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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혈굴의 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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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구구!


제3갱도의 가장 깊은 막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는 지옥의 문이 열리는 포효와도 같았다. 머리 위를 받치고 있던 거대한 암반들이 버티지 못하고 쩍쩍 갈라지며 수없이 많은 낙석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자욱한 흙먼지와 유황 가스가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은 아수라장 속에서, 석천위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삼식아, 피해라!”


천위는 온 힘을 쥐어짜 삼식의 앙상한 몸을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단단한 암벽 틈새로 밀쳐냈다. 그 반동으로 천위의 신형은 뒤로 밀려났고, 그가 디디고 서 있던 바닥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듯 아래로 꺼져 내렸다. 갈라진 대지의 균열 너머, 검붉은 아지랑이가 넘실거리는 어둠 속으로 천위의 몸이 사정없이 굴러 떨어졌다.


“형! 천위 형!”


멀어지는 삼식의 비명 소리가 갱도의 붕괴음에 묻혀 희미해졌다.


암벽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온몸이 부딪히고 긁히는 고통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낮에 간수에게 맞아 찢겨 나간 등 가죽의 채찍 상처가 다시 터져 뜨거운 선혈이 뿜어졌고, 금이 간 늑골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을 찌르는 칼날이 되어 천위의 폐부를 도려냈다.


쿵! 쿠우웅!


얼마나 굴러 떨어졌을까. 천위는 단단하고 차가운 돌바닥 위로 무겁게 추락했다. 등과 옆구리에서 전해지는 극통에 눈앞이 하얗게 멀어졌다. 입안 가득 고인 비린 피를 토해내며 천위는 간신히 눈을 떴다.


하지만 재앙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떨어진 지하 공동(地洞) 역시 붕괴의 여파로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천장 틈새로 집채만 한 암석들이 무서운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깔려 죽을 수는 없다. 아버지를 죽인 그놈들의 목을 베기 전에는 결코……!’


천위는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는 대대로 쇠를 만져온 대장장이 가문의 후예였다. 비록 무공은 배우지 못했으나, 평생을 어두운 대장간에서 불꽃의 흐름을 읽고 바위와 철의 결을 느끼며 자랐다. 천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미세한 변화, 떨어지는 낙석들이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 그리고 지면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한 진동. 그 모든 정보가 천위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지도로 그려졌다.


바위가 떨어진다. 결을 따라 쪼개진 암석의 궤적이 천위의 눈에 보였다. 천위는 부러진 갈비뼈의 고통을 억누르며, 왼쪽으로 몸을 굴렸다.


콰아아앙!


그가 방금 전까지 누워 있던 자리에 맷돌만 한 바위가 박히며 사방으로 돌가루를 뿜어냈다. 천위는 멈추지 않았다. 바위와 바위가 부딪쳐 형성되는 사각지대, 낙석의 궤적이 미치지 않는 좁은 암벽의 틈새를 찾아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바위들이 스쳐 지나갔고, 우측 어깨에 날카로운 돌 파편이 박히며 둔탁한 타박상의 고통이 밀려왔다.


겨우 좁은 바위 틈새에 몸을 웅크린 순간, 그가 떨어졌던 천장의 균열 위로 거대한 암반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콰르르릉! 쾅!


지하 공동 전체가 흔들리는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천위가 내려온 퇴로가 완전히 매몰되었다. 사방이 숨이 막힐 듯한 침묵 속에 잠겼다. 천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너진 암벽 앞으로 기어갔다. 손끝이 짓무르도록 바위를 밀어보려 했으나, 맨손의 완력으로는 수만 근에 달하는 거대한 암반을 단 한 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완벽한 고립이었다. 퇴로는 완전히 차단되었고, 지상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하아…… 하아……”


밀폐된 공간 속에서 산소가 급격히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무너진 바위 틈새로 희미한 유독 가스가 새어 나오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산소 부족으로 인한 기절 직전의 몽롱함 속에서 천위는 가슴을 쥐어짜며 숨을 들이쉬었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느낌에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그때, 천위의 품속에서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다. 아버지가 남겨준 유품, 녹슨 쇠망치였다. 천위는 떨리는 손으로 망치의 자루를 꽉 쥐었다. 거칠고 투박한 나무 자루의 감각이 그의 흐려지던 자아를 강하게 붙잡아 주었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뇌진풍, 그 개 같은 분타주의 목을 아버님의 무덤 앞에 바쳐야 한다.’


천위는 몸을 돌려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가 갇힌 곳은 단순한 지하 동굴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기이한 바람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바람이 좁은 바위 구멍들을 통과할 때마다 마치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이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이이이익, 우우우웅…….


귀신 울음소리가 가득한 피의 구덩이. 이곳이 바로 광부들 사이에서 전설로만 내려오던 금지의 영역, ‘귀곡혈굴(貴谷顚窟)’이었다.


천위는 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앞으로 기어갔다. 머릿속으로 임칠 노인이 흘리듯 말했던 지하 갱도의 구조를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귀곡혈굴은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저주받은 곳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 천위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뒤는 막혔고, 오직 이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어둠의 심처로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바닥에는 정체모를 짐승들의 뼈와 오래전에 죽은 광부들의 유골이 흩어져 있었다. 천위는 늑골의 통증을 참아내며 어둠 속을 헤맸다. 유독 가스 탓에 시야가 흐릿해지고 뇌가 마비되는 듯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바람 소리 너머로 기이한 소리가 천위의 귀에 걸렸다.


스스스스…… 쿨럭, 쿨럭.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살아있는 생명체의 거칠고 메마른 숨소리였다. 마치 고목나무의 껍질이 서로 쓸리는 듯한 기괴하고 건조한 소리. 천위는 본능적으로 품속의 망치를 꺼내 쥐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둠이 한 꺼풀 걷히며, 귀곡혈굴의 가장 깊은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의 풍경은 기괴함의 극치였다.


동굴 벽면에 거대한 한철(寒鐵) 사슬들이 단단히 박혀 있었고, 그 사슬들의 끝에는 한 사내가 묶여 있었다. 아니, 사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머리카락은 한 올도 남지 않고 전신이 깡마른 해골 같았으며, 그의 피부는 고목나무 껍질처럼 회색빛으로 갈라지고 굳어 있었다.


그는 죽어가는 고목나무 그 자체였다. 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노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천위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자, 노인의 고개가 느리게 돌아갔다. 쩍쩍 갈라진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 흐흐…… 새로운 쥐새끼가…… 굴러떨어졌구나.”


노인의 목소리는 쇳가루를 긁는 듯 거칠고 기분 나빴다. 천위는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지?”


“나? 나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된 망령이다. 이 어둠 속에서 육체가 돌로 변해가는 고통을 씹으며 썩어가던 쓰레기지.”


노인은 미친 사람처럼 껄껄 웃기 시작했다. 웃을 때마다 그의 가슴뼈가 삐걱거리는 기괴한 소리가 갱도에 울려 퍼졌다. 천위는 노인의 굳어버린 회색 피부를 보며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노인의 팔다리는 인간의 살결이 아니라, 단단하고 거친 바위의 질감을 띠고 있었다.


노인의 흐릿한 안광이 천위의 품에 쥔 녹슨 망치와 그의 넝마가 된 광부 복장, 그리고 등 뒤의 피 묻은 상처로 향했다.


“대장장이의 자식이로군…… 그리고 흑철교의 사냥개들에게 물어뜯긴 상처라. 네 눈빛에 담긴 그 시커먼 증오…… 내 아주 잘 안다. 복수를 원하는구나, 꼬마야.”


천위는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 내 가문을 멸망시키고 아버지를 고문해 죽인 흑철교의 분타주, 뇌진풍의 목을 벨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것이다.”


“크하하하! 영혼? 영혼 따위는 사파의 마두들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필요한 것은 오직 그들의 목뼈를 일격에 부숴버릴 절대적인 힘뿐이지!”


노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그것은 단전이 파괴되고 죽어가는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마기(魔氣)였다. 노인은 자신을 전대 마교의 고수, 고목도인(枯木道人)이라 소개했다. 과거 화석마공을 수련하다 단전이 파괴되어 이곳에 감금된 채 서서히 돌이 되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시간은 이제 끝났다. 하지만 네놈의 그 불타는 원한은 아깝구나. 흑철교 놈들에게 파멸을 선사할 수만 있다면, 내 기꺼이 네놈에게 길을 열어주지.”


고목도인의 숨소리가 급격히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단전에 남아있던 마지막 생명력이 서서히 꺼져가는 전조였다. 노인은 마지막 이성을 쥐어짜며 천위의 가슴에 뼈만 남은 단단한 손을 얹었다.


“기억해라, 꼬마야…… 돌은 끝이 아니라 껍질일 뿐이다. 화석마공은 무적의 힘을 주지만, 그 대가로 네 육신을 영구히 돌로 바꿀 것이다. 무공을 쓸 때마다 석화는 네 심장을 향해 번져갈 터…… 결국 완전한 석상이 되어 영원한 침묵 속에 갇히는 저주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뇌진풍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내 몸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도 상관없다.”


천위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고목도인은 만족스러운 듯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마지막 진기가 천위의 가슴을 툭 치며 기혈의 흐름을 미세하게 자극했다.


노인의 손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마지막 숨결이 허공으로 흩어지기 직전, 고목도인은 손가락 끝을 들어 동굴 가장 깊은 곳,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벽면을 가리켰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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