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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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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가스 소장의 권총 구경이 내 이마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차가운 총구의 감촉이 이마의 얇은 피부를 파고들었지만, 대뇌 피질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탓에 오히려 그 금속성 냉기가 기묘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무중력실 허공에는 내가 흘린 붉은 피방울들이 구형의 형태로 둥둥 떠돌고 있었다. 그 너머로 대뇌 신경망이 완전히 타버려 인형처럼 늘어진 심문관 레베카의 시신이 유령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반역자 놈이 무슨 짓을 한 거냐!”


바르가스 소장의 목소리는 분노보다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제국 최정예 사이킥 심문관이 단숨에 뇌사 상태에 빠진 광경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으리라. 그의 손가락이 권총 트리거를 당기기 위해 미세하게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즉결 처형.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0.1초도 되지 않았다.


전신 근육이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지만, 나는 피가 흐르는 입술을 비틀어 차갑게 미소 지었다. 수사관 시절 다듬어진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내 목구멍을 뚫고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쏘시겠습니까, 소장님? 제 머리를 날려버리는 순간, 지하 7층 격납고에 봉인된 네메시스는 영원히 고철 더미로 남게 될 텐데요.”


바르가스의 눈동자가 흠칫 흔들렸다. 그의 호흡이 가빠지며 권총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소장님의 그 위대한 계획도 함께 기화되겠지요.”


“뭐라?”


“외곽 성계로 도주해 독자적인 영토를 구축하려는 소장님의 계획 말입니다. 황제 놈의 목숨줄을 쥘 네메시스의 마스터 키를 손에 넣으시려던 야망…… 참으로 눈부시더군요.”


바르가스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그의 비대한 체구가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레베카의 정신망을 역해킹하며 훔쳐낸 소장의 비밀 통신 로그. 그것은 바르가스가 황실 보안국 몰래 네메시스를 독점하려 했던 명백한 반역의 증거였다. 만약 이 사실이 제국 중앙에 단 한 줄이라도 전송된다면, 그의 목은 즉시 단두대 아래로 떨어질 터였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제 뇌세포는 레베카의 공격과 가상 심연 역류의 여파로 실시간으로 사멸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를 죽이지 않더라도, 뇌사 상태에 빠지면 네메시스의 제어 코드는 영원히 유실됩니다. 저를 살려두는 것만이 소장님이 황실의 사냥개들 몰래 우주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바르가스는 이마에 힘줄을 돋우며 신음했다. 그는 권총을 든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의 탐욕과 공포가 치열하게 머릿속에서 연산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마침내 그는 결단을 내린 듯, 무중력실 벽면의 통신기를 거칠게 눌렀다.


“경비병! 당장 이 반역자 놈을 지하 의무실로 이송해라! 수석 의무관 김윤아에게 극비리에 치료하라고 지시해. 뇌세포가 더 이상 사멸하지 않도록 살려놓아야 한다. 이 이송에 대해 외부로 단 한 마디라도 새어나가면 너희 놈들 목을 가차 없이 날려버리겠다!”


통신이 끊기자마자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중장갑을 입은 교도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내 몸을 반중력 들것에 거칠게 던져 넣었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대뇌 피질 1.8% 손상의 대가로 극심한 두통이 뇌를 사정없이 찔렀다.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나는 옆구리 죄수복 안쪽, 붕대 깊숙한 곳에 숨겨둔 한 박사의 고대 양자 양장본 노트가 안전하게 밀착되어 있는지 필사적으로 감각을 유지했다. 다행히도, 차가운 종이의 질감이 옆구리에 선명하게 느껴졌다.


‘첫 번째 단계는 통과했다. 바르가스의 야욕을 족쇄 삼아 시간을 벌었다.’


***


지하 5층에 위치한 감옥 의무실은 타르타로스-9에서 유일하게 피비린내와 먼지가 덜한 공간이었다. 사방이 백색의 특수 합금 격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공기 중에는 나노 소독약 특유의 비릿하고 차가운 냄새가 감돌았다.


철컥-.


경비병들이 나를 차가운 수술대 위에 내팽개치듯 내려놓았다. 그들의 거친 손길이 내 목에 채워진 수인용 신경 제어 칼라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차갑게 읊조렸다.


“의무관, 소장님의 특별 지시다. 이 놈의 뇌가 타버리지 않게 살려만 놔라. 우리는 문앞에서 대기하겠다.”


“알겠습니다. 환자의 뇌파가 극도로 불안정하니 전자기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비병 분들은 모두 퇴실해 주세요.”


단호하면서도 지적인 목소리. 고개를 살짝 돌리자,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차가운 은색 안경을 쓴 여성이 보였다. 타르타로스-9의 유일한 양심적인 수석 의무관, 김윤아였다. 그녀의 뒤편에는 창백한 안색에 둥근 안경을 쓰고 다급하게 의료 기구들을 정리하는 젊은 조수, 제이콥이 서 있었다.


경비병들이 투덜거리며 의무실 철문 밖으로 나가자, 육중한 폐쇄음과 함께 방 안에는 정적과 의료 장비의 규칙적인 비프음만이 남았다.


김윤아는 신속하게 내 머리맡으로 다가와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은 정교하고 부드러웠으나, 내 안구와 구강에서 흘러내린 피를 닦아내는 그녀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슬픔과 흔들림이 서려 있었다.


“제이콥, 환자의 대뇌 피질 쿨링 장치를 준비해 주세요. 나노 치료제 주입기도 함께.”


“예, 예! 의무관님.”


제이콥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약품 카트리지로 달려갔다. 김윤아는 내 죄수복 상의를 가위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가위 날이 내 왼쪽 옆구리로 향하는 순간, 내 몸이 미세하게 긴장했다. 그곳에는 한 박사가 목숨을 걸고 전해준 고대 양자 양장본 노트가 숨겨져 있었다.


서걱-.


가위 날이 붕대를 가르는 순간, 김윤아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그녀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잘려 나간 붕대 틈새로 고대 양자 회로가 미세하게 발광하는 가죽 표지의 노트 모서리가 노출된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제발 밀고하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간청.


김윤아는 몇 초 동안 미동도 없이 노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잘라낸 붕대를 다시 내 옆구리에 밀착시키고 그 위에 새로운 지혈 패드를 덧대어 노트를 완벽하게 가려주었다. 그녀는 경비병들이 들을 수 없도록 극도로 낮은 목소리로 내 귀가에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숨겨 드릴 테니.”


그녀의 의외의 행동에 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왜 제국의 수석 의무관이 반역자 수감자의 탈옥 단서를 숨겨주는 것인가?


김윤아는 내 이마에 전극 패치를 붙이며 나직하게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뼈에 사무친 깊은 죄책감과 슬픔이 묻어 있었다.


“도진우 씨……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의 부모님인 도현우 박사님과 서은재 분석관님의 이름도요.”


내 눈동자가 커졌다. 전신이 마비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벌떡 일어났을 터였다.


“어떻게…… 제 부모님을 아십니까?”


“10년 전, 제국의 황실 보안국이 당신의 부모님을 반역죄로 몰아 숙청했던 그 비극적인 현장…… 내 아버지가 바로 그 숙청을 직접 집행했던 제국 보안관 김정태였습니다.”


쿠궁.


머릿속에서 거대한 폭탄이 터진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내 부모를 처참하게 살해했던 그 집행관의 딸이 내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내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운 살기로 물들었다.


“내 아버지는 제국이 왜곡하고 지워버린 역사 뒤에서,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 밤 피눈물을 흘리며 술로 연명하다가 비참하게 돌아가셨어요.”


김윤아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려 내 뺨 위로 떨어졌다.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에는 당신 부모님이 네메시스의 원격 학살 제어망을 끊으려다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진실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이 감옥에서 당신의 이름을 보았을 때 숨이 막혔어요. 내 아버지가 저지른 죄악, 제국이 자행한 그 더러운 숙청에 대해 속죄하고 싶었습니다. 도진우 씨, 당신을 살리고 이곳을 탈출시키는 것만이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그녀의 절박한 참회와 눈물 속에서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가득 찼던 살의가 서서히 가라앉고, 그 자리에 기묘한 연대감이 피어올랐다. 적의 피를 이어받은 자가 나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운명.


“시간이 없습니다.”


김윤아가 눈물을 훔치며 의무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백색 격벽 중앙에는 붉은색 렌즈를 번뜩이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의무실 천장의 감시 카메라는 15초 주기로 좌우로 회전합니다. 카메라의 렌즈가 동쪽 벽면을 향하는 그 15초 동안만 우리에게 사각지대가 생겨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약품 카트리지 뒤에서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던 제이콥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제이콥은 카메라가 서쪽을 비추는 틈을 타, 내 수술대 사각지대로 다가와 품속에서 금속성 부품들을 꺼냈다.


“도진우 씨, 기태 씨가 전해달라고 한 부품들입니다. 당신의 뇌가 타버리지 않게 보호해 줄 ‘시냅스 크라이오 쿨러’의 핵심 냉각 소모품들이에요.”


제이콥의 떨리는 손가락이 정밀한 나노 냉각 카트리지와 시냅스 연결 링을 내 손끝에 쥐여주었다. 나는 마비된 손가락의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그 부품들을 죄수복 소매 안쪽으로 은밀히 밀어 넣었다.


지직-.


그때, 감시 카메라가 다시 우리 쪽으로 회전을 시작했다. 제이콥은 즉시 몸을 뒤로 빼며 약통을 정리하는 척 연기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물건을 건네야 해요.”


김윤아가 내 가슴의 붕대를 만지며 속삭였다. 그녀의 손안에는 차가운 육각형 은색 금속판이 쥐여 있었다. 타르타로스-9의 모든 격리 차단문과 보안 구역을 단숨에 해제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마스터 보안 자산, ‘황실 보안 액세스 칩’이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이미 우리를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다. 단순한 신체 가림막으로는 저 정밀 광학 렌즈를 속일 수 없었다. 더 확실한 교란이 필요했다.


김윤아는 내 진료 모니터의 데이터 케이블로 손을 뻗었다. 그녀는 케이블의 접지 핀을 미세하게 비틀어 전자기적 쇼트를 유도했다.


파지지직-!


갑자기 내 진료 모니터가 거칠게 깜빡이며 붉은색 경보등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의무실 내부에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환자의 시냅스 전압 임계치 초과! 대뇌 피질 오버로드 감지!]


감시실의 원격 모니터 요원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 뇌파 그래프의 인위적인 에러 노이즈로 쏠렸다. 그들이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 허둥대는 단 5초의 시간.


“지금이에요!”


김윤아는 카메라가 우리를 비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니터를 점검하는 척하며 내 가슴 붕대 깊숙한 곳으로 황실 보안 액세스 칩을 밀어 넣었다. 제이콥은 재빨리 붕대를 감아 올리며 칩의 물리적 형태를 완벽하게 은닉했다.


칩이 내 가슴뼈 위에 닿는 순간, 차가운 양자 에너지가 내 신경망을 따라 미세하게 공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탈옥을 위한 가장 치명적인 무기가 내 몸속에 이식된 순간이었다.


“휴, 성공했어요…….”


제이콥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였다.


쿵-!


의무실의 합금 주 출입문이 거칠게 열리며 바닥을 울리는 무거운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의무실에 비상 전력 오작동 경보가 울렸다! 무슨 수작이냐!”


민머리에 가죽 장갑을 낀 거구의 사내, 제3수감 구역의 악랄한 간수장 브론슨이 정예 경비병들을 이끌고 난입했다. 그의 손에는 수십 명을 동시에 마비시킬 수 있는 고전압 진압봉이 푸른색 스파크를 튀기며 들려 있었다.


브론슨의 비열한 눈빛이 의무실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그의 시선이 내 흔들리는 눈동자와 김윤아의 창백해진 얼굴에 멈췄다.


“소장님의 특별 지시라고 해서 얌전히 기다려줬더니, 의무실 안에서 기분 나쁜 전자기 노이즈가 발생하는군. 반역자 놈이 의무관과 짜고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지 직접 확인해야겠다.”


브론슨이 내 수술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가죽 장갑 낀 손이 내 가슴팍의 붕대를 향해 뻗어 나왔다.


“전원 신체 검사를 실시한다. 이 놈의 붕대를 전부 뜯어내라!”


가슴속의 황실 보안 액세스 칩과 옆구리의 고대 노트가 발각되기 직전의 절체절명의 순간, 브론슨의 손가락이 내 죄수복 깃을 거칠게 잡아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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