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독니
소매 안쪽에 숨긴 시약포에서 미세한 비린내가 번져나갔다.
지하 온실의 습하고 서늘한 공기 속에서 설유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온실 구석의 습도 제어 장치 다이얼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온 신경은 소매 안쪽에 닿은 시약포의 감각으로 쏠려 있었다. 2단계 초감각 감수성 체질인 그녀의 예민한 후각은 시약포에 묻은 극미량의 오염 물질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학적 분자 구조를 실시간으로 해체하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오염이 아니야.’
유진은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차갑고 달콤하면서도 끝 맛이 기이하게 아릿한 냄새. 그것은 자연적인 곰팡이나 이끼의 냄새가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정제된 식물성 맹독, 바로 ‘은방울꽃 변이 독소(Lily Toxin)’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온실의 습도 제어 노즐에 이 독소를 발라둔 것이 분명했다. 오렐리아의 숨결이 뿜어내는 정제된 안개와 이 변이 독소가 공기 중에서 결합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복합 신경독 가스가 완성된다. 그리고 그 가스는 백이준의 침실 환기구를 타고 흘러들어가 그의 만성 신경 마비 발작을 치명적인 수준으로 폭발시킬 터였다.
만약 발작이 일어나 이준이 사망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새로운 전담 조제사인 유진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설유진 선배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뒤에서 들려오는 강태오의 소심한 목소리에 유진은 즉각 차가운 포커페이스를 되찾았다. 그녀는 소매를 가볍게 털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태오는 여전히 클립보드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습도 제어 장치의 노즐이 조금 노후화된 것 같아서 확인했을 뿐입니다.”
“아, 그렇군요! 안 그래도 제가 다음 주에 전면 교체하려고 보고서를 올려둔 상태였는데…… 역시 선배님은 눈썰미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태오는 안도한 듯 헤헤 웃으며 서둘러 받아적었다. 유진은 그의 무해한 미소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태오 씨, 지금 바로 성북동 사저 지하 연구실로 가서 오늘 오후에 사용할 정제 백금 앰플(Refined Platinum Ampoule)의 진공 상태를 재점검해 두세요. 보스의 발작 주기가 임박했으니, 단 하나의 미세한 오차도 허용되어선 안 됩니다.”
“넵! 즉시 다녀오겠습니다!”
태오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온실 문을 열고 서둘러 나갔다. 굳게 닫히는 철문의 기계음과 함께 온실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유진은 왼손을 들어 올려 약지에 끼워진 푸른 다이아몬드 위성 GPS 추적 반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차가운 보석의 표면이 인공 조명을 받아 섬뜩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반지는 그녀의 체온과 실시간 위치를 24시간 내내 이준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하고 있다. 그녀의 목덜미에 남아 있는 시퍼런 피멍 자국은 이 사저가 언제든 자신을 집어삼킬 수 있는 맹수의 우리임을 상기시켰다.
“나를 첩자로 의심하면서도 내 약효가 없으면 죽어가는 괴물이라.”
유진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온실 내부의 카메라 회전 주기를 완벽하게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기하학적 사각지대인 인공 폭포 옆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소매 안쪽에서 시약포를 꺼내 소형 분석용 튜브에 밀어 넣었다.
이준의 신뢰를 얻어 동생 민우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덫에 빠뜨리려는 사저 내부의 보이지 않는 독니를 먼저 뽑아내야만 했다.
***
성북동 사저 지하 연구실은 대학병원의 정밀 실험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최첨단 기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백이준이 유진의 완벽한 조제 환경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리모델링해 준 공간이었지만, 실상은 그녀의 모든 연구 성과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독점하기 위한 화려한 유리 감옥이었다.
유진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미 그곳에는 불청객이 먼저 와 있었다.
“어이, 낙하산 약초쟁이 선배님. 온실 산책은 즐거우셨나?”
포마드로 매끄럽게 빗어 넘긴 머리에 고가의 명품 안경을 쓴 사내. 골든크라운의 기존 약학 연구를 독점해 오던 수석연구원 임서준이었다. 그는 실험대 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채, 유진을 향해 오만한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는 이준의 호흡기에 직접 기화시킬 오렐리아 향료가 담겨야 할 정제 백금 앰플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연구실 내부의 위생 프로토콜을 어기면서까지 남의 실험 공간에 들어와 있는 이유가 뭐죠, 임서준 씨?”
유진은 백가운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차갑게 물었다. 임서준의 눈썹이 불쾌한 듯 꿈틀거렸다.
“남의 실험 공간이라니? 이 사저의 모든 의료 설비와 연구 자산은 원래 내 통제하에 있었다. 근본도 없는 동양 약초 찌꺼기나 끓이는 계집애가 보스의 발작을 한 번 우연히 진정시켰다고 해서, 진짜 수석이 누구인지 잊은 모양이군.”
임서준은 들고 있던 백금 앰플을 실험대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보스의 만성 마비 증세는 현대 서양 약리학의 정밀한 화학 합성 신약으로만 통제할 수 있다. 네가 장난쳐 놓은 그 오렐리아 향료인지 뭔지 하는 조잡한 물건은 언젠가 보스의 신경망을 완전히 파괴할 거다. 그때가 되면 네 동생 녀석과 함께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지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유진은 임서준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그의 손끝과 그가 만졌던 백금 앰플의 표면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녀의 초감각적 독소 후각이 다시 한번 반응했다. 임서준의 소매 끝에서 미세하게 풍겨 나오는 달콤하고 아릿한 은방울꽃 변이 독소의 잔향. 그리고 실험대 위에 놓인 정제 백금 앰플의 주입구 부근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화학적 굴절 현상.
‘과거 우리 아버지가 연구하던 주제와 완벽히 얽혀 있는 독소…… 역시 임서준, 네 녀석이었군.’
유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읊조렸다. 임서준은 자신이 완벽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고 있는 듯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순간, 유진은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태오 씨, 연구실 전력 제어 장치를 수동 모드로 전환하고 질량 분석기(LC-MS)의 진공 펌프를 가동하세요.”
“네? 아, 네! 하지만 수석연구원님의 승인 없이 장비를 전면 가동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텐데요……”
태오가 안절부절못하며 말끝을 흐렸다. 유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지금 우리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입니다. 질문하지 말고 움직이세요.”
유진의 단호한 카리스마에 압도된 태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서둘러 제어판의 스위치들을 올렸다. 연구실 내부의 초정밀 분석 기기들이 묵직한 구동음을 내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유진은 조심스럽게 정제 백금 앰플의 노즐 부위에서 미세 시료를 채취했다. 그리고 온실 습도 제어 장치에서 가져온 오염 시약포의 성분과 함께 고속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기기에 주입했다.
기기가 시료의 분자 구조를 나노 단위로 쪼개어 분석하는 동안, 모니터 화면 위로 복잡한 화학 공식과 탄소 연쇄 구조 그래프가 소리 없이 전개되었다. 유진은 화면을 뚫어질 듯 응시하며 정밀 화학 기기 분석술을 가동했다.
‘탄소-12 연쇄 고리의 굴절률 1.45. 분자량 548.6. 수산기(OH)의 배치 패턴이 정확히 일치해.’
화면에 붉은색 그래픽으로 도출된 고리형 유기 분자 구조는 의심할 여지 없는 ‘은방울꽃 변이 독소(Lily Toxin)’의 분자식이었다.
유진은 은방울꽃 변이 독소 성분 역추적법 공식을 대입해 불순물이 투입된 정확한 시간대를 역산해 나갔다. 앰플 내부의 백금막 코팅 부식 정도와 독소의 산화율을 대조한 결과, 독소가 주입된 시간은 정확히 오늘 오전 9시 15분이었다.
그 시간대는 유진이 온실 관리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오직 수석연구원인 임서준만이 이 연구실의 출입 권한을 가지고 있던 시간이었다.
“선배님…… 이 그래프는 대체 뭔가요? 오렐리아 향료의 성분이 왜 이렇게 뒤틀려 있죠?”
태오가 모니터 화면을 보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약학을 전공한 그 역시 이 분자 구조가 의미하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누군가 보스에게 투여될 앰플에 은방울꽃 변이 독소를 고의로 섞었어요. 이대로 기화기가 작동했다면 보스는 발작을 일으키며 척수 신경이 영구 마비되어 사망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죄는 온전히 조제사인 나에게 덮여씌워졌겠지.”
유진의 차분하고 냉혹한 설명에 태오는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그, 그럴 수가…… 누가 그런 짓을…… 당장 보스께 말씀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요. 증거가 완벽하게 입증되기 전까지 보스는 그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를 아수라의 프락치로 몰아 즉각 처단하려 하겠지.”
유진은 분석 데이터를 암호화된 개인 드라이브에 백업하고, 정밀 분석 결과표를 인쇄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이성적인 전의가 차갑게 불타올랐다.
그때, 연구실의 두꺼운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삼엄한 경비원들과 함께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성북동 사저의 절대 지배자, 백이준이었다.
그의 안색은 어젯밤보다 훨씬 더 창백해져 있었고, 이마와 목덜미의 핏줄이 미세하게 검푸르게 솟아올라 있었다. 발작 주기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전형적인 혈관 역류 증세였다. 그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유진을 향해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냈다.
“조제사 설유진. 오늘 아침 내 침실의 기화기 향이 평소와 달랐다. 내 신경 세포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통증이 가중되고 있어.”
이준이 유진에게 다가오며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그의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연구실 내부의 공기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태오는 공포에 질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유진은 흔들림 없이 이준의 폭력적인 살기를 정면으로 받아냈다. 그녀는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슬쩍 만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것은 당신의 주치의와 수석연구원이 당신의 앰플에 손을 댔기 때문입니다, 백이준 씨.”
그 순간, 이준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임서준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급히 소리쳤다.
“보스! 저 여자의 해괴망측한 변명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제가 오늘 아침 온실의 습도 제어 장치와 저 여자의 실험 도구들을 점검한 결과, 정제되지 않은 유독성 약초 성분이 보스의 백금 앰플을 오염시킨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저 여자는 아수라의 지시를 받고 보스를 서서히 독살하려는 첩자입니다!”
임서준은 미리 준비해 둔 가짜 성분 분석 보고서를 이준의 앞에 내밀며 이사회를 선동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주치의 홍진호 역시 옆에서 거들며 유진의 약초 요법을 무당 짓이라 격하했다.
연구실 내부에 피비린내 나는 침묵이 감돌았다. 이준의 손가락이 가죽 장갑을 낀 채 품속의 흑철 단도로 서서히 향했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유진의 목덜미에 남은 피멍 흔적을 집요하게 응시했다.
“설유진. 결백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오늘 밤 네 동생의 목숨은 물론이고 너 역시 이 연구실 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게 될 거다.”
이준의 경고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의 손목 신경이 마비의 고통으로 미세하게 뒤틀리는 순간, 유진은 당당하게 질량 분석기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제 결백은 이 기계의 정밀 데이터가 증명합니다. 보스, 화면을 보십시오.”
유진은 인쇄된 분석 결과표를 이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임서준 씨가 제출한 보고서는 완전히 조작된 가짜입니다. 제가 정밀 화학 기기 분석술을 통해 앰플 내부의 시료를 분석한 결과, 검출된 독소는 오렐리아의 성분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합성된 ‘은방울꽃 변이 독소’였습니다. 그리고 이 독소가 주입된 시간은 정확히 오늘 오전 9시 15분입니다.”
유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임서준의 얼굴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 시간대에 이 연구실의 출입 보안 로그에 기록된 사람은 오직 수석연구원 임서준, 당신 한 명뿐이었습니다. 당신의 개인 캐비닛 세 번째 서랍 안쪽에 숨겨진, 미처 처분하지 못한 변종 독소 약병과의 분자 구조 일치율은 정확히 99.9%입니다. 지금 당장 경비원들을 보내 수색해 보시죠.”
유진의 정교하고 완벽한 역공에 임서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 이건 음해입니다! 저 여자가 기계를 조작한 겁니다! 보스,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임서준이 비명을 지르며 발악했으나, 이미 판세는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백이준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서서히 임서준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임서준의 바르르 떨리는 목덜미로 향하는 순간, 연구실 내부에는 피바람이 불기 직전의 기괴하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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