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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집무실의 시기와 깃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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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감옥의 눅눅하고 비린 공기가 아직 온몸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감옥 소장 바락의 비열한 웃음소리와 아버지를 인질로 삼은 노골적인 협박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아리아 에르하르트는 차갑게 가라앉은 이성으로 자신을 통제했다. 지금은 분노에 휩쓸려 발을 잘못 디딜 때가 아니었다. 바락에게 건넬 뇌물을 마련하는 척 연기하면서, 동시에 황궁 내부에서 자신을 지켜줄 공식적인 방패막이를 단단히 굳혀야 했다.


그 방패막이가 바로 오늘 첫 출근을 해야 하는 곳, 황실 번역청이었다.


아리아는 옷소매 안으로 마비가 덜 풀려 뻣뻣한 오른손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다행히 시온이 챙겨준 은빛 박하 안약을 미량 복용해 손가락 마디마디가 최악의 강직 상태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미세한 감각은 무디기 짝이 없었다. 벽난로 불빛 아래에서 발견했던 머리칼 끝자락의 백색 흔적은 교묘하게 땋아 올려 비단 리본으로 감추어 두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조금 창백하고 수수한 몰락 남작가 영애의 모습일 뿐이었다.


웅장한 대리석 기둥이 늘어선 번역청 제3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낡은 사전들과 먼지 쌓인 양피지 스크롤에서 풍겨 나오는 특유의 쾌쾌한 종이 냄새와 말라붙은 잉크 향이 코끝을 찔렀다. 좁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희뿌연 햇살 아래, 거대한 서가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집무실 내부는 기묘할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고, 공기는 숨이 막힐 듯이 stifling(답답)했다.


사각사각.


깃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이 가득하던 집무실에 아리아가 발을 들이자, 순간 모든 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책상에 앉아 있던 번역청 학자들과 필사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그 눈빛들에 담긴 것은 노골적인 멸시와 경계, 그리고 차가운 호기심이었다.


“저기 좀 봐. 대역 죄인의 딸이잖아.”


“반역을 모의한 가문의 핏줄이 어떻게 황실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뻔뻔하게 번역청에 발을 들이는 거지?”


“태후 세력의 눈 밖에 난 가문이라던데, 오래 버티지도 못하겠군.”


들으라는 듯이 나직하게 흘러나오는 독설들이 아리아의 귀에 꽂혔다. 하지만 아리아는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고 단정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갔다. 귀족 사회의 위선적인 생리는 가문이 몰락하던 날 뼈저리게 배웠다. 감정적으로 흔들려 나약함을 보이는 순간, 저 사냥개 같은 자들은 물어뜯을 상처를 찾아 더 잔인하게 달려들 터였다.


“아, 아리아 님……!”


그때, 낡은 제복을 단정하게 입은 갈색 단발머리의 소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에 안도감과 걱정이 교차하는 그녀는 하급 번역관 겸 비서로 일하는 릴리였다. 아리아의 학술적 천재성을 동경해 번역청 내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따르는 충직한 아이였다.


“첫 출근을 축하드려요. 이쪽이 아리아 님의 자리예요. 따뜻한 차를 한 잔 내어드릴까요?”


릴리가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아리아를 구석진 자리로 안내했다. 책상 위에는 이미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아리아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왼손으로 릴리의 손을 가볍게 토닥였다.


“고마워요, 릴리. 차는 괜찮아요.”


“오호, 이게 누구신가. 우리 번역청에 새로 들어온 ‘특별한’ 하급 번역관이 아니신가?”


정적을 깨고 집무실 중앙에서 비열하고도 오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금발에 차가운 푸른 눈동자, 흐트러짐 없는 상급 번역관 제복을 입은 청년이 서가 뒤에서 걸어 나왔다. 번역청의 수석 경쟁자이자 아리아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하인츠 폰 베커였다. 그의 뒤에는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깐깐한 장부를 두드리고 있는 황실 행정관 에르스트가 서늘한 눈빛으로 배석하고 있었다.


“하인츠 님, 안녕하셨습니까.”


아리아가 예법에 맞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인츠는 비웃음을 흘리며 아리아의 수수한 회색 로브와 감추어진 오른손 소매를 훑어보았다.


“가문이 반역죄로 몰락하여 단두대 밑에서 울고 있을 줄 알았더니, 무슨 수로 황실 사면장이라도 얻어내어 이곳까지 기어들어 왔더군.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아리아 에르하르트. 이곳은 죄인의 자식이 동정을 구걸하는 고아원이 아니다.”


그가 손짓하자, 뒤를 따르던 하급 시종들이 거대한 나무 상자 세 개를 아리아의 책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쿵 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상자 틈새로 썩은 종이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게 무엇입니까?”


아리아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이긴. 네가 오늘 처리해야 할 공식 업무다.”


하인츠가 비열하게 웃으며 상자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상자 안에는 습기에 차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지고, 군데군데 곰팡이가 슬어 있는 고대 제국의 세금 대장과 외교 조약서 스크롤들이 가득 차 있었다. 평범한 번역관이라면 한 달을 매달려도 해독은커녕 종이를 한 장 넘기기도 전에 찢어발겨질 만한 쓰레기 더미였다.


옆에 있던 행정관 에르스트가 장부를 탁 소리 나게 덮으며 깐깐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번역청의 규정에 따라, 새로 임용된 하급 번역관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기한 내에 할당된 고문서 판독을 완수해야 하오. 오늘 저녁 일과가 끝나기 전까지 이 상자 세 개에 담긴 티르 제국의 고 방언들을 완벽하게 번역하여 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시오. 만약 단 한 장이라도 누락되거나 오역이 발생할 경우, 행정 권한으로 번역관 임용을 취소하고 즉각 방출할 것이오.”


노골적인 괴롭힘이자, 사법부와 태후 세력의 사주를 받은 행정적 압박이었다. 그들은 아리아가 이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번역청에서 쫓겨나고, 공식 신분을 잃어 다시 무방비한 죄인의 딸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인츠 님, 에르스트 님! 이건 너무하십니다!”


릴리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이 문서들은 수십 년 동안 지하 서고에 방치되어 마법적 훼손이 극심한 고서들입니다! 베테랑 상급 번역관님들도 해독에 며칠이 걸리는 서류를, 이제 첫 출근한 하급 번역관에게 오늘 하루 만에 전부 번역하라는 것은 억지입니다!”


“닥쳐라, 하급 보조원.”


하인츠가 차갑게 릴리를 쏘아보았다.


“감히 상급 번역관의 지령에 토를 다는 것이냐? 너 역시 저 반역자의 자식과 공모한 혐의로 번역청에서 당장 쫓겨나고 싶은 모양이군.”


“아……”


릴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하급 번역관의 비서에 불과한 그녀의 신분으로는 수석 경쟁자인 하인츠와 예산권을 쥔 에르스트의 권력에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릴리가 울먹이며 아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아리아는 조용히 릴리의 어깨를 잡아 뒤로 물러서게 했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은빛 눈동자로 하인츠와 에르스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오늘 저녁 일과 전까지 모두 번역해 두지요.”


“누나…… 아니, 아리아 님!”


릴리가 경악하며 속삭였지만, 아리아는 이미 책상 앞에 앉아 낡은 깃펜을 손에 쥐고 있었다. 하인츠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어깨를 으쓱이며 에르스트와 함께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집무실 중앙의 자신의 화려한 책상으로 돌아갔.


‘나를 물질적으로, 행정적으로 고사시키려는 얕은수다.’


아리아는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준 고서 더미가 얼마나 치명적인 독배인지 알고 있었겠지만, 에르하르트 가문의 마지막 후예이자 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한 천재 번역가인 아리아에게 고대 룬 문자와 티르 제국의 고 방언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언어였다.


스으으.


아리아는 눈을 감고 대뇌의 마력 연산력을 극도로 집중시켰다. 손목의 은색 룬 마법 팔찌가 미세하게 공명하며 뇌 신경의 통증을 완화해 주었다. 비록 오른손끝이 굳어 깃펜을 쥐는 손길이 다소 뻣뻣했으나,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열렸을 때, 상자 속 훼손된 고서들의 뭉개진 철자들이 머릿속에서 실시간으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고대 룬 문자 속독.’


아리아의 깃펜이 양피지 위를 미친 듯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고요한 집무실 안에 아리아의 책상에서 울려 퍼지는 경쾌한 필기 소리가 가득 찼다.


보통의 학자들이라면 돋보기를 대고 며칠을 분석해야 할 마법적 왜곡 패턴을, 아리아는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도 원래의 철자를 정확하게 복원해 냈다. 훼손된 문장의 맥락과 문법적 격변화 조항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기하학적 수식처럼 완벽하게 도식화되어 번역본으로 쏟아져 나왔다.


한 시간.


두 시간.


집무실의 다른 번역관들이 차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하인츠가 오만한 태도로 자신의 서류를 훑어보는 동안, 아리아의 책상 위에는 완벽하게 번역된 깨끗한 서류 뭉치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정오가 채 되기도 전에, 아리아는 하인츠가 준 세 상자 분량의 고문서 번역을 단 한 자의 오역도 없이 완벽하게 끝마쳤다.


마지막 깃펜을 내려놓은 아리아는 굳어 있는 오른손가락을 가볍게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무실 중앙, 하인츠의 책상 위에 번역본 더미를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할당된 번역을 모두 끝마쳤습니다, 하인츠 님. 에르스트 행정관님께 검수를 요청해 주십시오.”


“뭐, 뭐라고……?”


하인츠가 찻잔을 들려다 말고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르스트 역시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류 더미를 뒤적였다.


“이, 이럴 리가 없다! 이 훼손 수준의 티르 방언을 단 두 시간 만에 번역해 냈다고? 엉터리로 대충 갈겨쓴 것이 분명해!”


하인츠가 신경질적으로 서류 한 장을 낚아채 정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류를 내려갈수록 그의 푸른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완벽했다. 티르 제국 특유의 복잡한 격변화는 물론, 소실된 문맥까지 완벽한 고어 사전 조항을 인용해 주석까지 달아놓은 초일류 번역이었다. 에르스트 역시 장부를 뒤적이며 신음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역이…… 단 한 군데도 없소.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보관하던 공식 번역본보다 훨씬 정교하군.”


집무실 내부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리아를 멸시하던 학자들의 눈빛에 경악과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몰락 영애라는 낙인 뒤에 가려져 있던, 아카데미 수석 졸업생의 압도적인 지적 무력이 집무실 전체를 단숨에 지배해 버린 것이다.


하인츠의 얼굴이 굴욕감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어떻게든 아리아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서류를 찢어발길 듯이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던 아리아는, 하인츠의 책상 한편에 놓여 있는 붉은 가죽 바인더의 서류철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하인츠가 재상 벨리알 가문의 사주를 받아 오늘 오후 원로원에 제출할 예정인 ‘제국 영토 분쟁 조약서’의 공식 번역 초안이었다.


아리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은빛 주파수로 떨렸다.


‘진위 판별의 눈.’


그녀의 시야에 하인츠의 번역 초안 서류들이 극도로 확대되어 슬로우 모션처럼 펼쳐졌다. 하인츠의 겉보기에 오만한 미소 뒤에 숨겨진 미세한 안면 근육의 떨림과, 그가 서류의 특정 페이지를 슬쩍 가리려 하는 초조한 맥박 소리가 청각 과민을 통해 아리아의 뇌리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아리아는 한 걸음 다가서며, 하인츠가 손으로 누르고 있던 붉은 서류철의 특정 페이지를 왼손가락으로 정확히 지목했다.


“하인츠 님, 원로원에 제출하실 그 조약서 번역본…… 치명적인 오류가 있군요.”


“뭐라? 감히 하급 번역관 주제에 누구의 번역에 훈수를 두려 하는 것이냐!”


하인츠가 펄쩍 뛰며 서류를 품에 안으려 했다. 하지만 아리아의 맑고 단호한 목소리가 이미 집무실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약서 제14조, 영토 경계선 획정 부문입니다. 하인츠 님께서는 고대 라틴어의 ‘탈격(Ablative)’ 격변화를 단순한 ‘대격(Accusative)’으로 오인하여 번역하셨습니다. ‘제국의 영토 안에서’라는 면세 조항이, 격변화 오류 하나로 인해 ‘이웃 왕국의 영토로 귀속된다’로 완전히 왜곡되어 있군요.”


“이, 이 비열한 반역자의 딸이 무슨 헛소리를……!”


“이 조약서가 이대로 원로원에 제출되어 국경 획정법으로 통과된다면, 제국은 북부 영지 세 곳의 세금 징수권을 합법적으로 잃게 될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번역 실수가 아니라, 제국의 국고를 뒤흔드는 국가적 외교 대참사입니다.”


아리아의 차가운 논리가 하인츠의 얄팍한 학문적 자존심을 단숨에 베어 넘겼다. 에르스트 행정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급히 하인츠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아 아리아가 지적한 문장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정말이군! 격변화 주기가 완전히 잘못되었어! 하인츠, 자네 미쳤나? 이딴 서류를 재상 가문의 이름으로 원로원에 올리려 했다니!”


“에르스트 님! 그, 그것이 아니라……!”


하인츠는 말을 더듬으며 사정없이 떨리는 눈동자로 아리아를 노려보았다. 집무실의 동료 번역관들이 하인츠를 향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번역청의 수장이자 재상 가문의 권세를 업고 거드름을 피우던 자가, 이제 막 입궁한 몰락 영애에게 학술적으로 철저하게 도륙당한 꼴이었다.


하인츠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굴욕감과 분노, 그리고 자신의 무능함이 탄로 났다는 극도의 공포가 그의 뇌 신경을 장악했다.


“이…… 천한 죄인의 자식 년이 감히 나를 모함해!”


이성을 잃은 하인츠가 비열하게 웃으며 책상 위를 거칠게 뒤흔들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아리아의 로브 안쪽에 살짝 삐져나와 있는 가죽 수첩으로 향했다. 그것은 아리아가 밤늦게까지 소포르궁 침전에서 카이젠 황제의 악몽 속 고대 룬 문자를 해독하여 도식화해 둔 극비 연구 노트였다.


“이게 무엇이지? 수상한 주술 문양들이 가득하군! 반역자의 딸년이 황궁 내부에서 흉측한 흑주술이라도 모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하인츠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아리아의 노트를 강제로 낚아채 가려 사납게 손을 뻗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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