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참수대, 돌려쥔 귀두도
하늘은 잿빛이었고, 쏟아지는 폭우는 황도 제1처형장의 누런 흙바닥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었다. 빗줄기는 사정없이 대지를 때렸고, 공기 중에는 눅눅한 흙먼지 냄새와 함께 비릿한 쇠 냄새가 섞여 흘렀다. 그 비린내의 근원은 처형장 중앙에 높게 솟아오른 붉은 나무 단상, 참수대였다. 수천 명의 대역죄인들이 목숨을 잃고 흘린 피가 스며들어, 폭우 속에서도 단상은 검붉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참수대 위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신장 이 미터에 육박하는 거구. 빗물과 피가 찌들어 검붉게 변한 삼베 도포를 걸친 사내의 이름은 형패도였다. 평생 나라의 명에 따라 목을 베어 온 황실 제1망나니. 그의 얼굴은 굵은 칼흉터와 더부룩한 수염으로 뒤덮여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오는 위압감을 풍겼다. 그의 손에는 길이 오 자, 무게 삼십 근에 달하는 거대하고 투박한 참수용 도, 귀두도가 들려 있었다. 넓고 무거운 등칼날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차갑게 튕겨 나갔다.
패도의 발치에는 백색 수의를 입은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조정의 충신이자 대장군이었으나, 간신 조경신의 음모에 휘말려 역적의 누명을 쓴 임회남이었다. 고문으로 인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임회남의 눈빛만큼은 태산처럼 곧고 청명했다.
참수대 아래에는 삼엄하게 포진한 황실 금위군 병사들이 장창을 세운 채 집행을 감시하고 있었다. 저 멀리 화려한 누각 안에는 이 모든 비극을 설계한 승상 조경신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집행하라!”
조령의 날카로운 외침이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패도는 묵묵히 숨을 들이쉬며 귀두도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삼십 근의 철무기가 그의 단단한 악력에 잡혀 허공에서 묵직한 궤적을 그렸다. 평소라면 망설임 없이 내리쳤을 칼날이었다. 사부 형철이 가르쳐 준 대로, 망나니의 칼에는 사사로운 감정을 담아서는 안 되니까. 그저 한 번에 고통 없이 생을 종결짓는 것만이 참수인의 예의였다.
그때, 무릎을 꿇고 있던 임회남이 고개를 들어 패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빗소리에 묻혀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오직 패도만이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였다.
“내 목을 주마. 내 죽음으로 저들의 의심을 거두어라. 다만…….”
임회남의 시선이 참수대 아래,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가신 장맹의 품으로 향했다. 장맹은 온몸에 칼을 맞아가며 갓 태어난 핏덩이 아기를 품에 안고 버티고 있었다. 임회남의 유일한 핏줄, 임해운이었다.
“내 딸아이…… 해운이만은 구해다오. 귀두도 칼자루 속에…… 모든 진실이 들어있다.”
그 순간 패도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평생 기계처럼 사람의 목을 베어 오며 얼어붙었던 그의 영혼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사부 형철이 죽기 직전 남겼던 마지막 유언이 뇌리를 스쳤다.
‘패도야, 망나니의 칼은 자비를 담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일생에 단 한 번, 사람을 구하는 너만의 칼을 쥐어라.’
사람을 죽이는 살도(殺刀)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활도(活刀).
임회남의 강직한 눈빛과 사부의 유언이 겹쳐지는 찰나, 패도의 단전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초일류 도객의 진기가 폭발하듯 끓어올랐다. 그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이미 내리치기 시작한 귀두도의 궤적은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패도는 찰나의 순간 손목을 비틀어 칼날의 궤적을 강제로 틀어버렸다.
쉬이익!
무겁고 넓은 등칼날이 공기를 찢으며 임회남의 머리 위가 아닌, 참수대 옆에서 집행을 지켜보던 감형관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갔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감형관의 목이 단숨에 분리되어 공중으로 솟구쳤다. 붉은 선혈이 폭우 속으로 뿜어져 나와 참수대를 붉게 물들였다.
“대, 대반역이다! 망나니가 미쳤다!”
순식간에 처형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악한 금위군 조령이 비명을 지르며 검을 뽑아 들었고, 주위에 포진해 있던 금위군 정예 병사들이 장창을 앞세워 일제히 참수대로 돌격해 왔다.
“역적 형패도를 사살하라!”
사방에서 들이치는 은빛 창날들. 패도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왼발로 대지를 굳건히 딛고, 오른손 하나로 삼십 근의 귀두도를 가볍게 휘둘렀다.
귀살 제1참: 낙수의 이슬(落首露).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극도로 무겁고 정교하게 떨어지는 수직의 참격. 패도의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가장 먼저 계단을 타고 뛰어오르던 금위군 조령의 정수리를 정면으로 내리쳤다.
콰아아앙!
강철 투구는 두부처럼 쪼개졌고, 두꺼운 판갑과 뼈마디가 저항 없이 갈라졌다. 조령의 신체가 좌우로 분리되며 참수대 바닥으로 쓰러졌다. 초일류 도객의 압도적인 힘 앞에 금위군의 정예 대열이 단숨에 흔들렸다.
그 틈을 타, 피투성이가 된 가신 장맹이 마지막 힘을 짜내 참수대 위로 도약했다. 그의 품에는 비단 포대기에 싸인 갓 태어난 아기가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었다.
“형 대협…… 우리 상군님의 핏줄을…… 부탁하오!”
장맹은 아기를 패도의 왼팔에 넘겨준 직후, 추격해 온 금위군들의 창날에 온몸이 관통당하며 장렬히 숨을 거두었다.
패도는 왼손으로 갓난아기 임해운을 낚아채 품에 안았다. 여리고 가냘픈 생명의 온기가 그의 붉은 도포 안쪽 가슴팍으로 전해졌다. 이제 그에게 남은 손은 오른손 하나뿐이었다. 삼십 근의 무거운 무기를 한 손으로 제어해야 하는 극단적인 전투적 약점이 그를 옭아맸다.
금위군 병사들이 패도의 한 손이 묶인 것을 보고 하체를 집요하게 노려 장창을 일제히 찔러왔다. 예리한 창끝들이 빗속을 뚫고 뱀처럼 밀려들었다.
패도는 물러서는 대신 참수인의 보법(斬首步)을 전개했다. 좁은 참수대의 미끄러운 나무 난간을 디디며 순간적으로 몸의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들이치는 창날들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낸 패도는, 적들이 뻗어낸 창대를 디딤돌 삼아 허공으로 솟구쳤다.
오른손의 귀두도가 반원을 그리며 대각선으로 작렬했다.
서걱! 콰득!
창대를 쥐고 있던 병사들의 손목과 어깨뼈가 무참히 조각나며 비명 소리가 처형장을 가득 채웠다. 패도는 좁은 난간 지형을 역이용하여 적들이 한 번에 들이치지 못하도록 일대일 구도를 강제로 유도하며 돌파구를 열어젖혔다.
그러나 아기를 안고 있는 왼쪽 방어 반경이 비어 있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틈을 노린 한 병사의 기습적인 창날이 패도의 왼쪽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도포 자락이 찢어지며 살가죽 위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미세한 찰과상이었으나, 황실 최고의 처형인으로서 누려온 평온한 삶이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알리는 첫 번째 상흔이었다.
패도는 옆구리의 통증을 무시한 채, 쓰러진 병사들의 시신을 밟고 참수대 아래 지하 하수구 철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은 처형장의 시신들을 유기하던 어둡고 축축한 통로이자, 유일한 탈출로였다.
몸을 던지기 직전, 패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황도 성벽 위를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성벽 누각 위, 은색 전포를 입고 차가운 철가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 사내가 서 있었다. 신임 금위군 통령 제갈운이었다. 제갈운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오직 뱀처럼 서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망치는 패도의 등 뒤를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이 패도의 등 뒤에 박히는 순간, 처형장 사방에서 탈출을 저지하기 위한 비상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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