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의 비수, 제갈운의 철궁
관평의 시신이 차가운 성문 돌바닥에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는 폭우 속에서도 형패도의 심장을 무겁게 내리쳤다. 평생 사람의 목을 베며 피비린내 속에 살아온 망나니였으나, 자신을 살려두기 위해 스스로 목을 그은 늙은 무관의 최후는 패도의 어깨 위에 태산보다 무거운 부채감을 얹어놓았다.
"형패도…… 임 대장군님의 마지막 핏줄을…… 반드시 살려내게."
유언처럼 남겨진 그 목소리가 빗물에 씻겨 내리는 성문 너머로 흩어졌다. 패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슬퍼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열린 성문 너머로 펼쳐진 황도 외곽의 어두운 평원, 거칠게 몰아치는 밤바람이 패도의 피 묻은 붉은 망나니 포를 세차게 흔들었다.
패도는 가슴팍을 감싼 백호가죽 포대기를 왼팔로 더 단단히 여몄다. 그 안에는 솜을 둔 방한모를 깊게 눌러쓴 아기 임해운이 폭우의 한기 속에서도 기적처럼 숨을 죽인 채 패도의 심장 고동에 의지하고 있었다.
오른손목의 경맥은 이미 파열되어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고, 왼쪽 어깨는 매화랑의 독단검에 당한 상처로 인해 차가운 마비 독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단전의 진기를 한계까지 쥐어짜 낸 결과, 패도의 신체는 본래 무력의 절반조차 내기 힘든 내력 소모 단계에 돌입해 있었다. 오른손에 쥔 귀두도의 칼날 중앙에는 뇌패의 쌍철도끼와 격돌하며 생긴 미세한 실금 균열이 핏빛을 머금은 채 위태롭게 뻗어 있었다.
질주해야 했다. 평원을 가로질러 어둠이 짙게 깔린 북악산 자락의 숲으로 들어가야만 금위군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터벅, 터벅, 파아앗!
패도가 진흙바닥을 박차고 평원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외손으로 아기를 안은 영아 호송 페널티는 그의 신법을 극도로 제약했으나, 삶을 향한 집념은 그의 거구를 번개처럼 움직이게 만들었다.
바로 그 순간, 패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평생 수천 번의 참수를 집행하며 원혼들의 살기에 노출되었던 그의 살기 감지안(殺氣感知眼)이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기괴한 파공음을 포착했다.
퉁――!
그것은 활시위가 울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사찰의 무쇠 종을 통째로 때리는 듯한, 대지를 뒤흔드는 둔탁하고 웅장한 공명이었다. 백 보 밖, 황도 동문 성벽 위 누각에서 뿜어져 나온 파멸의 소리였다.
"철시(鐵矢)다!"
성벽 위 횃불의 붉은 광기 아래, 검은 가죽 옷을 입은 금위군 신궁 철시가 이백 근 장력의 거대한 쇠활을 거두고 있었다. 그가 날린 관천시(貫天矢) 강철 화살이 폭우를 쩍 갈라놓으며 패도의 등 뒤를 향해 짓쳐 들어왔다.
쉬이이이익!
공기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날아오는 강철 화살의 궤적은 정확히 패도의 척추 중앙을 노리고 있었다. 패도는 달리는 와중에도 몸을 급격히 비틀었다. 오른손의 부러진 귀두도를 등 뒤로 가로지르며 넓은 칼날 면을 방패 삼아 화살을 받아냈다.
깡――!
벼락이 치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관천시의 무시무시한 관통력이 귀두도의 칼날 표면을 때리자, 이미 균열이 가 있던 칼날 중앙의 실금이 한 치 더 깊어지며 패도의 오른팔 전체에 뼈를 으스러뜨릴 듯한 진동이 전해졌다. 오른손목 경맥에서 다시 한번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끄으윽!"
패도가 진흙바닥을 구르며 비틀거렸다. 그러나 쉴 틈은 없었다. 성벽 위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서서히 일어섰다.
은빛 전포를 휘날리며 차가운 철가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 사내, 금위군 통령 제갈운이었다. 그의 손에는 북방의 흑철을 녹여 만든 거대한 제갈운의 검은 쇠활(철궁)이 쥐어져 있었다. 제갈운이 직접 내력을 실어 시위를 당기자, 철궁 주변의 빗방울들이 증발하며 하얀 김을 뿜어냈다.
"형패도, 대역죄인의 최후를 맞이해라."
제갈운의 서늘한 목소리가 평원을 가로질러 패도의 귀에 꽂혔다. 제갈운이 시위를 놓는 순간, 건곤진기(乾坤眞氣)가 실린 두 번째 강철 화살이 대기를 불태우며 날아왔다.
화살의 궤적을 읽은 패도의 동공이 극도로 수축했다.
‘피할 수 없다.’
제갈운이 쏜 화살의 종착지는 패도의 옆구리, 정확히는 그가 왼팔로 소중히 안고 있는 아기 임해운의 심장이었다. 패도가 신법을 펼쳐 몸을 피하는 순간, 화살이 만드는 가공할 도풍(刀風)만으로도 아기의 약한 천문이 바스러질 터였다. 부러진 귀두도로 정면으로 막아서기에는 칼날이 완전히 파손되어 아기를 찌를 위험이 있었다.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패도는 질주하던 신형을 강제로 멈추고,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켜 자신의 넓은 등판을 화살의 궤적 앞으로 내밀었다. 아기를 자신의 가슴팍 안쪽으로 완벽히 품어 안고, 오직 육신만으로 제갈운의 일격을 받아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푹――!
둔탁하고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평원에 울려 퍼졌다.
제갈운의 철궁에서 발사된 강철 화살이 패도의 붉은 망나니 포를 찢고, 그의 단단한 등 근육을 관통하여 척추 바로 옆 경맥 깊숙이 박혔다. 화살촉이 뼈에 맞부딪치며 우드득하는 기괴한 소리가 패도의 몸 안쪽에서 메아리쳤다.
"커하학!"
패도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등의 상처를 통해 제갈운이 화살촉에 바른 치명적인 칠색사독(七色蛇毒)이 주입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살상용 독이 아니었다. 중독자가 내력을 운용할 때마다 독기가 경맥을 얼려 파괴하는 시한부 극독이었다. 독기가 퍼지는 순간, 패도의 전신에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오한이 몰려왔다.
"대형! 정신 차리십시오!"
평원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피난 마부 노씨 노인이 무쇠 보강 가마를 연결한 준마 청풍을 몰며 패도를 향해 울부짖었다.
성벽 위에서 신궁 철시가 후속 화살들을 장전하며 가마의 바퀴를 노려 조준했다. 가마가 주저앉으면 탈출은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패도는 이빨을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 피가 턱을 타고 아기의 방한모 위로 떨어졌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왼손으로 아기를 움켜쥔 채, 오른손의 귀두도를 가볍게 회전시켰다.
쉬이이이익!
도기 장벽(刀氣障壁).
패도가 남은 진기를 강제로 쥐어짜 내어 칼날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검붉은 도풍의 장벽이 가마 전방에 펼쳐지며 날아오던 철시의 화살들을 비스듬히 튕겨냈다. 부러진 칼날면이 비명을 지르며 불꽃을 뿜었다.
"가거라! 낙엽 늪지대로!"
패도는 가마 안으로 아기를 던져 넣듯 싣고 자신도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등의 상처를 타고 퍼진 칠색사독이 그의 단전을 얼려버렸다. 기혈이 거꾸로 흐르며 다리의 힘이 풀렸고, 패도의 거구는 진흙바닥으로 허망하게 굴러떨어졌다.
두구두구두구!
평원 너머 어둠 속에서 제갈운이 이끄는 금위군 정예 기병 부대의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흔들며 좁혀오기 시작했다. 핏자국을 따라 사냥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평원을 가득 채웠다.
패도는 진흙 속에서 부러진 귀두도를 지팡이 삼아 다시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가 독기로 인해 붉게 충혈된 채 어둠 속의 북악산 자락을 응시했다. 기동력 무덤인 낙엽 늪지대로 저들을 유인해야만 이 지옥 같은 포위망을 뚫고 아기를 살릴 수 있었다.
패도는 검은 피를 다시 한번 토해내며, 가마의 밧줄을 움켜쥐고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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