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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산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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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는 그레타의 턱을 차갑게 치켜세우며, 아리아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태후궁의 지령인가, 그레타.”


아리아의 손가락 끝에 닿은 그레타의 턱끝이 사시나무 떨듯 진동했다. 아리아의 잿빛 눈동자는 칠흑 같은 처소의 어둠 속에서도 기묘할 정도로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냉혹하리만치 이성적인 시선 아래에서, 그레타는 자신이 황궁의 거대한 포식자 앞에 발가벗겨진 채 서 있는 듯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아리아의 ‘공포의 색채 감지’ 능력이 그레타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오라를 예리하게 해독해 냈다.


기분 나쁜 살기나 탐욕의 검붉은색이 아니었다. 그레타의 머리 뒤편으로 피어오르는 오라는 심장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듯한 극심한 슬픔의 회색, 그리고 영혼을 집어삼키려는 듯한 절박한 공포의 보랏빛이 한데 뒤엉킨 처절한 파동이었다. 그것은 자식을 잃어버리기 직전의 어머니가 내뿜는, 피눈물 섞인 절망의 색채였다.


진위 판별의 눈 역시 그레타의 안면 근육의 미세한 경련과, 숨을 쉴 때마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레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절망은 진짜였다.


“……아리아 님, 제발…… 제발 제 딸아이를 살려주십시오.”


그레타는 결국 바들바들 떨며 아리아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완전히 엎드렸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그녀는 억눌린 오열을 토해냈다. 황실의 삼엄한 법률과 태후궁의 잔혹한 감시 속에서, 평생을 숨죽여 살던 하급 하녀가 내뱉을 수 있는 가장 처절한 비명이었다.


“제 딸아이, 제 어린 루시가…… 태후궁의 대주술사 말루스 사제에게 저주를 받았습니다.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서서히 말라가고 있어요. 태후궁에서 매달 지급하는 임시 약이 없으면 아이는 즉시 숨이 끊어집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리아 님의 방을 뒤지라는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제발, 제발 루시를 살려주십시오.”


그레타의 눈물이 아리아의 단정한 구두 끝을 적셨다.


아리아는 소매 속에서 오른손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여전히 손끝에는 어젯밤 황제의 악몽을 대신 꾸고 치렀던 가혹한 대가—미세한 마비 증세와 찌릿한 통증이 잔존해 있었다. 머리칼 끝자락의 은빛 백발화 흔적도 리본 아래 숨겨져 있었지만, 언제 이 가혹한 정화의 대가가 자신의 숨통을 조여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리아의 뇌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차갑고 명확한 계산을 시작했다.


‘태후 오필리아는 그레타가 내 방에서 비밀 계약서를 성공적으로 훔쳐내 나를 즉각 파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고 있겠지. 여기서 그레타를 기사단에 넘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태후궁은 즉시 새로운 자객이나 더 악독한 스파이를 보낼 터이고, 나는 상시적인 위협에 노출될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패는 적이 보낸 사냥개를 나의 충직한 심복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냥개의 목줄을 쥐고 있는 태후궁의 주술적 인질—그레타의 아픈 딸을 내 정화 능력으로 치료해 준다면, 그레타는 태후가 아닌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이중간첩이 될 터였다.


“그레타, 고개를 들어라.”


아리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레타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에밀리.”


아리아의 부름에 문가에 서 있던 전담 메이드 에밀리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에밀리는 이미 소포르궁 비밀 열쇠로 처소의 문을 걸어 잠그고 방음벽의 원리를 가동해 외부의 소리를 완벽히 차단한 상태였다.


“마차를 준비해라. 기드온 시종장님께는 수석 번역관으로서 야간 고문서 복원 작업을 위해 수도 외곽의 학술 도서관으로 잠시 이동한다고 전해라. 가르시아 기사단의 순찰대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부 한스의 비밀 마차를 이용한다.”


“예, 아리아 님.”


에밀리가 신속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로브를 챙겼다. 아리아는 로브 안쪽 깊숙한 주머니에 시온이 준 은탄환 호신용 권총의 감촉을 확인했다. 남은 탄환은 두 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최후의 보루였다. 그리고 가슴팍에 품은 엘레나의 블루 사파이어 펜던트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펜던트 내부에 담긴 미약한 신성 정화 마력이 주술적 탐지를 막아줄 터였다.


“그레타, 나를 네 딸아이가 누워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만약 이것이 나를 밖으로 유인하려는 태후궁의 덫이라면, 네 딸이 죽기 전에 네 심장에 이 은탄환이 먼저 박힐 것이다.”


“결단코 거짓이 아닙니다!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레타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리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리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로브의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


수도 아스가르드의 북쪽 외곽, 밤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음산하고 낡은 빈민가 골목길.


마부 한스의 마차는 소리 없이 어둠을 가르며 한 허름한 가옥 앞에 멈춰 섰다. 썩은 나무 냄새와 눅눅한 습기가 코를 찌르는 지하 밀실로 들어서자, 차가운 돌바닥 위에 얇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일곱 살 남짓한 어린 소녀가 보였다. 그레타의 딸, 루시였다.


“루시……! 엄마가 왔다, 루시야.”


그레타가 다급히 달려가 아이를 품에 안았다. 하지만 아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눈을 뜨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신음할 뿐이었다.


아리아는 가만히 다가가 아이의 상태를 관찰했다. 진위 판별의 눈과 진화한 오감 감응 능력이 즉각 아이의 신체 상태를 도식화해 냈다.


아이의 이마에는 검붉은 가시덩굴 모양의 기괴한 주술적 흉터가 핏줄처럼 돋아나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태후궁의 흑주술사 사제 말루스가 시전하는 가혹한 ‘수면 박탈 주술’의 물리적 낙인이었다. 아이의 뇌 신경망을 검은 마력 사슬이 옭아매어 깊은 수면 상태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아이의 영혼은 매일 밤 서서히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룬 문자 변형 패턴 분석법을 가동한다.’


아리아는 눈을 감고 대뇌의 연산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아이의 이마에 돋아난 가시덩굴 흉터의 마력 파동을 분석하자, 기하학적으로 왜곡된 고대 룬 문자의 변형 수식들이 아리아의 시야에 선명하게 비쳐 보였다. 말루스가 걸어둔 저주는 정교했지만, 대현자 알베리히의 일지 조각에서 필사해 둔 해독 공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에밀리, 불을 밝혀라.”


아리아는 품속에서 작은 은색 병을 꺼냈다. 국교 신전의 젊은 사제 베르나르드가 교단의 눈을 피해 몰래 조달해 준 정신 정화용 비약, ‘새벽의 성수’였다. 맑고 투명한 성수 내부에 달빛과 같은 신성한 정화 마력이 잔잔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아리아는 떨리는 왼손으로 아이의 parched(바짝 마른) 입술을 벌리고, 새벽의 성수 몇 방울을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성수가 아이의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순간, 이마의 검은 가시덩굴 흉터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작은 몸이 활처럼 꺾이며 고통스러운 신음이 밀실의 정적을 찢었다.


“루시! 아리아 님, 제발 루시를……!”


그레타가 절망적으로 비명을 질렀으나, 아리아는 차갑게 그녀를 제지했다.


“물러서라, 그레타. 지금 주술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면 아이의 영혼이 먼저 타버릴 것이다.”


아리아는 자신의 오른손목에 채워진 은색 룬 마법 팔찌를 가볍게 두드렸다. 팔찌에 새겨진 푸른 룬 문자가 은은한 인광을 뿜어내며 아리아의 전신에 정화의 마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비록 오른손끝의 마비 통증이 찌릿하게 올라왔지만, 아리아는 얼음 같은 정신력으로 통증을 차단했다.


그녀는 아이의 이마, 핏빛으로 요동치는 검은 가시덩굴 흉터 위에 자신의 오른손을 가만히 얹었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어머니의 유산인 ‘엘레나의 감정 통제 명상법’을 끌어올려 아이의 정신 공간에 이식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 단단한 은빛 유리벽을 세운다. 외부의 모든 사악한 주술과 혼돈의 소음은 이 유리벽을 넘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아리아의 손끝에서 눈부신 은빛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며 아이의 이마를 감싸 안았다. 성스러운 은빛 정화 에너지가 새벽의 성수 마력과 공명하여, 아이의 뇌를 옭아매고 있던 말루스의 검은 주술 사슬들을 조목조목 타격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검은 가시덩굴 흉터가 은빛 마력에 닿을 때마다 기괴한 연기와 함께 타들어 가는 소리가 밀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흑주술의 독소가 아리아의 손가락 끝을 타고 역류하려 했으나, 은색 마법 팔찌의 완충 효과가 그 독소를 50% 이상 원천 차단해 냈다. 아리아는 관자놀이가 깨질 듯한 편두통을 참아내며, 머릿속으로 정화의 룬 문자 ‘솔(Sol)’의 기하학적 획을 그려내 아이의 이마에 강제로 각인했다.


“해체(Dismantle)되라.”


아리아가 나직하게 정화 주문을 읊조린 순간, 아이의 이마에서 눈부신 은빛 광선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이윽고, 아이의 숨통을 조이고 있던 검은 가시덩굴 흉터들이 은빛 모래 가루처럼 바스러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요동치던 검은 주술 연기가 허공으로 피어오르다 새벽의 성수 기운에 완전히 정화되어 소멸했다.


“……으음.”


아이의 입술에서 편안하고 깊은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루시의 작은 얼굴이 거짓말처럼 평온하게 가라앉으며, 아이는 평생 처음으로 가혹한 저주의 가시 없이 깊고 달콤한 수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레타는 넋이 나간 얼굴로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해진 이마와 평온하게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이것이 신전의 고위 신관들도 하지 못했던 기적임을 깨달았다. 태후궁의 대주술사가 “임시 약이 없으면 즉시 영혼이 녹아 죽을 것”이라 협박했던 그 가혹한 저주가, 일낱 몰락 남작가의 영애이자 하급 번역관인 아리아의 손끝에서 단숨에 해체된 것이다.


그레타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아리아의 발치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절대적인 경외감과 숭고한 감복의 감정이었다.


“아리아 님…… 제 딸을, 제 루시를 살려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제 목숨도, 영혼도 이제 아리아 님의 것입니다. 어떤 명령이든 내려주십시오. 태후궁을 배신하라 하시면, 당장 제 목을 베어서라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레타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회색의 슬픔이나 보랏빛 공포가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아리아를 향한 절대적인 충성의 금빛 오라만이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리아는 전신에 몰려오는 극심한 마력 소모의 피로감을 억누르며, 천천히 손목의 은색 마법 팔찌를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정화 과정에서 미세 마력을 대량 소모한 탓에 손목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손가락 끝이 가볍게 떨렸지만, 그녀의 미소는 얼음처럼 차갑고 우아했다.


아리아는 허리를 숙여 그레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가만히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레타, 눈물을 닦아라. 그리고 이제부터 태후궁에는…… 황제가 매일 밤 광증으로 발작하며 미쳐가고 있다는 거짓 보고를 올리도록 해.”


아리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서늘하게 올라갔다. 적의 가장 치명적인 칼날을 완벽한 내 방패로 돌려세운, 지적이고도 처절한 승리의 미소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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