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창고의 심장박동
째깍, 째깍, 째깍…….
붉은 컨테이너의 녹슨 철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기괴한 초침 소리가 인천항의 짙은 해무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녹슨 철가루 냄새가 섞인 공기는 유진의 예민한 비강을 사정없이 찔렀다. 유진은 침을 삼켰다. 가운 안감 비밀 주머니에 숨겨진 최이사의 보안 태블릿 PC가 그녀의 옆구리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다. 그 안에는 분명 동생 설민우가 이곳 C-12 구역에 갇혀 있다는 데이터가 선명히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정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도현 씨, 문을 열어줘요.”
유진의 창백한 안색 위로 차가운 이성이 빛났다. 목덜미에 남아 있는 백이준의 선명한 피멍 자국이 욱신거렸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푸른 다이아몬드 위성 GPS 반지가 해무 속에서 파르스름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도현이 굳은 표정으로 이준의 수신호를 확인한 뒤, 붉은 컨테이너의 빗장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콰르릉, 하는 무거운 철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동생의 이름을 부르려 입술을 뗐으나, 이내 말을 잃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철문 너머로 드러난 것은 동생 민우가 아니었다.
어두운 컨테이너 내부를 비추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수술용 무영등의 시린 푸른빛이었다. 그 차가운 조명 아래, 녹이 슬고 검붉은 피가 눌러붙은 철제 수술대와 가죽 구속구들이 기괴한 자태로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녹슨 메스와 집게, 그리고 정체불명의 마취 약병들이 쓸모없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아시아 최대의 장기 밀매 브로커이자 아수라 조직의 잔혹한 해결사인 닥터 첸의 불법 수술실이었다.
“민우가…… 없어.”
유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손가락 끝에 새겨진 가평 설산의 동상 흔적이 갑작스러운 절망감에 타들어 가듯 아파왔다. 동생이 이미 장기 적출의 희생양이 된 것일까. 극도의 공포가 그녀의 심장을 옥죄려던 찰나, 이준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뒤에서 거칠게 잡아끌어 자신의 단단한 가슴팍에 밀착시켰다.
“정신 차려, 설유진.”
이준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유진의 귀밑을 울렸다. 그의 충혈된 눈동자가 수술대 구석에 놓인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지익, 지지직—.
정적을 깨고 모니터 화면이 노이즈와 함께 켜졌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뺨에 깊은 칼자국이 새겨진 험악한 인상의 사내였다. 아수라의 행동대장, 박만수였다. 그는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화면 너머의 유진을 바라보았다.
“설유진 약사님, 오랜만이네. 설마 그 괴물 놈을 살려내서 여기까지 직접 기어들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박만수가 낄낄거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동생 녀석을 찾으러 온 모양인데, 한 발 늦었어. 그 꼬맹이는 방금 닥터 첸의 수술선이자 공해상으로 출발하는 밀항선 ‘청룡호’의 지하 화물칸에 예쁘게 포장되어 실렸거든. 3분 뒤면 그 배는 대한민국의 영해를 벗어날 거고, 그 녀석의 몸뚱이는 전 세계 부자들의 장기 이식 대기 장부 위로 흩어지겠지.”
“박만수……!”
유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대리석처럼 투명하던 그녀의 뺨이 분노로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백이준 보스님.”
박만수의 시선이 유진의 뒤에 서 있는 이준을 향했다. 그의 미소에 잔혹한 광기가 서렸다.
“우리 보스 한태성 회장님께서 전하는 선물이다. 그 귀한 약사 년과 함께 지옥으로 꺼져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니터 화면이 검게 꺼졌다. 동시에 창고 천장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울렸다.
쿵—! 쾅—!
창고 내부의 모든 비상 철제 셔터가 사정없이 내려앉으며 유일한 출구들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거대한 창고 전체가 순식간에 빛 한 점 통하지 않는 거대한 강철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피시식—!
천장의 고압 환기구에서 무색무취의 미세한 마비 가스가 고압 분사되기 시작했다.
도현이 반사적으로 글록 권총을 뽑아 철제 셔터의 이음새를 향해 연사했다. 타앙! 타앙!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했으나, 셔터는 군용 장갑판으로 보강된 특수 강철이었다. 총탄은 찌그러진 흔적만 남긴 채 튕겨 나갔다.
“보스! 셔터가 수동으로 용접 보강되어 있습니다! 권총 사격이나 일반 전술 폭약으로는 뚫리지 않습니다!”
도현이 다급히 소리쳤다.
공기 중으로 급격히 퍼져나가는 가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감지조차 못 했을 무색무취의 안개였지만, 유진의 초감각적 독소 후각은 그 치명적인 분자 구조를 즉각 식별해 냈다.
‘이 냄새는…… 타들어 가는 듯한 구리와 아몬드 향. 아수라의 천재 화학자 백현우가 설계한 지한성 신경마비 독소의 기화 변종이다!’
일반 방독면 필터로는 걸러지지 않는 미승인 생화학 가스였다. 유진은 자신의 선천적 독성 저항력 덕분에 가벼운 호흡기 통증만을 느끼며 버턺 수 있었지만, 옆에 선 이준은 달랐다.
“으윽……!”
이준이 짐승 같은 신음을 토해내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변이 마비 체질이 공기 중의 가스를 흡입하자마자 체내에 잔류하던 독소와 최악의 연쇄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유진이 고개를 돌려 이준의 상태를 확인한 순간, 그녀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이준의 목덜미와 턱선에 검푸른 혈관이 역류하듯 기괴하게 솟구치고 있었고, 그의 하얀 안구는 붉은 실핏줄로 가득 차올라 충혈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혈관 역류 및 안구 충혈(Vascular Reflux) 증세였다. 척수 신경망에서 시작된 마비가 그의 온몸을 굳혀가고 있었다.
“백이준 씨!”
유진은 쓰러지는 이준의 거대한 신체를 온몸으로 받아 안으며 바닥으로 함께 주저앉았다. 이준의 단단한 손가락이 발작적으로 유진의 손목을 으스러질 듯 움켜쥐었다. 그 강박적인 손길은 고통 속에서도 그녀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지독한 소유욕의 발현이었다.
째깍, 째깍, 째깍…….
어둠이 내린 밀폐된 유령 창고 안, 가스를 마시고 전신이 굳어가는 백이준을 안아 든 유진의 눈동자가 차가운 슬픔과 이성으로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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