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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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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슨의 투박한 손가락이 내 가슴팍의 붕대를 찢어발기려 메스를 치켜든 순간, 김윤아가 그의 손목을 강하게 가로막았다.


차가운 백색 합금 격벽으로 둘러싸인 의무실 내부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죽 장갑을 낀 브론슨의 두꺼운 손목을 움켜쥔 김윤아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안경 너머 눈빛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호했다.


“간수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비켜라, 의무관! 이 반역자 놈의 몸에서 이상 전자기 신호가 잡혔단 말이다. 의무실 전력망까지 일시적으로 맛이 간 걸 보면, 이 놈이 붕대 속에 뭔가 위험한 장치라도 숨겨둔 게 분명해!”


브론슨이 흉포하게 으르렁거리며 메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죄수복 깃을 더욱 세차게 움켜쥐었고, 내 가슴속 붕대에 은닉된 ‘황실 보안 액세스 칩’의 단단한 모서리가 살갗을 찔러왔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칩은 물론이고, 옆구리에 숨겨둔 한 박사의 고대 노트까지 단숨에 발각될 판이었다. 전신 마비로 움직일 수 없는 나는 필사적으로 호흡을 고르며 뇌파를 억누를 뿐이었다.


“이 환자는 소장님의 극비 명령으로 이송된 상태입니다.”


김윤아가 목소리를 한 단계 낮추며 차갑게 읊조렸다.


“가상 심연 역류의 충격으로 대뇌 피질의 1.8%가 손상되었고, 뇌압이 임계치를 넘어섰어요. 이 상태에서 강제로 신체를 압박하고 붕대를 뜯어내다간 즉사합니다. 소장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네메시스의 제어 코드가 이 자의 뇌사와 함께 영원히 기화되어도…… 간수장님이 온전히 책임을 지실 수 있겠습니까?”


‘소장님’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브론슨의 기세가 눈에 띄게 꺾였다. 바르가스 소장이 황실 몰래 네메시스를 독점하려 한다는 야망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던 브론슨이었기에, 소장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브론슨은 짓씹듯 욕설을 내뱉으며 내 깃덜미를 거칠게 팽개쳤다.


“쳇, 쥐새끼 같은 놈이 운이 좋군. 하지만 의무관, 이 놈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호전되는 즉시 내 손으로 직접 전신을 샅샅이 뒤질 테니 그리 알아라.”


“그건 의사로서 제가 판단합니다.”


김윤아는 단호하게 대꾸하며 브론슨과 경비병들을 의무실 밖으로 밀어냈다.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자, 방 안에는 다시 차가운 정적만이 남았다.


김윤아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내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내 가슴의 붕대를 다시 정돈해 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브론슨이 의심을 거두지 않을 거예요. 이곳에 계속 두는 것은 위험합니다. 도진우 씨, 당신을 임시 이송 조치하겠어요.”


“이송…… 말입니까? 어디로…….”


내 목구멍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하 3층에 위치한 죄수 검투 경기장입니다. 그곳은 감옥 내에서 가장 무법지대이자, 역설적이게도 간수들의 감시 카메라가 유흥에 집중되느라 개별 수감자에 대한 정밀 스캔이 느슨해지는 곳이죠. 게다가 경기장 하부에는 강력한 중력장 제어 장치가 흐르고 있어, 당신의 대뇌 압력을 안정시키기 위한 ‘고중력 치료’라는 명분을 세우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녀는 신속하게 진료 모니터에 허위 소견서를 입력했다.


[수감자 도진우, 급성 뇌압 상승으로 인한 대뇌 붕괴 위험. 지하 3층 경기장 하부 중력 안정실로 긴급 이송 요망.]


제이콥이 다급하게 이동식 반중력 휠체어를 끌고 왔다. 그가 나를 휠체어에 조심스럽게 옮겨 태우며 내 귀가에 극도로 낮은 목소리로 소리 죽여 속삭였다.


“도진우 씨, 기태가 이미 그곳 경기장 기계실에 노역수로 위장해 대기하고 있습니다. 기태가 전원 제어 장치의 우회 경로를 확보해 두었으니, 경기장에 도착하면 그와 접촉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나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매 안쪽에 숨겨진 시냅스 크라이오 쿨러 부품들과 가슴팍의 마스터 보안 칩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새로운 전장으로 향한다는 긴장감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


지하 3층 죄수 검투 경기장은 광란과 피비린내로 가득 찬 지옥의 축소판이었다.


둥근 원형 경기장을 둘러싼 관람석에는 수백 명의 죄수들과 교도관들이 광기 어린 함성을 지르며 도박 칩을 흔들고 있었다. 경기장 사방은 푸른색 스파크를 뿜어내는 거대한 고압 전류벽으로 밀폐되어 있어, 그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완벽한 죽음의 우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철컥-.


의료 대기소의 투명한 강화유리창 너머로 경기장의 참혹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휠체어에 앉아 상체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내 시선이 경기장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구의 사내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2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체구, 전신에 가득한 흉터와 강철 같은 근육. 전직 연합 특수부대 중사 출신의 죄수 투사, 마동철이었다.


그의 양손에는 투박한 강철 너클이 채워져 있었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기류는 심상치 않았다. 경기장 상부 VIP 박스에 앉아 있는 브론슨 간수장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무전기에 대고 명령하는 소리가 대기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전류 수치를 올려라. 저 마동철 놈의 뼈마디가 완전히 굳어버릴 때까지!”


위잉-!


경기장 바닥을 흐르는 양자 전류의 밀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마동철의 전신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하며 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브론슨이 도박판의 배당금을 독식하기 위해 경기장 시스템을 조작하여 마동철의 신경계를 강제로 억제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경기장 반대편의 철문이 열리며 세 명의 중장갑 검투사들이 플라즈마 창을 든 채 살기를 뿜어내며 걸어 나왔다. 마동철을 확실하게 도살하기 위해 준비된 브론슨의 사냥개들이었다.


‘이대로 두면 마동철은 저 창에 꿰뚫려 죽는다.’


그는 내가 탈옥을 실행하기 위해 반드시 포섭해야 할 가장 강력한 물리적 방패였다. 그가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마비된 몸을 조금씩 비틀어, 의료 대기소 벽면 구석에 위치한 경기장 전원 공급 모듈로 다가갔다. 목에 채워진 수인용 신경 제어 칼라가 내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차가운 전자기 경고음을 울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떨리는 오른손을 전원 모듈의 금속 패널 위에 밀착했다.


‘머신 오버라이트.’


내 뇌파가 차가운 금속 패널을 뚫고 경기장의 양자 신호 제어기로 직접 침투하기 시작했다.


파지직! 지지직-!


목의 제어 칼라가 즉각 반응하며 내 뇌 신경에 강력한 억제 전류를 방출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고, 안구 뒤편에서 뜨거운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빨을 악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때, 대기소 구석의 환기구 격벽 틈새로 소형 해킹 단말기를 든 갈색 머리의 청년이 얼굴을 내밀었다. 기태였다!


“도진우 씨! 제 단말기와 주파수를 동기화하세요! 제가 방화벽의 우회 경로를 열어두었습니다!”


기태의 신속한 조력 덕분에 내 사이킥 침투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나는 경기장 전체의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여 대폭동을 일으키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내 머릿속 가상 공간에 삼엄한 붉은색 눈동자들이 그물망처럼 전개되었다. 감시 AI ‘판옵티콘’의 살상 방화벽이었다.


[경고! 비정상적인 전원 차단 시도 감지. 비상 백업 전원 가동 3초 전…….]


“큭……!”


전체 전원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방화벽의 역류 공격이 내 뇌를 태워버리기 전에 작전을 변경해야 했다. 나는 즉시 해킹 경로를 수정하여, 경기장 전체가 아닌 마동철이 딛고 서 있는 국소 구역의 전류 주파수만을 미세하게 왜곡하는 방향으로 타겟을 좁혔다.


위이잉-.


마동철을 옥죄고 있던 푸른색 전류의 파장이 네온 그린빛으로 미세하게 변조되며 강도가 급격히 감쇠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마동철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몸을 짓누르던 그 무거운 전자기적 억압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경기장 유리를 통해 대기소 구석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전원 패널을 붙잡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너인가…….’


하지만 감동할 시간은 없었다. 세 명의 중장갑 검투사들이 플라즈마 창을 치켜들고 마동철의 심장과 목을 향해 동시에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창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색 플라즈마 화염이 대기를 찢어발겼다. 마동철이 아무리 속박에서 풀려났다고 한들, 정면에서 가해지는 세 방향의 초고속 찌르기를 맨몸으로 완벽히 피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양안 전체가 선명한 네온 그린빛 안광으로 물들며 주변의 모든 양자 신호 격자가 내 시야에 공중 투시되었다. 나는 마동철을 향해 달려드는 세 검투사들의 대뇌 시냅스 주파수를 조준했다.


‘고스트 베일.’


내 뇌파가 허공을 뚫고 적 검투사들의 시각 피질로 직접 침투했다. 그들의 뇌 신경망에 미세한 간섭 주파수를 주입하여, 그들이 인지하는 공간의 거리감과 마동철의 물리적 위치 정보를 단 0.5초 동안 왜곡해 버렸다.


스슥-.


적들의 시야에서 마동철의 형상이 실제 위치보다 우측으로 30센티미터 가량 어긋나 보였다.


“하아앗!”


검투사들이 기합을 지르며 플라즈마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들의 창끝이 꿰뚫은 것은 마동철의 심장이 아닌, 그가 서 있던 자리 옆의 텅 빈 허공이었다. 완벽한 거리 연산 오류였다.


“무슨……?!”


창을 내지른 검투사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자신들이 왜 허공을 찔렀는지 이해하지 못해 0.5초간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치명적인 빈틈이 발생했다.


마동철은 그 짧은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베테랑 무인이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마동철이 포효하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의 오른손에 장착된 충격 진동 주먹이 고주파 진동을 일으키며 보라색 불꽃을 뿜어냈다.


퍼어억-!


마동철의 육중한 주먹이 첫 번째 검투사의 턱을 그대로 강타했다. 두꺼운 강철 투구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이빨과 피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이어지는 연속 동작으로 마동철은 남은 두 검투사의 가슴 장갑판을 차례로 짓눌렀다.


쾅! 콰아앙-!


진동 충격파가 장갑판을 뚫고 들어가 그들의 내장을 파열시켰다. 세 명의 거구 검투사들이 단 한 번의 반격으로 경기장 바닥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완벽하고도 압도적인 승리였다.


관람석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가, 이내 광란에 가까운 폭발적인 함성으로 뒤덮였다. 돈을 잃은 죄수들의 비명과 마동철의 무력에 경탄하는 교도관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흔들었다. VIP 박스의 브론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전기를 내팽개쳤다.


대기실 내부에서, 나는 전원 패널에서 손을 떼며 바닥으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윽……!”


시각 피질을 무리하게 교란한 대가는 참혹했다. 양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뺨을 적셨고, 왼쪽 시야가 완벽한 암흑으로 변해버렸다. 머릿속은 수천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신경통이 몰아치고 있었다. 크라이오 쿨러가 없었다면 내 뇌세포는 이미 완전히 타버렸을 터였다.


스스슥-.


그때, 환기구 격벽이 완전히 열리며 천재 해커 기태가 조심스럽게 기어 나왔다. 그는 단말기를 품에 안은 채,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나를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 가상 공간에서 벌어진 신적인 해킹전과, 적 검투사들의 시각을 단숨에 조작해 마동철을 구원해 낸 내 능력을 가장 가까이서 실시간 데이터로 지켜본 목격자였다.


기태의 온몸이 경외감과 전율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단말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내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당신은…… 단순한 수감자가 아니야. 제국의 시스템을 손가락 하나로 주무르는…… 신이다.”


기태가 떨리는 손으로 내 옷자락을 붙잡으며, 눈물 고인 눈으로 애원하듯 속삭였다.


“도진우 씨, 제발…… 제발 저도 당신의 탈옥 계획에 동참시켜 주세요. 이 지옥 같은 감옥에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제 해킹 능력을 당신에게 바치겠어요!”


나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피 묻은 입술을 열어 나직하게 웃었다. 이로써 완력을 책임질 마동철과, 시스템을 해체할 천재 해커 기태라는 가장 확실한 두 개의 날개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였다. 대기실 벽면의 비상 단말기 화면이 날카로운 비프음과 함께 네온 그린빛에서 붉은색 노이즈로 급격히 반전되기 시작했다.


[경고! 경기장 전원 제어 모듈에서 미세 양자 코드 역추적 개시. 감시 AI 판옵티콘이 발신지를 기계실 및 의무실 방향으로 실시간 추적 중…….]


감시 프로그램 판옵티콘이 마동철의 역습 뒤에 숨겨진 내 해킹 흔적을 포착하고 역추적 신호를 쏘기 시작한 것이다. 붉은색 추적 격자망이 내 시야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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