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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의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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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사저 지하 2층, 비밀 온실 연구실의 공기는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해체된 온실 오염 디바이스의 돔 내부에서 점멸하는 붉은 경고등이 설유진의 창백한 얼굴과 왼손 약지의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를 기괴한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비비빅, 비비빅—.


적막을 찢는 고주파 비프음은 최이사의 집무실 단말기로 최종 로그 데이터가 송신되고 있음을 알리는 단말마였다. 바로 그 순간, 연구실 벽면에 부착된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기계음이 고막을 찔렀다.


“약사님, 보스께서…… 보스께서 지하로 내려오고 계십니다! 아침 8시 정각입니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정은하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조수 강태오는 공포에 질려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어, 어떡해요, 약사님? 오렐리아 군락지는 이미 90% 이상 괴사했고, 보스의 발작 예정 시간은 바로 지금이에요! 향료를 조제할 원료가 없는데 보스께서 이 상태를 보시면 우리를 당장……!”


“태오 씨, 진정해요.”


유진은 가운 안쪽 비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가운 유리가 느껴졌다. 사용 완료되어 텅 빈 ‘피닉스 응급 해독 주사기’의 실린더였다. 죽음의 선을 넘나들며 스스로를 생체 실험 도구로 삼아 쟁취한 생존이었다. 겨우 이 정도 사보타주에 흔들릴 이성이 아니었다.


유진은 대리석처럼 투명하고 창백한 안색에 입술만을 붉게 상기시킨 채, 차가운 눈빛으로 해체된 디바이스를 가운 주머니에 쓸어 넣었다. 목덜미에 남아 있는 백이준의 선명한 피멍 자국이 그의 지독한 지배욕을 상기시키며 욱신거렸다.


철컥.


온실의 묵직한 철갑 보안문이 열렸다.


동시에 온실 내부의 온도를 단숨에 영하로 떨어뜨리는 듯한 살기가 들이닥쳤다. 검은 코트를 걸친 백이준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목덜미와 턱선에는 이미 검푸른 혈관이 뱀처럼 솟구쳐 있었고, 안구는 붉은 실핏줄로 가득 충혈되어 있었다. 만성 신경 마비 독소의 자가 증식 주기가 도래해 전신이 타들어 가는 발작 직전의 상태였다.


“설유진.”


이준의 목소리는 쇠 긁는 소리처럼 거칠고 낮았다. 그러나 그가 다음 발걸음을 뗐을 때, 그의 예민한 후각이 온실을 가득 채운 비릿한 곰팡이 악취와 검게 녹아내린 오렐리아 군락지를 포착했다.


이준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의 충혈된 동공이 극도로 축소되었다. 푸른빛으로 고고하게 빛나야 할 군락지는 시커먼 진액을 흘리며 무덤처럼 주저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지?”


이준의 시선이 천천히 유진을 향했다. 그의 눈 속에 폭풍 같은 광기와 의심이 휘몰아쳤다. 그가 허리춤에서 무광 흑색의 권총을 뽑아 들었다. 철컥, 장전음이 온실의 침묵을 찢었다. 이준의 총구가 유진의 이마가 아닌, 온실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던 보안 경비원들의 머리를 겨누었다.


“내 온실이 이 꼴이 될 때까지 경비대 녀석들은 무엇을 한 거지? 배신자가 심어놓은 쥐새끼를 잡아내지 못한 대가는 오직 죽음뿐이다.”


“보스! 보스, 진정하십시오!”


뒤따라 들어온 주치의 홍진호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 그의 손에는 최신 화학 합성 진통제 ‘S-90’이 채워진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오렐리아가 없다면 이 합성 약물로 마비를 억제해야 합니다! 임상시험을 거친 최고급 신약입니다. 제 처방을 믿으십시오!”


홍진호가 다급히 이준의 팔에 주삿바늘을 꽂으려 했다. 그러나 이준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홍진호의 손목을 꺾어버렸다.


둑, 하는 소리와 함께 홍진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뒹굴었다. 주사기가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났다.


“내 몸에 그딴 쓰레기 화학 물질을 들이대지 마라.”


이준의 변이 마비 체질은 이미 과거 아수라의 인체 실험으로 인해 현대 서양 의학의 표준 합성 약물을 거부하고 있었다. 오직 자연의 유전적 독성을 정밀 조제한 유진의 향료만이 그의 신경망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준의 거친 숨소리가 온실을 채웠다.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었다.


“총을 거두세요, 백이준 씨.”


차가운 목소리가 이준의 광기를 가로막았다.


유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이준의 총구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성북동 사저 생존 수칙 제1조. 백이준과 독대할 때는 절대 눈빛을 흐리거나 피하지 말 것. 그의 광기 어린 의심에는 감정이 아닌 철저한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


유진은 이준의 핏발 선 눈을 정면으로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관찰하며, 그녀의 지적인 머릿속에서 즉각적인 중독 진단이 내려졌다. 마비 임계점까지 남은 시간은 단 48시간.


“경비대원들을 죽인다고 해서 썩어버린 오렐리아가 되살아나지는 않습니다. 지금 당신이 뿜어내고 있는 그 무익한 살기는 당신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만들어 마비 독소의 전이를 재촉할 뿐이에요.”


“……설유진.”


이준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권총을 거두고 유진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유진의 가녀린 몸을 완전히 덮었다. 이준은 가죽 장갑을 낀 거친 손으로 유진의 턱끝을 움켜쥐었다. 턱뼈가 으스러질 듯한 강한 악력이 가해졌지만, 유진은 오히려 그의 눈을 더 서늘하게 쏘아보았다.


“네가 내 해독제를 망가뜨린 배후인가? 결백을 증명하자마자 내 목숨줄을 끊으려 수작을 부린 거냐고 묻고 있다.”


“이 오염은 인위적으로 조작된 생화학 포자, ‘화이트 스포어’에 의한 것입니다.”


유진은 턱이 잡힌 채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차갑고 우아하게 대꾸했다.


“임서준이 숙청당하자 위기감을 느낀 누군가가 아수라의 독물 연구원 유태오를 매수해 저지른 짓이죠. 사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균은 일반적인 화학 소독제로는 죽지 않아요. 자연계에서 스스로 유전적 변이를 일으켜 혹한을 견뎌낸 야생의 오리지널 약초 종자만이 이 오염을 정화하고 당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야생의 종자라.”


“경기도 가평, 해발 800m 군락지 외곽의 통제 산림 구역. 그곳에 야생 오렐리아의 원종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가평 비밀 약초 재배소 외곽으로 가서 그 종자를 채취해 와야 합니다.”


유진의 단호한 선언에 이준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의 손가락이 유진의 턱끝에서 내려와 그녀의 하얀 목선, 자신이 새겨놓은 피멍 자국 위를 거칠게 쓸어내렸다.


“가평이라니. 이 사저 밖으로 나가겠다는 소리군.”


이준의 음성에 깃든 것은 뼈저린 불신과 가학적인 독점욕이었다.


“사저 감금의 굴레를 벗어나 아수라의 놈들에게 도망치려는 수작이 아닌가? 내가 너를 내보내 줄 거라 생각했나?”


“이 반지를 끼고서 어디로 도망치란 말입니까?”


유진이 왼손을 들어 올렸다. 푸른 다이아몬드 위성 GPS 추적 반지가 인공 조명 아래서 영롱하고 차갑게 빛났다.


“이 반지는 사저 반경 1km를 벗어나는 순간 당신의 스마트폰으로 경보를 울리죠. 게다가 당신의 최측근이자 무력 해결사인 한도현 씨를 내 밀착 호위로 동행시키세요. 도현 씨의 감시 하에 24시간 내로 복귀하겠습니다.”


이준의 시선이 문가에 묵묵히 서 있는 한도현에게 향했다. 도현은 과묵한 얼굴로 보스의 명령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이준은 유진의 단호하고 이성적인 눈빛에서 단 일밀리미터의 거짓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생명줄이 온전히 이 가녀린 여자의 손끝에 달려 있음을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었다.


스르륵.


이준이 유진의 목덜미를 쥐고 있던 손을 내렸다. 대신 그의 가죽 장갑 낀 손가락이 유진의 약지에 끼워진 GPS 반지를 거칠게 쓸어내렸다. 백금 프레임이 유진의 하얀 살결을 짓눌렀다.


“좋다. 한도현을 동행시켜 24시간의 유예를 주지.”


이준이 유진의 귀밑머리를 쓸어 넘기며 잔혹하게 속삭였다. 그의 숨결이 유진의 뺨에 닿았다.


“하지만 기억해라, 설유진. 시간을 단 1초라도 어기거나 반지에 미세한 오작동이라도 일어나는 순간…… 가평에 갇혀 있는 네 남동생 설민우의 진짜 손가락이 네 눈앞에 떨어지게 될 거다.”


유진의 심장이 미세하게 뛰었으나, 그녀는 완벽한 포커페이스로 이준의 살기 어린 경고를 받아냈다.


“24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모래시계의 첫 모래알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저 감금의 굴레를 깨뜨릴 첫 번째 외출이자, 최이사와 아수라가 파놓은 사선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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