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에서 빚어낸 호흡
가스로 가득 찬 어둠 속에서, 이준의 굳어버린 손가락이 유진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움켜쥐었다.
“윽……!”
유진은 비명을 삼켰다. 이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악력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짐승의 그것과 같았다. 전신이 마비되어 가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존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유진의 손목뼈를 부술 기세로 움켜쥐고 있었다. 뼈가 맞부딪히는 극심한 통증이 팔을 타고 뇌리로 치솟았지만,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아냈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번득이는 이준의 충혈된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피시식—!
천장의 고압 환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색무취의 안개가 창고 내부의 시린 푸른 조명 아래로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일반적인 인간의 감각으로는 그저 차가운 수증기라 여겼을 터였다. 하지만 유진은 달랐다. 대대로 희귀 약초와 독물을 연구해 온 가문의 핏줄이자, 0.01%의 화학 물질마저 식별해 내는 그녀의 초감각적 독소 후각이 가동되었다.
공기 중을 표류하는 미세한 입자들 사이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구리 향과 씁쓸한 아몬드 향이 유진의 비강을 날카롭게 찔렀다.
‘이건…… 백현우가 설계한 지한성 신경마비 독소의 기화 변종이다.’
아수라의 천재 화학자가 오직 백이준의 변이 체질을 저격하기 위해 정밀 합성한 생화학 무기였다. 일반 방독면 필터조차 우회하여 세포막을 직접 파괴하는 맹독. 가스가 폐부 깊숙이 밀려들자 유진의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허파가 쪼그라들고 호흡이 가빠오는 극심한 압박감 속에서, 유진의 신체 내부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진의 혈관 속에는 대대로 이어져 온 선천적 독성 저항력이 흐르고 있었다. 치명적인 마비 독소가 침투하는 즉시, 그녀의 특이 면역 유전자가 자극받아 림프구에서 초고속 해독 항체를 방출했다. 체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면역 반응으로 인해 유진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피부는 마치 대리석 조각처럼 하얗고 투명하게 변해갔고, 그 위로 푸르스름한 미세 혈관들이 비쳐 보였다. 반면, 급격한 혈류 이동으로 인해 그녀의 입술만은 금방이라도 피를 뿜어낼 듯 붉게 상기되었다. 안색의 투명화 및 입술 상기. 극독 속에서만 발현되는 그녀의 퇴폐적이고 병약한 아름다움이 어둠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스! 셔터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수동으로 용접을 한 뒤 제어 회로를 완전히 태워버린 것 같습니다!”
셔터 앞에서 사투를 벌이던 한도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해무와 가스 속을 뚫고 들려왔다. 도현의 이마에서도 식은땀이 흘러내려 눈가를 적셨다. 글록 권총의 총열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보강된 군용 장갑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유진은 차오르는 가스 속에서 침착하게 형세를 계산했다. 이대로 3분만 지나면 이준의 호흡 근육이 완전히 마비되어 심정지가 올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먼저 목에 걸린 은제 안개 분무기 펜던트를 쥐었다. 하단의 톱니바퀴를 돌려 비상 해독 안개를 분사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맑은 해독 가스가 이준과 유진의 주변을 감쌌다. 그러나 창고는 지나치게 넓었고,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의 양은 압도적이었다. 국소적인 해독 안개는 채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공기 중으로 흩어져 무력화되었다.
‘물리적인 정화로는 안 돼. 이준 씨의 체내에서 일어나는 독성 반응을 직접 제어해야만 해.’
유진은 떨리는 오른손을 움직여 백가운 왼쪽 안감 깊숙한 곳을 더듬었다. 손끝에 닿는 가죽 침통의 묵직한 감각. 그녀는 침통을 열고 3인치 크기의 예리한 은침들을 꺼내 들었다. 전통 침구 기혈 조율술. 서양 의학의 약물 투여가 통하지 않는 변이 체질의 이준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한방적 비책이자 가문의 황실 비전 침법이었다.
“이준 씨, 내 목소리 들려요? 정신 차려요.”
유진은 마비로 인해 안구가 붉게 충혈되고 동공이 풀려가는 이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의 턱선과 목덜미에는 검푸른 혈관들이 뱀처럼 솟구쳐 기괴하게 역류하고 있었다. 혈관 역류 및 안구 충혈. 뇌로 향하는 혈류가 막혀 산소 공급이 중단되기 일보 직전의 위험한 상태였다.
이준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유진의 창백한 얼굴을 눈에 담았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극독이 가득한 지옥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 여자. 그녀의 투명한 피부 위로 흘러내리는 미세한 땀방울과 붉은 입술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죽음의 문턱에서 이준이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자신을 살려내려는 그녀의 지독한 집념에서 오는 파멸적이고 강박적인 구원감이었다.
“도망…… 치지 마라, 설유진.”
이준이 목구멍을 긁는 듯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유진의 손목을 움켜쥔 채 미세하게 떨렸다.
“안 도망쳐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요.”
유진은 차가운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이준의 목덜미 뒤편,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경계에 위치한 아문혈(아문혈)을 정확히 찾아냈다. 어둠과 가스로 인해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었지만, 그녀의 초감각적인 손끝은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경혈을 짚어냈다.
스윽—.
예리한 은침이 이준의 아문혈을 뚫고 깊숙이 자침되었다. 침끝이 척수 신경망의 핵심 경로를 관통하는 순간, 이준의 거구의 신체가 크게 들썩이며 발작적인 경련을 일으켰다. 유진의 손목을 쥔 그의 악력이 더욱 강해져 손목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지만, 유진은 비명 대신 이를 악물었다.
“도현 씨! 1분만 버텨줘요! 외벽에 설치된 고압 가스 배관을 찾아봐요! 거길 터뜨려야 벽을 무너뜨릴 수 있어요!”
유진이 소리치며 이준의 가슴 중앙, 폭주하는 심장박동의 중심인 전중혈(전중혈)에 두 번째 은침을 깊숙이 꽂아 넣었다. 침끝을 타고 미세한 기류가 흘러들어 가며 이준의 막힌 기경팔맥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기적처럼 이준의 목덜미에 솟구쳤던 검푸른 혈관들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터질 듯 날뛰던 그의 심장박동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제자리를 찾았고, 막혀 있던 기도가 열리며 미약한 호흡이 그의 가슴팍을 다시 들썩이게 만들었다.
“하아…… 윽!”
하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이준을 살려내기 위해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동안, 유진의 폐부 깊숙이 침투한 미세 가스가 그녀의 약해진 점막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유진의 가슴이 거칠게 들썩이더니, 이내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
울컥—.
쏟아진 피가 그녀의 투명하고 창백한 턱선을 타고 흘러내려 이준의 검은 코트 깃을 붉게 물들였다. 폐 점막의 미세 손상이 누적되며 유진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시야가 붉게 점멸하며 쓰러지려던 찰나, 이준이 마비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무거운 팔을 움직여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꽉 움켜잡았다.
“설유진……!”
이준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 미칠 듯한 죄책감과 폭발적인 분노가 소용돌이쳤. 자신을 살리기 위해 피를 흘리는 여자를 바라보는 괴물의 심장이 사정없이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그 순간, 창고 외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앙—!
도현이 창고 외벽에 설치된 고압 가스 배관을 찾아내 전술 폭약으로 터뜨린 것이었다. 엄청난 폭발력과 함께 콘크리트 외벽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그 틈새로 차가운 인천항의 바닷바람과 해무가 폭풍처럼 들이닥쳤. 자욱했던 신경 가스가 바람에 휩쓸려 빠르게 정화되기 시작했다.
“보스! 설 약사님! 이쪽입니다!”
도현이 먼지 구덩이를 뚫고 달려와 쓰러진 두 사람을 엄호했다. 유진은 각혈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마비 증세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이준의 몸을 부축했다. 도현이 이준의 반대쪽 어깨를 메어주며 세 사람은 무너진 외벽의 틈새를 통해 사선을 탈출했다.
차가운 밤바다의 공기가 유진의 뺨을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드는 차가움 속에서, 유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본능적으로 항구의 선착장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짙은 해무가 깔린 수평선 너머로 육중한 철제 선박 한 척이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밀항선 청룡호였다.
그 배의 차가운 지하 화물칸에는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 설민우가 장기 적출의 칼날 아래 갇힌 채 어둠 속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 멀어져 가는 배의 붉은 미등을 바라보는 순간, 유진의 심장이 산산조각이 나는 듯한 절망감이 그녀의 온몸을 지배했다.
“민우야……!”
유진은 멀어져 가는 배를 향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바다를 향해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쇠약해진 몸은 차가운 항구의 아스팔트 바닥 위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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