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 동문, 거인의 도끼
빗물이 붉은 망나니 포를 타고 흘러내려 진흙바닥을 적셨다. 시체 더미의 비린내와 매캐한 유황 연기가 씻겨 내려간 자리에는, 오직 쇠가죽처럼 질긴 빗소리와 살갗을 찢는 황도의 밤바람만이 가득했다.
형패도는 달렸다. 가슴팍에 단단히 묶인 백호가죽 포대기 안에서 가냘픈 온기가 전해졌다. 솜을 둔 방한모 틈새로 아기 임해운의 미세한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패도의 거친 심장은 기괴한 박동으로 요동쳤다.
왼쪽 어깨는 이미 매화랑의 독단검에 당한 마비 독이 퍼져 돌처럼 굳어 가고 있었다. 기혈이 막혀 왼팔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아기를 안은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오직 오른손 하나로만 삼십 근의 귀두도를 휘둘러야 한다는 극단적인 제약을 의미했다. 전성기 무력의 육할밖에 남지 않은 육신이었으나, 패도의 눈빛만큼은 폭우 속에서도 푸르게 타올랐다.
그의 눈앞에 마침내 황도 탈출의 마지막 관문인 황도 동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십 장 높이의 거대한 무쇠 성문. 그 단단한 성문은 이미 무거운 쇳소리를 내며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성문 앞에는 겹겹이 배치된 대형 무쇠 방패를 든 정예 이류 무관들이 철갑 방패진을 구축한 채 길목을 빈틈없이 차단하고 있었다. 횃불의 붉은 불빛이 빗줄기 속에서 위태롭게 일렁였다.
그리고 그 방패진의 중심에, 산만 한 거구가 버티고 서 있었다.
구 척에 달하는 거대한 기골, 비에 젖어 사방으로 뻗친 불타는 듯한 붉은 수염. 그가 바로 동문의 수문장, 뇌패였다. 그의 양손에는 각각 무게가 사십 근에 달하는 기괴하고 거대한 무쇠 쌍도끼가 쥐여 있었다. 도끼날은 평범한 인간의 몸통만 했고, 자루는 백련무쇠로 만들어져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풍겼다.
“크하하하! 결국 기어 나왔구나, 형패도!”
뇌패가 광포한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쌍철도끼를 서로 맞부딪쳤다. 쩡! 하는 가공할 금속음이 폭우 소리를 뚫고 동문 광장에 메아리쳤다.
“임무남 그 나약한 놈의 밀고가 진짜였군. 왼쪽 어깨를 쓰지 못하는 외팔이 신세에, 가슴팍에는 핏덩이까지 매달고 있다니! 황실 제1망나니의 명성이 아깝구나!”
뇌패의 눈빛에 탐욕스러운 살기가 서렸다. 승상 조경신이 내건 현상금 십만 냥과 출세의 가도가 그의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패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분노와 개똥이의 처절한 희생에 대한 부채감이 그의 이빨을 서늘하게 맞물리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저 붉은 수염의 대가리를 쪼개버리고 싶었으나, 패도는 억지로 기혈을 가라앉히며 명경지수 심법을 전개했다. 분노에 휩쓸려 무기를 크게 휘두르는 순간, 가슴의 아기가 가장 먼저 죽을 터였다. 마음을 맑은 거울처럼 유지해야만 적의 빈틈이 보였다.
쿠구구궁!
동문의 쇠사슬이 감기며 성문이 닫히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 뒈져라, 역적 놈아!”
뇌패가 포효하며 대지를 박찼다. 구 척의 거구가 믿기 힘든 속도로 폭우를 뚫고 쇄도했다. 그가 양손에 쥔 쌍철도끼가 지면을 긁으며 붉은 불꽃을 튀겼다. 수라파쇄부의 광포한 도끼질이 패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대지 전체를 쪼개버릴 듯한 가공할 위력이었다.
패도는 피하지 않았다. 참수인의 보법을 시전하며 몸의 무게중심을 극단적으로 낮추고 전진했다. 왼손으로 아기의 포대기를 감싸 안은 채, 오른손 하나로 귀두도를 들어 올렸다.
‘막아야 한다.’
단전의 남은 진기를 오른팔 경맥으로 쥐어짜 내어 칼날 표면에 은밀히 밀착시켰다.
도기 응축 참(刀氣凝縮).
투박하던 귀두도 칼날이 은은한 무쇠 빛 도기를 뿜어내며 서늘하게 빛났다. 이윽고 뇌패의 거대한 도끼날과 패도의 귀두도가 정면으로 격돌했다.
콰아아앙!
벼락이 치는 듯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빗물이 비산했다. 무시무시한 물리적 충격이 패도의 오른손 손목을 타고 어깨뼈까지 그대로 전달되었다. 우드득, 하는 비명과 함께 오른손 손목 경맥이 찢어지는 듯한 격통이 일었다. 등 뒤의 소작했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며 검붉은 피가 도포를 적셨다.
“크윽!”
패도는 뇌패의 무지막지한 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세 걸음 밀려났다. 그의 군화가 진흙바닥에 깊은 도랑을 파헤쳤다.
뇌패는 패도가 밀려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포악한 눈동자가 패도의 가슴팍에 감긴 백호가죽 포대기를 향했다. 비열한 미소가 그의 붉은 수염 사이로 번졌다.
“아기를 지키느라 몸이 굳었구나! 그렇다면 이 핏덩이부터 가루로 만들어 주마!”
뇌패가 왼손의 도끼를 수평으로 휘둘러 정확히 패도의 가슴팍, 아기 해운의 머리가 있는 곳을 겨냥해 들어왔다.
가장 최악의 궤적이었다. 패도는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물러서는 순간 도끼날의 회전 반경에 아기가 쓸려나갈 터였다. 그렇다고 오른손의 귀두도로 정면으로 맞부딪치기에는, 아까의 충격으로 오른팔 경맥의 진기가 뒤틀려 제 실력을 내기 힘들었다.
패도의 뇌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명경지수 심법의 맑은 거울 속에서 뇌패의 도끼 자루가 움직이는 궤적이 자로 잰 듯 선명하게 떠올랐.
‘힘으로 맞서면 칼이 부러지거나 아기가 다친다. 흘려보내야 한다.’
패도는 오른손의 귀두도를 비스듬히 세워 도끼날의 옆면을 쳐내듯 미끄러뜨렸다. 쇠와 쇠가 쓸리는 날카로운 비명이 빗소리를 찢었다. 패도는 도끼의 강맹한 힘을 정면으로 받지 않고 옆으로 흘려보내며, 그 반동을 이용해 신형을 오른쪽으로 회전시켰다.
동시에 마비되어 가던 왼쪽 어깨의 몸뚱이로 뇌패의 측면을 강하게 들이받으며, 오른발로 뇌패의 오른손 도끼 자루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팍!
“커흑!”
자신의 괴력에 이기지 못하고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던 뇌패가 패도의 변칙적인 반격에 중심을 잃고 옆으로 비틀거렸다. 철벽 같던 그의 진형에 찰나의 빈틈이 생긴 순간이었다.
패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귀두도를 고쳐 쥐며 정면 참격을 가하려 했다. 그러나 뇌패의 두꺼운 중갑 어깨 보호대에 가로막혀 칼날이 미끄러지며 튕겨 나왔다. 무리하게 진기를 쥐어짜 낸 대가로 단전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며, 패도의 입술 사이로 한 움큼의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등의 상처에서 독기가 심장으로 한 걸음 더 전진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쩡――!
귀두도의 묵직한 칼날에서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패도가 시선을 내리자, 폭우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실금 균열이 귀두도의 넓은 칼날 중앙부에서부터 서서히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중병기 충격 임계치를 넘어선 파손의 전조였다. 사부 형철이 물려준 평생의 분신이자 죄업의 상징인 칼날이, 뇌패의 무지막지한 쌍도끼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 것이다.
“크하하! 네 놈의 칼도 이제 한계로구나!”
뇌패가 비틀거리던 몸을 바로잡으며 다시 쌍도끼를 치켜들었다.
그 너머로 동문의 무쇠 성문은 이제 한 자 남짓한 틈만을 남겨둔 채 거의 완전히 닫혀가고 있었고, 성문 수비대원들은 성문을 완전히 걸어 잠그기 위해 굵은 쇠사슬을 필사적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 문이 완전히 닫히면, 아기 해운의 운명도, 패도의 속죄도 이 차가운 황도의 돌바닥 위에 영원히 묻히게 될 터였다. 압도적인 시간적 제한과 절망감이 패도의 숨통을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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