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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의 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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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연회의 잔상은 가혹하리만치 빠르게 흩어졌다. 어젯밤, 황제 카이젠의 비호를 받으며 온 제국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은빛 드레스는 이제 처소의 깊은 옷장 속에 봉인되어 있었다. 아리아 에르하르트는 다시 수수한 하급 번역관의 제복으로 갈아입고 황실 번역청 제3집무실의 책상 앞에 앉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제국의 수도 아스가르드는 차가운 아침 안개에 잠겨 있었고, 집무실 내부에는 눅눅한 종이와 굳어가는 먹의 냄새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리아는 소매 안쪽으로 오른손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여전히 손가락 끝은 감각이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귓가에는 미세한 이명이 삐 소리를 내며 고막을 찔렀다. 황제의 악몽을 대신 짊어진 대가는 이토록 현실적이고도 잔인했다.


하지만 아리아는 약한 소리를 내지 않았다. 가슴팍 품속에 숨겨둔 어머니 엘레나의 블루 사파이어 펜던트를 왼손으로 꾹 쥐며, 그녀는 얼음 같은 이성을 벼려냈다. 어제의 사교계 승리는 달콤했으나, 그것은 동시에 적들의 독기를 한층 더 날카롭게 자극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쾅!


그때, 집무실의 두꺼운 참나무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정적을 찢었다.


“아리아 에르하르트 번역관!”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제3집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온 인물은 제국 수석 검사, 카를 폰 란체였다.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그의 차가운 눈빛에는 아리아를 향한 노골적인 적개심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의 뒤로는 검은 제복을 입은 사법부 기사들이 삼엄하게 배석했고, 그 중심에는 값비싼 밍크 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 서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재상 벨리알이 서 있었다.


하급 번역관들이 겁에 질려 구석으로 몸을 피하는 와중에도, 아리아는 단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예법에 맞춰 고개를 숙였다.


“수석 검사 님, 그리고 재상 폐하. 이른 아침부터 번역청 제3집무실까지 행차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카를 폰 란체는 품에서 검은 리본으로 묶인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 아리아의 책상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


“에르하르트 남작 레오파드의 최종 사면 기각 및 사형 집행장이다. 오늘 새벽, 사법부의 특별 결의에 따라 네 아비의 가사면 유예 조항은 법적 하자가 있음이 판명되었다. 사형 집행은 정확히 3일 뒤, 수도 중앙 광장의 단두대에서 강행될 것이다.”


사형 집행장.


그 가혹한 단어가 집무실의 공기를 얼려버렸다. 비서 릴리가 숨을 들이키며 손으로 입을 막았고, 구석에 서 있던 하인츠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아리아를 쏘아보았다. 아리아는 책상 위의 두루마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가슴속이 차갑게 식어 내렸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투명했다.


“사면 유예 기각이라니요.”


아리아는 평판 세탁의 철칙을 가동하며, 감정을 완벽히 배제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실 사법령 제14조에 따르면, 황제 폐하의 친필 서명과 피의 옥새가 찍힌 사면 서약서는 그 어떤 사법적 재심의 대상보다 우위에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재상 폐하께서 서명하신 행정 명령이라 할지라도, 폐하의 절대 서약을 무력화할 법적 정당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솜씨가 제법 당돌하구나, 아리아.”


재상 벨리알이 한 걸음 다가서며 밍크 코트 자락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화려한 루비 반지들이 서늘하게 빛났다.


“하지만 네가 간과한 것이 있다. 황실 법률 제7조에 의거, 황제 폐하께서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서명하신 서약서는 원로원의 사법 심사권에 의해 일시적으로 효력을 정지할 수 있지. 최근 폐하의 광증이 극에 달했다는 것은 온 제국이 아는 사실이다. 우리는 폐하께서 광증에 눈이 멀어 대역 죄인의 딸에게 기만당해 서명한 것으로 판단했다.”


벨리알의 말은 교묘했다. 카이젠의 불면증과 광증을 빌미로 그가 내린 황명 자체의 법적 정당성을 흔들어놓은 것이다. 적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아리아의 목줄을 죄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기소장은 단순한 반역죄 조작이 아니다.”


카를 검사가 비열하게 웃으며 기소장 사본을 펼쳐 보였다.


“네 아비 레오파드가 지하 감옥에서 이단 주술 교단과 결탁하여 황실을 저주하려 했다는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 문서가 추가로 확보되었다. 이 기소장에 적힌 고대 룬 문자의 서명은 명백히 에르하르트 가문의 고유 서체다. 3일 안에 이 기소장의 위조 사실을 입증할 물리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네 아비는 처형대 광장에서 목이 잘려 나갈 것이다.”


아리아는 소매 속에서 왼손을 꽉 쥐었다. 적들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아리아가 가진 가문의 비밀과 능력을 강제로 폭로하게 만들거나, 혹은 그녀를 이단 주술죄로 함께 엮어 파멸시키려는 것이었다. 감정적인 호소나 황제에게 매달리는 무력 시위는 오히려 태후파에게 ‘황제가 마녀에게 홀려 폭정을 휘두른다’는 명분만 줄 뿐이었다.


철저히 법정에서, 지성으로 저 기소장을 박살 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아리아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특별 사법 재판의 개정을 신청하겠습니다. 3일 뒤, 법정에서 이 기소장의 모든 조항이 위조되었음을 제 지성으로 증명해 보이지요.”


“하! 당돌한 년. 어디 3일 동안 기적이라도 빌어보아라.”


카를 검사는 비웃음을 남기며 재상 벨리알을 대동하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거대한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자, 집무실을 짓누르던 무거운 정적이 서서히 걷혔다.


아리아는 홀로 책상 앞에 앉아 검은 리본으로 묶인 기소장 사본을 집어 들었다. 이명이 머릿속을 찌르고 오른손의 마비가 심해져 깃펜조차 쥘 수 없었지만, 그녀는 왼손으로 조심스럽게 기소장의 양피지 페이지를 넘겼다.


‘진위 판별의 눈(Eye of Discernment).’


아리아는 은빛 마력을 왼쪽 안구에 미세하게 집중시켰다. 그녀의 투명한 눈동자가 신비로운 주파수로 가늘게 떨리며, 기소장의 흰 종이 표면 위로 보이지 않던 미세한 마력의 흐름들이 입체적인 선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종이의 질감, 서명된 날짜의 마력 잔재, 그리고 룬 문자의 획 하나하나를 예리하게 추적하던 아리아의 시선이 기소장 하단의 붉은 인장과 서명란에 멈춰 섰다.


그 순간, 아리아의 척추를 타고 소름 끼치는 전율이 흘러내렸다.


그곳에 사용된 검은 묵즙의 입자 사이로, 일반적인 귀족이나 학자들은 결코 만질 수도, 소지할 수도 없는 기묘한 마력 반응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먹물이 아니었다. 차갑고 음산하게 일렁이는 보랏빛 연기와 같은 독소의 잔재.


‘이 마력 파동은…….’


아리아는 직감했다. 이것은 밤마다 황제의 소포르궁 침전을 좀먹고 있던 저주의 근원, 비밀 교단 에레보스의 ‘검은 눈물의 결정’ 성분이었다. 적들은 아버지를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금기된 흑주술의 매개체를 기소장의 잉크에 섞어 위조 문서를 작성한 것이었다.


벼랑 끝에 선 기소장 내부에서, 마침내 적들의 가장 치명적인 꼬리가 아리아의 지성 앞에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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