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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심연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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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대검의 날이 살가죽을 파고드는 찰나, 아리아는 감아쥐었던 황제의 손목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쥐새끼가 기어들어 왔군.”


카이젠 황제의 음성은 소포르궁의 어둠보다 더 시리고 무거웠다. 목덜미에 닿은 서늘한 감각과 함께 붉은 핏방울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칼날에 실린 살기가 목구멍을 옥죄었다. 폭군의 무자비한 살육 본능은 이미 이성을 집어삼킨 지 오래였다.


불면증으로 인한 광증.


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폭군의 진실이 바로 아리아의 눈앞에 있었다. 일주일째 단 한숨도 자지 못한 황제의 핏빛 눈동자는 허공의 환각을 쫓듯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아리아를 자신을 암살하러 온 정적들의 자객으로 보고 있었다. 완벽한 ‘중증: 환각 및 피아식별 불가’ 상태였다.


“누가 보냈지? 오필리아 태후인가? 아니면 벨리알 재상인가?”


카이젠의 거친 손길이 대검을 쥔 채 아리아의 가냘픈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으스러질 듯한 완력이 목을 조여 오자, 허파에 갇힌 공기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막혀 버렸다. 시야가 붉게 물들고 뇌가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목뼈가 부러질 터였다. 황제는 이미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말로 설득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했다. 오직 그의 뇌 신경을 직접 지배하고 있는 악몽의 독소를 진정시키는 것만이 이 죽음의 덫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신 차려야 해, 아리아 에르하르트.’


아리아는 흐려지는 이성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맛이 입안에 퍼지자 뇌가 번쩍 깨어났다. 아버지가 내일 새벽 단두대에 선다. 가문의 몰락을 막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사지였다. 여기서 허무하게 목이 날아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어머니의 유산인 ‘엘레나의 감정 통제 명상법’을 끌어올렸다.


‘내 마음속에 단단한 은빛 유리벽을 세운다. 외부의 공포도, 살기도, 내 안의 두려움도 그 벽을 넘어오지 못한다.’


심상 속에서 차가운 은빛 유리벽이 단단하게 솟구쳤다. 미친 듯이 날뛰던 심장 박동이 거짓말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공포가 이성으로 완벽히 통제되자, 아리아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황제의 타오르는 핏빛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는 굳어가는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을 옥죄고 있는 카이젠의 뜨거운 손목을 맞잡았다. 그의 피부는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맥박은 터질 듯이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스윽.


접촉이 일어나는 순간, 아리아의 눈앞으로 기괴한 색채의 파동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공포의 색채 감지’ 능력이 발동한 것이다.


카이젠의 머리 뒤편으로 피어오르는 오라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피비린내 나는 검붉은색 분노가 가시덩굴처럼 얽혀 있었고, 그 이면에는 타오르는 보랏빛 광증이 번뜩였다. 하지만 아리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모든 폭력성 아래 깊이 가라앉아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잿빛 고독의 심연이었다.


그것은 평생을 아무도 믿지 못하고 밤마다 가혹한 악몽에 난도질당해 온 자의 처절한 비명이었다.


‘이 파동이야.’


아리아는 황제의 뇌를 잠식하고 있는 주술적 어둠의 주기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것은 일정한 주파수를 그리며 그의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이 두통이 그를 미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은빛 마력을 개방했다. 그리고 그 마력의 주파수를 카이젠의 요동치는 심장 박동 주파수와 100% 일치시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두 사람의 심장 소리가 어둠 속에서 기묘하게 겹쳐졌다. 카이젠의 파괴적인 마력이 침입자인 아리아의 미세한 마력 장막을 찢어발기려 사납게 역류해 왔으나, 아리아는 저항하지 않고 그의 파동에 철저히 자신을 맞추었다. 물 흐르듯 유연하게 그의 신경망 틈새를 파고드는 우회 전술이었다.


마침내 주파수가 완벽히 동조되는 순간, 아리아는 자신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차갑고 맑은 은빛 마력을 황제의 손목을 타고 그의 관자놀이 부근으로 쏘아 보냈다.


파아앗.


칠흑 같은 소포르궁의 어둠 속에서 미세한 은빛 광선이 황제의 머리칼 주변을 감싸 안았다. 차가운 온기가 카이젠의 짓무른 뇌 신경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 순간, 카이젠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머리를 사정없이 쪼개는 것 같았던, 평생을 괴롭혀 온 지옥 같은 두통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갔다.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에 얼음처럼 차가운 성수가 쏟아진 것 같은 극적인 해방감이었다.


“……윽!”


카이젠이 나직한 신음과 함께 아리아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의 완력을 스르륵 풀었다. 그의 대검 끝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 황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가, 이윽고 숨을 헐떡이며 서 있는 은빛 머리칼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핏빛 눈동자에 서려 있던 광증의 안개가 걷히고, 예리하고 서늘한 본래의 이성이 돌아오고 있었다.


“방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리아는 붉게 손자국이 남은 목덜미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거친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단 한 치의 나약함도 보이지 않고 차갑고 우아한 태도로 옷깃을 정돈했다. 그녀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폭군 조율 대화법’을 가동했다.


“폐하의 머리를 좀먹던 악몽의 독소를 일시적으로 잠재웠을 뿐입니다.”


카이젠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비록 살기는 가라앉았으나, 침입자를 향한 황제 특유의 잔혹한 의심과 경계심은 여전히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그는 한 걸음 다가와 아리아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의 서늘한 얼굴이 아리아의 코앞까지 밀착되었다. 붉은 눈동자가 그녀의 영혼까지 꿰뚫어 볼 듯 집요하게 타올랐다.


“내 불면증은 제국의 그 어떤 명의도, 신전의 고위 사제도 고치지 못했다. 그런데 일낱 번역가 가문의 영애가 이를 다스린다고?”


카이젠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으며 아리아의 귓가를 서늘하게 긁었다.


“말해라. 나를 일시적으로 진정시켜 안심시킨 뒤, 네가 얻고자 하는 진짜 대가가 무엇이지?”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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