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견의 코를 꺾어라
대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휘날리며 사나운 사냥개들의 붉은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이기 시작하자, 아란은 급히 부러진 은침들을 수습하며 천위의 어깨를 부축했다.
“움직여야 해요. 이 오두막은 곧 포위당할 거예요.”
아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천년 한철로 만든 은침을 사용해 석천위의 기혈을 강제로 뚫어내느라 그녀의 내력인 빙심결(氷心訣)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땀방울이 그녀의 단아한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뺨을 적셨다.
천위는 입술을 짓씹으며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다보았다. 역류성 전신 석화(逆流性 全身 石化)의 저주는 여전히 그의 양다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발목부터 무릎 위까지 허옇게 갈라진 회색 돌 껍질이 피부를 뒤덮고 있었고, 손끝으로 두드려보아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억지로 일어서려 하자 뼛속에서 삐걱거리는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몸이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으윽……!”
“무리하지 마세요! 아직 혈류가 완전히 돌지 않았어요.”
아란이 다급히 천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버텼다. 가녀린 소녀의 몸으로 돌처럼 무거워진 사내의 체중을 지탱하는 것은 무리였으나, 그녀는 이빨을 악물고 천위를 침상에 다시 눕혔다. 소녀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박하 향기와 따뜻한 체온이 천위의 차가운 뺨에 닿았다.
평생 대장간의 매캐한 석탄 냄새와 광산의 비정한 채찍질 속에서만 살아온 천위였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쥐어짜는 이 낯선 소녀의 온기는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복수의 불꽃마저 미세하게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컹! 컹! 컹!
오두막 외곽의 대나무 숲을 뒤흔드는 살기 어린 짖음 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흑철교 철사분타의 추격견들이 뿜어내는 피비린내 나는 기운이 문틈을 타고 안방까지 밀려들었다. 뇌소룡을 처단한 대가로 뇌진풍이 보낸 최정예 추격대, 흑철삼살(黑鐵三殺)의 추격이 기어이 이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형님! 형님, 안에 계십니까!”
그때, 오두막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넝마를 걸친 깡마른 사내가 들이닥쳤다. 개털이 잔뜩 묻은 옷을 입고 특유의 비린내를 풍기는 사내, 바로 사냥개 사육사 출신의 덕구였다. 광산 탈출 때 천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던 그는 흑철교의 사냥개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덕구냐? 어떻게 이곳을…….”
“형님의 냄새를 쫓는 사냥개들의 움직임을 보고 뒤를 밟았습니다! 흑철삼살의 막내, 철삼삼살(鐵三三殺)이 직접 살수견 세 마리를 끌고 오두막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놈의 추적술은 귀신같아서 숲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덕구의 얼굴은 공포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천위를 향한 안광만큼은 굳건했다.
“다리가 이 모양이니 도망칠 수는 없다.”
천위가 쇳소리가 섞인 거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품속에는 부친 석철심의 유품인 녹슨 망치가 단단한 감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망치를 꽉 쥐자, 마공의 독기로 흐려지려던 뇌리가 서늘하게 깨어났다.
‘도망치지 못한다면, 이곳을 놈들의 무덤으로 만든다.’
천위는 침상 옆에 놓여 있던 자신의 유일한 무기, 녹슨 철곡괭이를 오른손으로 꽉 쥐었다. 비록 자루가 낡고 날이 무뎌졌으나, 그의 오른팔에는 여전히 대장장이의 완력이 살아 있었다.
“덕구, 네놈이 사냥개들의 코를 마비시킬 수 있겠느냐?”
천위의 서늘한 질문에 덕구는 침을 꿀꺽 삼키며 품속에서 투박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광산에서 훔쳐 나온 특제 수면 향료 가루가 있습니다. 바람의 방향만 맞으면 사냥개들의 후각을 완벽히 마비시키고 잠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삼삼살 놈은 무시무시한 도끼의 달인입니다. 이류 하급의 무력을 지닌 놈이라 제 힘으론 어쩔 수 없습니다.”
“사냥개만 묶어라. 놈의 목은 내가 딴다.”
천위는 아란을 바라보았다. 아란은 그의 단단한 눈빛을 보고는 말없이 한철 은침을 고쳐 쥐었다.
“저는 방 안에서 대기하며 기습을 돕겠어요. 제 침술은 혈도를 마비시키는 데도 쓰이니까요.”
“안 된다. 너는 뒤로 물러서라. 내 몸이 돌이라 해도 계집의 뒤에 숨지는 않는다.”
천위는 왼팔을 들어 올렸다. 팔꿈치 아래로 허옇게 갈라진 돌 피부가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빛났다. 고통도, 촉각도 존재하지 않는 차가운 회색 바위의 팔. 천위는 왼손으로 오두막 문기둥을 꽉 쥐었다. 손가락 끝이 단단한 목재를 파고들며 뚜두둑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쾅! 쾅! 쾅!
오두막의 낡은 목조 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밖에서 거구의 사내가 내지르는 거친 포효가 대나무 숲을 갈라놓았다.
“석천위 이 돌괴물 놈! 소분타주님의 머리를 깨부수고 이 깊은 대나무 구덩이에 숨어 있으면 살 줄 알았느냐! 당장 기어나와 목을 바쳐라!”
철삼삼살이었다. 양손에 묵직한 도끼를 쥔 채 사나운 살수견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놈의 기세는 숲의 밤공기를 얼려버릴 듯 흉포했다.
컹! 컹! 컹!
살수견들이 문틈으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덕구, 지금이다!”
천위의 호령과 동시에 덕구가 오두막 창문을 미세하게 열고 가죽 주머니를 털어냈다. 바람을 타고 흘러나간 미세한 회색 가루가 사냥개들의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깽! 깽!
피 냄새를 쫓던 살수견 두 마리가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고 비틀거리더니, 이내 대나무 바닥 위로 스르륵 쓰러져 잠들었다. 사냥개 사육사로서 덕구가 지닌 천재적인 재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 개새끼들이 갑자기 왜 이래? 끄응…… 기습이냐!”
사냥개들이 쓰러지자 철삼삼살은 단번에 오두막 내부의 기척을 눈치챘다. 놈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전신의 기운을 양팔에 집중시켰다. 놈이 구사하는 파암도끼술(破岩斧術)의 묵직한 강기가 도끼날 위에 검붉게 타올랐다.
“다 부숴버려라!”
콰아아앙!
거대한 강철 도끼가 오두막의 목조 문을 종이장처럼 찢어발기며 안으로 난입했다. 문짝 파편과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하는 와중에도, 철삼삼살은 침상 위에 웅크리고 있는 석천위의 신형을 단번에 포착했다.
“거기 있었구나, 쓰레기 노예 놈!”
철삼삼살이 허공으로 도약하며 양손으로 도끼를 내리찍었다. 좁은 방안 전체를 압박하는 가공할 무게감이 천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천위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다리가 굳어 피할 수 없었다. 그는 가문 심법인 철련 심법(鐵鍊心法)의 내력을 전신 뼈마디에 집중시켜 신형을 침상 위에 무쇠처럼 고정했다. 그리고 붕대가 반쯤 풀려 회색 돌 피부가 드러난 자신의 왼팔을 대담하게 쳐들었다. 석벽화신(石壁化身)의 초식이었다.
“죽어라!”
끼이이이익ㅡ 깡!
철삼삼살의 거대한 도끼날이 천위의 돌 왼팔 팔뚝에 정면으로 내리꽂혔다.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사정없이 튀었다. 일반적인 인간의 뼈와 살이라면 단번에 반 토막이 났어야 할 일격이었다.
그러나 도끼날이 파고든 곳은 바위보다 단단한 화석마공의 결정체였다.
“뭐, 뭐라고……?”
철삼삼살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파암 도끼가 소년의 살가죽을 뚫기는커녕, 단단한 돌벽에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도끼날 끝에서 흘러나온 반탄력이 역으로 철삼삼살의 양팔을 타격하며 그의 손목 관절을 저리게 만들었다.
석천위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왼손의 촉각과 고통이 완전히 거세된 마공의 대가는, 역설적으로 그 어떤 치명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냉철함을 선사했다. 천위는 차가운 눈빛으로 철삼삼살의 일그러진 얼굴을 응시했다.
“내 차례다.”
천위는 도끼날이 박힌 왼팔을 강하게 비틀어 적의 무기를 고정했다. 철삼삼살이 도끼를 빼내려 필사적으로 힘을 썼으나, 돌의 손아귀는 단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 찰나, 천위의 오른손이 허공을 갈랐. 대장간의 단조질로 단련된 그의 오른팔이 쥐고 있던 녹슨 철곡괭이가 횃불 빛을 받으며 날카롭게 빛났다.
쉬이익!
“끄, 끄악……!”
철삼삼살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이미 무기가 묶인 상태에서 천위의 가공할 완력을 피할 길은 없었다.
푸욱!
날카로운 곡괭이 날 끝이 철삼삼살의 이마 한복판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붉은 선혈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놈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초점을 잃고 허옇게 뒤집혔다.
툭.
철삼삼살의 거구의 시체가 곡괭이에 박힌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천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곡괭이를 뽑아냈다. 그의 왼팔 돌 피부 위에는 도끼날이 긁고 간 가느다란 균열이 하얗게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그 틈새로 미세한 회색 돌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고통은 없었으나, 무리하게 내력을 끌어올린 탓에 심장 부근이 다시 한번 얼어붙는 듯한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형님! 해내셨군요!”
덕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가왔다. 아란 역시 다급히 천위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왼팔 균열 부위를 살폈다.
“팔에 균열이 생겼어요…… 무리하게 방어하느라 마공의 한계가 온 거예요. 당장 상처를 봉합해야 해요.”
아란이 눈물을 글썽이며 천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나 승리의 안도는 찰나에 불과했다.
바스락.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던 철삼삼살의 오른손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놈은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쥐어짜 자신의 넓은 소매 안쪽을 더듬었다.
“크, 큭…… 뇌진풍 분타주님께서…… 네놈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피를 토하는 저주 어린 속삭임과 함께, 놈의 소매 속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
푸드득!
그것은 흑철교에서 극비 연락용으로 사용하는 길들여진 전령매(傳令鷹)였다. 다리에 붉은 표식이 묶인 매가 오두막의 부서진 문틈을 뚫고 칠흑 같은 밤하늘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아앗! 전령매다! 막아야 합니다!”
덕구가 급히 손을 뻗었으나, 매는 이미 대나무 숲의 울창한 가지 사이를 통과해 구름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오두막 내부에는 끔찍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전령매가 날아갔다는 것은, 이 은밀한 대나무 숲 오두막의 위치와 석천위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뇌진풍의 본진에 고스란히 밀고되었음을 의미했다.
사냥개의 코는 꺾었으나, 더 거대한 사냥꾼의 그물이 그들의 머리 위로 좁혀오고 있었다. 아란의 비밀 치료실은 이제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아닌,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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