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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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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실 격벽의 강철 걸쇠가 붉은색 플라즈마 불꽃에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하는 불길한 굉음과 함께 쇳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문밖에서 대기 중인 제국 경비대원들의 거친 숨소리와 플라즈마 소총의 충전음이 폐쇄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나는 쓰러진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대뇌 피질 손상률 3.3%. 스틱스 방화벽의 전자기 충격을 대신 흡수한 대가는 너무나 처절했다. 왼쪽 시야는 온통 암흑에 잠겨 보이지 않았고, 목에 채워진 수인용 신경 제어 칼라는 과부하로 인해 찌르르하는 기계음과 함께 매캐한 타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뇌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열기 속에서 내 의식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진우 씨! 정신 차려요! 제발!”


기태가 눈물을 흘리며 내 죄수복 소매 안쪽을 더듬었다. 그의 손가락이 소매 깊은 곳에 은닉되어 있던 금속 부품들을 찾아냈다. 김윤아 의무관이 전해준 ‘시냅스 크라이오 쿨러’의 정밀 부품들이었다. 기태의 손길은 다급했지만 천재 해커다운 정교함이 있었다. 딸깍, 딸깍. 순식간에 조립된 소형 냉각 장치가 내 오른쪽 관자놀이에 반고정식으로 장착되었다.


피이이익-!


차가운 액체 질소 기반의 냉각수가 척수와 대뇌 피질 주변으로 급속히 주입되었다. 영하 180도의 극저온 냉기가 시각 피질을 관통하는 순간, 뇌가 얼어붙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감겨 있던 내 오른쪽 눈이 번쩍 떠졌다.


[크라이오 쿨러 작동. 대뇌 피질 온도 강제 하강 중. 일시적 의식 회복 성공.]


오른쪽 눈으로 보는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단순한 시야가 아니었다. 공중에 투명한 네온 그린빛의 양자 신호 격자가 촘촘하게 투시되어 흐르고 있었다. 주변 10미터 내의 모든 전자기 흐름과 생체 뇌파의 진동수가 숫자로 변환되어 머릿속에 실시간으로 연산되었다.


2급 프로 분석관(Pro Profiler).


인위적인 냉각과 생사경의 위기 속에서 내 사이킥 능력이 마침내 한 단계 각성한 것이다.


“기태야, 변전소 메인프레임의 제어권을 역이용해라.”


내 목소리는 냉각 가스 때문에 기계처럼 차갑고 갈라져 나왔다.


“이 구역의 전력을 차단하고 역배전을 걸어라. 암흑 속에서만 탈출할 수 있다.”


“네, 알겠습니다!”


기태가 단말기를 두드렸고, 마동철이 전면에 서서 전술 방패를 고쳐 잡았다. 격벽이 완전히 녹아내려 문이 열리는 찰나, 기계실의 모든 조명이 일시에 꺼지며 완벽한 암흑이 찾아왔다. 경비병들의 플라즈마 소총 조준선이 갈 길을 잃고 허공을 흔들었다.


“우아아악! 정전이다! 피아식별 센서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 혼란을 틈타 마동철이 나를 거대한 등에 업었고, 우리는 정비용 환기구 통로를 통해 기계실을 빠져나왔다. 어둠과 소음으로 뒤덮인 감옥 내부를 우회하여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제3수감 구역의 외딴 폐기물 임시 보관소였다. 간수들의 감시 카메라 사각지대이자, 고철 더미가 가득해 몸을 숨기기 최적의 장소였다.


***


“디데이는 내일 야간 교대 시간이다.”


나는 고철 상자에 기댄 채 나직하게 말했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장착된 크라이오 쿨러가 주기적으로 하얀 김을 내뿜으며 내 대뇌의 과열을 막아주고 있었다. 내 옆구리에는 여전히 한 박사의 고대 양장본 노트가 무사히 숨겨져 있었고, 가슴팍에는 황실 보안 액세스 칩이 차갑게 맞닿아 있었다.


“내일 교대 시간이 되면 기계실에서 확보한 전력 제어권으로 지하 7층 격납고로 향하는 보안 장벽을 일시에 무력화할 것이다. 동철 씨는 죄수들을 선동해 물리적 방패막이를 형성해 주십시오.”


마동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고주파 단검을 매만졌다. 기태 역시 단말기를 조작하며 마지막 주파수 동조를 점검하고 있었다. 모든 계획이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듯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각성된 내 오른쪽 눈의 네온 그린빛 시야에 기묘한 전자기적 왜곡이 포착되었다.


지직, 지직.


공중에 투사된 양자 신호 격자망의 한구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적인 전자기 소음이 아니었다. 누군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지향성 초고주파 패킷을 송신하려 할 때 발생하는 특유의 파동이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어두운 고철 더미 너머를 응시했다. 안광 데이터 추적이 가동되며 벽면 뒤쪽의 미세한 생체 뇌파 신호가 시각화되었다.


‘인간의 뇌파…… 심박수 분당 120회. 극도의 긴장 상태.’


누군가 우리를 도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뇌파의 파동은 너무나 익숙했다. 제3수감 구역에서 간수들의 주변을 서성이며 죄수들의 정보를 밀고하던 프락치, ‘스파이더’ 이강식이었다.


“쥐새끼가 숨어 있었군.”


내 기계적인 중얼거림에 마동철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마동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나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가만히 계십시오. 물리적인 충돌을 일으키면 복도에 배치된 진동 센서가 작동합니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나는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고 Ghost Veil(고스트 베일) 기술이 가동되며 내 주변의 전자기 신호와 신체 파동이 완벽히 억제되었다. 내 다리는 마비의 여파로 여전히 무거웠지만, 각성된 2급 분석관의 능력은 내 움직임을 완벽한 침묵으로 감싸 안았다.


어두운 통로 모퉁이, 철제 상자 뒤에 이강식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간수들에게 포상으로 받았을 초소형 가상 통신 단말기가 들려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단말기의 발송 버튼 위에서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의 단말기 화면에는 이미 우리가 나눈 탈옥 계획과 디데이 일정이 텍스트 데이터로 정렬되어 있었다. 발신처는 감옥 소장 바르가스의 개인 채널이었다.


‘이강식이 소장과 접촉하는 순간, 모든 계획은 끝난다.’


단 1초의 지체도 허용되지 않는 극단의 타이밍이었다. 이강식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누르려던 그 찰나, 나는 그림자처럼 그의 등 뒤에서 솟아올라 그의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탁-.


“헉……?!”


이강식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내 손끝에서 방출된 양자 전류가 그의 쇄골 신경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목소리를 가로막았다. 나는 주저 없이 내 뇌파를 그의 대뇌 신경망으로 밀어 넣었다.


‘시냅스 트레이싱(Synapse Tracing).’


내 오른쪽 눈이 선명한 네온 그린빛으로 타올랐다. 이강식의 머릿속이 공중에 입체적인 양자 격자 지도로 시각화되어 펼쳐졌다. 그의 대뇌 뉴런에 새겨진 최근의 작동 로그와 비열한 밀고의 기억들이 내 시야로 고스란히 유입되었다.


[이 놈들을 밀고하면…… 소장님이 나를 특별 사면해 주실 거야. 제국 중앙 행성으로 보내준다고 하셨어! 반드시 발송해야 해!]


이강식은 머릿속으로 소장이 약속한 탐욕스러운 보상을 떠올리며 내 정신적 침투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붉은색 방어벽이 내 시냅스 경로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2급 프로 분석관의 경지에 도달한 내 연산 능력은 그의 어설픈 정신 방어벽을 단숨에 해체해 나갔다. 나는 그의 뇌 신경망을 타고 흘러 들어가, 그의 손가락 움직임을 관장하는 운동 피질 영역을 강제로 장악했다.


“으, 으윽……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이강식의 눈동자가 공포로 가득 차 흔들렸다. 그의 엄지손가락은 발송 버튼을 단 1밀리미터 앞두고 완벽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의 뇌가 내리는 명령이 내 사이킥 지배력에 의해 강제로 차단된 것이다.


동시에 나는 그의 단말기에서 방출되는 초고주파 난수 신호를 포착했다.


‘뇌파 오버라이트.’


나는 내 대뇌의 전자기 주파수를 단말기의 송신 주파수와 1:1로 동조시켰다. 그리고 단말기가 바르가스의 수신기로 전송하려던 암호화 패킷의 데이터 알고리즘을 실시간으로 재작성했다. 발송 명령은 강제로 취소되었고, 단말기 내부의 송신 안테나는 고전압 오버로드로 인해 소리 없이 타버렸다.


스스슥-.


단말기 화면이 검은색 노이즈와 함께 영구히 꺼졌다. 밀고는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동철 씨, 지금입니다.”


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마동철이 나타났다. 그의 거대한 손이 이강식의 입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이강식은 버둥거렸지만, 전직 특수부대 중사의 완력 앞에서는 깃털처럼 무력했다.


우리는 이강식을 끌고 가 폐기물 보관소 옆에 방치되어 있던 빈 독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마동철이 묵직한 철문을 닫고, 기태가 단말기를 조작해 독방의 전자 잠금장치를 이중으로 걸어 잠갔다.


철컥-.


“후우…… 성공했어요. 밀고 신호는 완전히 차단되었고, 이 녀석은 이제 디데이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겁니다.”


기태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마동철 역시 만족스러운 듯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부의 가장 위험한 불씨를 소리 소문 없이 꺼뜨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안도는 단 3초도 가지 못했다.


위이이이잉-!


갑자기 폐기물 보관소 천장에 매달린 비상 경보등이 핏빛의 붉은색으로 일제히 회전하며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를 내뿜기 시작했다. 기지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이었다.


지직! 지지지직-!


기태의 품속에 있던 도청용 경비대 무전기에서 지독한 전자기 잡음과 함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경보! 제3수감 구역 4대대에 비상 상황 발생! 소장님의 특별 명령이다! 종신형 수감자 한 박사의 수감 구역을 즉시 밀폐하고 정밀 수색을 실시한다! 바르가스 소장님이 직접 무장 경비대대를 이끌고 현장으로 이동 중이다! 반복한다, 한 박사의 구역을 즉시 차단하라!


“진우 씨……!”


기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이강식이 소장과 접촉하지 못한 것에 의심을 품은 바르가스가, 탈옥 계획의 배후로 의심받던 한 박사를 기습 수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자 네메시스의 비밀을 쥔 한 박사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


피가 흐르는 내 오른쪽 눈에서 네온 그린빛 안광이 번개처럼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절체절명의 시간이 다시 우리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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