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광산의 어둠 속에서
석탄가루와 유황 냄새가 뒤섞인 탁한 공기가 허파를 찌를 때마다 쿨럭이는 기침이 터져 나왔다.
북부의 매서운 칼바람조차 범접하지 못하는 지하 수백 장(丈) 아래의 세계. 이곳 철사광산(鐵砂鑛山)은 산 채로 들어오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어스름한 횃불 빛만이 바위 벽에 매달려 흔들리는 어둠 속에서, 괭이질 소리와 채찍 소리, 그리고 억눌린 신음만이 갱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깡마른 체구의 소년, 석천위(石天威)는 땀과 석탄재로 범벅이 된 이마를 거친 소매로 훔쳐냈다. 그의 손에 쥔 것은 자루가 다 닳아빠진 낡은 철곡괭이였다. 곡괭이 끝이 단단한 철사광석(鐵砂鑛石)에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파공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깡, 까앙!
울림은 뼈를 타고 고스란히 뇌리로 전해졌다. 열일곱의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노역이었으나, 천위는 곡괭이를 쥔 손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의 골격은 대대로 쇠를 만져온 대장장이 가문인 석씨 가문의 핏줄답게 남달리 통뼈였으나, 굶주림과 매질 앞에서는 그저 한 명의 유약한 범인(凡人)에 불과했다.
그의 품속, 누더기 적삼 가장 깊은 곳에는 차가운 쇳덩이 하나가 살결을 누르고 있었다.
석철심의 녹슨 망치.
북부 최고의 장인이자 그의 친부였던 석철심(石鐵心)이 평생 달구어진 쇠를 두드릴 때 쓰던 가보였다. 가문이 멸망하던 날 밤, 흑철교 철사분타(黑鐵敎 鐵砂分舵)의 마두들이 대장간을 습격해 불을 지르고 가솔들을 사륙했을 때 천위가 목숨을 걸고 품에 안고 나온 유일한 흔적이었다.
'아버지…….'
천위의 안광이 어둠 속에서 푸르게 가라앉았다.
흑철교주 사도천이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해 영석을 제련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아버지는 대장장이의 도리를 지키며 그 사악한 요구를 끝까지 거절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가문은 하루아침에 멸문당했고, 아버지는 이곳 철사광산의 지하 고문실에서 모진 고문 끝에 숨을 거두었다. 살아남은 천위는 개처럼 목줄이 채여 이 어두운 구덩이 속으로 던져졌다.
원한은 뼛속 깊이 사무쳐 매일 밤 그의 심장을 불태웠지만, 지금의 그는 아무런 힘도 없는 노예일 뿐이었다. 기껏해야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던 기초 외공 심법인 철련 심법(鐵鍊心法)의 호흡을 고르며 몸을 다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철련 심법은 대장간의 뜨거운 화독을 견디고 뼈를 단단하게 다지는 기초 공법일 뿐, 적의 목을 벨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으윽……!”
천위의 바로 옆자리에서 무거운 광석 바구니를 짊어지고 가던 약골 소년 삼식(삼식)이 바닥에 쓰러졌다. 삼식의 나이 겨우 열두 살. 가혹한 노역을 견디지 못하고 다리가 풀린 삼식이 넘어지면서 바구니에 담겨 있던 철사광석들이 흙바닥으로 요란하게 쏟아져 내렸다.
데구르르.
광석이 구르는 소리는 고요한 갱도 안에서 불길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던 사냥개를 깨웠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엄살을 피워?”
거친 목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가죽 갑옷을 걸친 흑철교의 하급 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강철 가시가 박힌 철사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간수의 눈에는 노예들의 목숨 따위는 한낱 소모품에 불과했다. 채찍이 공기를 가르며 맹렬하게 삼식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쉬이익!
그대로 맞으면 열두 살 아이의 가죽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날 터였다. 삼식은 공포에 질려 두 눈을 감았다.
타악!
그러나 살을 찢는 비명 대신 둔탁한 마찰음이 울렸다.
삼식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는 넝마를 걸친 천위가 굳건히 버티고 서 있었다. 천위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삼식을 등 뒤로 감싸 안았고, 예리한 가시 채찍은 천위의 널찍한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으윽……!”
천위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채찍이 등 가죽을 찢어발기며 붉은 선혈이 넝마 너머로 배어 나왔다. 살을 에는 듯한 극통이 전신을 지배했지만, 천위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삼켰다. 그의 눈빛은 횃불 불빛 아래에서 늑대처럼 번뜩였다.
간수는 뜻밖의 반항에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 벌레만도 못한 노예 새끼가 어디서 감히 장난질이냐? 꿇어라!”
간수가 군화 신은 발로 천위의 가슴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천위의 신형이 차가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간수는 천위의 가슴을 짓누르며 굴복을 강요했다. 가슴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천위의 품속에서 아버지가 남긴 녹슨 망치의 단단한 감각이 느껴졌다. 오른손 끝이 망치 자루를 향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 비열한 간수의 목구멍에 망치를 박아 넣고 가죽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살의가 단전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안 된다. 지금은 아니다.'
천위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살기를 억눌렀다. 지금 반항해 보았자 내공도 없는 육신으로는 간수의 칼날에 개죽음을 당할 뿐이었다. 삼식과 다른 광부들까지 몰살당할 터였다.
천위는 머리를 바닥에 처박으며 철련 심법(鐵鍊心法)의 호흡을 내면으로 운용했다. 기운을 뼈마디로 보내어 장기 손상을 최소화하도록 몸을 웅크렸다. 등 뒤의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렸지만, 그의 안광은 고요하고 차갑게 식어갔다.
“잘못…… 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쇳소리가 섞인 묵직한 목소리가 바닥에서 기어 나왔다. 간수는 천위의 굴종에 만족한 듯 비열하게 킥킥거렸다.
“반골 기질이 있는 줄 알았더니, 결국 개새끼로군.”
간수는 가죽 장화를 천위의 얼굴 옆 바닥에 침과 함께 뱉어내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묵직한 목조 곤봉을 치켜들었다.
퍽! 퍼억!
무자비한 몽둥이질이 천위의 옆구리와 늑골을 강타했다. 우드득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갈비뼈에 미세한 균열이 가는 고통이 뇌리를 때렸다. 천위는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리며 그 모든 충격을 철련 심법의 강골로 버텨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삼식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바르르 떨 뿐이었다.
“오늘 밤, 이 두 놈은 가장 깊은 제3갱도 막장으로 보내라. 내일 아침까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산 채로 묻어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간수의 서슬 푸른 명령과 함께, 다른 경비병들이 다가와 만신창이가 된 천위와 삼식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광산의 가장 깊고 어두운 구역, 붕괴 위험이 너무 높아 사형수들조차 접근을 꺼리는 제3갱도의 막장이었다.
차가운 지하수가 발목까지 차오르고, 천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모래가 흘러내리는 불길한 공간.
삼식은 울먹이며 천위의 상처 입은 등을 쳐다보았다.
“형…… 나 때문에…… 죄송해요. 나 때문에 형이 죽게 생겼어요.”
천위는 짓물러진 입술을 닦아내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품속에서 아버지가 남긴 녹슨 망치를 꺼내어 잠시 어루만졌다. 망치에 새겨진 가문의 문양이 횃불 조각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울지 마라, 삼식아. 우리는 살아서 이 지옥을 나갈 것이다.”
천위의 목소리에는 범인(凡人)의 한계를 넘어선 비장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비록 등 가죽이 찢어지고 갈비뼈가 부러져 숨을 쉴 때마다 극통이 밀려왔지만, 그의 영혼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어둠 속에서 그의 복수심은 더욱 예리하게 벼려지고 있었다.
천위는 다시 곡괭이를 쥐고 차가운 철사광석 암반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피로 물들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대지 깊은 곳에서부터 고막을 찢는 듯한 기괴한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낙석의 소리가 아니었다. 광산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 요동치고 있었고, 천장에서 주먹만 한 바위들이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형! 동굴이 무너져요!”
삼식의 비명과 함께 제3갱도의 거대한 암반 지대가 무참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굉음 속에서 먼지 폭풍이 시야를 가렸고, 천위의 바로 눈앞에 있던 단단한 암벽이 거대한 수박처럼 쩍 갈라졌다.
쩍, 쩌적!
갈라진 틈새 너머로, 한 번도 세상에 드러난 적 없던 태고의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깊은 균열 속에서 기괴하고 음산한 귀신 울음소리 같은 바람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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