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살육장
멀어지는 청룡호의 붉은 미등이 해무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이준의 거친 손길이 유진의 어깨를 강하게 돌려세웠다.
“바다로 뛰어들 생각인가, 설유진?”
이준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서늘했고, 동시에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초조함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검은 코트 깃에는 방금 전 유진이 가스 흡입의 부작용으로 토해낸 선명한 붉은 피 얼룩이 어지럽게 묻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유진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푸른 다이아몬드 위성 GPS 추적 반지가 영롱하고 잔인한 빛을 발하며 실시간으로 그녀의 요동치는 심박수를 이준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하고 있었다.
“내 동생이…… 저 배에 타고 있어요.”
유진은 이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을 비틀었으나, 쇠사슬보다 단단한 그의 악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평 설산에서의 동상과 화학 화상으로 짓무른 그녀의 손가락 끝이 바닷바람에 스치며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뱉어냈지만, 유진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대리석처럼 투명하고 창백한 안색 위로 오직 상기된 붉은 입술만이 비정상적인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내 허락 없이 피 흘리지 말라고. 네 몸뚱이는 온전히 내 소유다, 설유진. 저 차가운 바다에 처박혀 개죽음을 당하는 것 역시 내가 허락하지 않아.”
“그럼 내 동생은요? 저 배가 공해상으로 완전히 빠져나가면 사법권이고 뭐고 아무것도 미치지 않아요! 저 잔혹한 닥터 첸의 수술대 위에서 내 동생이 해체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건가요?”
유진의 차가운 눈동자가 분노와 절망으로 타올랐다. 이준의 총구 앞에서 한 번도 흔들리지 않던 그녀의 포커페이스가 동생의 위기 앞에서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준은 유진의 눈가에 맺힌 눈물과 그녀의 목덜미에 자신이 직접 새겨놓은 선명한 시퍼런 피멍 자국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지독한 죄책감과 함께, 그녀를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강박적인 집착이 괴물의 심장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이준이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 대기하고 있던 한도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도현. 마포대교 남단 비밀 수중 도크를 즉각 가동해라. 전술 고속 보트 ‘블랙 가디언 2호’를 출항시킨다.”
도현이 고개를 숙이며 단호하게 답했다.
“예, 보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
마포대교 남단, 한강 고수부지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 수중 도크. 골든 크라운이 비공식 자금 수송과 비상 탈출을 위해 구축한 이 초법적인 수중 기지에서, 육중한 철갑 해치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기괴한 엔진 기계음과 함께 검은색 탄소 섬유로 특수 제작된 전술 보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민간 레이더망을 완벽히 교란하고 우회할 수 있는 군용 스텔스 설계가 적용된 함정이었다.
“가자.”
이준이 유진의 허리를 꽉 움켜쥔 채 보트 내부로 이끌었다. 전술 운전사 최강일이 이미 조타석에 앉아 키를 쥐고 있었다.
“최강일, 전속력으로 서해 공해상을 향해 기동해라. 해경의 레이더망은 무시한다.”
“예, 보스.”
블랙 가디언 2호가 한강의 거센 물살을 가르며 수중 통로를 빠져나가는 순간, 유진은 선실 바닥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가평에서부터 시작된 독성 누적 손상으로 인해 허파 깊은 곳에서부터 쌕쌕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지독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콜록! 윽…….”
유진이 손등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하얀 손등 위로 다시 한번 붉은 선혈이 베어 나왔다. 폐 점막이 신경 가스에 의해 미세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 징후였다.
“설유진!”
이준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유진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 안으며 강박적으로 체온을 나누려 했다. 그의 눈동자는 붉은 핏발로 가득 차 있었다.
“손대지 마세요…… 지금 약을 만들어야 해요.”
유진은 이준의 손을 밀쳐내며 선실 테이블 위에 가방을 쏟아부었다. 가평의 험준한 벼랑 끝에서 목숨 걸고 채취해 온 야생 오렐리아의 종자병과, 동대문 밀수 연합 윤성필을 통해 입수했던 만년설 산삼 추출액(Alpine Ginseng Extract)의 푸른 약병이 굴러 나왔.
‘아수라의 청룡호에는 백현우가 설계한 변종 마비 가스나 화학 무기가 도사리고 있을 게 분명해. 내 항체만으로는 도현 씨와 경호원들을 전부 지킬 수 없어. 배 위에서 즉석으로 해독제를 정제해야만 해.’
유진은 보트가 파도에 격렬하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정밀 화학 기기 분석 장비 대신 간이 원심분리기를 고정하고 약재 배합을 시작했다.
동상으로 감각이 죽어버린 손가락 끝이 유리 플라스크를 쥘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지만, 그녀는 탄소 고리 구조를 머릿속으로 조립하며 0.01mg 단위의 정밀한 조율을 멈추지 않았다. 만년설 산삼의 극양(極陽) 성분이 오렐리아의 치명적인 독성을 완벽히 제어하여, 복용자의 오장육부를 보호하는 해독 조절제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준은 그런 유진의 모습을 미라를 보듯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동생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신체를 갉아먹으며 지옥의 독약을 다루는 여자. 그녀의 위태로운 병약미와 지독한 집념이 이준의 영혼을 완벽하게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때, 조타실에서 최강일의 긴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보스! 전방 2km 지점에 해경의 무선 감시 레이더 경보가 감지되었습니다! 이대로 진행하면 나포당합니다!”
이준은 유진의 어깨를 꽉 쥔 채 위성 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단축 다이얼을 눌렀다. 정계의 거물, 권 의원과의 핫라인이었다.
“권 의원님. 백이준입니다. 지금 서해 공해상 제3구역으로 향하는 해경 순찰선들의 항로를 즉각 15분간 우회시키십시오. 제 전담 약사가 탄 배가 지나가야 합니다. 거절하신다면, 지난달 이사회에서 확보한 의원님의 비자금 세탁 장부 원본이 내일 아침 언론사에 배포될 겁니다.”
차가운 협박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시 후, 거짓말처럼 해경 순찰선의 레이더 신호가 멀어지며 항로가 변경되었다. 권력마저 매수하고 짓밟는 골든 크라운 보스의 초법적인 힘이었다.
“청룡호가 보입니다!”
도현이 어둠 속에서 해상 망원경을 들고 소리쳤. 저 멀리, 거친 파도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서해 공해상 한복판에 아수라의 밀항선 청룡호가 거대한 유령처럼 떠 있었다.
타아앙! 타타타탕—!
블랙 가디언 2호가 청룡호의 선미에 접근하자마자, 선상에 대기하고 있던 선장 황필두의 무장 선원들이 일제히 기관총 사격을 가해왔다. 빗발치는 총탄이 보트의 탄소 장갑판을 타격하며 귀를 찢는 파열음을 냈다. 보트의 유리창이 깨져 나가며 차가운 바닷물과 비바람이 내부로 들이쳤다.
“도현!”
이준의 나지막한 명령에, 도현은 이미 준비해 둔 글록 권총을 고쳐 쥐었다. 탄창 내부에는 유진이 가평에서 획득한 특수 독소 지식을 응용해 제작한 ‘산성 독소 탄환’이 장전되어 있었다.
도현은 깨진 보트 창문 틈새로 상체를 내밀어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도 청룡호의 조타실을 조준했다.
탕—!
예리한 격발음과 함께 날아간 탄환이 청룡호 조타실의 강화 유리를 관통해 내부에서 폭발했다. 탄두가 깨지며 유진이 정제한 고농도 산성 독소 가스가 조타실 내부로 급격히 살포되었다.
“으, 으윽……!”
키를 쥐고 있던 선장 황필두는 가스를 흡입하자마자 전신 신경이 마비되어 단 3초 만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조타수를 잃은 청룡호가 중심을 잃고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침투한다!”
이준이 무광 흑색의 단도를 품에서 꺼내 들며 선두로 나섰다. 골든 크라운의 최정예 요원들이 와이어 갈고리를 청룡호의 난간에 걸고 폭풍우 치는 바다 위를 날아 선상으로 침투했다.
서해의 거친 파도 위에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시작되었다. 이준의 단도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반사하지 않은 채 적들의 목덜미를 정확히 그어 넘겼고, 도현의 사격은 오차 없이 적들의 심장을 관통했다.
요원들이 선상을 완전히 장악해 나가는 사이, 유진은 홀로 젖은 드레스 자락을 움켜잡고 피비린내 나는 복도를 지나 지하 화물칸으로 향하는 철제 계단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갔.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 중으로 기이한 화학 물질의 냄새가 풍겨왔다. 유진의 초감각적 독소 후각이 즉각적으로 그 성분을 판별해 냈다.
‘이 냄새는…… 특수 실리콘 폴리머(PDMS)와 장기 보존용 화학 시약의 냄새다. 박만수가 보냈던 그 가짜 손가락에 묻어 있던 성분과 완벽히 일치해!’
그것은 닥터 첸이 인질들의 장기를 적출하기 위해 불법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특수 약품의 냄새였다. 유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동생 민우가 이 지하 어딘가에 갇혀 장기 적출의 칼날 아래 신음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유진은 녹슨 철문을 거칠게 밀어젖혔다.
방 안은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정체 모를 수술 장비들과 피 묻은 가운들이 널려 있는 음산한 수술실이었다. 그리고 방 중앙의 수술대 위, 쇠사슬에 묶인 채 초췌하고 창백한 몰골로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미소년이 보였다.
“민우야……!”
유진이 비명을 지르며 다가가려던 찰나, 수술대 뒤편의 어둠 속에서 마른 체구의 사내가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피가 묻은 녹색 수술 가운을 입고 살벌한 눈빛을 한 사내, 장기 밀매 브로커 닥터 첸이었다.
서걱—.
닥터 첸은 유진이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오른손에 쥔 예리한 수술용 메스를 민우의 목덜미 경동맥 위에 바짝 밀착시켰. 메스의 날카로운 끝이 민우의 하얀 살결을 파고들어 한 줄기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한 발짝이라도 더 움직이면, 이 꼬맹이의 경동맥을 그대로 그어버리겠다.”
닥터 첸의 음산한 목소리가 차가운 수술실 내부를 얼려버렸다. 유진은 그 자리에서 온몸의 피가 빙결되는 듯한 공포 속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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