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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마신과 소녀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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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소룡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연무장의 흙바닥을 적시자, 공포에 질린 무사들의 장도가 천위를 향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소, 소분타주님이 죽었다……!”


누군가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침묵을 깨트렸다. 연무장을 가득 메운 흑철교 무인들의 얼굴이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떨려왔다. 그들이 자랑하던 사파의 젊은 천재, 한철사편을 휘두르며 노예들을 벌레처럼 유린하던 뇌소룡이 단 한 번의 격타에 두개골이 부서진 채 진흙탕에 처박혀 있었다. 그의 양손은 화석마공의 열독에 녹아내려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석천위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의 단전에서는 화석마공의 탁한 마기가 해일처럼 요동치며 살육의 광기를 충동질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온통 붉은 피와 파괴의 충동으로 가득 차올랐다. 눈앞의 모든 생명체를 찢어발기고 싶다는 충동이 그의 이성을 갉아먹었다.


‘으윽…… 안 된다. 아직 뇌진풍의 목을 베지 못했다.’


천위는 가슴 안쪽 적삼 깊숙이 품어둔 묵직한 쇳덩어리를 손으로 꽉 쥐었다. 아버지가 평생 쇠를 두드릴 때 사용했던 석철심의 녹슨 망치였다. 차갑고 투박한 망치의 감각이 가슴의 상처를 통해 전해지자, 천위의 붉게 물들어가던 안광이 서서히 이성을 되찾으며 가라앉았다.


가슴 전면의 깊은 채찍 열상에서 붉은 선혈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넝마를 적셨고, 오른쪽 어깨의 단검 자상 역시 뼛속까지 시린 통증을 유발했다. 하지만 천위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가문의 비전인 철련 심법의 정순한 진기를 뼈마디에 집중시켜 출혈을 강제로 억제했다. 뼈와 근육을 사슬처럼 단단하게 엮어 고정하는 천련골경의 힘이었다.


천위는 돌로 변한 왼손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여전히 그 어떤 촉각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회색 바위의 질감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이 저주받은 팔이야말로, 저 날렵한 천재의 목을 벨 유일한 무기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철두와 칠성을 바라보았다. 공포에 질린 무사들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지금이다! 모두 대수로로 뛰어들어라!”


천위의 호령이 연무장에 내리꽂히자, 철두와 칠성이 정신을 차렸다.


“와아아아!”


광부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연무장 외곽의 목책을 부수고 비밀 우회 수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천위는 남은 힘을 쥐어짜 무인들의 진격을 가로막았다. 돌 왼손에 감긴 철편 사슬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적들을 쳐내고, 대지로 강하게 진각을 디뎌 적들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광부들이 무사히 비밀 수로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천위는 자신 역시 황토현 외곽의 대나무 숲으로 몸을 피했다. 수많은 대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서자마자, 그의 몸에 한계가 찾아왔다.


마공을 과도하게 시전한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했다. 단전의 통제되지 않는 마기가 경맥을 무시하고 하반신으로 폭주하여 분출되기 시작했다. 역류성 전신 석화였다.


“으윽……! 하아……!”


발목부터 시작된 기괴한 회색빛 돌 껍질이 정강이를 타고 허벅지까지 급격히 번져갔다. 다리의 근육과 혈도가 순식간에 단단한 화강암처럼 굳어지며 일체의 감각이 사라졌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전신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하중이 척추를 짓눌렀다. 마침내 무릎 관절마저 굳어버리자, 천위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대나무 숲의 차가운 흙바닥으로 쓰러졌다.


쿵!


육중한 돌덩어리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정막한 숲에 울렸다. 가슴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대나무 잎사귀들을 붉게 적셨다. 심장 고동 소리가 무겁게 쿵, 쿵, 울렸다. 폐부가 단단한 돌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완전히 석상이 되어 차가운 흙 속에서 썩어갈 것인가. 가문의 원수를 갚지도 못하고, 괴물이 된 채로 죽어갈 것인가.’


절망과 혹독한 한기가 그의 영혼을 서서히 좀먹어 들어갔다. 시야가 흐려지고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려 했다.


그때였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의 틈새를 뚫고, 은은하고 정갈한 약초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사각, 사각.


대나무 잎사귀를 밟는 가볍고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천위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붉은 마기로 얼룩진 시야 너머로, 단아한 청색 적삼을 입은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맑고 깊은 눈망울과 차분한 단발머리, 가녀린 풍모를 지닌 소녀였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약초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아란이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아앗!”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소년을 발견한 아란이 경악하며 다급히 약초 바구니를 내려놓고 달려왔다. 그녀가 천위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다급히 그의 손목을 잡았다. 맥을 짚으려던 아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럴 수가…… 맥박이 거의 뛰지 않아. 게다가 경맥이…… 경맥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막혀 있잖아? 어떻게 인간의 몸이 이럴 수 있지?”


아란은 천위의 몸이 일반적인 부상이나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것은 인체의 혈도와 경맥을 파괴하며 육체를 돌로 바꾸는 금단의 마공이 초래한 이상 상태였다. 그녀는 다급히 품속에서 일반 은침을 꺼내 천위의 어깨 혈도에 자침하려 했다.


챙그랑!


하지만 놀랍게도, 은침은 천위의 회색빛 피부에 닿자마자 바위에 부딪힌 것처럼 퉁겨 나가며 허무하게 부러져 버렸다. 이미 피부의 겉면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탓이었다.


“침이 들어가지 않아…… 돌처럼 굳어버렸어.”


아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대로 두면 사흘 내로 심장까지 완전히 굳어 영원한 석상이 될 터였다. 죽음의 저주가 소년의 마지막 생명선을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아란의 맑은 눈동자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없었다.


‘의원으로서 죽어가는 목숨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할아버지께서 환자를 가려 받지 말라 하셨다.’


그녀는 결연한 눈빛으로 품안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대나무 통을 꺼냈다. 그 안에는 전대 의성이자 조부인 사공운에게 물려받은 천년 한철로 만든 아란의 은침이 들어 있었다. 일반적인 도검보다 단단하여 굳어버린 돌 피부도 뚫을 수 있는 신비로운 침구였다.


아란은 침통에서 가늘고 정교한 한철 은침을 꺼내고, 자신이 직접 북부의 약초들을 조합해 만든 석화 억제 침액을 침끝에 조심스럽게 묻혔다. 은침 끝에서 푸르스름한 약액이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녀는 천위의 굳어버린 왼쪽 어깨와 부드러운 가슴 피부가 만나는 비장한 경계선을 손가락 끝으로 짚었다. 아직 완전히 돌로 변하지 않은, 미세하게 고동치는 경계 혈도였다.


“조금 아플 거예요. 하지만 견뎌내야 살 수 있어요.”


아란이 나직하게 속삭이며, 천년 한철 은침을 천위의 가슴 기경팔맥 요혈을 향해 정확하고 정교하게 찔러 넣었다.


푸욱!


“으으으윽……!”


천위의 목구멍에서 쇳소리가 섞인 처절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뼛속을 송곳으로 찌르고 뒤트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전신을 강타했다. 돌로 변해 감각을 잃었던 부위마저 침액의 강렬한 자극에 요동치며 뼈마디가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천위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란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침을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녀는 자신의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정순한 호흡법인 빙심결의 내력을 은침을 통해 천위의 막힌 경맥 속으로 흘려보냈다. 차갑고 맑은 한기의 내력이 화석마공의 사악하고 뜨거운 열독을 억누르며 요동치는 기혈을 강제로 조율하기 시작했다.


침끝에 묻은 석화 억제 침액이 굳어 가던 어깨 혈도를 강제로 뚫고 들어가며 혈류를 소통시켰다.


화아아아악!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그 어떤 촉각도, 온기도 느끼지 못했던 천위의 차가운 회색 돌 왼팔의 갈라진 틈새 사이로, 희미한 붉은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죽어 있던 돌 팔 내부의 경맥이 다시 숨을 쉬며 미세한 기운이 꿈틀거렸다. 천위의 가슴 위에 얹어진 아란의 작고 따뜻한 손길의 온기가, 돌 피부의 경계를 넘어 천위의 심장 깊은 곳까지 선명하게 전해졌다.


“흡……! 하아아아!”


천위는 막혔던 숨을 크게 몰아쉬며 눈을 부릅떴다. 정지하려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붉게 물들었던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본래의 검은 빛을 되찾았다.


눈앞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 자신을 안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이 있었다. 평생 차가운 쇠와 돌만을 만지며 고독하게 살아왔던 소년의 마음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타인의 따뜻한 온기가 눈물겹도록 애틋하게 스며들었다. 대나무 숲 오두막의 고요함 속에서, 두 사람의 운명적인 동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바스락, 바스락!


대나무 숲의 삼엄한 정막을 깨뜨리며, 멀지 않은 곳에서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와 함께 사나운 사냥개들의 음산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뇌소룡의 즉사에 분노한 뇌진풍이 보낸 추격대와 사냥개들이 마침내 이 비밀스러운 숲속까지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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