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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첫 번째 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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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각.


마침내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문고리가 아래로 완전히 내려앉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설유진은 침대 옆에 선 채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속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지만,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미동조차 없었다. 지금 그녀를 지탱하는 것은 오직 하나, 어떤 순간에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지독한 이성이었다.


끼이익—


무거운 목조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틈 사이로 들이닥친 것은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그보다 더 짙고 무거운 살기였다. 유진의 코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저 복도에서부터 은밀하게 풍겨오던 그 냄새가 한층 더 강렬하게 방 안을 채웠다.


타들어 가는 구리와 달콤한 아몬드의 향.


유진의 초감각적 독소 후각이 뇌리를 찌르는 경고음을 울렸다. 지한성 신경마비 독소였다. 체내에서 끊임없이 자가 증식하며 신경망을 괴사시키는 끔찍한 변이 독물. 그리고 그 독기를 온몸으로 뿜어내며 문턱을 넘어선 남자의 형체가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백이준이었다.


그는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머리칼을 흐트러뜨린 채, 한쪽 어깨를 문틀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큰 체구가 기이할 정도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유진은 즉각적 중독 판별안을 작동해 그의 신체 상태를 훑어내렸다.


‘안구 충혈, 목덜미와 이마의 핏줄이 검푸르게 솟구치는 혈관 역류 현상. 동공은 풀려 있고 호흡 템포는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발작 임계점이다.’


“네놈인가.”


이준의 목소리는 갈라진 쇳소리 같았다. 인간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상처 입은 맹수의 으르렁거림에 가까웠다. 그가 고개를 들어 유진을 바라보았다. 핏빛으로 붉게 물든 안구가 섬뜩한 광기를 발하고 있었다.


“아수라가 새로 보낸 쥐새끼가…….”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의 몸이 앞으로 무너질 듯 쏠렸다. 하지만 그것은 쓰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폭주하는 살기를 머금은 기습이었다.


쾅!


찰나의 순간, 유진의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차가운 벽면에 거칠게 밀어붙여져 있었다. 등 뒤로 가해진 충격에 척추를 타고 찌릿한 통증이 달렸지만, 신음조차 낼 수 없었다. 이준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가녀린 목덜미를 움켜쥐고 단단히 조여왔기 때문이었다.


“컥……!”


목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에 산소가 단숨에 차단되었다. 유진의 발끝이 바닥에서 미세하게 떴다. 눈앞이 번쩍이며 생리적인 눈물이 고이려 했다. 하지만 유진은 억지로 눈을 크게 뜨며 이준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성북동 사저 생존 수칙 제1조. 백이준과 독대할 때는 절대 눈빛을 흐리거나 피하지 말 것. 그의 광기 어린 의심에는 감정이 아닌 철저한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


그녀는 질식해 가는 와중에도 차갑고 단단한 눈빛으로 이준의 충혈된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 눈빛에 이준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눈빛이 마음에 안 드는군. 겁에 질려 구걸해야 할 첩자 년이, 감히 누구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그가 다른 한 손으로 품속에서 흑철 단도를 꺼내 유진의 목덜미에 차갑게 날을 밀착시켰다. 예리한 칼날이 하얀 살결을 파고들어 미세한 핏방울이 맺혔다. 당장이라도 힘을 주면 경동맥이 끊어질 터였다.


말을 해야 했다. 하지만 목이 조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유진은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이준의 손목 신경을 관찰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마비되어 굳어가고 있었다. 척수 신경망의 마비가 손끝까지 전이된 것이다. 이대로 놔두면 그는 극심한 통증 끝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할 것이 분명했다.


유진은 남은 힘을 쥐어짜 내어 이준의 손목 위, 맥박이 뛰는 부위를 손가락 끝으로 강하게 눌렀다. 가벼운 압박이었지만,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이준의 몸이 크게 굳었다.


“……무슨 짓이냐.”


“당신…… 죽어.”


유진이 막힌 목구멍을 찢고 간신히 소리를 내뱉었다. 단어 하나를 뱉을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일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뇌척수 신경망…… 마비가 시작됐어. 앞으로 3분…… 기도가 막히면, 당신 심장이 먼저 멈춰.”


이준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이내 더 잔혹한 광기로 덮였다.


“내가 죽기 전에, 네년 목을 먼저 꺾어놓으면 그만이다.”


그가 칼날에 힘을 주려 했다. 유진은 더 이상 말로 설득하는 것은 시간낭비임을 깨달았다. 이성을 상실한 괴물에게는 물리적인 제어가 유일한 해독제였다.


유진은 소매 안쪽 깊숙이 숨겨두었던 삼인치 크기의 은침을 손바닥 안으로 미끄러뜨렸다. 외조부와 차이나타운의 마스터 오에게 전수받은 전통 침구 기혈 조율술의 비기였다. 그녀는 숨을 멈춘 채, 이준이 칼날을 누르는 찰나의 반사적인 빈틈을 노렸다.


스윽—


유진이 고개를 미세하게 비틀어 칼날의 치명적인 궤적을 피함과 동시에, 오른손에 쥔 은침을 이준의 목덜미 깊숙한 곳으로 찔러 넣었다.


정확히 아문혈(啞門穴)이었다.


“윽……!”


이준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전신이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일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기혈의 흐름이 강제로 차단되면서, 그의 손아귀에 실렸던 무시무시한 악력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툭.


유진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벽을 짚고 주저앉아 격렬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콜록! 쿨럭…… 하아, 하아!”


차가운 공기가 기도로 들이닥치며 폐가 비명을 질렀다. 목덜미에는 이준의 손자국이 시퍼런 피멍으로 새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은 쉴 틈이 없었다. 아문혈 자침으로 이준의 몸을 일시적으로 묶어두었을 뿐, 그의 체내에서 날뛰는 변이 독소의 폭주를 막은 것은 아니었다.


이준은 사지가 마비된 채 벽에 기대어 서서, 핏발 선 눈으로 유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목덜미와 이마의 혈관들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네년이…… 감히 내 몸에…… 무슨 짓을…….”


“움직이지 마세요. 침이 어긋나면 정말로 전신이 마비됩니다.”


유진은 차갑게 쏘아붙이며 침대 옆 가방으로 기어갔다. 그녀의 손끝이 떨렸지만, 머릿속 계산은 오차 없이 정밀하게 굴러갔다. 가방 안쪽 비밀 칸에서 그녀가 꺼낸 것은 정제 백금 앰플이었다. 그 내부에는 푸른빛을 발하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오렐리아의 숨결 추출물.


유진은 앰플의 밀봉을 깨뜨리고, 방 안에 비치되어 있던 간이 기화기 장치에 액체를 주입했다. 곧이어 기화기 노즐을 통해 은은하고 매혹적인 푸른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청량하면서도 어딘가 차가운 약초의 향이 방 안의 무거운 독기를 빠르게 정화해 나갔다.


“마셔요.”


유진이 기화기를 이준의 얼굴 앞으로 밀어붙였다.


“이 향을 깊이 들이마시지 않으면, 당신 뇌세포는 1분 안에 영구적으로 손상됩니다. 살고 싶다면 내 말을 들으세요.”


이준은 짐승 같은 눈빛으로 유진을 노려보았지만, 기화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안개가 호흡기로 스며들자 그의 신체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타들어 가던 신경망에 차가운 얼음물이 흐르는 듯한 감각. 극심한 통증으로 으스러지던 뼈마디가 서서히 이완되는 것을 느끼며, 이준은 거친 숨과 함께 푸른 안개를 깊이 들이마셨다.


스으읍…….


몇 차례 깊은 호흡이 이어졌다. 침실을 채운 은은한 약초 향 속에서, 이준의 턱선과 목덜미에 기괴하게 솟구쳤던 검푸른 혈관들이 서서히 피부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안구를 가득 채웠던 붉은 핏발도 점차 옅어지며 풀렸던 동공이 초점을 되찾아갔다.


“하아…… 하아…….”


이준의 호흡이 마침내 정상적인 궤도를 찾았다. 전신의 근육 강직이 풀리자, 그는 천천히 벽을 짚고 몸을 바로 세웠다. 목덜미에 꽂힌 은침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유진은 그제야 긴장으로 굳었던 어깨를 조금 내렸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목덜미의 손자국 흉터는 붉게 부어올라 쓰라린 통증을 유발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눈동자만큼은 여전히 차갑고 흔들림이 없었다.


정적이 방 안을 지배했다. 오직 기화기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안개만이 두 사람의 사이를 몽환적으로 메울 뿐이었다.


이준이 천천히 손을 올려 자신의 목덜미에 꽂힌 은침을 뽑아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은의 감각을 느끼며, 그가 유진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발작이 가라앉은 그의 눈빛은 아까의 광기 어린 짐승의 그것이 아니었다. 깊고, 어두우며, 꿰뚫어 볼 듯 날카로운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그가 유진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유진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이준의 시선이 유진의 창백한 얼굴을 지나, 자신이 직접 새겨놓은 목덜미의 시퍼런 손자국 흉터로 향했다. 하얀 살결 대비 선명하게 남은 핏빛 자국. 그리고 그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핏방울.


그 기이하고 퇴폐적인 대비를 바라보는 이준의 눈동자에 묘한 전율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지독한 발작을 단숨에 가라앉힌 이 약초 향의 정체와,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눈빛 하나 흐리지 않던 이 가녀린 여자의 존재가 그의 차가운 심장에 기묘한 낙인으로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설유진.”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유진의 귓가를 울렸다.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준이 손을 뻗어 유진의 상처 입은 목덜미를 거칠게, 그러나 어딘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미세한 맥박 소리가 그의 전신을 다시 한번 기묘하게 흔들어 놓았다.


“이제 내 허락 없이는 이 저택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네놈의 그 쓸모 있는 손놀림이 내 것이 되었으니까.”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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