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객잔, 어둠 속의 습격
우화헌 객잔의 이층 구석방을 채운 공기는 순식간에 납처럼 무거워졌다. 창틀을 타고 스며들던 축축한 빗소리가 거짓말처럼 멎은 찰나, 형패도의 온몸에 돋은 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평생 참수대 위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아온 사내만이 느낄 수 있는 본능적인 살기였다.
“송 의원, 불을 끄게.”
패도의 낮고 깔깔한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송민은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으로 등잔불을 입으로 불어 껐다. 방 안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구석에서 아기 해운을 품에 안고 있던 아향이 숨을 죽였다. 패도는 상의를 탈의한 채, 등 뒤에 꽂힌 은침들을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근육을 비틀어 억지로 고정했다. 송민이 시술한 삼공침법의 온기가 아직 맥박을 타고 흐르고 있었으나, 등의 독화살 상처는 이미 차갑게 굳어가는 통증을 내뿜고 있었다.
스스스…….
말울음소리에 이어 들려온 것은 목조 건물의 바닥을 타고 흐르는 기이한 진동이었다. 물이나 기름 같은 액체가 빠르게 바닥을 적시는 축축한 소리. 그리고 이내 코를 찌르는 독한 기름 냄새가 이층 바닥 틈새를 타고 올라왔다. 황실 밀탐국이 우화헌의 위치를 기어이 찾아내고, 살수들을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화르륵!
찰나의 침묵을 깨고 객잔 일층에서부터 폭발적인 불길이 치솟았다. 마른 목재가 타들어 가는 비명 소리와 함께 붉은 화염이 이층 바닥을 뚫고 솟구쳤다. 매캐한 연기가 순식간에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기 해운이 매운 연기에 기침을 터뜨리려 하자, 패도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아향, 아기를 이리 주게.”
패도는 아향의 품에서 해운을 빼앗기듯 건네받았다. 그리고 침모 박씨 부인이 밤새 지어준 솜을 둔 방한모를 아기의 머리에 단단히 씌우고, 백호가죽 포대기로 아기의 가냘픈 몸을 자신의 가슴팍에 빈틈없이 동여맸다. 왼손은 오직 아기의 머리와 등줄기를 감싸 안는 방패가 되었고, 오른손만이 삼십 근의 묵직한 귀두도를 쥘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되었다. 영아 호송의 가혹한 페널티가 그의 온몸을 구속했다.
쿠구구궁!
객잔의 서까래가 불길에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층 방의 퇴로는 이미 화염 장벽으로 막혀 있었다. 패도는 등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등의 상처에서 칠색사독이 요동치며 전신에 오한이 일었으나, 그는 이빨을 악물고 대지를 박찼다.
와장창!
패도가 거구의 몸으로 나무 창틀을 통째로 부수며 객잔 밖 밤안개 속으로 뛰어내렸다. 뜨거운 열기 뒤로 차가운 밤비가 얼굴을 때렸다.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가슴의 아기가 다치지 않도록 몸을 웅크린 패도가 진흙바닥에 무겁게 착지했다. 둔탁한 신음이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 순간, 밤안개와 불길이 뒤섞인 어둠 속에서 서늘한 쇳소리가 울렸다.
스사삭!
바람을 가르는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수십 발의 푸르스름한 독침이 패도의 안면과 가슴을 향해 폭포처럼 쏟아졌다. 맹풍루의 독단검과 암기들이었다. 패도는 오른손의 귀두도를 급격히 회전시켰다.
쉬이이익!
귀살 제3참: 원혼의 춤(怨魂舞).
묵직하고 넓은 등칼날이 패도의 전방에서 검붉은 도풍의 장벽을 형성했다. 팅! 팅! 티팅! 강철 침들이 귀두도의 칼날면에 부딪쳐 불꽃을 튀기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도풍의 여파로 자욱한 밤안개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갈라진 안개 사이로, 화려한 비단 기녀 옷을 입은 여인이 기괴한 자태로 솟구쳐 올랐다. 목덜미에 독특한 붉은 흉터가 선명한 여인, 맹풍루의 자객 매화랑이었다. 그녀는 품에 안고 있던 기방 비파의 현을 퉁기는 척하며, 비파 밑바닥에서 가늘고 정교한 비파검을 소리 없이 뽑아내어 패도의 목덜미를 찔러왔.
“대역죄인 형패도, 그 목을 두고 가거라!”
매화랑의 비파검은 공기를 찢지 않는 무음의 궤적을 그리며 짓쳐 들어왔다. 패도는 왼손으로 아기를 감싸 안은 채,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신체를 급격히 회전시켰다.
선풍 선회(旋風旋回).
거구의 신체가 팽이처럼 회전하며 가슴의 아기를 원심력 안쪽의 안전지대로 피신시켰다. 동시에 오른손의 귀두도를 수평으로 비스듬히 쳐올려 매화랑의 찌르기 궤적을 걷어냈다. 쩡!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매화랑의 비파검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매화랑은 일류 자객다웠다. 그녀는 반동을 이용해 공중에서 신형을 꺾으며, 패도의 왼쪽 어깨 사각지대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왼손이 묶인 패도로서는 방어가 극도로 취약한 방향이었다. 매화랑의 비파검 끝이 패도의 왼쪽 어깨 죽지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선혈이 뿜어지며 송민이 지혈해 둔 상처가 다시 터졌다.
“흐읍!”
패도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오른손 귀두도의 무거운 등칼날로 매화랑의 검신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콰앙! 하는 무거운 타격음과 함께 매화랑의 비파검이 휘어지며 그녀의 신형이 뒤로 대여섯 걸음 밀려났다. 매화랑의 눈에 경악의 빛이 스쳤다. 한 손이 묶인 채 등의 독화살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사내라고는 믿기 힘든 가공할 파괴력이었다.
“이 미치광이 망나니가 기어이 죽으려 드는구나!”
매화랑이 분노하여 비파를 허공으로 던졌다. 비파가 깨어지며 그 안에서 푸르스름한 칠색사독이 발린 맹풍루의 독단검 세 자루가 패도의 가슴에 안긴 아기의 머리맡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왔. 아기의 솜을 둔 방한모 끝깃이 바람에 날렸다.
패도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검붉은 살기로 가득 찼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가슴의 아기가 다칠 터였다. 패도는 자신의 거구와 단단한 어깨를 방패 삼아 전방을 가로막았다. 푹! 하는 비정한 소리와 함께 매화랑이 던진 독단검 한 자루가 패도의 왼쪽 어깨 아래쪽 살집에 깊숙이 박혔다. 뜨거운 불길보다 더 가혹한 극독의 마비가 그의 경맥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패도는 고통을 분노의 포효로 승화시키며 오른손의 귀두도를 양손으로 쥐듯 허공을 향해 크게 쳐들었다. 단전의 진기를 오른손 끝에 쥐어짜 내어 칼날 표면에 은밀한 적색 도기를 응축시켰다.
쿠콰콰광!
패도가 내리친 귀두도의 거대한 도풍이 무너져 내리던 우화헌 객잔의 정면 벽과 대들보를 통째로 쪼개버렸다. 불타는 목재 파편들과 거대한 먼지 폭풍이 매화랑의 시야를 완벽히 가렸다. 매화랑은 패도의 광포한 도세에 겁을 먹고 급히 신형을 날려 어둠 속으로 퇴각했다.
패도는 어깨에 박힌 독단검을 이빨을 악물고 뽑아내 진흙바닥에 던졌다.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내렸다. 가슴 안쪽의 해운은 다행히 백호가죽 포대기와 방한모 덕분에 불똥 하나 맞지 않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우화헌 객잔이 완전히 무너지며 뿜어낸 거대한 불길이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그 붉은 화염의 빛 아래로, 사방의 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우며 다가오는 수백 개의 횃불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닥, 타다닥!
철갑을 두른 말발굽 소리와 함께, 금위군 정예 수색대와 사냥개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좁은 골목길 사방을 촘촘하게 메우기 시작했다. 피할 곳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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