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우리
콰과과광—!
쿠르릉거리는 굉음과 함께 컨테이너 전체가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 중력이 일순간 상실되는 아찔한 감각에 설유진은 수술대 모서리를 결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쇠사슬에 묶인 채 의식을 잃은 남동생 민우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철제 바닥 위로 거칠게 추락했다.
쿵!
귀를 찢는 듯한 금속성의 충격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청룡호의 거대한 지하 화물칸에서 분리된 컨테이너 C-12 구역이 서해 바다 한복판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사방을 메운 철갑 격벽 너머로 둔탁한 수압의 마찰음이 밀려들더니, 이내 틈새라는 틈새를 뚫고 차가운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들이치기 시작했다.
“민우야!”
유진은 비명을 지르며 수술대 위로 기어갔다. 가평 설산과 인천 창고, 그리고 조금 전 청룡호 선실에서 신경 가스를 연이어 흡입했던 폐 점막이 비명을 질렀다. 허파 깊은 곳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과 함께 지독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콜록! 윽, 흑…….”
입을 틀어막은 유진의 하얀 손등 위로 검붉은 선혈이 튀었다. 가평에서 얻은 동상과 화학 화상으로 진물이 채 마르지 않은 손가락 끝의 흉터들이 얼어붙을 듯 차가운 바닷물에 닿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뼈마디를 관통했다. 그러나 유진은 아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바닷물은 순식간에 그녀의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수술대 위에서 물을 먹으며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민우의 몸을 안아 올린 유진은 짓무른 손끝으로 동생의 팔다리를 결박하고 있는 강철 쇠사슬을 움켜쥐었다. 단단한 자물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현 씨! 열쇠가 필요해요! 닥터 첸의 품에 있을 거예요!”
유진은 물속에 완전히 잠겨 의식을 잃은 닥터 첸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수트 주머니를 다급히 뒤졌지만, 이미 거센 수류에 쓸려 내려갔는지 손끝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열쇠 확보는 실패였다.
그 사이 물은 어느덧 유진의 가슴팍까지 차올랐다. 컨테이너 내부의 공기가 급격히 압축되며 호흡이 가빠졌다.
유진은 붉게 점멸하는 비상등 불빛 아래에서 민우의 창백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독보적인 재능인 ‘즉각적 중독 판별안(Instant Diagnosis)’을 발동했다.
민우의 동공은 빛을 잃은 채 극도로 확장되어 있었고, 목덜미의 혈관들은 검푸르게 뒤틀려 터질 듯 팽창해 있었다. 심장박동 센서가 없어도 미세하게 떨리는 동생의 흉부 움직임만으로 그가 정상 수치의 수십 배에 달하는 도파민 폭풍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블루 헤븐(Blue Heaven)…….’
아수라가 유통하는 신종 마약이자, 인체 신경계를 완벽히 파괴하는 극독물. 그 치명적인 물질이 민우의 혈관 속에 강제로 주입되어 있었다. 유진의 눈동자가 절망과 분노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동시에 기이한 약학적 의문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이 정도 농도의 블루 헤븐이 주입되는 즉시 뇌사하거나 심장 마비로 사망했어야 했다. 그러나 민우의 심장은 미약하지만 끈질기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래…… 민우 역시 나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어.’
민우가 이 지옥 같은 실험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었던 진짜 이유. 그것은 가문 대대로 이어져 온 ‘선천적 독성 저항력’ 유전자가 동생의 체내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작동하여 블루 헤븐의 치사량을 필사적으로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민우야. 누나가 반드시 살릴게.”
유진은 대리석처럼 투명하고 창백하게 질린 안색 위로 붉게 상기된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그녀의 목덜미에는 백이준이 움켜쥐었던 선명한 피멍 자국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더욱 푸르게 도드라졌다.
그때, 둔탁한 금속 마찰음과 함께 물속에서 묵직한 그림자가 다가왔다. 백이준이었다.
그의 검은 코트 깃은 물속에서 어지럽게 흩날렸고, 그 위에는 유진이 흘렸던 검붉은 피 얼룩이 기괴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이준은 ‘4단계: 변이 마비 체질(Mutated)’의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얼어붙을 듯한 바닷물이 그의 척수 신경망을 얼려버리며 기저 마비 증세를 가속화하고 있었다. 사지가 단단하게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이준의 핏발 선 안구는 오직 유진만을 향해 있었다.
그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푸른 다이아몬드 위성 GPS 반지가 수중에서 차갑고 영롱한 빛을 뿜어내며 유진의 반지와 공명하듯 진동했다.
이준은 마비되어 가는 오른팔을 억지로 가동해 굳게 닫힌 컨테이너의 철문을 밀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수압으로 눌린 철문은 수중 밀폐 잠금 장치에 의해 용접된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한도현이 권총 손잡이로 유리창을 깨뜨리려 했으나, 특수 방탄 유리막은 미세한 균열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남은 산소는 단 30초 분량.
물이 유진의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 이준은 유진의 목에 남은 자신의 피멍 자국과 그녀의 투명하게 질린 얼굴을 눈에 담았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 속에서 이성을 지워버리는 파멸적인 광기와 강박적인 집착이 폭발했다.
‘이 여자를 잃을 수는 없다. 내 해독제이자, 내 유일한 소유물을 이 어두운 심해에 묻어둘 수는 없어.’
이준은 척수 신경 세포가 완전히 파괴되는 고통을 비웃듯, 체내의 변이된 세포들을 한계 이상으로 폭주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턱선과 목덜미에 검푸른 핏줄이 뱀처럼 무시무시하게 솟구쳤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일시적인 폭주력이 그의 사지에 깃들었다.
“비켜라.”
이준이 낮게 읊조리며 도현을 밀쳐냈다. 그리고 전신 신경이 타들어 가는 비명을 무시한 채, 철문의 수동 경첩 부위를 향해 온몸으로 들이받았다.
쾅—!
수중에서 발생한 거대한 충격파가 유진의 귀막을 때렸다. 철판이 기괴하게 휘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이준은 멈추지 않고, 마비로 감각이 사라진 어깨와 등줄기를 이용해 다시 한번 철문을 들이받았다.
쿠과광—!
마침내 수중 밀폐 잠금장치의 용접 부위가 찢겨 나가며 육중한 철문이 바깥쪽으로 거칠게 열렸다. 그와 동시에 컨테이너 내부에 갇혀 있던 엄청난 압력의 공기와 수류가 소용돌이치며 밖으로 뿜어져 나갔다.
이준은 마지막 남은 의식의 끈을 붙잡고, 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아 컨테이너 밖으로 밀어 올렸다. 도현이 즉각 민우의 쇠사슬을 끊어내고 소년을 받아 안았다.
“보스! 설 약사님! 잡으십시오!”
도현이 소리쳤지만, 이준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무리하게 변이 세포를 폭주시킨 대가로 그의 뇌척수 신경망이 완벽하게 가라앉아 버린 것이었다. 사지가 완전히 마비된 이준의 몸이 거품을 일으키며 어둡고 차가운 서해의 심해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유진의 손가락 끝에서 이준의 차가운 손이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갔다. 암전되는 시야 너머로 가라앉는 포식자의 눈빛이 유진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새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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