파열되어 죽을 터였다.
‘정방향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 기혈을…… 역류시켜야 한다!’
천위는 고목도인의 유언과 비석의 첫 구절을 떠올렸다.
[마(魔)를 품고자 한다면 살(肉)을 버려라. 경맥을 거스르고 피를 얼려 돌의 의지를 채워라.]
천위는 부러진 갈비뼈의 고통을 참아내며 다시 꼿꼿이 앉았다. 그리고 단전에 고여 있던 미약한 내력을 강제로 움켜쥐고, 정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기혈을 뒤틀어 역류시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귀곡혈굴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차가운 음기가 천위의 왼팔로 몰려들었다.
스스스스…….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왼팔 팔꿈치 아래의 경맥이 문자 그대로 찢어져 나갔다. 살점이 안쪽에서부터 얼어붙고, 혈관 속의 피가 차가운 돌가루처럼 굳어가는 기괴한 감각이 밀려왔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뼈마디가 산산조각 나고 피부가 굳어 갈라지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처절한 저주였다.
“아아아아악!”
천위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의 왼쪽 팔꿈치 아래의 피부가 서서히 회색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살결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거칠고 단단한 바위의 질감이 살가죽을 대체해 나갔다. 석화(石化)의 진행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그 차가운 돌의 기운은 왼팔을 삼킨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혈의 통로를 타고 왼쪽 어깨와 심장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대로 마기를 방치하면 심장까지 돌로 변해 그 자리에서 즉사할 터였다.
폭주하는 마기가 그의 전신 경맥을 파괴하려 완벽한 우위를 점한 일촉질발의 순간.
‘내 뼈는…… 대장간의 불길 속에서 단련된 무쇠다!’
천위는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품속의 녹슨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주며 가문 비전의 천련골경(鐵鍊骨勁)을 발동했다. 쇳물을 두드리며 뼈의 강도를 극대화했던 가문의 단련법이 그의 골격 내부에서 깨어났다. 천위는 전신의 뼈마디를 쇠사슬처럼 촘촘하게 엮어 고정했다.
단단하게 다져진 그의 뼈대가 방어벽이 되어, 왼팔 어깨 관절 부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전이를 강제로 막아섰다.
콰르르릉!
그의 체내에서 뼈와 돌의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묵직한 금속성 파동이 울려 퍼졌다. 천위는 천련골경의 단단한 골격 장벽으로 폭주하는 마기를 왼팔 팔꿈치 아래 영역에 완전히 가두어 버렸다. 더 이상 어깨 위로 석화가 번지는 것을 물리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
마침내 광폭하던 마기가 잠잠해지고, 동굴 안을 채우던 붉은 광채가 천위의 왼팔 속으로 완전히 흡수되었다.
천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왼팔 팔꿈치 아래는 더 이상 인간의 살결이 아니었다. 거칠고 단단한 회색 돌로 변해 있었으며, 바위 표면처럼 쩍쩍 갈라진 틈새 사이로 희미한 붉은 마기의 공명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천위는 오른손을 뻗어 돌로 변한 왼손을 만져보았다.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차가움도, 따뜻함도, 짓무른 상처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을 잃어버린 대신, 그 어떤 도검도 뚫을 수 없는 불침불가(不侵不可)의 방어력과 일격에 바위를 부술 수 있는 가공할 만한 완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화석마공 제1성(각성)의 경지이자, 그가 치러야 했던 비장한 등가교환의 저주였다.
천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로 변한 왼팔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거워 몸의 균형이 한쪽으로 크게 쏠렸다. 하지만 천련골경의 단단한 뼈대가 그 하중을 굳건히 지탱해 주었다.
천위는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붕괴 암벽 앞으로 다가갔다. 맷돌만 한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 퇴로를 완벽히 차단하고 있는 절망의 장벽.
천위는 심호흡을 하며 돌로 변한 왼주먹을 꽉 쥐었다. 갈라진 돌 피부 틈새로 붉은 마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졌다.
“뇌진풍…… 기다려라.”
쇳가루가 섞인 거친 목소리와 함께, 천위의 돌 주먹이 무너진 암벽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쳐졌다.
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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