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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들의 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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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준의 차가운 보석 목걸이가 목덜미의 피멍 위로 닿는 순간, 유진의 검은 눈동자가 사막의 안개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이아몬드의 서늘한 촉감이 살갗을 자극했지만, 유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차가움을 이정표 삼아 머릿속의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돈했다. 오늘 밤, 이곳 강남 클럽 헤븐 VIP룸은 화려한 가면을 쓴 포식자들의 사냥터이자, 최이사의 목줄을 쥘 비밀 장부를 탈취할 단 하나의 전장(戰場)이었다.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유진.”


이준의 나지막한 경고가 귓가를 스쳤다. 유진은 묵묵히 그의 팔짱을 낀 채 VIP룸의 메인 홀로 걸음을 옮겼다. 사방을 장식한 거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부서지는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클래식 가면에 가려진 정재계 거물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 정확히는, 백이준의 곁에 선 유진의 기이하고 매혹적인 비주얼에 고정되었다.


등 라인이 과감하게 파인 검은 실크 드레스는 유진의 대리석처럼 투명하고 창백한 피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얀 등줄기와 목덜미 위에는 백이준이 폭주하며 움켜쥐었던 자줏빛 손자국 피멍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교계의 하이에나들은 그 낙인을 보며 숨을 죽였다. 그것은 백이준의 광기 어린 소유욕의 증거이자, 이 창백한 약사가 보스의 유일한 약점임을 증명하는 시각적 표식이었다.


유진의 왼손 약지에는 푸른 다이아몬드가 박힌 위성 GPS 반지가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고, 오른손 검지에는 골든 크라운의 보스 전권을 대행하는 백금 인장 반지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가평의 설산에서 야생 오렐리아를 채취하느라 생긴 손가락 끝의 동상과 화학 화상 흉터가 루비의 붉은빛과 대조를 이루며 기묘한 퇴폐미를 풍겼다.


“어머, 이준 씨. 옆에 계신 분이 사저에 새로 들어왔다는 그 가녀린 약사님인가요?”


그때, 홀의 중앙에서 우아하게 샴페인 잔을 든 여자가 다가왔다. 사교계의 천재 조향사로 알려진 서예지였다. 그녀는 최이사 파벌의 비공식 첩자이자, 오랫동안 이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을 들여온 인물이었다. 예지의 몸에서는 남성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최고급 ‘골드 앰버 향수’의 진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유진의 초감각적 독소 후각이 즉각 작동했다. 예지의 향수 속에 섞인 미세한 성분들이 비강을 타고 뇌신경으로 전달되는 순간, 유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디에틸 프탈레이트, 인공 페로몬 유도체…… 그리고 아수라 조직의 신종 마약 블루 헤븐의 전구체인 아민 계열 합성 물질.’


예지는 유진의 창백한 안색을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비틀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슬며시 정재계 부인들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안산 외곽의 작고 낡은 사설 보육원 ‘푸른 둥지’의 전경과 함께, 유진이 대학을 중퇴하고 약초학을 뒤쫓던 초라한 과거 기록들이 띄워져 있었다.


“신 여사님이 운영하는 허름한 보육원 출신에, 대학조차 끝마치지 못한 중퇴자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격식 있는 자리에 골든 크라운의 파트너로 서게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사교계의 품격이 언제부터 이렇게 낮아졌는지.”


예지의 오만한 목소리가 주위의 속삭임을 타고 퍼져나갔다. 정재계 부인들이 부채로 입을 가리며 유진을 경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최이사는 멀찍이서 그 광경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독한 시가를 입에 물었다. 유진을 고아 출신의 천박한 사기꾼으로 몰아세워 이준의 신뢰를 무너뜨리려는 정교한 언어적 테러였다.


하지만 유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 끝이 차갑게 말려 올라갔다. 안색의 투명화 및 입술 상기 비주얼이 조명 아래서 더욱 돋보였다. 유진은 예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가녀린 실루엣 속에 감춰진 6단계 약리학적 절대 지배자의 카리스마가 예지의 오만한 기세를 단숨에 짓눌렀다.


“서예지 씨. 사교계의 천재 조향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조잡한 배합이군요.”


유진의 차분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음악 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울렸다.


“당신이 뿌린 그 골드 앰버 향수, 겉보기엔 우아한 천연 아로마 같지만 본질은 화학적 결함투성이입니다. 디에틸 프탈레이트의 과도한 사용으로 호흡기 점막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이성을 흐리기 위해 주입한 인공 페로몬 유도체는 장시간 흡입 시 뇌의 전두엽 신경을 손상시켜 만성 두통과 불면증을 유발하죠. 특히……”


유진은 예지의 턱밑까지 다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응시했다. 예지의 피부에 미세한 붉은 반점들이 돋아나 있는 것을 즉각적 중독 판별안으로 포착한 것이다.


“향수 베이스에 섞인 미량의 아민 계열 화합물은 아시아 최대 신디케이트 ‘아수라’가 유통하는 환각 물질의 원료입니다. 당신의 몸에 돋아난 그 미세한 발진들이 바로 그 독성에 중독되고 있다는 증거죠. 사교계의 명사들에게 마약 전구체가 섞인 독극물을 향수랍시고 뿌려대다니,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사교계의 품격입니까?”


“뭐, 뭐라고요? 마약이라니, 그게 무슨……!”


예지가 경악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정재계 부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예지로부터 서둘러 두세 걸음씩 멀어졌다. 향수를 뿌린 부인들이 자신의 목덜미를 만지며 하얗게 질려갔다.


“이준 씨! 저 여자가 날 모함하고 있어요! 제 향수는 완벽해요!”


예지가 절박하게 이준을 바라보았으나, 이준의 얼굴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이준의 예민한 신경망은 이미 유진의 오렐리아 향기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예지의 향수 냄새에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약사의 진단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서예지.”


이준이 유진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기며 살기 어린 눈빛으로 예지를 쏘아보았다.


“더럽고 조잡한 냄새를 풍기며 내 눈앞에 서 있지 마라. 한 번만 더 내 구역에 독극물을 들여온다면, 그 손가락들을 부러뜨려 지하실 소각장에 던져버리겠다. 꺼져.”


이준의 냉혹한 축객령이 떨어지자, 최이사는 안색이 흙빛으로 변한 채 서둘러 다가와 예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더 이상 자리에 머물렀다간 자신들의 배후 관계까지 들통날 판이었다. 최이사는 예지를 데리고 무대 뒤편의 어두운 통로로 급히 퇴장했다. 사교계의 하이에나들이 파놓은 덫이 유진의 독보적인 약리학적 지식과 보스의 절대적인 비호 앞에 완벽하게 박살 난 순간이었다.


***


소란이 가라앉고 군중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쏠린 틈을 타, 유진의 목에 걸린 은제 안개 분무기 펜던트가 세 번 미세하게 진동했다. 차수안이 전송한 신호였다. 클럽 내부의 모든 CCTV 감시 카메라가 3분 동안 루프 화면으로 전환되어 사각지대가 확보되었다는 의미였다.


유진은 이준의 가슴팍에 손을 얹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이준 씨. 반지가 잘 가동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준은 유진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푸른 다이아몬드 GPS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반지의 붉은 신호등이 정상적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이준은 유진의 하얀 어깨를 쓸어내리며 낮게 속삭였다.


“3분이다, 유진. 일 초라도 늦으면 내가 직접 너를 찾아내어 이 파티장 한복판에서 결박할 테니까.”


“늦지 않습니다.”


유진은 차가운 미소를 남긴 채 메인 홀의 어두운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장실 방향으로 향하는 척하던 그녀는, 수안이 보내준 도면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비상구 계단을 통해 지하로 은밀히 내려갔.


지하로 내려갈수록 클럽의 화려한 음악 소리는 멀어지고, 음산하고 차가운 공기가 유진의 뺨을 스쳤다. 철저하게 통제된 VIP 전용 지하 구역. 좁고 어두운 복도 벽면에는 붉은색 보안 센서들이 기괴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유진은 숨을 죽인 채, 오직 펜던트 수신기에 의지해 센서들의 사각지대를 기하학적으로 피해 걸어갔다. 손끝의 동상 흉터가 차가운 지하실 공기에 반응해 욱신거렸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침내 복도 끝, 두꺼운 철갑 격벽으로 봉쇄된 VIP 전용 서버실 문앞에 도달했다. 도어락의 디지털 액정 위로 푸른빛의 생체 인식 센서가 작동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카드키로는 절대 열 수 없는, 골든 크라운 최상위 마스터 보안 도어락이었다.


유진은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렸다. 이준이 건네준 가문의 인장 반지. 반지의 안쪽에 음각된 특수 바이오 코드와 루비의 기하학적 문양이 생체 인식 센서의 붉은 광선과 맞닿았다.


삐빅—.


[마스터 바이오 인증 완료. 보스 권한 승인.]


육중한 철문이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열렸다. 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버실 내부로 발을 들이려 했다.


스스슥—.


그 순간, 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유진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목 뒤로 징그러운 뱀 문신이 새겨진 거구의 사내. 최이사의 직속 해결사이자 잔혹한 폭력성으로 악명 높은 최태수였다.


최태수는 붉은 조명 아래서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친 채, 유진을 내려다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 가시나, 꼬마 약사님? 최이사님께서 귀한 손님이 올 거라고 하셨는데, 진짜로 쥐새끼처럼 기어 들어오셨네.”


유진의 검은 눈동자가 사막의 안개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는 대신, 가운 깊숙이 숨겨진 가죽 침통으로 오른손을 슬며시 가져갔다. 손가락 끝의 흉터 위로 예리한 은침들의 차가운 촉감이 와닿았다. 유진은 품속의 은침과 무색무취 정밀 투약 은폐술을 발동하기 위해 손끝을 우아하게 매만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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