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온실의 규칙
이준의 차가운 손가락이 닿은 목덜미 상처에서 찌릿한 열감이 번져나갔다.
유진은 목덜미를 짓누르는 그의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전신을 집어삼키려 했던 마비 발작의 잔여 진동이었다. 은침과 오렐리아의 향료가 그의 신경망을 일시적으로 안정시켰을 뿐, 그를 죭고 있는 독소의 근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허락 없이는 이 저택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이준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으며, 방 안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기이할 정도의 무게감을 지니고 울려 퍼졌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유진의 얼굴 구석구석을 탐색하듯 훑어내리고 있었다.
유진은 그의 강압적인 태도 앞에서도 눈빛을 흐리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것이 ‘성북동 사저 생존 수칙 제1조’였다. 이 괴물 같은 남자의 의심과 폭력성 앞에서는 감정적인 호소나 두려움 따위는 아무런 방어선이 되지 못한다. 오직 철저한 이성과 차가운 논리만이 그의 이빨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감금의 명분치고는 꽤나 거창하군요, 백이준 씨.”
유진은 목에서 흐르는 피 한 방울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차갑게 대꾸했다.
“하지만 잊지 마세요. 당신의 그 잘난 목숨줄을 쥐고 있는 것은 바로 저입니다. 매주 찾아오는 그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숨을 쉬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약사 말입니다.”
이준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평범한 약사라면 공포에 질려 무릎을 꿇었을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유진의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포식자의 상태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의사의 차가움만이 깃들어 있었다. 이준은 그녀의 그 오만한 눈빛이 거슬리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신경 세포를 자극하는 기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건방진 쥐새끼군.”
이준이 낮게 읊조리며 유진의 목덜미를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묻어난 유진의 붉은 피가 어두운 방 안의 조명 아래서 기괴하게 빛났다.
그가 품속에서 자그마한 벨벳 상자를 꺼내 들었다. 이준이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차갑고 영롱한 푸른빛을 내뿜는 보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3캐럿 블루 다이아몬드가 박힌 백금 반지였다. 그것은 화려한 보석의 외양을 하고 있었으나, 그 본질은 잔인한 쇠사슬이었다.
“손을 내밀어라.”
이준의 명령에 유진은 잠시 반지를 응시했다.
‘위성 GPS 추적 반지.’
가문에서 다루던 고대 의서와 현대 생화학 장비의 경계에서 살아온 유진의 지식은 이 반지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님을 즉각 알아차렸다. 반지의 백금 프레임 내부에는 착용자의 피부 온도와 미세 전류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초소형 위성 GPS 칩이 내장되어 있을 터였다.
유진이 가만히 서 있자, 이준은 기다려주지 않고 그녀의 가녀린 왼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그의 차가운 손길이 닿는 순간, 유진은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굽히려 했으나 이준의 억센 악력이 그녀의 손가락을 강제로 펴냈다.
슬며시, 차가운 금속 고리가 유진의 약지에 밀어 넣어졌다. 완벽하게 맞춤 제작된 것처럼 손가락뼈를 파고드는 묵직한 구속감이 전해졌다.
“이 반지는 네 체온과 위치 정보를 24시간 내내 내 스마트폰과 사저 관제실로 전송한다.”
이준이 반지를 낀 유진의 손가락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소유욕과 경고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사저 반경 1km를 벗어나는 순간, 경보가 울릴 거다. 그리고 명심해라. 억지로 반지를 빼려 하거나 전원을 차단하려 시도하는 순간, 반지 안쪽에 숨겨진 초소형 미세 침이 돌출되어 네 손가락의 모든 신경을 영구히 마비시킬 테니까.”
유진은 반지를 낀 손을 들어 올렸다. 푸른 다이아몬드가 그녀의 창백한 피부 위에서 마치 낙인처럼 빛나고 있었다. 유진은 반지를 물리적으로 빼내는 무모한 짓은 즉각 포기했다. 미세 침의 통증을 굳이 겪을 필요는 없었다. 대신 그녀는 이 제약 조건을 머릿속의 전술 지도에 정밀하게 기록했다.
“감시의 대가치고는 과분할 정도로 아름답군요. 기꺼이 끼고 있어 드리죠.”
유진은 차가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대꾸했다. 이준은 그녀의 흔들림 없는 태도에 묘한 불쾌감과 정복욕을 느끼며 침실을 나섰다. 굳게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유진은 홀로 남겨진 방 안에서 깊은 숨을 내쉬었다.
***
다음 날 아침 7시 30분.
성북동 사저의 아침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창밖으로 우거진 대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목덜미에 선명하게 남은 시퍼런 손자국 피멍이 어젯밤의 폭력적인 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헐렁한 연구원 백가운을 걸쳤다. 손끝의 동상 상처와 피로감이 가시지 않았지만, 지금은 쉴 때가 아니었다.
‘성북동 사저 생존 수칙 제2조. 매일 아침 8시 정각, 백이준이 눈을 뜨기 전에 그의 침실 향로에 신선한 오렐리아 향료를 충전하고 기화기를 작동시킬 것.’
유진은 간이 실험실에서 어젯밤 정제해 둔 오렐리아의 숨결 앰플을 챙겼다. 이 향료가 없으면 이준은 극심한 두통과 마비 통증 속에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고, 그것은 곧 사저 내부의 피비린내 나는 살기로 이어질 터였다.
삼엄한 경비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이준의 침실로 향했다. 두꺼운 목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둠이 짙게 깔린 방 안에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이준은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였으나, 미세하게 찡그려진 미간이 그의 만성적인 통증을 대변하고 있었다.
유진은 소리 없이 침대 머리맡에 놓인 고밀도 약초 추출 기화기로 다가갔다. 기존의 다 써버린 백금 앰플을 수거하고, 새로 준비한 신선한 푸른빛의 앰플을 장착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미세한 작동음과 함께 기화기 노즐에서 청량하고 차가운 푸른 안개가 피어올랐다.
은은한 오렐리아의 향이 방 안의 무거운 공기를 정화하기 시작했다. 향기가 이준의 호흡기로 스며들자, 그의 거칠던 숨소리가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찡그려졌던 미간이 부드럽게 풀렸다.
유진은 그 모습을 차갑게 내려다본 뒤, 방을 빠져나왔다. 이준의 비위를 맞추는 이 루틴은 사저 내부에서 자신의 생존율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였다.
***
오전 10시.
“설유진 씨, 보스께서 지하 온실의 출입을 허가하셨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의 김 집사가 유진에게 다가와 차가운 목소리로 통보했다. 그의 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보안 카드키가 들려 있었다.
‘지하 온실 마스터키.’
유진은 카드키를 받아들었다. 표면의 차가운 금속 질감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이 카드키는 단순히 온실의 문을 여는 도구가 아니었다. 사저 내부에서 가장 은밀하고 가치 있는 영토로 진입할 수 있는 권력이자, 동생 설민우를 구출할 단서를 추적할 수 있는 첫 번째 열쇠였다.
김 집사의 안내를 받아 사저 본관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두꺼운 철갑 보안문 앞에 서자, 김 집사가 물러서며 차가운 눈빛으로 경고했다.
“온실 내부에는 보스께서 수집하신 희귀 독초들이 가득합니다. 허가되지 않은 구역을 만지거나 무단으로 식물을 반출하려 시도할 경우, 경비 시스템이 작동해 온실 전체가 록다운되고 유독 가스가 살포될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유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카드키를 단말기에 접촉하고 지문을 스캔하자,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두꺼운 철문이 소리 없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스으으—
문이 열리는 순간, 유진의 비강을 가득 채운 것은 기이할 정도로 습하고 청량한 공기였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기괴하면서도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인공 조명 아래서 푸른빛과 붉은빛을 발하는 전 세계의 희귀 독초들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거대한 지하 정원이었다. 천장에는 수십 개의 정밀 카메라와 열감지 센서들이 붉은 불빛을 깜빡이며 온실 내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유진은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2단계 초감각 감수성 체질인 그녀의 몸이 공기 중의 미세한 화학 물질 농도 변화를 즉각 감지했다. 일반인이라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미세한 유독 성분이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어…… 어서 오세요! 설유진 선배님 맞으시죠?”
그때, 온실 한구석에서 더벅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청년이 허둥지둥 달려오다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클립보드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는 이준이 유진의 보조 연구원으로 배정해 준 강태오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덜렁거려서…… 저는 보조 연구원 강태오라고 합니다! 선배님의 약학 논문을 대학 시절에 정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태오는 얼굴을 붉히며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급히 주워 모았다. 유진은 소심하고 겁이 많아 보이는 그의 태도를 날카롭게 관찰했다.
‘강태오. 소심하지만 약학 지식은 뛰어난 인물. 이준의 사냥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무해하고 통제하기 쉬운 말판이 되겠군.’
“반가워요, 태오 씨. 인사보다는 일의 효율이 중요하니 바로 관리 상태 점검으로 들어가죠.”
유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선을 그으며 온실 내부를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태오에게 온실의 일일 습도와 배양액 농도 기록을 요구하는 동시에, 눈동자를 미세하게 굴려 천장에 설치된 CCTV 카메라의 각도를 계산했다.
‘정면 카메라의 회전 주기는 15초. 인공 폭포 옆의 기둥이 카메라의 시야를 가리는 유일한 기하학적 보안 사각지대다.’
유진은 온실 내부의 구조를 머릿속의 3D 지도로 완벽하게 재구성해 나갔다. 이준의 철저한 감시망 아래에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외부 조력자들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적 틈새를 찾아내야 했다.
그녀는 오렐리아의 숨결 군락지가 위치한 인공 폭포 뒤편으로 향했다.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는 잎사귀들이 물안개 속에서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약초들이야말로 이준의 목숨줄이자, 자신이 사저 내부에서 부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유진은 군락지 옆에 설치된 수동 습도 제어 장치로 손을 뻗었다. 온실의 생육 환경을 조율하기 위해 다이얼을 만지려던 찰나였다.
습도 제어 장치의 미세 분무 노즐 부근에 손끝이 닿는 순간, 유진의 비강 신경망이 번개라도 맞은 듯 찌릿하게 떨렸다.
‘……!’
유진의 초감각적 독소 후각이 공기 중에 떠도는 아주 미세한 오염의 냄새를 감지해 냈다.
그것은 흙냄새나 약초의 자연스러운 독기 냄새가 아니었다. 아주 미미하지만, 정밀하게 합성된 인공 화학 물질의 비릿한 냄새였다. 석유계 용제와 기이한 유기 화합물이 결합된 듯한, 극도로 은밀하게 숨겨진 독소의 냄새.
유진은 다이얼을 돌리려던 손끝을 우아하게 멈추었다. 그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축소되었고, 목덜미의 솜털이 꼿꼿이 섰다.
이 온실은 백이준의 철통 같은 요새이자, 그의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정원이다. 그런 곳의 핵심 제어 장치에 무색무취에 가까운 인공 화학 오염 물질이 묻어 있다는 것은 단순한 관리 소홀이 아니었다.
의도적인 사보타주.
유진은 차가운 이성을 발휘해 표정을 감추었다. 그녀는 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강태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손가락 끝으로 노즐 표면의 미세한 액체 잔해를 살짝 훔쳐내어 소매 안쪽의 시약포에 묻혔다.
이 온실 내부에, 백이준의 목숨을 노리는 또 다른 치명적인 음모가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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