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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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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되는 시야 너머로 가라앉는 포식자의 눈빛이 유진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새기고 있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귓가를 먹먹하게 짓눌렀다. 한 줄기 빛조차 허락하지 않는 서해의 심해는 모든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다. 수면 위로 산소를 찾아 올라가는 한도현의 품에는 의식을 잃은 남동생 민우가 안겨 있었다. 동생이 안전하게 인양되는 것을 확인한 순간, 유진의 시선은 아래로 향했다.


그곳에 백이준이 있었다.


무리하게 ‘4단계: 변이 마비 체질(Mutated)’의 한계를 초월해 폭주했던 대가는 참혹했다. 그의 척수 신경망은 완전히 붕괴되어 사지가 굳어버렸고, 묵직한 검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끝없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평소 사나운 포식자 같던 그의 눈동자는 빛을 잃은 채 감겨가고 있었다.


‘나를 위해 척수 신경을 파괴하면서까지 문을 부순 괴물…… 당신을 이 차가운 심연에 혼자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유진은 망설임 없이 몸을 뒤집었다. 수면을 향해 가던 몸이 다시 어두운 바다 밑바닥을 향해 화살처럼 내달렸다.


가평 설산과 인천 창고에서 연이어 유독 가스를 흡입했던 허파가 찢어질 듯한 통증을 토해냈다. 폐 점막에 누적된 미세한 손상들이 수압과 결합해 유진의 목구멍을 피 맛으로 가득 채웠다. 숨이 막혀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았지만, 유진은 이를 악물고 하강했다. 차가운 수류를 헤치며 나아가는 그녀의 왼손 약지에서 푸른 다이아몬드 위성 GPS 반지가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침내 이준의 몸에 손이 닿았다. 완전히 경직되어 대리석상처럼 굳어버린 그의 가슴팍을 움켜쥐는 순간, 유진의 온몸으로 소름 끼치는 냉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의 심장박동이 멈춰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물속에서 인양하기에는 그의 체구가 너무 무거웠고, 이대로 수면까지 올라가기 전에 그의 뇌세포가 먼저 사멸할 터였다. 물속에서 즉각적인 소생을 유도해야만 했다.


유진은 가라앉는 이준의 목덜미를 감싸 안으며 그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의 차갑게 굳은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밀착시켰다.


읍……!


그녀의 허파에 남아 있던 마지막 산소를 그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의 변이된 척수 신경을 깨우고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 강력한 촉매가 필요했다.


‘내 피를 받아들여, 백이준.’


유진은 입술을 겹친 채 자신의 혀끝을 강하게 깨물었다. 비릿하고 뜨거운 선혈이 물속에서 두 사람의 구강 사이로 울컥 흘러나왔. 그것은 단순한 피가 아니었다.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유전적 축복이자, 온갖 신경 마비 독소를 중화하고 세포를 재생하는 ‘5단계: 특이 면역 항체 체질(Immune)’의 정수가 담긴 ‘특이 면역 항체 혈청(Specific Immune Antibody)’이었다.


유진은 자신의 혈액이 이준의 구강 점막을 통해 가장 빠르게 흡수되도록 그의 턱관절을 미세하게 압박했다. 동맥 혈류 제어술의 원리를 역이용한 정밀한 자극이었다. 고농도의 면역 세포가 함유된 그녀의 피가 이준의 식도와 설하 점막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준의 체내에 잔류해 있던 변이 독소들이 유진의 항체 혈청과 접촉하는 순간 급격히 분해되기 시작했다. 굳어 있던 그의 심장 근육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쿵, 쿵, 거대한 진동이 이준의 가슴속에서 울려 퍼졌다.


번쩍—!


암전해가던 이준의 눈이 물속에서 사납게 치켜뜨였다. 핏빛으로 충혈되어 있던 그의 안구에 영롱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정신을 차린 이준은 자신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뜨거운 온기와 비릿한 피 맛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녀였다. 자신을 가두고 감시하던 족쇄 같은 반지를 낀 채, 제 목숨을 갈아 넣으며 자신을 살려내고 있는 가녀린 약사.


이준의 눈동자에 형언할 수 없는 광기와 집착이 휘몰아쳤. 마비가 풀린 그의 단단한 양팔이 유진의 허리를 거칠게 낚아채 안았다. 그는 유진을 자신의 품에 터질 듯이 밀착시킨 채, 남은 힘을 다해 수면을 향해 발길질했다.


푸하아아앗—!


차가운 바다 표면을 뚫고 세 사람의 머리가 솟구쳤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해무 사이로 전술 고속 보트 ‘블랙 가디언 2호’의 서치라이트가 그들을 비추었다.


“보스! 설 약사님!”


보트 난간에 매달려 있던 한도현이 다급히 구명줄을 던졌다. 도현의 빠른 대처로 이준과 유진, 그리고 먼저 구조되었던 민우가 차례로 보트 갑판 위로 끌어 올려졌다.


“콜록! 쿨럭……!”


유진은 갑판 바닥에 쓰러져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입안 가득 고여 있던 붉은 피가 바닥에 어지럽게 흩뿌려졌다. 차가운 수온과 과다한 항체 활성화의 부작용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녀의 안색은 대리석보다 더 투명하고 창백하게 질려 가고 있었다. 투명한 살결 밑으로 푸르스름한 미세 혈관들이 비쳐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 투명한 창백함과 대조적으로, 혀끝을 깨물어 흘러나온 붉은 피로 인해 그녀의 입술만은 비현실적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안색의 투명화 및 입술 상기(Translucent Pallor) 상태였다. 극독의 심연 속에서 각성한 그녀의 병약하고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서치라이트 불빛 아래에서 기괴할 정도로 영롱하게 빛났다.


“하아, 하아…….”


유진은 오한으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옆에 쓰러져 있는 민우의 손을 꼭 쥐었다. 민우의 호흡은 미약하지만 규칙적이었다. 살았다. 마침내 동생을 지옥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그때,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백이준이 유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검은 코트 깃은 물에 젖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위에는 유진이 토해낸 붉은 피 얼룩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준은 무릎을 꿇고 쓰러진 유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방금 전 심해에서 느꼈던 기적적인 소생의 감각이 여전히 폭풍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자신의 전신을 난도질하던 변이 마비 독소가 그녀의 피 한 모금에 씻은 듯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단순한 독약 제조사가 아니었다. 온갖 독에 내성이 있는 자신을 지배하고 살려낼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완벽한 해독제’이자 구원자였다.


이준의 어두운 눈동자 속에 지독하고 강박적인 소유욕이 영구히 각인되었다. 그는 유진의 창백하게 질린 뺨을 거친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손끝에 묻어나는 유진의 차가운 체온조차 그에게는 지독한 중독의 대상이었다.


구조 보트 위에서 눈을 뜬 이준은, 투명할 정도로 창백해진 유진의 안색을 바라보며 그녀가 자신에게 단순한 약사가 아닌 '유일한 생명'이자 구원자임을 영혼 깊이 각인한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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