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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감옥의 침묵과 탈출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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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의 철문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사방의 빛이 일시에 차단되었다.


질척이고 차가운 오수가 이 미터에 육박하는 형패도의 거구를 집어삼켰다. 악취를 풍기는 탁한 물이 무릎을 넘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평생 처형장의 피를 씻어내던 하수관로였다. 머리 위 참수대 바닥에서 흘러내린 가축과 인간의 썩은 피, 그리고 오물이 뒤섞인 진흙탕이 패도의 온몸을 적셨다.


패도는 추락하는 찰나에도 왼팔을 가슴 안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붉은 삼베 도포자락이 아기 해운의 온몸을 겹겹이 감쌌다. 빗물과 오수에 젖은 천이 아기의 가냘픈 피부에 닿자, 미세한 떨림이 패도의 가슴팍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기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본능적인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패도가 풍기는 지독한 살기에 질식한 탓인지 그저 가늘게 숨을 쉴 뿐이었다.


쿵! 쿵! 쿵!


머리 위 석판 너머로 금위군 정예병들의 다급한 군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쇠사슬이 부딪치는 소리와 사냥개들의 사나운 짖음이 좁은 하수관로의 석벽을 타고 기괴하게 공명했다.


“지하 하수관을 차단하라! 놈은 아기를 안고 멀리 가지 못했다!”


추살조장 맹강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하수구 틈새로 흘러들었다. 금위군의 수색망이 지하로 좁혀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패도는 오른손으로 삼십 근의 귀두도를 거꾸로 쥐었다. 무겁고 넓은 칼날이 하수구 바닥의 오물에 쓸리며 스산한 쇳소리를 냈다. 지금 칼을 휘둘렀다간 그 파동과 소음이 즉각 위쪽의 추격대에게 노출될 터였다. 게다가 왼쪽 옆구리의 창상이 욱신거리며 검붉은 피를 오수 속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진기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패도는 혀를 입천장에 대고 호흡을 극도로 가늘게 늘어뜨렸다.


귀원식(歸元息).


처형장의 음습한 음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비전의 내공 호흡법이었다. 패도의 폐포가 움직임을 멈추고, 심장의 박동이 일분에 서너 번 수준으로 급격히 가라앉았다. 그의 체온이 차가운 지하수의 온도와 동화되며 전신의 모공이 굳게 닫혔다. 품 안의 아기 해운 역시 패도의 차가운 진기에 감싸여 심장 소리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동시에 패도는 자신의 거구에서 풍기는 모든 척력과 살기를 지워냈다.


살기 차단 은신 기법.


평생 참수대 아래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숨죽여 생활하며 완성한 기예였다. 거대한 사내의 형체가 칠흑 같은 하수도의 밤안개와 오물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바로 앞을 지나가도 기척을 느낄 수 없는 완벽한 무(無)의 상태였다.


그때, 전방의 꺾인 모퉁이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일렁였다. 횃불을 든 철갑위대 보초병 두 명의 실루엣이 석벽에 길게 늘어졌다. 투구 아래로 드러난 그들의 눈빛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장창을 비스듬히 쥔 채 오수가 흐르는 바닥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패도는 벽면에 납작하게 몸을 붙였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고요함을 깨뜨렸다. 패도는 그 물방울이 오수 표면에 닿아 ‘톡’ 하고 터지는 찰나의 소음에 자신의 발소리를 완벽히 일치시켰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적의 횃불 불빛이 패도가 서 있는 사각지대를 비추기 직전, 패도의 신형이 채찍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는 귀두도를 쓰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풍압조차 사방으로 메아리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패도는 오른손 손가락 끝에 내력을 모아 찌르는 듯한 수도(手刀)의 자세를 취했다.


타앗!


소리 없는 돌진이었다. 선두에 서 있던 보초병이 이변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패도의 단단한 무쇠 같은 손끝이 그의 목덜미를 정확히 타격했다.


두둑.


인체의 두 번째 목뼈 마디가 정교하게 분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보초병은 비명 한 자락 지르지 못하고 무릎을 꺾었다. 패도는 그의 시신이 물에 떨어져 첨벙거리는 소리가 나기 전에 왼발 끝으로 시신의 가슴팍을 받아내어 조용히 눕혔다.


뒤따르던 다른 병사가 경악하며 장창을 치켜세우려 했다. 하지만 패도의 두 번째 움직임은 이미 그의 목전에 도달해 있었다. 패도의 왼손 쇠사슬이 뱀처럼 날아가 병사의 장창 자루를 감아쥐며 낚아챘다. 적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찰나, 패도의 오른손이 병사의 턱뼈를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쳐올렸다.


퍽!


머리뼈가 흔들린 병사가 안구의 초점을 잃고 그대로 오수 바닥으로 쓰러졌다. 두 명의 정예병을 침묵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두 합, 소음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보다 작았다.


패도는 숨을 고르며 두 시신을 하수구 옆 빈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옆구리의 창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오수와 섞여 검게 번져나갔다. 체력과 내력의 소모가 뼈저리게 느껴졌지만, 패도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하 통로를 따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마침내 황궁 지하 감옥의 잊힌 외곽 구역에 도달했다. 사방에 녹슨 철창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썩은 짚단과 신원을 알 수 없는 해골들이 널려 있었다. 인간의 비명조차 닿지 않는 거대한 지하의 무덤이었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쇠사슬이 긁히는 듯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도가 귀두도를 가슴 앞으로 세우며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목소리가 난 철창 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어 얼굴을 가린 늙은 죄수 두 명이 쇠사슬에 사지가 묶인 채 앉아 있었다.


등이 심하게 굽고 낡은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노인은 전직 황실 서고의 서리였던 연씨 노인이었고, 그 옆에서 녹슨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 찬 채 초점 없는 눈으로 패도를 응시하는 이는 열쇠지기 황씨 노인이었다.


황씨 노인의 시선이 패도의 오른손에 쥐인 거대한 무기에 멈췄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칼…… 붉은 천이 감긴 서늘한 무쇠 칼날. 자네, 처형장의 제1망나니 형패도인가?”


패도는 대답 대신 묵묵히 턱을 내렸다.


“그렇다면…… 그 품에 안긴 아기가 대장군님의…….”


연씨 노인이 급히 몸을 일으키려다 쇠사슬에 걸려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철창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노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더러운 뺨을 적셨다.


“임 장군님께서…… 기어코 대의를 지키셨구려. 참수대 위에서 자네에게 목숨을 맡기신 게 틀림없어.”


황씨 노인이 숨 가쁘게 말을 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처형 전날 밤, 우리에게 조경신의 눈을 피해 가문의 비밀을 보존할 방법을 일러주셨네. 자네가 쥔 귀두도의 칼자루 끝 철인 장식을 특수한 각도로 돌리면…… 그 안에 장군님이 목숨과 맞바꾼 기밀서가 들어있을 걸세. 그리고 자네들이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이 지도가 필요하네.”


연씨 노인이 품속 깊은 곳에서 누렇게 바래고 핏자국이 묻은 낡은 양피지 한 장을 꺼내 철창 틈새로 내밀었다. 황궁 지하 비밀 통로 지도였다. 황궁 내부의 하수관로와 순찰대원들의 교대 시간, 그리고 황성 밖 빈민가로 통하는 비밀 석도의 위치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 지도는 내가 서고에서 목숨을 걸고 베껴낸 것이네. 지상의 금위군 포위망을 우회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지.”


패도가 왼손으로 지도를 받아 품 안의 아기 포대기 옆에 소중히 밀어 넣었다. 묵직한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때, 지하 통로 입구 쪽에서 수십 마리의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와 함께 횃불의 붉은 빛이 빠르게 다가왔다. 철갑병들의 조직적인 발소리가 지하 감옥 전체를 뒤흔들었다.


“수색조! 이 방향이다! 지하에서 병사 두 명의 기척이 사라졌다!”


추살조장 맹강의 외침이 들려왔다.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었다. 이 좁은 감옥 구역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아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시간이 없네! 어서 저 비밀 석문 안으로 들어가게!”


황씨 노인이 철창 벽면의 해골 석상을 가리켰다. 석상의 입안에 특수한 홈이 파여 있었다. 패도가 지도의 지침대로 귀두도의 손잡이 끝 철인을 홈에 넣고 비틀자, 드르륵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면의 일부가 열리며 어둡고 협소한 석도 미로가 나타났다. 황궁 지하 비밀 통로였다.


패도가 아기를 안고 석도 안으로 몸을 들이밀자, 연씨 노인이 철창 밖으로 손을 뻗어 석도 옆의 무거운 무쇠 철문을 잡았다.


“우리가 여기서 놈들의 발을 묶겠네. 지도를 보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리게.”


“노인장, 그러나…….”


패도가 멈칫하는 순간, 황씨 노인이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평생을 이 지하 지옥에서 썩어온 몸들이네. 마지막 순간에 충신의 핏줄을 살리는 데 쓸 수 있다면, 이보다 고결한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어서 가게!”


쿠우웅!


연씨 노인이 온 힘을 짜내 하수구 통로와 연결된 무거운 무쇠 철문을 닫아걸고, 녹슨 빗장을 완전히 질러버렸다. 철문 너머로 자물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노인들의 단호한 침묵이 가라앉았다.


몇 찰나 뒤, 철문 반대편에서 거친 발소리와 횃불의 매캐한 연기가 밀려드는 기척이 전해졌다.


“철문이 잠겼다! 이 안에 역적이 숨어있다! 문을 부수고 노인놈들을 베어라!”


금위군 병사들의 포악한 고함 소리가 굳게 닫힌 무쇠 문을 때렸다.


쇠도끼가 철문을 찍어내리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협소한 석도 내부로 흘러들었다. 패도는 석도 틈새의 미세한 균열을 통해 철문 너머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횃불의 붉은 빛이 어두운 감옥을 가득 채운 순간, 수십 명의 철갑병들이 철창을 부수고 난입했다. 그들의 선두에는 차가운 철가면을 쓴 금위군들이 장창을 겨누고 있었다.


“역적 형패도의 행방을 대라! 불지 않으면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


금위군 장교가 연씨 노인의 멱살을 잡아채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노인은 피를 토하면서도 안경 너머의 눈빛을 번뜩이며 침묵을 지켰다. 오히려 비열한 장교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역적의 하수인 놈들…… 천하의 공의가 장군님의 핏줄을 통해 반드시 바로 설 것이다!”


“이 노친네가 미쳤구나! 베어라!”


장교의 잔혹한 명령과 함께, 사방에서 서슬 퍼런 장창의 은빛 날들이 일제히 허공을 갈랐다.


푸학!


하수구 철문 너머의 쇠창살 틈새로 날카로운 창날들이 연씨 노인과 황씨 노인의 가슴을 가차 없이 꿰뚫었다. 살가죽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처절한 비명 소리가 좁은 하수관로와 석벽을 타고 끔찍하게 메아리쳤다. 노인들의 붉은 선혈이 녹슨 철창과 바닥의 오수 위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패도의 오른손이 귀두도의 칼자루를 부러뜨릴 듯 움켜쥐었다.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살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려 했다. 당장이라도 철문을 부수고 나가 저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뇌리를 지배했다.


응애…….


그 순간, 품 안의 아기 해운이 차가운 한기에 몸을 떨며 미세한 울음소리를 냈다. 아기의 가냘픈 온기가 패도의 찢어진 옆구리 상처에 닿았다.


‘살아남아라. 그리고 내 딸아이를 지켜다오.’


임회남의 마지막 유언이 패도의 머릿속을 때렸다. 지금 분노에 휩쓸려 검을 뽑는다면 노인들의 숭고한 희생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무인으로서의 분노보다, 죄인으로서의 속죄가 더 무거웠다.


패도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핏자국이 묻은 지도를 품에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철문 너머로 노인들의 마지막 단말마와 창날이 살점을 헤집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형패도는 아기를 품에 안고 칠흑 같은 어둠이 도사린 황궁 지하 비밀 통로 깊숙한 곳으로 몸을 날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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