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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향료와 핏빛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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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가득 메운 차가운 안개 속에서, 시온이 건넨 검은 눈물의 결정은 불길한 인광을 내뿜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번뜩이는 태후궁의 문양. 아리아는 밀려오는 소름을 억누르며 소매 속으로 마비된 오른손을 깊숙이 감추었다. 귀를 찢는 듯한 이명이 머릿속을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고, 방금 전 추격전으로 인해 다친 발목이 뒤틀릴 때마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시온, 이 결정은 네가 안전한 지하 은신처에 숨겨둬. 그리고 정보 길드의 펠릭스와 접촉해서 이 사악한 광물이 암시장에서 어떤 경로로 유통되고 있는지 알아내야 해.”


“누나, 하지만 누나 몸 상태가…….”


“시간이 없어.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어. 내가 제시간에 소포르궁에 복귀하지 못하면, 가사면 서약서고 가문의 복권이고 전부 수포로 돌아가.”


아리아는 단호했다. 시온은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였고, 자객들의 시신을 신속히 수습한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리아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다친 발목을 이끌고 황궁의 비밀 통로로 향했다. 한 걸음을 디딜 때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고, 소매 끝으로 살짝 비친 그녀의 잿빛 머리칼 끝자락은 이미 흐릿한 은빛 백색으로 탈색되어 가고 있었다. 영혼의 침식이 가져오는 가혹한 신체적 대가였다.


가까스로 소포르궁의 비밀 회랑에 도달했을 때, 시종장 기드온이 어둠 속에서 초조하게 발을 구르고 있었다. 기드온은 하얗게 질린 아리아의 안색과 찢어진 로브 깃을 보고 경악했으나, 이내 입을 굳게 다물고 그녀를 침전 내부로 빠르게 밀어 넣었다.


“가르시아 경의 순찰대가 방금 서쪽 회랑을 지나갔습니다. 영애, 서두르셔야 합니다.”


“감사해요, 기드온.”


아리아는 굳어가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여 대답한 뒤, 황제의 개인 침전인 소포르궁의 거대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 아리아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침전 내부의 조도는 평소보다 훨씬 어두웠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묘하게 달콤하면서도 매캐한 향이 공기 중에 짙게 깔려 있었다. 그 냄새는 뇌 신경을 나른하게 마비시키는 동시에, 영혼 깊은 곳의 불안을 자극하는 기분 나쁜 단내였다.


‘이 향은…….’


아리아는 소매로 코를 가린 채, 침전 구석에 놓인 화려한 향로를 예리하게 응시했다. 태후 오필리아가 황제의 안정을 핑계로 매일 밤 피우게 지시한 수면 향료 ‘모르페우스’였다. 평소에는 미약한 안정제 수준으로 조율되어 있었으나, 오늘 밤 피어오르는 향은 농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짙었다.


아리아는 진위 판별의 눈과 지적 해독 능력을 가동해 공기 중의 마력 입자를 분석했다. 이 향료의 이면에는 황제의 무의식 장벽을 강제로 약화시키고, 태후궁의 주술사 사제 말루스가 심어둔 악몽 저주의 감수성을 극대화하려는 사악한 독소 성분이 숨겨져 있었다.


지금 당장 향로를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침전 외곽을 감시하는 기사 가르시아가 향료의 소실을 눈치챈다면 황제와의 비밀 수면 계약이 발각될 터였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리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독소로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침대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폭군 카이젠 황제에게 다가갔다.


카이젠은 땀에 젖은 흑발을 흐트러뜨린 채, 핏빛으로 물든 눈동자를 번득이며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 이미 이성이 절반쯤 날아간 그의 손은 침대 시트를 찢어발길 듯 움켜쥐고 있었다.


“폐하, 저입니다.”


아리아는 단호한 목소리로 그의 주의를 끌며, 마비 증세가 흘러넘치는 오른손 대신 차가운 왼손을 뻗어 그의 뜨거운 손목을 맞잡았다.


지직, 지지직!


두 사람의 피가 닿았던 손목의 서약 흉터가 붉은 인광을 내뿜으며 격렬하게 진동했다. 피의 정신적 동조가 강제로 발동함과 동시에, 아리아의 자아는 비명과도 같은 어둠의 주파수에 휩쓸려 카이젠의 참혹한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무섭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무의식의 전장에 발을 디딘 순간, 아리아는 숨이 턱 막히는 압도적인 살기에 뒤로 비틀거렸다.


“……아!”


이번의 심연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고 거대했다. 수면 향료 모르페우스의 독소 버프를 받은 악몽 공간은 온통 핏빛 안개와 타오르는 검은 불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발밑의 대지는 축축한 피로 강을 이루었고, 하늘에서는 정체불명의 비명 소리가 이명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피의 강 한가운데에서, 이전보다 수십 배는 더 거대해진 검은 가시덩굴들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아리아의 정신체를 향해 일제히 채찍질하듯 날아왔다. 그리고 그 가시덩굴의 중심부에서, 핏빛 안개를 찢으며 기괴한 형상의 거대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의 트라우마와 태후의 저주가 융합되어 탄생한 악몽의 파괴자였다.


괴수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아리아의 정신 장막을 순식간에 찢어발겼다. 극심한 두통이 현실의 신경계를 타고 역류해 뇌를 흔들었다. 아리아는 떨리는 정신체의 손가락을 움직여 가슴속에 기억된 정화의 룬 문자 ‘솔(Sol)’을 허공에 그리려 시도했다.


‘해체되어라…… 제발!’


그러나 그녀가 손끝에 마력을 집중하려던 순간, 안구 뒤편의 신경망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악몽 동조의 부작용이 한계치에 도달한 것이다.


파앗!


눈앞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번쩍이더니, 이내 안구의 미세 혈관들이 파열되는 느낌과 함께 온 세상이 완벽한 암흑으로 뒤덮였다. 2단계 침식 부작용인 ‘일시적 실명 사태’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


아리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핏빛 전장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괴수의 형상도, 자신이 허공에 그리려던 정화의 룬 문자조직차 완벽한 흑암 속에 묻혀버렸다. 시각이 완벽히 차단된 흑암 속에서, 오직 괴수가 대지를 짓밟으며 다가오는 무겁고 축축한 발소리와 가시덩굴이 공기를 가르는 서늘한 마찰음만이 고막을 찔러왔다.


룬을 그리려던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지던 은빛 마력은 시각 차단으로 인해 주파수가 완전히 어긋나 버렸고, 이내 피쉭 소리를 내며 허무하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마력 폭주의 반동으로 인해 아리아의 정신체 손가락 끝에 타들어 가는 듯한 경미한 화상 통증이 남았다.


‘보이지 않아…… 주파수를 맞출 수가 없어.’


절체절명의 무방비 상태. 괴수의 거대한 검날이 바람을 가르며 아리아의 머리 위로 낙하하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했다.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리아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오감 차단 호흡법을 가동했다.


‘시각을 잃었다면 차라리 완전히 지워버려라. 내면의 청각 주파수와 마력의 흐름에만 집중한다.’


그녀는 들숨과 날숨을 3초씩 반복하며 의도적으로 현실과 꿈의 모든 노이즈를 차단했다. 오직 미세 호흡 분석 스킬만을 극대화하여,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괴수의 거친 호흡 주기와 가시덩굴이 내뿜는 미세한 주술적 바람의 궤적을 뇌 속으로 수학적으로 수식화하기 시작했다.


스윽-!


괴수의 첫 번째 참격이 아리아의 뺨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갔다. 검풍이 그녀의 어깨를 스치며 로브 깃을 찢어발겼고, 현실의 육체에서도 어깨 부근에 붉은 피멍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아리아는 소리 없이 중심을 잡으며 오직 소리에만 의지해 괴수의 다음 공격 궤적을 예측했다.


그러나 물리적 신체의 한계는 이미 임계치에 도달해 있었다. 뒤틀린 발목의 통증과 실명으로 인한 정신적 공포, 그리고 수면 향료 모르페우스의 독소가 그녀의 이성의 끈을 가차 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의 절박한 한계 속에서, 아리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최후의 정화 타이밍을 노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신체의 시각이 완전히 차단된 암흑 속에서, 아리아의 극도로 예민해진 현실의 청각 신경망으로 기묘하고 낯선 소리가 포착되었다.


그것은 무의식의 심연 속 괴수의 비명이 아니었다.


소포르궁 침전 내부, 현실의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달칵, 사각…….


누군가 침전 외부의 결계를 은밀하게 우회하여, 소포르궁의 무거운 놋쇠 문고리를 조용히 돌려 내부로 침투하는 서늘한 쇠붙이 소리였다. 태후 오필리아가 보낸 일류 자객, 암살자 제로가 어둠을 틈타 아리아의 등 뒤로 칼날을 겨누며 침소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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