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낙원
서치라이트의 날카로운 빛줄기가 대나무 숲의 장막을 가르기 직전, 설유진은 한도현의 묵인 아래 비밀 통로의 무거운 철문을 닫았다. 차갑고 습한 지하 수로의 공기를 지나 다시 성북동 사저 지하 온실로 복귀했을 때, 시계는 이미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진은 극심한 빈혈로 어지러운 이마를 짚으며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푸른 다이아몬드 위성 GPS 추적 반지가 어둠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목덜미에 남아 있는 백이준의 손자국 피멍 자국이 욱신거렸지만, 그녀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침내 사저 내부의 가장 예리한 칼날인 한도현을 포섭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준의 신뢰를 유지하며 동생 민우를 구출할 정밀한 판을 짜는 것뿐이었다.
몇 시간 뒤, 아침 7시 30분.
유진은 성북동 사저 생존 수칙 제2조를 수행하기 위해 눈을 떴다. 매일 아침 8시 정각, 백이준이 눈을 뜨기 전에 그의 침실 향로에 신선한 오렐리아의 숨결 향료를 충전해야 한다. 그것이 괴물 같은 이준의 살기를 제어하고 자신의 생존율을 보장하는 유일한 루틴이었다. 흰 연구원 가운을 걸치고 지하 온실의 무거운 철갑 보안문을 열었을 때였다.
“……!”
문이 열림과 동시에 유진의 비강을 찌른 것은 오렐리아 특유의 청량하고 서늘한 은빛 향기가 아니었다.
습하고 비릿한 곰팡이 냄새. 썩은 흙과 정체불명의 인공 화학 물질이 뒤섞인 듯한 기괴한 악취가 온실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유진의 초감각적 독소 후각이 즉각 경보를 울렸다. 단순한 환기 불량이나 자연적인 부패가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배양된 유독성 포자의 냄새였다.
유진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렐리아의 숨결 군락지가 있는 인공 폭포 뒤편으로 달렸다. 온실 내부의 온도 조절기는 평소의 18도가 아닌 28도로 치솟아 있었고, 인공 안개 분무기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끈적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약사님! 큰일 났습니다!”
연구실에서 밤을 새운 조수 강태오가 헝클어진 머리로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이미 썩어 들어가는 이파리 몇 장이 들려 있었다.
“갑자기 온실 온도가 치솟더니, 약초들이…… 약초들이 전부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유진은 군락지 앞에 멈춰 섰다. 영롱한 푸른빛을 발하며 고고하게 피어 있어야 할 오렐리아의 숨결 잎사귀들이 검붉은 반점으로 뒤덮인 채 썩어가고 있었다. 마치 염산을 뒤집어쓴 것처럼 세포막이 파괴되어 검은 진액을 흘리며 무너져 내리는 참상이었다. 군락지의 90%가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다.
“안 돼…….”
유진의 동공이 미세하게 축소되었다. 이준의 다음 마비 발작 예정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48시간. 이 약초가 없으면 이준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기도가 막혀 사망할 것이고, 그의 죽음은 곧 유진과 동생 민우의 파멸을 의미했다.
“비상 세척액을 뿌려야 합니다! 제가 소독제를 준비해 왔습니다!”
태오가 당황하여 표준 온실 세척액 통을 들고 군락지를 향해 스프레이를 조준했다.
“기다려요, 태오 씨! 뿌리지 마!”
유진의 차가운 만류가 떨어지기 직전, 태오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치익, 소리와 함께 알칼리성 세척액이 검붉은 반점 위로 분사되었다.
그 순간, 기괴한 현상이 일어났다. 세척액이 닿은 부위의 검은 진액이 거품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주변의 멀쩡한 잎사귀로 번져나갔다. 화학적 자극에 반응한 곰팡이 포자가 미친 듯이 증식하며 오렐리아의 푸른 줄기를 단 몇 초 만에 까맣게 녹여버린 것이다.
“앗……! 이, 이게 왜……?”
태오가 겁에 질려 세척액 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진은 쓰러져 가는 약초를 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표준 화학 소독제는 이 균의 증식을 도울 뿐이에요. 인위적으로 변이된 생화학 포자…… 화이트 스포어(White Spore)예요. 일반적인 항진균제로는 절대로 죽지 않아요.”
유진은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이성을 다잡았다. 슬퍼하거나 당황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그녀는 가운 안감에서 은제 안개 분무기 펜던트를 꺼내 표면을 확인했다. 은빛 표면이 이미 검붉게 변해 가고 있었다. 공기 중의 포자 농도가 한계치를 넘었다는 뜻이었다.
“태오 씨, 당장 방독 마스크를 쓰세요. 그리고 질량 분석기와 원심분리기를 가동해요. 이 포자의 발생지를 찾아야 합니다.”
유진은 온실 내부의 미세한 기류 흐름을 분석했다. 포자의 비릿한 냄새가 가장 강하게 풍겨 나오는 곳, 바람이 시작되는 상부 환기구였다. 유진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장의 철제 환기구 그릴을 뜯어냈다. 어두운 환기구 내부 깊숙한 곳, 미세하게 회전하는 팬 뒤편에 낯선 기계 장치가 자석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한 주먹 크기의 sleek한 검은색 원통형 장치. 온실 오염 디바이스였다.
장치의 미세 노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포자 안개가 지속적으로 뿜어져 나와 온실 전체로 퍼지고 있었다. 유진은 조심스럽게 기기 분석용 핀셋을 이용해 장치를 환기구에서 떼어냈다. 장치 표면에는 골든 크라운 내부의 기밀 자재 표식과 함께, 아수라의 독물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특수 주파수 안테나가 부착되어 있었다.
‘최이사…….’
유진의 머릿속에 배신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랐. 임서준이 숙청당하자 위기감을 느낀 최이사가 아수라의 독물 연구원 유태오를 매수해 사저 지하 온실을 통째로 오염시킨 것이다. 유진에게 관리 부실과 첩자 누명을 씌워 이준의 손으로 그녀를 죽이게 만들고, 이준의 생명줄을 끊어놓으려는 정교한 덫이었다.
유진은 장치를 들고 연구실 실험대로 내려왔다. 썩어 들어가는 오렐리아의 잎사귀에서 진액을 채취해 질량 분석기에 주입했다. 화면 위로 복잡한 탄소 연쇄 구조와 변이 유전자 지도가 붉은색 그래픽으로 도출되었다.
“예상대로예요. 아수라의 유태오가 설계한 변이 곰팡이균. 자연계의 그 어떤 약재로도 이 사저 안에서는 치료할 수 없어요. 오직 혹한의 환경을 견디며 유전적 변이를 일으킨 야생의 오리지널 약초 종자만이 이 균을 극복할 수 있어요.”
유진의 말에 태오가 절망적인 얼굴로 물었다.
“그럼…… 온실에 남은 오렐리아는요?”
“90%는 완전히 폐기해야 해요. 남은 10%도 반나절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유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검은 원통형 디바이스를 내려다보았다. 이 장치는 무선 송수신기를 통해 최이사의 개인 집무실 단말기로 실시간 작동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을 터였다. 장치를 해체하는 즉시 최이사에게 발각되겠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독가스가 뿜어지게 둘 수는 없었다.
“태오 씨, 정밀 드라이버와 절단기를 가져오세요.”
유진은 장치의 하부 커버를 열어 내부의 복잡한 회로 기판을 노출시켰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미세한 전선들이 이중 암호화 칩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미세한 손끝 제어력으로 송수신 안테나와 연결된 푸른색 전선을 겨냥했다.
“지금 끊겠습니다.”
딱—.
예리한 절단기가 전선을 끊어내는 순간, 디바이스 내부의 안전장치가 오버라이드되었다.
비비빅—!
갑작스러운 고주파 비프음과 함께 장치 중앙의 투명한 돔 내부에서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기기 모니터에 영문 경고 메시지가 붉은 글씨로 떠올랐.
[WARNING: Connection lost. Transmitting final log to Node-01...]
최이사의 사무실로 해체 사실과 마지막 데이터가 전송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둠이 내린 지하 온실에서, 붉은색 경고등은 유진의 창백한 얼굴과 왼손 약지의 블루 다이아몬드를 기괴하게 물들이며 끊임없이 점멸하고 있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