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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인동의 화염 소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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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매서운 칼바람은 험준한 절벽 틈새를 후벼 파며 기괴한 울음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는 대지를 삼킬 듯 거칠었으나, 빽빽한 잡목림과 덩굴로 입구가 가려진 천연 동굴 ‘혈인동(血人洞)’ 안쪽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동굴 내부는 눅눅한 흙비린내와 썩어가는 이끼 냄새, 그리고 사방의 바위 틈새에서 스며 나오는 차가운 지하수의 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후우…… 후우…….”


동굴 깊은 곳, 어둠 속에서 짐승의 신음 같은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형패도는 마비되어 가는 왼팔을 겨우 움직여 가슴팍의 백호가죽 포대기를 풀었다. 그의 거구는 이미 진흙과 핏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붉은 망나니 포는 갈가리 찢겨 누더기처럼 변해 있었다. 포대기 안쪽, 침모 박씨 부인이 솜을 두껍게 넣어 지어준 방한모를 쓴 아기 임해운이 기적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 차가운 빗물과 매운 연기 때문에 아기의 여린 뺨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으나, 다행히 미세한 맥박은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패도는 오른손의 귀두도를 바닥에 내려놓고, 떨리는 왼손 손가락 끝으로 아기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거칠고 굳은살 박인 손길은 평생 사람의 목만을 베어 온 비정한 살인귀의 것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조심스러운 아비의 손길과 다르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긁어내는 듯한 나직한 목소리가 동굴의 침묵을 깨뜨렸다. 그것은 아기를 향한 약속이자, 자신을 향한 마지막 경고였다.


패도는 아기를 동굴 구석, 사냥꾼들이 남겨둔 마른 짚단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아기가 누운 자리 위에 자신의 찢어진 도포 자락을 덮어 한기를 가려준 후, 그는 천천히 벽면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뼈를 깎는 듯한 지독한 격통이 몰려왔다.


제갈운이 쏜 관천시 강철 화살은 그의 등 뒤 경맥 깊숙이, 등뼈 바로 옆에 박혀 있었다. 화살촉에 발린 치명적인 칠색사독(七色蛇毒)은 이미 상처 주변의 세포를 검붉게 괴사시키며 단전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독기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오한이 몰려왔고, 왼팔의 감각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독기 침투 임계점이 눈앞에 닥친 상태였다.


패도는 심호흡을 하며 단전의 진기를 끌어올렸다. 내공을 통해 체내의 독기를 밀어내고 화살촉을 밖으로 배출하려 한 것이다.


‘끄응……!’


그러나 단전에서 뜨거운 양기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등 뒤에 박힌 칠색사독이 그 열기와 반응하여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극양의 진기가 독기와 부딪치자, 오히려 독기가 경맥을 산처럼 녹여버리며 심장을 향해 폭발적으로 역류했다.


“커하학――!”


패도는 입을 틀어막았으나, 손가락 틈새로 검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내공을 이용한 치료는 완벽한 실패였다. 제갈운의 독은 무인이 내력을 운용할 때마다 그 힘을 먹고 자라 경맥을 파괴하는 가혹한 올가미였다. 내공 방출을 통한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심장이 먼저 녹아내릴 터였다.


패도의 눈동자가 독기로 인해 붉게 충혈되었다. 그는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허리춤에서 은침 및 지혈용 도구를 꺼냈다. 송민이 건네준 비상의 침이었다. 패도는 왼손 끝으로 가느다란 은침 세 개를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팍 주변, 심장으로 통하는 세 개의 핵심 혈도를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찔러 넣었다.


푸욱, 푸욱.


은침이 살을 뚫고 들어가자, 단전의 진기가 차단되며 요동치던 독기의 흐름이 상처 부위 주변에 굳건히 가두어졌다. 경맥 고정을 통해 심장으로 향하는 길목을 물리적으로 봉인한 것이다. 가슴을 찌르는 격통이 일었으나 패도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었다.


패도는 왼손을 등 뒤로 돌려 상처 부위에 박힌 관천시 화살의 검은 철제 깃을 움켜쥐었다. 마비 독이 퍼져 손가락의 감각이 무뎌져 있었기에, 그는 손가락 뼈마디가 하얗게 바래도록 강한 악력을 쥐어짜야 했다.


우드득, 쩌억.


화살촉의 갈고리가 등뼈와 근육 사이에 단단히 걸려 있었다. 패도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물었다. 아기가 깰까 봐, 혹은 밖의 추격대에게 기척이 들통날까 봐 비명 한 자락조차 허용되지 않는 가혹한 사투였다.


“으으으음――!”


패도가 왼손에 폭발적인 외공의 괴력을 실어 화살을 단숨에 앞으로 잡아당겼다.


찌지직! 푹!


살점이 뜯겨 나가고 혈관이 터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갈고리 모양의 화살촉이 등뼈를 긁으며 강제로 뽑혀 나오자, 패도의 거구가 활처럼 팽팽하게 꺾였다. 그의 이빨 사이로 흘러내린 피가 허벅지를 붉게 적셨다. 바닥에 떨어진 강철 화살촉 끝에는 검붉게 썩은 살점과 독혈이 묻어 있었다.


상처가 열리자마자 뿜어져 나오는 독혈은 멈추지 않았다. 패도는 주저하지 않고 옆에 놓아둔 우화헌 삼화주 호리병을 낚아챘다. 이빨로 마개를 뽑아 던진 후, 오십 도에 달하는 독한 밀주를 벌어진 상처 구멍 위로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촤아아아악――!


“……!!”


상처 부위에 독주가 닿는 순간, 패도의 눈앞이 하얗게 번쩍였다. 살이 타들어 가고 뼈가 녹는 듯한 가혹한 작열통이 전신을 덮쳤다. 온몸의 근육이 미친 듯이 경련했고, 이마에는 터질 듯한 핏대가 솟구쳤다. 패도는 짚단 위의 아기를 바라보며 목구멍 안쪽으로 솟구치는 비명을 억지로 삼켜냈다. 그의 턱관절이 으스러질 듯한 소리를 냈다.


지혈이 급선무였다. 패도는 왼손 손가락 끝에 내력을 실어 자신의 찢어진 등 상처 주변의 주요 혈도 세 곳을 강하게 타격했다. 혈도 봉인 타격술이었다. 혈류의 흐름이 급격히 느려지며 솟구치던 피가 끈적하게 굳어갔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상처의 면적이 너무 넓고 독기로 인해 혈관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결국 마지막 수단을 써야 했다. 소작(燒灼).


패도는 동굴 바닥에 널려 있는 마른 나뭇가지와 짚단을 모아 불을 지폈다. 귀두도의 무거운 등날을 바위에 거칠게 긁어 불꽃을 일으키자, 마른 지푸라기에 불길이 옮겨붙으며 작은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흔들리는 불꽃이 동굴 벽면에 패도의 거대한 그림자를 괴물처럼 길게 늘어뜨렸다.


패도는 귀두도의 넓고 두꺼운 등칼날 면을 모닥불의 붉은 불길 속에 집어넣었다.


화아아아악――.


불길이 칼날을 감싸 안으며, 뇌패의 도끼 충격으로 실금 균열이 가 있던 귀두도의 철판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칼날 중앙에 퍼진 균열이 불빛을 받아 붉은 상흔처럼 기괴하게 도드라졌다. 이윽고 등칼날 면이 붉게 달아올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동굴 내부의 한기가 무색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패도의 얼굴을 덮쳤다.


패도는 귀두도의 칼자루를 왼손으로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 뜨겁게 달아오른 붉은 칼날을 자신의 등 뒤 상처를 향해 천천히 가져갔다.


그의 두 눈은 오직 짚단 위에서 쌕쌕거리며 잠든 아기 임해운만을 향해 있었다. 이 아이를 살려 강남성으로 데려가야만, 자신이 저지른 평생의 살업과 은인 임회남을 향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었다. 그 신념 하나가 패도의 정신을 강철처럼 붙잡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붉게 달아오른 무쇠 칼날이 패도의 찢어진 등 상처에 닿는 순간,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폭포처럼 뿜어져 나왔.


“윽……! 으으으읍――!”


매캐한 살 타는 냄새와 누린내가 순식간에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살점이 타들어가고 혈관이 눌어붙는 가혹한 고통이 패도의 뇌수를 정면으로 때렸다. 그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며 광기로 가득 차올랐다. 패도는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왼팔 팔뚝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살가죽이 찢어지고 자신의 피가 입안을 채웠으나, 그는 귀두도를 등 뒤 상처에 더 강하게 밀착시켰다.


치이익! 치익!


뼈가 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상처 부위의 혈관들이 완전히 타들어 가며 마침내 출혈이 강제로 멈췄다. 패도는 달구어진 귀두도를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묵직한 철검이 돌바닥에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패도의 전신은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숨소리는 끊어질 듯 가늘어져 있었다. 등 근육과 신경이 완전히 타버려, 그의 왼쪽 등덜미와 어깨 주변의 감각은 영구적으로 소실되었다. 전신의 기혈 조화 역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속죄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제물로 바친 가혹한 대가였다.


하얀 연기가 동굴 천장으로 느리게 피어오르며 입구 쪽으로 흘러나갔다.


패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기가 누워 있는 짚단 옆으로 기어갔다. 아기는 여전히 미세한 호흡을 유지한 채 무사했다. 패도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독기와 오한으로 인해 얼굴 근육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몸은 이제 무기를 정상적으로 휘두르기 힘든 최악의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동굴 밖의 빗소리 사이로 불길한 소리가 섞여 들기 시작했다.


컹! 컹! 으르릉――!


대지를 적시는 폭우 소리를 뚫고, 들개들의 거친 짖음과 기괴한 으르렁거림이 혈인동 입구 방향에서 메아리쳤다. 동굴 안에서 흘러나간 살 타는 매캐한 냄새와 미세한 피 냄새를 맡은 맹강의 사냥개 무리였다.


패도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동굴 입구의 어둠을 향해 서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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